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13장4~7절□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 손양원 목사와 아들, 동인과 동신 -
“제가 이 시간에 무슨 답사를 하고 무슨 인사를 하겠습니까마는
그래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서 몇 말씀 드립니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하셨으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 어찌 이런 보배들을 주께서 하필 내게 맡겨주셨는지 그 점 또한 주님 감사합니다.
셋째, 3남 3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하나님 감사합니다.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유학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내 마음이 안심되어, 하나님 감사합니다.
일곱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덟째, 내 두 아들의 순교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홉째, 이 같은 역경 중에서도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하나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합니다.
열 번째, 이렇듯 과분한 축복 누리게 되는 것을 감사합니다.
손양원목사님은 공산당 청년에게 두 아들을 잃었습니다.
이후 치러진 장례예배에서 손 목사님은 <열 가지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장례예배는 참석한 이들로 인해 눈물바다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손 목사님은 슬퍼하기보다 “영광일세, 영광일세, 내가 누릴 영광일세!”하고 찬송을 힘차게 불렀습니다.
장례식 후에 손목사님은 감사헌금 1만 원을 하나님 앞에 올려드렸습니다.
당시 손 목사님의 한 달 사례비는 80원이었습니다.
감사헌금 1만원은 목사님의 전 재산을 하나님께 바친 것입니다.
손 목사님은 아들을 죽인 안재선을 양자로 삼아 손재선이라는 새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 장남 동인(가운데)과 함께한 손양원 목사(왼쪽)와 정양순 사모 -
손양원 목사(孫良源, 1902~1950)는 한국 교회사에서 주기철 목사와 더불어서 한국교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목회자 중 한 명입니다.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로 삼아 '사랑의 원자탄'으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손 목사님은 신학교 졸업 후 여수 나병원 애양교회에 부임하여 나병환자를 위한 전도자로 사랑의 친구가 되었고, 이후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1940년 9월 25일 수요예배 후에 일경에게 체포되어 여수경찰서에서 10개월 구금된 후에 광주 구치소와 광주 형무소에서 1년 6개월 형기를 마치고 1943년 5월 17일에 출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반대운동을 하다가 종신형을 받고 1943년 10월 서울 구치소와 청주 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광복을 맞이하고 이틀 후인 1945년 8월 17일에 석방되었습니다.
석방된 후 다시 여수 애양원으로 돌아가서 1946년 3월 주기철 목사가 목회하던 창원 제일문창교회에서 열린 경남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손 목사님이 여수 애양원에서 한센병자들을 보던 해인 1948년 10월 19일 여수·순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반란군인 안재선에 의해 두 아들 손동인과 동신이 친미, 예수쟁이란 이유로 총살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손양원 목사는 아들을 죽인 공산당원이었던 안재선이 체포되어 사형을 받게 되는 것을 알고 안재선을 용서해 줄 것을 요구하며 또 구타를 금하게 하고 그 사람을 자신의 아들을 삼겠다고 하며 적극적으로 구명활동을 하여 결국 그를 살려서 자신의 아들로 입적하여 가족으로 함께 살도록 하였습니다.
그 후 손양원 목사는 애양원 교회에서 나환자들을 돌보며 목회를 하던 중 6.25 전쟁이 일어났지만 피난을 가지 않고 나병환자를 계속 돌보았고 이후 공산군이 쳐들어와서 1950년 9월 13일 체포당해 15일간 여수 감옥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하였습니다.
유엔군이 참전하여 공산군이 퇴각할 당시 공산군은 그 과정에서 손양원 목사를 여수시 둔덕동 미평과수원에서 총살하면서 결국 1950년 9월 29일 향년 49세의 나이로 순교하였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여수 애양원에서 한센병(나병) 환자들을 돌보며 자신도 전염될 위험 속에서 살았습니다.
두 아들의 장례식에서는 "하나님께 10가지 감사"를 드렸습니다.
손 목사님의 이같은 모습은 하늘의 보상을 100% 확신하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늘 '주님 고대가(주님을 기다리는 노래)'를 부르며 주님이 다시 오실 날과 천국의 소망을 고백했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바랍니다」
- "πάντα ἐλπίζει" -
(판타 엘피제이)
"사랑은 모든 것을 바란다"는 헬라어로 "판타 엘피제이(πάντα ἐλπίζει)"입니다.
'판타(panta, πάντα)는 '모든 것(all things)'을 뜻하는 형용사(pas)의 목적격 복수형입니다.
사랑의 대상과 범위가 무제한적임을 나타냅니다.
엘피제이(ἐλπίζει)는 '바라다, 소망하다, 기대하다'를 뜻하는 동사 엘피조(ἐλπίζω)의 3인칭 단수로 현재 능동태형입니다.
'바란다'는 '엘피조(ἐλπίζω)'의 헬라어 단어의 의미는 소망한다 (hope), 기대를 가지고 기다리다(expect, prospect), 어떤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을 믿다( have hopeful confidence in that he will be a trustworthy person), 하나님께서 장래에 분명히 좋은 것을 주실 것을 확신한다(Expect for God to give good things in the future)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단어의 의미를 정리하면 “기대하다. 기다리다. 소망하다. 소망과 신뢰와 확신의 근거를 갖다”라는 뜻이 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바란다'는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사랑 안에 머무는 동안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소망하는 상태임을 나타냅니다.
능동태(Active Voice)의 의미가 있습니다.
사랑은 수동적으로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변화와 회복을 위해 능동적으로 소망을 만들어가는 주체적인 행동을 의미합니다.
모든 것을 향한 소망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현재 모습이 부족하고 연약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그 사람이 변화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미래를 포기하지 않고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모든 것을 바라는 사랑”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을 향하여 모든 것을 바란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기대하는 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사랑은 끝까지 기대하는 것입니다.
중간에 기대를 포기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는 기대가 사랑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기대!”
우리는 절대적 절망이나 실망앞에서 포기하는 것을 반복합니다.
내 노력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반응이 없을 때 포기합니다.
상대방이 내 기대에 어긋날 때 포기합니다.
상대방에 대하여 실망이 클 때에 포기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더 이상 기대를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소 닭보듯’ 그렇게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되면 포기했던 것을 다시 포기하게 됩니다.
그의 속 사정이 무엇인지를 알지는 못하지만 어느 시점에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게 되면 그 포기를 포기하게 되는 기적과 같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도 때도 없이 모세와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할 조건과 환경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언제라도 뒤돌아서서 돌을 던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반역하는 그들을 진멸하지 않으십니다.
때로, 본보기를 보이실 때도 있지만 그렇게 해놓고도 하나님은 다시 찾아와서 관계를 회복하자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택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는 기대'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지만, 그러한 우리를 주님은 포기하지 않는 사랑으로 다시 찾아오십니다.
이미 끝나도 진즉 끝날 관계입니다만 끝내지 않으십니다.
우리 공동체의 인간관계를 보십시오!
도무지 바뀔 수 없다고 포기한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리 뭐라해도 듣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늘 마이웨이의 삶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구제 불능이라고 내 놓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를 참아낸다는 것은 자존심도 상하고, 속도 상합니다.
그를 다시 받아들이다 보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가 먹구름처럼 올라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법대로 하면 다 잘라내야 합니다.
한 손이 범죄하면 잘라버리라, 두 손 성하고 지옥가는 것보다 낫다고 하시는 말씀이 훨씬 가슴에 더 다가설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태도, 그것이 사랑이든 인내이든, 명령이든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별히 영혼구원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나같은 사람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붙잡아주셨습니다.
그 사랑이 우리가 천국 가도록 우리에게 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을 향하여 '포기하지 않는 기대'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는 사랑'을 가지고 우리를 기대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모든 것을 바라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러한 아가페 사랑이 우리에게 임하면 우리도 하나님처럼 우리의 생각과 마음으로는 소망이 없다고 단념하고 싶은 사람을 향하여도 결코 소망을 잃지 않고 기대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은 다 포기해도 모든 것을 바라는 사랑을 소유한 사랑의 사람은 그 사람을 쉽게 잊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번역 성경은 이 구절을 “사랑은 언제나 희망을 표현한다” 또는 “사랑에는 언제나 희망이 시들지 않는다”, “사랑에는 무한한 희망이 있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절망 속에서 고민하며 방황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희망을 가지게해 줄 사랑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기대를 가지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듯이 우리가 이웃을 그렇게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에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주위 사람들에게 격려와 희망을 주는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환경을 향하여 모든 것을 바란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바라는 사랑은 모든 사건이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이 사랑은 지금 내게 일어나는 모든 만남과 환경과 사건은 내게 최선의 상황이라고 믿게 합니다.
우리의 계산과 생각을 초월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최선의 좋은 것을 주실 것을 바라게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바라는 사랑은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최선을 믿는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바란다'는 것은 최악에서 최선을 소망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면 이루어진다는 믿음입니다.
모든 일어나는 사건 가운데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희망하는 믿음입니다.
모든 만남 가운데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기대하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로마서 8장28절 -
그리스도인에게 일어나는 모든 만남, 사건은 결국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 목적은 우리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만남과 사건은 결국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닮게 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현실 속에서 모든 것을 바라는 사랑은 무엇보다 영원한 것들을 바라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속한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늘 보좌에 있는 하늘의 영광과 부활 이후에 있을 영원한 나라와 영원한 상을 바라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 고린도후서 4장16∼18절 -
이렇게 할 때 우리로부터 참 사랑이 모두에게 흘러 넘칩니다.
우리의 가정과 공동체와 사회에 미움과 실망과 오해와 고통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 땅에 속한 기대를 버리고 영원한 것에 대해 모든 것을 바랄 때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의 삶을 통해 한없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 사랑은 흐르는 강물이 되어 세상을 향해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용서와 감사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비밀이 어디에 있었을까요?
그것은 눈앞의 비극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약속을 더 확실하게 바라보았던 그의 신앙에 있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삶 전체는 확신에 찬 기다림이었습니다.
사랑의 대상과 범위가 무제한적인 "판타 엘피제이(πάντα ἐλπίζει)"의 삶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평소 "낮에나 밤에나 어제나 오늘도 주님만 고대합니다"로 시작하는 '주님 고대가'를 끊임없이 부르셨습니다.
손 목사님에게 주님의 다시 오심(재림)은 막연한 교리가 아니었습니다.
당장 오늘이라도 주님이 오셔서 모든 눈물과 아픔을 닦아주실 것을 100% 확신하는 "판타 엘피제이(πάντα ἐλπίζει)"였습니다.
손 목사님의 삶은 날마다 재림을 확신하며 기다림의 삶을 사신 재림신앙이었습니다.
이 확실한 미래의 소망이 있었기에 일제강점기 5년간의 혹독한 옥고와 신사참배 강요를 끝까지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이 확실한 포기하지 않는 기대가 있었기에 두 아들의 죽음 앞에서도 슬픔을 천국 소망으로 바꾼 '10가지 감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손 목사님은 재림에 대한 기대로 인간적 슬픔에 매몰되지 않습니다.
그 재림의 기대가 장차 천국에서 아들들을 다시 만날 기쁨의 날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원수를 아들로 살 수 있게 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기대'는 손 목사님에게 복음의 능력이 원수조차 변화시킬 수 있음을 확신하게 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돌보았던 한센병 환자들은 당시 사회에서 완전히 버림받은 절망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피고름을 입으로 짜내가며 돌볼 수 있었던 것이 포기하지 않는 기대입니다.
손 목사님은 한센병 환자들의 일그러진 육체 뒤에 숨겨진 천국의 아름다운 영혼을 확신했습니다.
손 목사님의 사랑의 대상과 범위는 무제한적인 "판타 엘피제이(πάντα ἐλπίζει)"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현실의 고통을 잊게 만드는 마취제가 아니었습니다.
가장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가장 위대한 사랑을 실천하게 만드는 강력한 삶의 원동력이었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바랍니다!'
사랑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계산과 생각을 초월하여 우리 각자에게 최선의 좋은 것을 주실 것을 바라보게 합니다.
모든 것을 바라는 사랑은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기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바랍니다.'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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