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강해

주기도문 강해(5)-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가족사랑 2021. 7. 1. 08:33

주기도문 강해(5)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 마태복음 6장 9〜10절 -

 

오늘 말씀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7장21-27절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기도입니다.

여기에서 ‘뜻’은 하나님의 뜻을 말합니다.

제자는 스승의 뜻을 알아야 하고, 가족은 가장의 뜻을 알아야 하고, 직장인은 경영주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7장21∼27절)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뒤집어 이야기하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뜻>이란 말은 헬라어로 델레마(θέλημα)라고 읽습니다.

이 말은 “의지”, “원함”, 또는 “뜻”으로 번역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의지가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요구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이며, 하나님의 계획하신 바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기도는 하나님의 플랜(Plan)대로 하나 하나 그 계획들이 이 역사 위에 이루어져 마침내는 하나님의 최종 플랜인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1. 하나님의 뜻

세상의 구원, 성도의 성화와 풍성한 삶

그러면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원하심은 무엇일까요?

크게 세 가지로 말씀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뜻은 세상의 구원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8장(누가복음 15장)에서 양 백 마리가 있는 목자가 그 중의 한 마리 양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목자는 잃었던 앙을 찾게되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혼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더 기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마18:14).

이 말씀은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입니다.

 

에베소서 1장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계획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에베소서 1장3∼5절)

 

삼위일체 하나님은 창세전에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계획을 논의하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각각의 역할을 담당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구원 계획을 만드셨고, 성자 하나님은 구원계획을 실행하셨고, 성령 하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시고 전파하게 하는 역할을 하셨습니다.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엡1:11)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연히 생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 선택해서 이뤄진 것도 아닙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에 따라 이뤄진 놀라운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3:17)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에서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6:38∼39)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세상을 구원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뜻은 성도의 거룩-성화(聖化)입니다.

성화(Sanctification)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가 점차 죄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 성결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서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살전4:3)고 하였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거룩함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거룩>이란 개념 자체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캐도쉬 이스라엘’(קְד֥ וֹשׁ יִשְׂרָאֵֽל)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라는 뜻입니다.

이사야서에서만 20번 나오는데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존재가 ‘거룩’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이 ‘거룩’입니다.

 

이사야가 환상 중에 높은 보좌 위에 하나님께서 앉아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습니다.

스랍(천사)들이 하나님을 모시고 서있습니다.

스랍들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함으로 하늘의 군대에서 가장 높은 계급을 갖고 있습니다.

스랍들의 직무는 하나님께 찬양을 외치는 것이며 동시에 모든 존재들에게 하나님의 절대적인 거룩함을 알리는 역할을 합니다.

이사야가 본 스랍(Seraph·스랍이 여럿 있으면 세라핌-불타는 자) 스랍들은 날개가 여섯이 있었는데,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웠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기리었고, 나머지 둘로는 날아다니면서 서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고 노래하고 있었습니다.(이사야 6장1∼3절).

그 외치는 소리가 하늘의 성전의 문기둥들이 들썩들썩했다고 했습니다.

 

이사야가 본 하나님의 모습은 ‘거룩’자체였습니다.

이처럼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거룩하기를 원하십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위기11장45절)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베드로전서 1장15절)

 

<거룩>은 히브리어로는 <카도쉬>라고 하는데 이 단어의 어원적 의미는 ‘구별’, 그리고 ‘밝음’입니다.

‘거룩함’은 ‘구별됨’입니다.

죄악된 것과 조금도 섞이지 않는 ‘초월성’을 가리킵니다.

또한 ‘거룩함’은 밝음입니다.

<밝음>은 더럽고 어두운 것이 없는 ‘순수함’과 ‘깨끗함’의 뜻입니다.

죄가 없는 상태입니다.

어둡고 왜곡되어 비뚤어진 것이 없는 ‘온전함’입니다.

그래서 그것은‘영광’입니다.

밝은 빛입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야고보서 1장17절).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한 존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거룩함’은 무엇일까요?

거룩함은 꼼짝하지 않고 부동자세로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도(道)를 닦는 것도 아닙니다.

<거룩>은 그냥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던 대로 진실하게 정상으로 유쾌하게 사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산다는 것은 우리의 몸을 잘 사용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마음과 행실이 정상이면 됩니다.

이상한 짓 하지 않고 사랑과 진실을 품고 바로 살면 그것이 ‘거룩함’입니다.

그냥 정상이면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구별된 백성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비록 과거에는 이 세상과 마귀에 속해서 세속적인 더러운 삶을 살았을 지라도 이제는 그런 삶에서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게 살아야 합니다.

 

로마서 12장에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1∼2)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어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고 성령을 주셔서 친히 우리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기오이’(ἅγιοι), 즉 ‘거룩한 사람들’이라는 뜻의 성도(聖徒)가 되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에게 붙일 수 있는 최고의 존칭인 ‘하기오이’(성도, saints)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고전1:2).

그러므로 성도라면 이름만 ‘그리스도인’이어서는 안 됩니다.

생활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야 합니다.

삶의 모습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답다!’는 소리를 들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성도가 다 예수님을 닮아 예수님처럼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의도대로 거룩하게 살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것은 영원한 삶의 약속입니다.

요한일서 2장에는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7)고 하였습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뜻은 성도의 풍성(豊盛)한 삶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에서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을 얻고,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원하십니다.

세상에서 살아갈 때 성공적이고 축복된 사람을 원하십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미국의 식물학자이며 농부인 워싱턴 카버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땅콩을 보면서 하나님은 땅콩에다가 어떤 자연의 신비를 담으셨을 테니, 이것을 한 번 연구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기도하면서 땅콩에 담긴 하나님의 신비를 캐나갔습니다. 그 결과 땅콩을 상품화하여 화장품과 인쇄 잉크를 비롯해 무려 3백 가지가 넘는 상품을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흑인노예 출신인 그는 상원의원 모임에 초청 받아 예정된 10분 동안 연설을 했는데, 이 연설에 감동 받은 의원들의 계속된 간청으로, 무려 1시간 반 동안이나 땅콩 연설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강연 제목은 ‘땅콩 한 알에 담긴 하나님의 창조 계획과 섭리’였습니다.

이처럼 볼품없는 땅콩으로도 3백 가지가 넘는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만물 중의 으뜸인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없으시겠습니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가 있지 않겠습니까?

 

요한복음 9장에 예수님께서 길가시다가 한 맹인, 즉 시각장애인을 만납니다.

그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이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본인의 죄입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9:3)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아픔조차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는 도구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병든 것이나 어려움이 하나님이 사랑하시지 않는 증거라고 말합니다.

어떤 분들은 질병이나 어려움을 죄 때문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해석에 쐐기를 박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무 사랑하셔서 그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시려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보십시오!

건강하고 아름다운 육체가 자랑스럽기도 하겠지만 죄의 도구로 사용된다면 자랑스러운 육체가 아닌 지옥에 가게 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오히려 건강치 못한 몸일지라도 하나님의 일을 위한 도구로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도구로 쓰여진다면 그것이 큰 축복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다 사명을 가지고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 가운데 사명이 없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길거리에서 뒹굴며, 발에 채이는 돌 하나도 우연히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대로의 의미가 있고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이겠습니까?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그에게는 사명이 있고, 그 사명을 감당할 때 인생의 참 행복과 가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하찮은 존재가 아닙니다.

그저 누군가에 의해 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가 아닙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내가 너를 사용하겠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알지 못하는 사고을 당하거나 시련을 겪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러한 고난을 주고 시련을 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쩌면 그것이 나의 욕심의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고통을 주고, 시련을 허용한 것에는 분명 하나님의 숨겨진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날을 더듬어 보면 당시에 불필요하게 보였던 일들이 뒤돌아보면 그 당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모든 일들을 통해서 자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시고 계십니다.

과거의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주어졌다면, 미래의 일 역시 하나님의 뜻 안에서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이루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2.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신앙인은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 뜻을 이루며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관심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그분의 뜻대로 사는 것만이 행복한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모든 삶의 중심에 하나님이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가 아니면 사람중심으로 사느냐는 그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나의 언행과 내가 맡은 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립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던 다니엘의 이야기를 들어 보십시오.

다니엘 1장 8절에 보면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라고 합니다.

‘다니엘이 뜻을 정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말합니다.

즉 다니엘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행동방침을 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시키는 대로 할 뿐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면 뜻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뜻외에 다른 뜻에는 순종하지도 않을 것이고 굴복하지도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 그 삶만을 내 인생 길로 정하겠다는 다니엘의 결단입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다니엘은 지금 이방나라인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포로라고 할 때, 그 목숨은 전적으로 바벨론 왕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니엘은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 삼겠다고 작정하고 나선 것입니다.

다니엘은 어떠한 뜻을 정했습니까?

바벨론 왕의 상에서 나오는 포도주와 진미를 거절한 것입니다.

바벨론 앙은 포로된 자 중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지혜롭게 보이는 자들을 골라서 자기가 막는 음식으로 3년 동안 키워서 자기를 위해서 일할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다니엘은 이것을 거부하기 위한 뜻을 세운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살 때 뜻을 정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뜻이란 모두 자기의 뜻이며 또 자신의 이익을 향해서 세워져 있는 뜻입니다.

그러나 신자는 철저하게 자기의 이익을 떠나서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태7장13∼14절)

 

사람들은 넓은 길을 찾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고 하면서도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자기를 세상적으로 유익되고 형통한 방향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저울질하면서 손해되고 고통스러운 길을 피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넓은 길이고 멸망의 길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다니엘은 비록 자기 몸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있으나 자기를 주장하시고 붙드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인다는 각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모습입니다.

성도는 세상에 살면서 세상의 환경과 이익에 의해서 움직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 다스림 받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살고 죽는 것,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잘 보이고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았다고 해서 우리 인생을 내 뜻대로 만들어 갈 수 없습니다

내가 처한 상황과 환경이 어떠하든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고 나가실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내 편에서 내 인생을 바꾸려고 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만 신뢰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열심히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성도는 다니엘처럼 세상의 환경과 이익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다스림 받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의 죽는 것 또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잘 보이고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았다고 해서 우리 인생을 내 뜻대로 만들어 갈 수 없습니다.

세상이 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살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거룩하게 살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것은 영원한 삶의 약속입니다.

 

요한일서 2장에는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7)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것은 쉬운 길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길만이 우리 인생을 가장 충실히 살 수 있게 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십시오. 평안!

 

- 하늘가는 길, 강릉남대천에서. 산돌의집 장득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