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강해

주기도문 강해(4) 나라가 임하시오며

가족사랑 2021. 6. 3. 14:21

주기도문 강해(4)

나라가 임하시오며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 누가복음 17장 20〜21절 -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로마서 14장 17절 -

 

 

오늘 우리는 주님의 기도 가운데 “나라가 임하시오며”에 대한 말씀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천국(天國)’하면 죽어서 가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도할 때도 “예수 믿고 꼭 천국에 함께 가자”고 합니다.

목사님이 설교 도중에 성도들에게 물었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은 사람은 일어서십시오."

모두들 일어섰는데 맨 앞자리에 앉은 한 집사님만 일어서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집사님은 천국에 가고 싶지 않는 겁니까?"

그러자 그 집사님은 이렇게 대답해습니다.

"아니요, 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장 가기 싶어요. 죽으면 가야지요.“

 

이 대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실 “천국간다”는 말은 ‘죽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천국간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믿는 자가 죽었다는 뜻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신앙적인 소망을 담아 생전에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고 믿었으니 죽은 후에는 죽음의 세력에서 건짐 받아 죄와 죽음과 질병의 세력에서 자유케 되었음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그림으로 그려지는 것이지요.

그럼 ‘하나님의 나라’는 정말 죽어야만 가는 곳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나라를 사후(死後) 세계로만 생각하면 “나라가 임하시오며”라고 주기도문을 외울 때마다, 그 의미는 ‘하나님 죽고 싶습니다. 죽어서 천국가고 싶습니다.’는 기도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야만 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서도 갈 수 있지만 살아서도 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야만 경험할 수 있는 나라이기도 하지만 살면서도 누릴 수 있는 나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내세(來世)적이면서 동시 현세적(現世的)이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의 나라

주기도문에는 하나님을 위한 기도가 세 가지 있습니다.

(1)하나님의 이름

(2)하나님의 나라

(3)하나님의 뜻에 대한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하나님의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원어를 보면 앞에 ‘당신의’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나라가 임하시오며’는 정확하게 읽으면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오며’이고,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당신의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라고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당신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최종적으로는 ‘하나님, 당신의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라고 읽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와는 좀 다릅니다.

우리들이 전통적으로 갖고 있는 천국에 대한 개념은 불교의 극락(極樂)이나 도교나 무속(巫俗)에서의 저승, 즉 황천(黃泉)의 개념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그저 죽어서 가는 좋은 곳, 낙원(樂園), 파라다이스(paradise) 같은 곳으로 생각을 합니다.

이러한 천국에 대한 개념은 기독교인들에게서도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천국(天國)하면 예수 믿고 죽어서 가는 곳, 낙원, 금은보화로 가득하고 고급 맨션이 나를 위해 준비된 곳입니다.

불교(佛敎)의 극락이나 저승(儲承)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있다면 예수 믿어 가는 곳입니다.

 

성경, 특히 마태복음에서 말하는 천국, 정확한 의미로 하나님 나라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천국의 개념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의 나라와 같이 어느 한 지역에 영토를 차지하거나 우리의 시공 세계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永遠)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오며”라고 기도할 때, 영원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현실과 시간 속으로 임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신비(神祕)입니다.

그 신비로운 나라가 지금 우리 속에 임하도록 기도하는 것이 주님의 기도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님의 기도의 관점은 사후(死後)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現實) 세계에 있고, 저 나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전하셨던 메시지의 핵심이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이었습니다.

예수님보다 먼저 와서 유대광야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던 세례 요한의 메시지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태복음 3장2절)였습니다.

예수님의 첫 설교도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5:3)라고 천국에 대한 말씀으로 팔복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5:10)는 말씀으로 팔복을 끝내셨습니다.

팔복은 천국으로 시작해서 천국으로 끝내셨습니다.

베드로에게 주신 열쇠도 천국의 열쇠였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도, 겨자씨 비유도 모두 천국,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신약성경의 처음인 마태복음에만 천국이라는 단어가 무려 36번이나 기록이 되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국가를 형성하는 3가지 요소는 영토, 국민, 주권입니다.

이 세 가지가 있어야 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영토는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는 영역을 말합니다.

이것은 세상의 국가처럼 지상적인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공간이면서 동시에 시간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민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걸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주권입니다.

누구의 주권일까요?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통치를 받는 사람들이 있는 나라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의 개념에도 그 중심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리고 그 주권은 회복을 통해 시작이 됩니다.

그러나 이 회복은 당시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이스라엘의 정치적 회복이 아닙니다.

보다 근본적인 회복입니다.

 

여러분은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결핍(缺乏)입니다.

결핍이 인간의 실존적인 문제입니다.

 

결핍은 범죄함으로 생겼습니다.

하나님을 떠남으로써 생겼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했을 때는 이러한 결핍이 없었습니다.

에덴동산은 인간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통치를 받은 상태를 말합니다.

그때는 어떠한 결핍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함으로 인해 결핍이 생겼습니다.

 

범죄는 다른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탄이 여자를 유혹했을 때 뭐라고 했습니까?

‘너희가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세기 3장1∼5절-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하나님처럼 되어보겠다고 불순종했습니다.

이들의 문제는 단순히 선악과를 ‘먹고, 안먹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내가 하나님 되어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처럼 죄의 본질은 자기주장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을 거절한 인간에게 찾아온 것이 바로 결핍입니다.

창세기 3장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죽음>이라는 생명의 결핍이 찾아왔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서의 고귀함과 거룩함의 결핍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을 닮은 사랑과 정의로움의 결핍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기만을 사랑하는 이기적이고 탐욕스런 존재가 되었습니다.

온갖 거짓과 불의와 부정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거룩함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고귀함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사랑도 없어져 버렸습니다.

공의도 없어져 버렸습니다.

결핍을 채우려고 한 짓이 우상숭배이고, 재물과 권력과 명예와 성공과 쾌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결핍이 채워집니까?

채워지지 않습니다.

더 갈증이 생기고 더 허탈해지고 더 더러움에 빠지고 맙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결핍은 결코 하나님 아닌 다른 것으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어리석게도 하나님께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고 더 멸망의 길로 갑니다.

이것이 인간의 실존이고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결핍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것이 누가복음 15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탕자의 비유입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는 결핍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아버지에게 자기주장을 합니다.

아버지의 간섭이 싫다는 겁니다.

내 인생 내 마음대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아들은 아버지를 떠납니다.

처음에는 좋은 것 같았습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 내 마음대로 하니 신납니다.

그런데 결국 어떻게 됩니까?

가진 것 다 떨어지고 돼지우리에서 사료를 먹는 그런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실존입니다.

탕자의 이야기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실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그 무엇으로도 그 결핍을 채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탕자이며 뿌리 채 뽑힌 나무와 같습니다.

뿌리 채 뽑힌 나무는 살아있으나 죽어가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열매도 있고 잎도 무성하고 푸르니까 부족한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뿌리가 뽑혀 있기에 그 나무는 결핍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생명의 결핍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2. 나라가 임하시오며

주님께서는 "나라가 임하시오며"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임한다"는 말은 '엘데토'인데 영어에는 Come으로 번역하고 중국어로는 임할 림(臨)자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깨달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임해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의 모든 나라가 더 잘 사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할 뿐만 아니라 모두가 하는 말이 천국과 같은 나라로 만들겠다고 합니다.

정말 지금 우리나라도 열심히 노력해서 지난날에 비해 보면 너무도 좋은 건물을 짓고 온갖 좋은 시설을 갖추고 정말 천국과 같을 정도로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세상의 내면을 보면 더 죄악이 가득하고 너무 끔찍한 일이 많이 일어나서 때로는 생지옥과 같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마음은 더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세상이 진정한 천국이 되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자기의 천국을 만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천국을 만들라고 하지 아니하시고 "나라가 임하시오며"라고 기도하라고 헸습니다.

참으로 천국은 사람들이 노력을 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임해오시고 하나님이 다스리면 그곳이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땅에 계시면서 누구에게도 좋은 집을 지으라고 하거나 좋은 시설을 만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장엄하던 예루살렘 성전까지도 다 무너뜨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8장36절에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시고 이 땅에는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고 하시고 제자들에게 하나님 아버지 집인 저 천국으로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주님이 임하시고 주님께서 통치하게 되면 천국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세상 나라도 김영삼 정부니 김대중 정부, 이명박 정부라고 하둣이 이 세상에 하나님을 왕으로 모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곳 그 어디든지 하나님이 임하시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임하실 때 천국이 되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 땅에 만왕의 왕으로 재림해 오셔서 온전히 통치하실 때에 천국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인 결핍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에서 주어집니다.

여기에서 필수적인 것이 죄 문제의 해결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절).

‘거듭난다’는 것은 죄의 문제가 해결된 것을 말합니다.

인간에게 결핍을 가져다 준 죄의 문제가 해결된 사람이 바로 거듭난 사람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사람, 그 사람이 바로 거듭난 사람입니다.

 

우리의 회개는 다른 것 아닙니다.

자기주장에 대한 회개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은 자기주장에 대한 회개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불순종하고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하는 교만에 대한 회개입니다.

이 회개가 있어야만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가능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면서 동시에 외친 것이 <죄의 회개>입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마가복음 1장15절 -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은 자기주장이라는 죄의 회개를 통해서입니다.

회개를 한 다음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 복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메시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은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것을 명확하게 말씀하신 것이 요한복음 14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장6절-

 

왜 예수님만이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까?

왜 예수님만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실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까?

그것은 예수님, 그분이 우리의 본질적인 문제인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나 자신의 힘으로는 죄의 문제를 해결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십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영접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나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나를 의롭게 하시기 위해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유일한 길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진리를 알 수 있습니다.

생명을 얻게 됩니다.

영원한 생명을 약속으로 받게 됩니다.

예수님 없이 회복이 없습니다.

이 회복(回復)의 다른 말이 바로 구원(救援)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나라의 핵심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는 관계회복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많은 치유 사역을 하셨습니다.

병을 고쳐주시고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병을 고치고 귀신 쫓아낸 그 현상만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치유사역의 핵심은 관계 회복입니다.

 

마가복음 2장에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신 사건이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5절)

예수님은 열 두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에게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마가복음 5장34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신 것이 아니라 죄 용서를 선언하셨고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이루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관계회복(關係回復)은 하나님과의 관계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과의 관계회복으로 이어집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삭개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삭개오는 세리였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죄 용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삭개오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겠고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서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보여줍니까?

이웃과의 관계회복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뿐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바로 구원이고,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고 나서, 죄용서 받고 나서 일어나는 변화가 무엇입니까?

용서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용서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입니다.

내가 예수님 믿어 거듭난 존재라는 증거는 내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했다는 것입니다.

용서할 의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아무런 편견 없이 섬기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용서와 사랑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와 사랑의 결과는 섬김과 나눔으로 표현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하나님 나라의 삶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들과 관계가 확대되어 사회적으로까지 확장될 때, 거기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용서할 마음이 있습니까?

누군가를 사랑할 마음이 있습니까?

누군가를 섬겨야겠다는 마음이 있습니까?

누군가와 나누겠다는 마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나라에 가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누가복음 17장20∼21절)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 안에 있습니다.

내 안에 있습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 죄 용서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 있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인정하고 순종한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안에 이루어집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4장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 로마서 14장17절 -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을 통해 그리고 성령 안에서 내 안에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그분과 동행하십시오.

성령 충만을 사모하고 성령 안에서 순종하며 살아가십시오.

내 안에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우리가 누리고 산다면 우리의 삶은 무력하지 않습니다.

고되지 않습니다.

힘이 있습니다.

재미있습니다.

살 맛 납니다.

힘이 넘칩니다.

꿈이 생깁니다.

그런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리십시오.

오늘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의 복음을 순종하는 우리에게 벌써 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나라는 주님의 재림의 날 완성될 것입니다. 평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