묵상과 칼럼

"지금 요양원에 들어가는 길이랍니다. 사람들이 마지막에 죽으러 가는 곳 말이죠!"

가족사랑 2021. 7. 15. 17:42

어느 날,
한 택시기사가 콜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날 그에게 일어난 일은 평생 잊지 못 할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콜을 받고 해당 주소로 가서 경적을 울렸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기사는  또 한 번 경적을 울렸지만 여전히 아무런 기척이 없었습니다.
이 손님이 그 날 교대 전 마지막 콜이었습니다.

그래서 기사는 마음이 급해저 얼른 포기하고 차를 돌릴까 하다가 일단 문으로 가서 불러 보기로 했습니다.

초인종을 누르자 가냘프고, 노쇠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시간이 꽤 지나 문이 열렸습니다.

아흔은 더 들어보이는 작고 연로하신 할머니 한 분이 문가에 서 계셨습니다.

한 손에는 작은 여행 가방을 들고 계셨습니다.

 문이 조금 열려 집안이 보였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집 안에는 사람 산 흔적이
싹 지워진 듯 모든 가구는 천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휑한 벽에는 아무 것도 걸려 있지 않았습니다.
단지 사진과 기념품이 잔뜩 들은 것으로 보이는 상자 하나만 구석에 놓여 있었습니다.

"기사 양반! 내 여행 가방 좀 차로 옮겨 줄래요? 부탁해요!"


할머니의 요청대로 가방을
트렁크에 싫고 할머니에게 돌아가 천천히 차 까지 부축해 드렸습니다.

할머니는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니에요. 모든 승객을 제 가족처럼 대해야죠!”

"기사 양반이 굉장히 친절 하시네요!"


할머니는 택시에 탄 뒤
목적지 주소를 알려주면서 

'바로 시내를 가로 질러 가지는 말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할머니! 시내로 가지 않으면 돌아가야해요. 목적지까지 가는 지름길이 없어요!
"시내를 통과하지 않으면 많이 돌아가게 될텐데요!"

할머니는 기사 양반만 괜찮다면 급할 게 없으니 돌아가도 된다고 말씀 하시면서
한 말씀 덧 붙이셨습니다.

"지금 요양원에 들어가는 길이랍니다. 사람들이 마지막에 죽으러 가는 곳 말이죠!"


그리고 할머니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이어 가셨습니다.

"의사가 그러는데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하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택시기사는 재빨리 미터기를 껐습니다.

"어디 가 보고 싶은 데 없으세요,  가시고 싶은데 얘기하세요?"


택시기사는 그 후 두 시간 동안 할머니와 함께 시내 곳곳을 돌아 다녔습니다.

할머니는 젊은시절 일했던 호텔을 가지고 했습니다.

 다음에는 오래전 세상을 떠난 남편과 함께 살았던 예전 집을 갔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 동안 인연이 있는 시내의 여러 곳을 다녔습니다.

차 안에서 할머니는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처럼   지나는 행인을 바라보기도 하고,

때로는 물끄러미 주변을 바라보며 눈물을 보이기도 하셨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이리저리로 다니던 할머니가  입을 열었습니다.

"기사 양반! 이제 피곤하네요. 목적지로 가 주세요!"

 

할머니와 함께 도착한 요양원은 생각보다 작았습니다.

차를 세우니 두 명의 간호사가 나왔습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할머니를 휠체어에 태웠습니다.

택시기사는 트렁크 속에 두었던 여행 가방을 꺼내 들었습니다.
할머니가 기사에게 물었습니다.
"기사 양반!  요금이 얼마죠?"
할머니는 핸드백을 열어서 돈을 꺼냈습니다.   

"할머니, 오늘은 무료입니다!"

"아니, 그래도 이 사람아! 생계는 꾸려 나가야지!"


"할머니!  승객은 또 있습니다. 걱정마세요. 괜찮아요!"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택시기사는 할머니를 꼬옥 안아드렸습니다.

할머니 역시 기사를 꽉 껴안았습니다.

"기사 양반! 이 늙은이의 마지막 여행을 행복하게 만들어 줘서 정말 고마워요!"

 

할머니와 헤어지는 기사의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고 있었습니다. 

기사는 눈물 가득한 채로 할머니의 전송을 받으며 요양원을 나왔습니다.

택시기사는 교대시간을 훌쩍 넘겼습니다.

그러나 기사는  정처없이 차를 몰고 돌고 돌아 다니면서 누구하고도 만나거나 말을 붙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늘 이 손님을
태우지 않았더라면~~.

택시기사에게 그날 일은 인생을 살며 해 온 것 중에 가장 뜻 깊은 일 중 하나였습니다.

 

우주라는 무한한 공간에 비하면 티끌만도 못한 작은 지구 위에서 우리는 일상적인 일에 쫓기며 살아갑니다.

영원한 시간에 비하면 찰나만도 못한 짧은 인생에서 희로애락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그렇게 살다가 결국 늙고 병들어 죽습니다.

이렇게 살다 가는 우리의 인생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무심하게 시간이 흘러 백 년 후, 천 년 후, 만 년 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우리 존재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추구하며 그것들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합니다.

이 추구하는 것들의 일부는 사업의 성공이거나 좋은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어 좋은 집에서 살며,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것입니다.

때로는 좋은 인간관계, 더 많은 곳으로의 여행을 즐기는 것입니다.

더 고상한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자가 되고, 좋은 인맥을 가지고, 즐거움의 목표를 달성 했는데도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깊은 빈 공간이 있습니다.

아무 것도 채우지 못했다는 깊은 공허함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솔로몬 왕은 측량할 수 없는 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솔로몬 왕은 그 시대나 우리 시대를 통틀어 어느 누구보다 뛰어난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는 수 백 명의 여자들, 다른 왕국의 부러움의 대상인 왕궁들과 정원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장 좋은 음식과 술, 그리고 모든 형태의 오락들을 누렸습니다.

그런 솔로몬왕도 자신의 공허함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전도서 1장14절)

 

솔로몬은 “해 아래의 삶”이 허무하다고 한탄합니다.

그는 자기가 다 누려보고 살아봤는데 '우리의 인생은 무의미하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이런 공허함을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었을까요?

 

솔로몬은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도서 3장11절).

 

우리의 뒤편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성경의 첫 권인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인간을 그분의 형상대로 만드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세기 1장26-28절).

 

우리는 다른 어떤 피조물보다 하나님을 닮은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사람)에게 땅을 다스릴 권세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재하시는, 영존하시는 영이십니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창세기 2장7절).

우리는 흙과 같은 존재인데 하나님께서 생기, 곧 하나님의 영을 불어 넣어주셨기에 생령이 되었습니다.

영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영적인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은 영이신 하나님과의 교통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3장8절에는   ‘날이 서늘할 때 동산에 거니시는 하나님’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를 위해 특별히 에덴동산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사람과 교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공평하시며 의롭고 거룩하십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고 사랑이 무궁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을 닮아 '선하고 공의롭고 거룩하며 자비롭고 사랑하는 삶'을 살도록 지으셨습니다. 

레위기 11장44절에 보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도덕적 책임'을 지도록 하셨습니다. 

 

기독교의 신앙고백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첫 번째 질문은  ‘인생의 본분이 무엇이냐?’입니다.

이 질문은  ‘인생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느냐?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고 대답합니다.

 

여기에 우리 인생의 목적과 가치가 있습니다.

이런 목적과 가치를 가지고 살 때 존귀한 사람으로서 의미 있는 생을 살게 됩니다.

만족과 기쁨이 충만하며, 행복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도록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며 환경을 지배하는 일을 사명으로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거룩한 존재로 살아가도록 창조된 사람이 사단이 유혹으로 타락하여 죄를 지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3장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생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최초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사단의 유혹에 충동되어 하나님이 금지하신 나무의 실과를 따먹었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습니다.

따먹는 불순종의 행위는 간단했지만 그 파장은 엄청났습니다.

불순종의 결과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었습니다.

생명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어 사람의 인생에 결핍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결핍은 여러 가지 현상을 통해 지금 우리가 겪는 고난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결국 육신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아담과 이브의 타락 후에는 모든 인생이 이런 죄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에게 주어졌던 영생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잃어버리고 비참한 상태로 떨어졌습니다.


사람의 인격에도 범죄의 결과가 미쳤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상실했습니다.

기쁨과 행복이 사라졌고,  평안과 만족감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슬픔과 분노, 좌절과 원망이 대신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섬겼는데 이제는 인격적, 정신적, 심리적 심한 분열과 갈등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범죄의 결과는 도덕적 가치관에도 그 영향을 미쳤습니다.

사람은 선과 공의와 거룩과 자비와 사랑을 추구하던 하나님의 길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대신 악과 불의, 속되고 무자비하며, 탐욕과 미움과 살인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고귀하게 지음을 받은 인생이 아주 저급하고 비천한 존재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철저히 망가지고 오염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상실되자 사람은 자신에 대하여 잘못된 자화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자화상이 뒤틀린 자화상으로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결과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방어적이고 두려워하며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습니다.

더나아가 또 다른 극단으로 치우쳐서 공격적이고 비판적이며 원망하고 스스로를 외로워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생을 구원하여 다시 치유되고 회복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형상이 다시 회복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형상은 죄 때문에 망가졌습니다.

죄 문제를 해결할 때 하나님의 형상 또한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죄 문제는 우리 인생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죄는 가공할 만한 권능을 가지고 사람 안에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타락한 본성에 그 뿌리를 박고 있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고행을 하고 수양을 해도 스스로 죄의 영역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과의 어그러진 관계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 로마서 3장23절 -

사람이 짓는 모든 죄악들은 타락한 본성이 발원지입니다.

성경은 이 타락한 본성을 가르켜  ‘육신’(flesh), ‘옛사람’(old self)라고 말합니다.

이 옛사람은 스스로를 변화 시킬 수 없습니다.

교정할 수도 없습니다.

치료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구원자로 보내시고 십자가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옛사람을 처리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구원자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그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로 사람의 죄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 에베소서 1장7절 -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죄 사함을 받고 죄의 세력으로부터 구원을 받으십시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 사도헹전 16장31절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요한복음 3장16절 -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로마서 5장8절 -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자를 성령께서는 거듭나게 하사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십니다.

옛 성품을 벗어버리고 새롭고 거룩한 성품을 받게 하십니다.

날마다 말씀과 기도생활을 통해 하나님과 가까이 교제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다는 것은 우리 영이 다시 살아나게 되어 하나님과의 교제가 깊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균형 잡힌 인격을 가지고 정상적이고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룩하게 살고 싶어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자신을 절제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환경에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정도의 길을 걸어갑니다. 평안!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 마태복음 11장 28-30절 -

- 하늘가는 길, 강릉남대천에서. 산돌의집 장득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