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과 칼럼

"자네는 씨암탉 먹을 자격 충분하네!"

가족사랑 2021. 5. 8. 23:36

"자네는 씨암탉 먹을 자격 충분하네!"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여보! 그래 낮엔 어딜 갔다 온거유? "

" 가긴 어딜가? 그냥 바람이나 쐬고 왔지! "

아버지는 퉁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그래, 내일은 무얼 할꺼유?"

"하긴 무얼 해? 고추 모나 심어야지~"

"내일이 무슨 날인지나 아시우?"

"날은 무신 날 ! 맨날 그날이 그날이지~"

" 어버이날이라고 옆집 창식이 창길이는 벌써 왔습디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당겼습니다.

"다른 집 자식들은 철되고 때 되면 다들 찾아오는데, 우리 집 자식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원~"

어머니는 긴 한숨을 몰아쉬며 푸념을 하였습니다.

"오지도 않는 자식 놈들 얘긴 왜 해?"

 " 왜 하긴? 하도 서운해서 그러지요. 서운하긴 당신도 마찬가지 아니유? "

 " 어험~ "

 아버지는 할 말이 없으니 헛기침만 하였습니다.

 " 세상 일을 모두 우리 자식들만 하는지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자식 잘못 기른 내 죄지 내 죄야! "
어머니는 밥상을 치우시며 푸념 아닌 푸념을 하였습니다.  

 

"어험 !! 안 오는 자식 기다리면 뭘해?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지"

 아버지는 어머니의 푸념이 듣기 싫은지 휭하니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다음 날, 어버이날이 밝았습니다.

조용하던 마을에 아침부터 이집저집 승용차가 들락거렸습니다.
" 아니 이 양반이 아침 밥도 안 드시고 어딜 가셨나? 고추모를 심겠다더니 비닐하우스에 고추모도 안뽑고.."

 어머니는 이곳 저곳 아버지를 찾아봐도 간곳이 없었습니다.  

" 혹시 광에서 무얼 하고 계시나? " 

어머니는 광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거기엔 바리바리 싸 놓은 낯설은 보따리가 2개 있었습니다.

보따리를 풀어보니 참기름 한 병에 고추가루 1봉지, 또 엄나무 껍질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큰아들이 늘 관절염 신경통에 고생하는걸 알고 준비해 두었던 것입니다.

또 다른 보따리를 풀었습니다.

거기에도 참기름 한 병에 고추가루 1봉지, 민들레 뿌리가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작은 아들이 늘 간이 안 좋아 고생하는 걸 알고 미리 준비해 두셨나 봅니다.

 

어머니는 그걸 보시고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아니, 언제 이렇게 준비해 두셨지 "  
엄나무 껍질을 구하려면 높은 산엘 가야 합니다. 

"언제, 그 높은 산을 다 왔는지…" 

"요즘엔 민들레도 구하기 힘들어 며칠을 캐야 저 만치 되는데, 어젠 하루 종일 안 보이시더니…"

아버지는 읍내에 나가 참기름을 짜 오셨던 겁니다.

자식 놈들이 이 마음을 알려는지?  

어머님은 천천히 발을 옮겼습니다. 

동네 어귀 장승백이에 아버님이 홀로 앉아 있었습니다.

구부러진 허리에 초췌한 모습으로 저 멀리 동네 입구만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마음을 잘 알기에 시치미를 뚝 떼고 말을 했습니다.

" 아니, 여보! 여기서 뭘 하시우? 고추모는 안 뽑구? "

" "

아버지는 어머니의 말에 대꾸를 못하고 헛기침만 합니다.

" 청승 떨지 말구 어서 갑시다. 작년에도 안 오던 자식 놈들이 금년이라구 오겠수? " 

어머니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이끌었습니다.

그제서야 아버님은 못 이기는 척 일어났습니다.

 "오늘 날씨 왜 이리 좋은기여? 어서 가서 아침 먹고 고추 모나 심읍시다. "

" "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따라 오면서도 자꾸 동네어귀만 처다보셨습니다.

 "없는 자식 복이 어디서 갑자기 생긴다우? 그냥 없는 듯 잊고 삽시다. "

" 험, 험 "

연신 헛기침을 하며 따라오는 아버지가 애처로워 보였습니다.

어머니는 집에 돌아와 아들 오면 잡아주려고 애지중지 길러왔던 씨암탉을 보고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오늘은 어버이 날이니 우리 둘이 씨암탉이나 잡아먹읍시다. 까짓거 아끼면 무얼 하겠수? 자식 복두 없는데.. "

" "  

어머니는 아침 밥상을 차리면서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 오늘은 고추 모고 뭐고 그냥 하루 편히 쉽시다."

"괜히 마음도 안 좋은데 억지로 일하다 병나면 큰일 아니우?"

"다른 집들은 아들딸들이 와서 좋은 음식점에 외식이다 뭐다 하는데.. 우린 씨암 닭 잡아 술이나 한잔 합시다 "
" 험, 험  "

 

  그때였습니다.

아침상을 마주하고 한술 뜨려 하는데,

" 아브이 어므이~ " 하면서 재 너머 막내딸과 사위가 들이 닥쳤습니다.

어렸을 때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심하게 절어 늘 구박만 주었던 딸입니다.

그 막내딸이 사위랑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헐레벌떡 들어 왔습니다.  

어머니는 막내딸의 소리에 깜짝 놀라며 마당으로 뛰어나갔습니다.

 "아니, 니가 어떻게.. 제 몸 하나 잘 가누지 못하는 니가 어떻게 왔니?

"" 어므이 아브이 !! 오늘 어브이날 이라 왔어. 아브이 좋아하는 쑥 버므리떡 해가지고 왔어."

그러면서 아직 따끈따끈한 쑥 버므리떡을 내 놓았습니다.


" 아니 이 아침에 어떻게 이 떡을 만들었니? "

 " 저이하고 나 하구 오늘 새벽부터 만들었어. 맛이 있을 런지 몰라 히히 " 

 " 이보게! 박 서방 !! 어떻게 된건가? "

 " 네 ! 장모님 저 사람이 어제부터 난리를 첬어요."

"장인어른께서 쑥 버므리 떡 좋아하신다고 쑥 뜯으러 가자고 난리를 치고, 또 밤새 울거 내고 새벽부터 만들었어요."

"그랬구나 ! 그런데 왜 이렇게 땀을 흘리고 왔어? 천천히 오지?" 

" 저 사람이 쑥 버므리 떡은 따끈할 때 먹어야 맛있다고 식기 전에 아버님께 드려야 한다고 뛰다시피 해서 가지고 왔어유~ "

 "에이구! 몸도 성치 않은 자식인데 "

소아마비로 인해 딸이 몸이 성치 않아 몇 년 전 한쪽 다리가 불구인 사위를 얻어 시집을 보냈던 딸이었습니다.

언제나 어머니 마음 한구석에 아픔으로 자리했던 딸이었기에 그저 두 내외 잘 살기만을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딸과 사위가 어버이날이라고 불편한 다리를 끌고 온 것이었습니다.

어느 사이 어머니의 눈가엔 눈물이 배어 나왔습니다.

"참! 아브이 어므이 이거!! "

딸은 카네이션 두송이를 꺼내어 내밀었습니다.

 "저이가 어제 장터에 가서 사왔어! 이쁘지? 히히 "

"내가 달아 드릴께 !!

딸과 사위는 히죽 히죽 웃으면서 어머니와 어버지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 주었습니다.

"아브이 어므이 오래오래 살아야 돼 !! 알았지? 히히 "

" 그래 알았다 오래 살으마 !! 너희들도 행복하게 잘 살아라 !! 박서방 정말 고맙네 !! " 

" 아니에요 장모님 !! 두 분 정말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유 " 

" 그려 그려 정말 고맙네 !! "

 " 아브이 어므이 어서 이 쑥떡 먹어봐 !! 맛이 어떨런지 몰라 히히 "

 " 그래 알았다 "

아버지와 어머니는 쑥 버므리떡을 입에 넣으며 목젖이 울컥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눈가엔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애써 참았습니다.

 "그래 참 맛있구나 !! 이렇게 맛있는 쑥떡은 처음 먹어 보는구나~ 당신도 그렇지요? "

" 흠흠 으응 "

아버님은 목이 메어 더이 상 말을 하지 못하셨습니다.

" 참 !! 술 술 "

 사위가 잊었다는 듯 보따리에서 술병을 꺼냈습니다.

"이거 아브이 어므이 드린다구 박 서방이 산에서 캔 산삼주야."

"작년에 산에 갔다 캤는데, 팔자구 해두 장인어른 드린다고 안 팔구 술 담은거야 "

" 박 서방이 산삼을 캤구먼! "
" 네! 작년에 매봉산에서 한 뿌리 캤시유"

" 에구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이.. "

산삼주를 받아든 아버지의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습니다.

" 평생 홀아비로 늙어갈 몸인데, 저렇게 이쁜 색시를 주셔서 넘 고마워유 "

" 무슨 소린가? 몸도 성치 않는 자식을 받아 준 자네가 고맙지!! "
" 아녀유? 저한테는 너무 과분한 색시구먼유. "

" 그려, 그려 앞으로도 못난 자식 잘 부탁하네 !! "

" 장인 장모 어르신 오래오래 사세유~ "

 

아버님은 눈시울이 뜨거워 더 이상 앉아있지 못하고 슬며시 일어나 나갔습니다.
병신자식이라 불쌍하게만 여겼지, 아들처럼 공부도 안 시키고 결혼식도 안 올리고, 그냥 시집을 보낸 딸자식이었습니다.

그저 시집보냈으니 있는 듯 없는 듯 신경 안 쓰던 그 자식이 어버이 날이라고 이렇게 불쑥 찾아 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더욱이 내가 좋아하는 쑥 버므리 떡을 밤을 새워가며 해가지고 올 줄이야!!

내 평생 이렇게 맛있는 떡을 먹어 본적이 있었던가?

아버지는 무엇이든 아들 형제만 주려고 생각했지, 병신 딸은 언제나 안중에 없었습니다.

행여 병신자식이라고 업 여겼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불구의 몸이지만, 딸의 마음이 저렇게 깊은 줄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아침내내 아들들 때문에 서운했던 마음이 딸로 인해 풀어졌습니다.

먼 아들보다 가까운 딸자식이 소중한 것을 그때서야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가슴 저 깊은 곳이 아려 왔습니다.

정말 딸자식이 고마웠습니다.아니 많이 많이 미안했습니다.

한참 뒤, 밖에서는 씨암닭 잡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잘난 자식들 주려고 키웠는데, 못난(?) 딸자식 주려고 잡고 있습니다.

 "우리 귀한 사위 줄려고 장인어른이 씨암닭 잡나보네!"

" 어이구 황송해서 어쩌지요? 장모님? "

" 아닐세,  자네는 씨암탉 먹을 자격 충분하네!! "

" 장모님, 고마워유! "

 

옛 어른들은 못난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하였습니다

못난 나무가 구부렁하게 서서 선산(先山)을 지키고 고향을 지킵니다

좋은 땅에서 수려하게 자란 소나무는 사람들이 재목으로 쓰기 위해 베어 가버립니다

척박한 땅에 뿌리내리고 자란 소나무는 모진 고생을 하며 볼품없이 자랍니다.

 크게 자라지 못하니 누구도 거들 떠 보지 않아 결국 못난 소나무는 산을 지키며 삽니다.

그리고 씨를 뿌리고 그 씨가 자라서 산이 훼손되지 않게 보존합니다

 

우리 속담에 '병신자식이 효도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집안에서 똑똑하다고 가르쳐 놓으면 집을 떠납니다. 

돈 많은 자식은 장모가 데려갑니다.

똑똑한 자식은 나라에서 데려갑니다.

오히려 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가르치지 않은 아들이 부모 곁에 남아서 효도를 합니다. 

장애를 가졌다고 조금 소홀히 한 자식이 오히려 부모에게는 훨씬 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못난 나무가 선산을 지키는 격이 되는 것입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 신명기 5장16절 - 

 

- 하늘가는 길, 강릉남대천에서 산돌의집 장득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