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과 칼럼

인류는 바이러스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가족사랑 2021. 3. 6. 11:37

인류는 바이러스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사회적 거리 두기와 경제 봉쇄, 마스크 착용 일반화, 각종 백신 보급과 치료제 개발은 분명 의미 있는 성과다. 그러나 빈발하는 바이러스성 감염병 속에서 이는 상처에 밴드를 붙이는 수준에 불과하다. 이 정도 대응이 최선이라고 여긴다면, 미래 세대는 계속 바이러스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위의 이야기는 조나 마제트 미국 UC데이비스 감염병학 교수가 [조선일보 창간 101주년 특별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의 일부입니다.

마제트 교수는 2009년부터 미 국립보건원(NIH)과 국제개발처(USAID) 지원으로 세계 35국 연구자·관료 6000여명과 협업해 감염병을 연구한 ‘PREDICT(예방)’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입니다.

 

미제트 교수는 이 인터뷰에서 야생에서 인간으로 옮겨올 수 있는 인수공통감염(zoonotic) 바이러스를 50만종으로 본다고 했습니다. 이 중 지금까지 연구팀이 밝혀낸 것은 0.2%에 불과한데, 그만큼 모르는 바이러스가 절대적으로 많다고 했습니다. “바이러스 감염병은 오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넘어 언제 어디서 터지느냐의 문제다.”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미제트교수는 “감염병 학자들은 ‘바이러스가 퍼지는 게 아니라, 인간이 바이러스를 퍼뜨린다’고 하면서, ”바이러스는 수천~수만년간 야생에 나름의 필요로 존재했고, 인류와는 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대부분 인간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이 초래한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기후변화로 야생 생태계를 침범하고 생물 종(種) 다양성을 파괴하면서, 야생에 갇혀있던 바이러스들이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새로운 숙주인 인간으로 옮겨타고 있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통상 새로운 숙주를 만나면 더 가혹하게 진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바이러스성 감염병이 점점 더 자주, 강도 높게 인류를 휩쓸 수 있다는 것이다.”고 말합니다.

 

미제트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류의 중간숙주인 박쥐를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박쥐는 생존을 위해 낮은 면역력을 가진 데다 수백만마리씩 모여 살기 때문에 다양한 바이러스의 혼합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동시에 박쥐는 꽃가루를 퍼뜨리고 해충을 잡아먹어 생태계와 인간 모두에 도움이 되는 동물이다. 만약 박쥐를 때려잡았다간 더 치명적인 바이러스 확산을 초래할 수도 경고합니다. 앞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박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공존하는 것이다.”고 말하면서  ‘바이러스(감염병 X)에 취약하지 않은 나라는 지구상에 없고, 그 예방 역시 어느 한 국가에 책임지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인간의 운명은 결국 자연에 달려있다. 그리고 생태계 보호와 기후변화 대응은 모두가 함께해야 하는 일이다.”고 결론을 내고 있습니다.

 

금세기에 일어난 바이러스로 인해 수많은 인명들이 사망했습니다.

사스 때에는 774명, 메르스 때에는 858명, 에볼라 때에는 1만1325명, 그리고 이번 코로나에서는1만명이 사망한 에볼라 때보다 무려 250배나 더 많은 258만2140명이 사망하고 있습니다(2021년3월5일 현재).

 

오늘날의 위기는 오직 전염병과 연관지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전염병으로부터 우리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대해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하지만 현 위기는 전염병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극단적 상황을 대하는 인간의 대처에 있어서도 위기입니다.

 

하루하루 외출금지령의 해제가 미뤄지는 상황 속에서 이는 더욱 분명해집니다.

외출금지령은 해결책이 없는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월급을 받거나 정기적인 수입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직장의 폐쇄가 체감적 손실 정도입니다.

하지만 일당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먹을 것을 살 돈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도 없이 버텨내야 할까요?

어쩌면 이들이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도록 식량폭동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도시의 슬럼가에서, 꽉 막힌 도심에서, 이주노동자들이 굶어 죽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걸어서 자기 마을로 돌아가려 애쓰는 길거리에서 식료품 부족현상은 식량난과 식료품 암거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아마 이때도 수입이 있는 사람들은 살아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몰락하고 말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스스로 침체를 극복해내지 못하는 국가 경제는 붕괴될 것입니다.

정치인들은 외출금지령을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정치적 해결책으로 이용할 것입니다.

지킬만한 가치가 없는 권력일지라도 말입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수많은 의학 논문이 쏟아져 나오고, 다양한 연구가 광속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마 곧 전염병에 큰 타격을 날릴 새로운 백신이나 항생제 혹은 공공보건 혁신이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의학적 진보가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언젠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도 잠잠해질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 시간문제입니다.

하지만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사스와 메르스, 그리고 에볼라 사태는 그리 오래전의 과거가 아닙니다.

우리의 기억은 금세 사라지고, 어두운 곳에서 감염균은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낼 것입니다.

아마 전염병과 인류의 전투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살아있다는 건 끊임없이 누군가와 접촉하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악수하고 마주 앉아 대화하고 사랑을 나누는 동안, 감염의 위험성에 노출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의 유행이 더욱더 무서운 건 상대방을 의심하게 하고 두려워하게 하고, 그 결과 사람과 사람이 가까이 접촉할 수 없게 한다는 것입니다.

 

돌아보면 역사는 전쟁과 사고와 질병에 기인한 수많은 죽음으로 채워져 왔습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살아남아 번식하고 번영하며 인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도 사실입니다.

끝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죽음과 탄생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설 ‘페스트’에서 살아남은 노인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페스트가 대체 뭐겠어요? 그건 그냥 인생일 뿐이에요.”

알베르 카뮈는 ‘페스트’에서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후 드디어 페스트를 이겨낸 오랑시를 바라보는 주인공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책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그는 이 연대기가 결정적인 승리의 기록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 기록은 다만 공포와 그 공포가 지닌 악착같은 무기에 대항해 수행하여야 했던 것, 그리고 성자가 될 수도 없고 재앙을 용납할 수도 없기에 그 대신 의사가 되겠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이 그들의 개인적인 고통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수행하여야 할 것에 대한 증언일 뿐이다… ”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 누가복음 21장 10∼11절 -

 

- 하늘가는 길, 강릉 남대천에서 산돌의집 장득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