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강해

고린도전서 강해(56) -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족사랑 2026. 5. 16. 16:45

고린도전서13장4~7절□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물리학자 중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만큼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례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논의는 그의 상대성 이론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으로 1922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대인관계는 거의 빵점에 가까왔습니다.

아인슈타인이 그 유명한 상대성이론을 만들어낸 곳은 유명 대학 연구실이 아닙니다.

그곳은 아인슈타인이 특허사무소에 근무할 때였습니다.

이렇게 된 주된 이유는 그의 대인관계가 엉망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은 그의 지도교수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지도교수는 아인슈타인에 대해 이렇게 평했습니다.

“자네는 똑똑한 친구야. 그런데 자네한테 단점이 하나 있어.

도무지 남의 말을 고분고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단 말이야”

고등학교 때 아인슈타인은  형편없는 학생이었습니다.

물리나 화학만 잘했지, 어학 과목은 거의 낙제에 가까웠습니다.

이런 아인슈타인을 향해 그리스어 교사는 이렇게까지 말을 했습니다.

“장차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 같으니라고.

다른 모든 사람에게 방해만 되잖아. 당장 학교를 그만 둬!”

만약 아인슈타인이 이런 평가에 낙담하고 연구의 길을 포기하였다면

오늘날의 물리학의 발달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단점과 장점이 다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장점을 보고 그것을 인정하는 눈입니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 -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οὐ λογίζεται τὸ κακόν(우 로기제타이 토 카콘) -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상대방의 잘못이나 악한 기억을 장부에 기록하듯 품고 있지 않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기꺼이 용서하고 원한을 남기지 않습니다.

보통 남들로부터 부당한 대접을 받으면 섭섭하고, 그 일은 마음에 상처로 남습니다.

어떤 분은 그런 일을 당하면 화를 불 같이 내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화를 참고 그 상처를 마음 속에 오래 담아 두다가 화병(火病)이 나기도 합니다.

또 어떤 분은 시간이 날 때마다 서운했던 때를 끄집어내서 묵상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렇게 마음의 상처를 자꾸만 묵상하다보면 그 사람에 대한 분노가 생기게 됩니다.

내게 상처준 사람에게 원수를 갚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내게 상처 준 사람이 망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나타나는 현상은 나의 원수가 망하는 것은 나의 행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나의 원수가 성공하면 그것이 나의 슬픔이 되고, 불행이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내게 상처준 사람이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나의 인생이 결정되어 버리게 됩니다.

원래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지만, 그렇게 되어 버리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며 산다는 것처럼 괴로운 일이 없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삶의 지혜가 되는 말씀입니다.

또한 우리가 기도해야 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바울이 사랑에 대해서 여러가지 특성을 이야기했습니다.

오늘은 그 중 하나로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새번역이나 공동번역에는 “사랑은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KJV에는 '사랑은 악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thinketh no evil"

NIV 영어 성경에는 '사랑은 잘못한 것들에 대한 기록을 간직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it keeps no record of wrongs"

헬라어의 “카코스 (κακός, kakos)는 '나쁜', '악한', '해로운'이라는 뜻을 가진 형용사입니다.

잘못피해상처 등의 뜻이 있습니다.

“생각하다”는 헬라어로 로기조마이(λογίζομαι, logizomai)입니다.

“따지다, 추정하다, 계산하다, 산출하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함께 하다, 생각과 계산에 몰두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로기조마이(λογίζομαι) 앞에 “우(οὐ)라는 부정 접속사가 붙음으로써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가 됩니다

따라서 사랑은 악한 것을 따지거나 계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악한 것을 빠르고 영원하게 잊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불편했던 감정적 관계에 대한 용서'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안좋은 기억을 털어버리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특히 어떤 사람이 나에게 저지른 악행을 계속 기억하거나 추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냥 잊어버려주고, 덮어주고, 기억하지 않는 것입니다.

남이 내게 행한 악들과 피해들을 내 마음 속에 쌓아 놓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사랑은 용서와 관련됩니다.

그렇게보면 이 구절은 “사랑은 용서하며”라고 번역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와 반대 개념은 앙심을 품고 있다가 원수를 갚을 기회가 나면 칼을 휘두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다른 사람들이 내게 행한 여러 가지 섭섭하고 나쁜 기억들을 쌓아 놓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실수를 다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향해 뱉은 악담들과 피해 준 일들을 다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나를 자존심 상하게 하는 행위들을 기억하지 않고 잊어 버리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 창세기 37-50장에는 야곱의 아들 요셉의 거대하고도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른 형제들이 요셉을 대단히, 그리고 많이 미워합니다.

다른 형제들의 미움이 점점 커져서 요셉을 죽이려고 계획할 정도가 됩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 창세기 37장1820절 -

결국 요셉은 형제들에 의해 애굽으로 노예로 팔려갑니다.

도적도 아니고 이웃사람도 아닌 형들이 요셉을 은돈 20량을 받고 상인에게 팔아먹습니다.

이후 요셉은 그 상인에 의해서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노예로 팔려갑니다.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요셉은 노예로 살아가는 것도 억울한 일인데, 거기서 더 힘든 일을 만납니다.

그것은 노예로 살던 집 여주인이 남편 몰래 자기와 성관계하자는 것을 거절하다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힙니다.

아마 이때 요셉은 그 여인을 생각만 해도 죽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자기가 좋다고 해 놓고 뒤집어서 누명을 씌워 감옥에 갇히게 했으니 말입니다.

요셉은 그 일로 감옥에 무려 10년을 갇혀 있었습니다.

생각하면 이 모든 것은 모두 형들 때문입니다.

요셉은 그렇게 10년을 감옥에서 죄수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요셉은 애굽 왕 바로의 꿈을 해석해 주면서 죄수 신분에서 애굽 온 땅을 다스리는 총리가 됩니다.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창세기 41장3843절)

정말 드라마틱한 일이 요셉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더 놀라운 일은 애굽의 총리가 된 요세 앞에 요셉을 팔아 먹은 형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눈물로 호소하며, 살려달라는 자기를 애굽의 장사꾼에게 무자비하게 노예로 팔아먹은 그 형들이 눈앞에 와 있습니다.

생각하고 보니까 그동안 잊고 있던 그 여인도 생각이 났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통쾌하게 원수를 갚고 복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 복수하고 원수 갚는 일을 이미 몇 년 전에 포기했습니다.

그 여인의 일도, 형제들의 일도 몇 년 전에 이미 다 포기하였습니다.

포기한 것이 아니고 용서한 것입니다.

없던 일로 하기로 했습니다.

요셉은 애굽 총리의 신분으로 제사장 딸과 결혼하여 첫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므낫세”라고 지었습니다.

“나는 이제 과거를 잊었다”라는 뜻입니다.

둘째 아들을 낳고 이름을 “에브라임”이라고 지었습니다.

“내가 이제 다 잊었으니 두 배의 결실을 얻었다”라는 뜻입니다.

요셉은 이미 몇 년 전에 형들을 만나기 훨씬 전에 이미 다 잊었습니다.

그래서 형들이 복수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불안해 할 때 요셉이 말했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 창세기 45장4 5절 -

 

요셉에게서 사랑을 봅니다.

요셉에게서 용서를 봅니다.

요셉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요셉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불편했던 감정적 관계에 대한 용서'를 했습니다.

요셉은 '상대방에 대한 안좋은 기억을 털어버리고 잊어버렸습니다. 

요셉은 나에게 저지른 악행을 계속 기억하거나 추궁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그냥 잊어버려주고, 덮어주고,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용서할 만큼 마음의 크기가 없습니다.

속마음이 작아서 조그만 것도 용서하고 양해하고 그냥 넘어갈 만한 마음의 아량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늘 작은 문제 가지고도 싸우고 원망합니다.

보복하고, 복수하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믜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악한 ‘계획’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악한 것에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뭔가 거룩하지 않는 것에 중독되지 않습니다.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움, 원한, 음란, 마약, 도박, 성, 돈, 세상, 권력 등에 마음이 빠져있지 않습니다.

거기서 자유합니다. 

거기서 해방 되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현대인들이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 있습니다. 

마약, 성, 인터넷, 음주, 흡연, 도박, 게임 등의 중독은 젊은이만이 아니라 많은 현대인들의 삶을 망치고 있습니다. 

이들은 건강한 가정을 세울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도 문제아로 존재합니다.

사회에서는 무서운 죄악들을 범하는 주인공들이 됩니다. 

사랑은 악한 것에 중독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우상들을 잘라내는 것입니다. 

사랑은 악한 생각에 빠져있지 않는 것입니다.

 

 

요셉이 어떻게 그 어려운 결단을 내렸을까요?

마음속에서 비탄스럽게 떠오르던 복수심, 증오심을 이길 수 있었던 근원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을 절대적으로 믿은 믿음 때문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 창세기 45장4∼5절 -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도 실패하고 낙오하고 속고 탄식하고 좌절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성공하고 승리하고 형통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요셉도 고난도 받았고 피눈물도 흘렸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 고난의 길을 가게 된 것이 형들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획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요셉은 모든 인간적인 복수심, 원망, 증오심을 스스로 포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주권, 섭리, 계획이 있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어설프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루에도 울었다, 웃었다. 오해했다, 풀렸다 하기를 수도 없이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너무 형식적으로 신앙생활 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는 신비하고 깊은 세계입니다.

신앙의 세계는 그냥 수양하고 일이 잘되게 해 달라고 불공(佛供)이나 드리는 식의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되 참으로 신비하게 인도하십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실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가서 크게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상식으로는 요셉이 순순히 애급으로 내려 갈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들을 통해서 요셉을 애굽으로 가도록 유도하셨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형들로 하여금 애굽에 팔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잘 있던 보디발의 집에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 하셨습니다.

감옥에서 바로왕의 왕궁에서 일하던 관원을 만나 사귀게 하셨습니다.

바로가 꿈을 꾸게 되었을 때에 그 꿈을 해몽하는데 먼저 사귀어 놓은 관원을 통해서 인도받아 바로 왕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은 그 꿈을 해몽한 요셉을 마침내 하나님이 원하시던 자리로 올려놓으셨습니다.

요셉이 걸어간 그 배후에 자상하신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요셉은 그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누구보다도 실감나게 보았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손길을 이해하였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그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그 뜨거운 분노, 복수심, 원망, 증오심을 더 이상 품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만나기 훨씬 이전에 복수심은 이미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형들을 만났을 때에 두려워하는 형들을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절대적인 하나님님의 섭리, 계획, 의도를 믿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그 분노를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계획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십시오.

하나님과 함께 걷는 그 걸음이 성숙한 신앙인의 삶입니다.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평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