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64)-남은 사람만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

가족사랑 2021. 4. 21. 17:25

남은 사람만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9장 27∼29절 -

 

우리는 우리나라가 완전히 복음화되어 이 나라 백성 모두가 예수를 믿게 되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세계가 복음화되어 전 세계 모든 민족, 모든 사람이 전부 예수 믿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보면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게 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노아 시대에도 전 세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았는지 모르지만, 홍수 심판이 있었을 때 노아의 여덟 식구 외에는 구원받은 자가 없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로 심판받을 때에도 구원받은 사람은 롯과 그의 두 딸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다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마태복음 22장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청함을 받은 자’라는 말씀은 우리가 전도해서 교회에 나오게 하여 청함을 받은 사람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딱 한 번만 나오고 안 나옵니다. 어떤 사람은 몇 달 나오다가 안 나오고, 어떤 사람은 어렸을 때는 잘 나오다가 나이가 들어서는 안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아무튼 복음을 들은 사람, 전도를 받은 사람, 교회에 한 두 번이라도 나온 사람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택하심을 받은 사람은 적습니다. 여기에 ‘택하심을 입은 자’라는 것은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창세전에 예정하신 사람, 택하신 사람을 가리키는데, 이런 사람은 많지 않고 적다는 것입니다.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27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의 남은 자들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밝힙니다(사10:22∼23).

이 말씀은 이사야서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나 불의를 행하며 산 것 때문에 바벨론에게 멸망하고(BC.586), 포로로 잡혀가 70년간 포로생활하게 됩니다. 포로생활 중에도 박해에 박해를 이기며 하나님만 섬긴 남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사야는 이 '남은 자'가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다의 모래알같이 많을지라도 남아서 신앙을 지킨 자들만 포로에서 귀환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대로 남은 자들이 주전 586년 바벨론의 멸망과 함께 에스라, 느헤미야의 인도로 예루살렘에 돌아옵니다.

당시 이사야는 만군의 여호와가 씨를 남겨두지 않으셨다면 소돔과 고모라같이 멸망하였을 것이라 하였습니다(29절).

'씨' 곧 '남은 자'까지도 하나님이 은혜로 남겨두신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별 느낌 없이 읽고 있지만 당시 바울의 청중,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이라면 경악을 금치 못할 엄청난 말씀입니다.

27절의 말씀은 한마디로 말해서 '이스라엘 너희가 아무리 바다의 모래 같이 많다고 해도 오직 남은 자만 구원을 얻을 것이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사야의 이 말을 인용을 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남은 자'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은 자'가 누구냐를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은 자만 구원을 시키는 하나님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그 누구도 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이사야서를 인용한 것입니다.

바울은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만이 구원을 얻은 것같이 신약시대에도 그러할 것을 전한 것입니다.

 

‘남은 자’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은 자들을 의미합니다(롬9:10).

'남은 자'는 헬라어로 카탈레임마(κατάλειμμα)라고 하는데 ‘소수의 사람’을 의미합니다.

‘남은 자’로 번역된 영어 ‘렘넌트’(remnant)는 “작은 조각”이나 “남아 있는 흔적”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더 큰 부분이 어디론가 사라졌을 때 남아 있는 부분”을 의미합니다.

 

‘남은 자’ 사상은 유대인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괴하고 불순종하여 민족적으로 파국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총으로 소수를 남겨 두어서 유대인들을 존속하게 하신다는 사상입니다.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은혜 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성경에 이미 약속하신대로 이방민족을 구원하시고 있지만, 성경에 약속하신대로 이스라엘에서 가운데 남은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구원의 종결은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구원의 남은 자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영국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가 지은 『행복한 왕자』 동화 이야기입니다.

마을 광장의 높은 탑 위에 행복한 왕자의 동상이 있었습니다. 행복한 왕자의 몸은 금으로 입혀져 있고, 두 눈동자는 사파이어, 그리고 허리에 찬 칼자루에는 커다란 루비가 박혀 빛났습니다. 원래 이 왕자는 생전에 부유하게만 살아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고 생을 마감했는데, 이렇게 동상이 되어 높은 곳에 서면서 비로소 세상에 얼마나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많은지 알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남쪽 가던 제비가 잠깐 쉬기 위해 왕자의 발등에 앉았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떨어져서 보았더니 왕자의 눈에서 나오는 눈물이었습니다. 세상 밖의 불쌍한 사람들 때문에 울고 있었습니다. 왕자는 제비에게 부탁해 아픈 아이가 있는 가난한 재단사, 어머니가 병들어 고민하는 소년, 성냥팔이, 불쌍한 할아버지, 병원비를 내지 못하는 가난한 아이같은 어려운 사람에게 자신의 몸에 장식된 금과 보석, 심지어는 사파이어로 만든 자신의 눈까지 떼어내서 나누어주면서 도와줍니다. 제비는 이런 왕자의 부탁을 들어주느라 남쪽 나라로 떠나지 못합니다. 어느덧 겨울이 오고, 눈이 내리자 왕자의 부탁을 들어주느라 남쪽나라로 떠나지 못한 제비는 추위에 얼어 죽고 맙니다. 그 순간 납으로 만들어진 왕자의 심장이 반으로 깨집니다. 사람들은 깨져버린 왕자의 동상을 가져다가 용광로에 녹이지만 이상하게도 심장은 녹지 않고 남습니다. 사람들은 왕자의 심장을 제비가 죽어있는 쓰레기더미에 던져버립니다. 그리고 그 때 천국에서 하나님이 천사에게 명령합니다. “지상의 저 도시에서 가장 존귀한 것을 두 개만 가져오거라” 그 때 천사가 가져온 것이 바로 왕자의 녹슨 심장과 제비의 시체였습니다. 하나님은 흡족해 하면서 “제비는 이제 천국을 누비면서 영원히 노래를 부를 것이고 왕자는 영원히 그 노래를 들으리라”는 축복을 내립니다. 왕자는 예수 그리스도이고, 제비는 그의 일꾼들입니다. 제비는 죽음으로 남아 왕자를 위하여 일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남은 자들을 불씨로 사용하셔서 하나님을 섬기는 의로운 나라를 일으켜 세우십니다.

구약 아합왕 때 아합과 이세벨이 선지자들,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을 다 죽였습니다.

그때 엘리야 선지자가 생명을 보전하려고 도망칩니다.

가다가 너무 지쳐 한 나무 밑에서 쉬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합니다.

이때 엘리야는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왕상19:10)고 합니다.

이때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7천을 남겨두었다”(왕상19:10-18)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6장 13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중의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죄로 인하여 모든 백성은 다 망하게 되었고, 진멸하게 되어 있으나 하나님은 ‘이 땅에 그루터기를 남겨두시겠다’고 하십니다.

그 그루터기가 거룩한 씨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사야 11장에서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11:1)로 시작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과 그가 공의로 심판하고 여호와의 날을 이루실 것을 예언합니다.

이 싹은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또한 이 싹은 "남은 자"를 의미합니다.

그루터기와 같이 싹과 같이 하나님 앞에 거룩함을 지키고, 남은 자로 살아가는 자들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시고 이루어 가십니다.

예수님 생전에 예수님께 끝까지 남은 자들이 제자요, 구원받은 자이고,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고난을 받을 것을 말씀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난하였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도 가려느냐”(요6:67)고 말씀하자, 베드로가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6:68)고 대답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교회를 위하여 많은 헌신자들을 남겨 두셨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남은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대하시고 아끼시고 남겨 놓으신 이 시대의 남은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남은 자만 구원한다'고 하니까 남은 자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찾아서 그 모습을 스스로 만들어 내겠다고 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노력과 애씀을 통해서 남은 자의 모습에 최대한 가깝게 접근하려고 남은 자의 흉내를 내려고 하지 마십시오.

'남은 자'란 우리로 하여금 '남은 자'에 포함되도록 힘쓸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모든 노력과 애씀을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의 작정으로 되어진다는 것만 바라볼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하나님이 남겨두신 약속의 씨를 빼버린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다만 멸망당할 존재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 어떤 거룩으로 옷입고 있고, 그 어떠한 행실과 업적을 쌓아두고 있다고 할지라도 '남은 자'가 아니라면 우리는 멸망당할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실과 신앙을 보고 부르시거나 불쌍히 여기신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작정하심이었음을 우리가 살아가는 날 동안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귀한 분은 예수님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유능하다고 할지라도 그 인생에 예수님이 없다면 그는 멸망당할 자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돈을 벌고 직장에서 승진하고 출세했다고 해도 예수님이 없다면 그 인생은 망하는 인생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부러워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이 없는 인생은 이미 멸망인데 무엇 때문에 멸망의 인생을 부러워합니까?

그럼에도 멸망의 인생이 부럽다면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기를 아십니까?

이 여인의 이야기는 요한복음 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제대로 알고 난 뒤, 예수님을 알리기 위해서 동네로 뛰어갈 때 물동이를 버려두고 갔습니다.

예수님을 알게 되었을 때의 감격과 감사와 놀라움이 그 여인으로 하여금 동네 사람들에게 달려가게 했습니다.

게다가 이 여인은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던 물동이를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여겨 버리고 갔습니다.

여인의 이러한 행동이 부럽지 않으십니까?

세상 것을 거추장스럽게 여겨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미 가장 귀한 것이 나에게 주어져 있다는 넉넉함으로 이 땅의 것들이 좋아 보이지 않고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보여지고 있습니까?

진심으로 주님을 발견한 자로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 뒤돌아 보십시요.

주님이 바로 나의 생수 되시는 분임을 알게 된 자로서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지 뒤돌아 보십시요.

주님이 내 인생에서 가장 귀한 분이신지 뒤돌아 보십시요.

주님 때문에 내 인생은 이미 성공한 분임을 깨달은 신자로서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확인해 보십시요.

 

사랑하는 여러분!

'남은 자'는 오직 내 속에 주님이 계시는 분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남은 자'를 통해 새 역사의 아침을 깨우십니다.

이 글을 읽은 당신이 세상 흔들리고 사람들은 다 변하여도, 하나님의 택함받은  '남은 자'였음은 좋겠습니다.

그래서 주님 오실때까지 가난한 영혼들을 먹여 살리는 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평안!

 

- 하늘가는 길, 강릉 남대천에서. 산돌의집 장득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