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13장4~7절□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욕심 많은 사람과 질투심 많은 사람이 한 수도사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쯤 가다가 갈림길이 나왔습니다.
수도사는 두 사람과 헤어지는 기념으로 무엇이든지 소원을 말해 보라고 했습니다.
"한사람이 소원을 말하면 다른 사람은 앞 사람이 소원한 것의 두 배를 가지게 될 것이오."
욕심 많은 사람은 생각했습니다.
"내가 먼저 소원을 말하면 저 녀석이 나보다 두 배로 많은 것을 가지게 되겠지.
그렇게 큰 손해를 볼 수는 없다. 암, 없구 말구.'
질투심 많은 사람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입을 꼭 다문채 서로 상대방이 먼저 소원을 말하기만 기다렸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마침내 수도사는 더 기다릴 수 없다고 재촉했습니다.
그러자 욕심 많은 사람이 질투심 많은 사람의 멱살을 부여잡고 위협했습니다.
"네가 먼저 소원을 말하지 않으면 당장 죽여버리겠다!"
질투심 많은 사람은 힘으로 상대방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눈을 흘기며 말했습니다.
"좋다! 내가 먼저 말하지!"
"수도사님, 제 왼쪽 눈을 멀게 해주십시오!"
자,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질투심 많은 사람은 한쪽 눈을 잃고, 욕심 많은 사람은 두 눈을 다 잃게 되었습니다.
서로가 제 유익만을 생각하다가 결국은 둘 다 망한 것입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한다”는 말은 문자적으로는 “사랑은 자기 자신의 것들을 추구한다(구한다, 찾는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끊임없는 자기 추구, 굉장한 자기 중심성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끊임없이, 또는 습관적으로 나타나는 기본적인 성향과 태도를 묘사합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은 타락 이후 모든 인생들이 가지게 된 병든 사랑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거의 본능적으로, 거의 자동적으로 우리 자신을 추구하고 자기의 유익을 추구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유익을 얼마나 집요하고 끈질기게 모색하는지 모릅니다.
자기 권리나 자기 이익에 얼마나 정확하고 집요한지 모릅니다.
자기 자존심이나 자기 체면에 얼마나 민감한지 모릅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자기의 유익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자기의 유익을 위한 도구로 만듭니다.
이렇게 끊임없이자신의 유익만을 목표로 삼고 사는 사람은 결국 모든 것을 자기의 유익을 위한 수단으로 만듭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권위를 자기의 유익을 위해 이용합니다.
이런 사람은 인간관계마저도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이용할 뿐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사유화하게 됩니다.

구약 성경 열왕기서에 나오는 아합왕의 이야기입니다.
아합은 북이스라엘 일곱번째 왕입니다.
어느 날 낮잠을 자고 일어난 아합은 기지개를 켜면서 베란다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멀리 보이는 기름진 포도원에서 눈동자가 딱 멈추었습니다.
그 포도원은 나봇의 소유로,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땅이었습니다.
아합은 갑자기 그 땅에 욕심이 났습니다.
그래서 포도밭 주인 나봇을 불러 들였습니다.
“나봇! 값은 후하게 줄 것이니 네 포도밭을 나에게 팔도록 하라.”
그러나 나봇은 '싫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합은 그 땅이 더 갖고 싶어졌습니다.
아합은 나봇에게 말했습니다.
“네 포도밭보다 더 넓은 땅과 네가 원하는 만큼 돈도 줄 것이다.”
아합은 나봇을 달랬습니다.
그런데도 나봇은 고집을 부렸습니다.
“왕이시여! 그 포도밭은 우리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조상이 전해준 땅은 팔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나봇이 율법으로 말하니 아합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감히 왕의 명을 거역하다니? 괘씸한 놈. 이건 분명 나를 무시한 거야!"
아합은 자꾸만 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세벨 왕비가 가만히 보니 며칠 째 아합이 잠도 못자고 식사도 하지 못하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아합에게 말했습니다.
“폐하, 무엇을 고민하시나요? 왜 식사도 못하고 잠도 못 주무시는 거죠?”
아합은 나봇의 포도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기 보이는 저 포도밭이 나봇의 땅인데 그걸 내가 갖고 싶어서 나봇에게 팔라고 했더니 글쎄 조상대대로 내려온 땅이라며 거절하질 않겠소. 이건 분명 나를 업신여기는 거란 말이오.”
이 말을 들은 이세벨은 “제가 그 포도밭을 꼭 폐하께 드릴테니 걱정 마시고 어서 식사나 하세요.”
이세벨 왕비는 아주 간사하고 악한 여자였습니다.
아합에게 우상을 믿게 하고 그것을 책망하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얼마나 많이 죽였는지 모릅니다.
이세벨은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으니 사람들을 모으고 재판하시오’ 라는 내용의 편지를 왕의 이름으로 써서 나봇이 살고 있는 이스르엘 동네 장로들에게 보냈습니다.
"백성들은 금식하고 나봇을 끌어다가 높은 자리에 앉히시오. 맞은편에는 두 명의 불량배들을 앉혀 놓고,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고 증언하게 하시오."
왕비의 악랄하고 잔인한 면모를 익히 알고 있는 장로들은 감히 그 명령을 어길 수 없었습니다.
금식이 선포되고, 나봇이 죄인으로 끌려 나오고, 위증자가 동원되었습니다.
엉터리 재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재판이 끝나자 사람들은 나봇을 성밖으로 끌고 나가 돌로 쳐 죽였습니다.
열왕기상 21장1∼16절에 기록된 이야기입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 οὐ ζητεῖ τὰ ἑαυτῆς -
- 우 제이테이 타 헤아우테이스 -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헬라어 원어는 "우 제이테이 타 헤아우테이스, οὐ ζητεῖ τὰ ἑαυτῆς)입니다.
‘타 헤아우스테이스’는 자기에게 속한 것들을 뜻합니다.
즉, 자기의 유익을 구한다는 것은 “내게 속한 것들”을 점점 많아지게 한다는 뜻입니다.
돈, 권력, 인기를 점점 많아지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구한다"는 헬라어 단어 '제이테이( ζητεῖ)는 현재형으로서 끊임 없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자기의 세력이나 소유를 쌓기 위해 쉬지 않고 추구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상태를 보통 이기심 또는 이기주의라고 부릅니다.
"구한다"라는 뜻의 헬라어 원어 “제이테오”는 "애쓴다" "찾아 다닌다"로도 번역됩니다.
이 말은 자기의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애쓰고 찾아 다님을 의미합니다.
즉,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노력한다는 뜻입니다.
자기가 명예롭게 되는 일이라면 물불 안가리고 추구합니다.
자기에게 이익는 되는 일이라면 맹렬하게 추구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 정도의 수준이 되면 매우 악한 사람이 됩니다.
남은 망하더라도 자신만 잘 되면 된다는 사악한 마음이 그 사람의 인생을 사로잡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사기꾼도 될 수 있습니다.
철저한 거짓말쟁이도 됩니다.
도둑도 될 수 있고, 깡패도 될 수 있고, 심지어 살인자도 됩니다.
아합 왕이 소위 전형적인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자”입니다.
아합의 이기심의 규모는 큽니다.
그러나 규모가 작더라도 거짓과 정치로 남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삼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 역시 아합 왕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사랑 없이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자의 삶을 언제나 비참하게 만드십니다.
그러한 자들은 잘 될 것 같은데 잘 안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주께서는 그들에게 비참한 결과를 맞이하게 하십니다.
열왕기상 22장을 보면 아합 왕의 비참함이 나타납니다.
아합 왕이 아람 나라와 전쟁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는 우연히 쏜 화살에 맞아서 죽게 됩니다.
참으로 가장 비참한 무가치한 죽음이었습니다.
소위 한 나라의 왕이 개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첫번째 편지에서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로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린도전서 10장23∼24절)고 했습니다.
사랑 안에서 살면 활동의 중심을 자신으로 만드는 개인주의나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이웃을 기쁘게 하고 축복하는 일을 찾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셨던 일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을 찾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빌립보서 2장을 보십시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 빌립보서 2장7∼8절 -
예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기를 비우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헛된 일이었습니까?
한 사람이 생명을 잃는 것으로 끝난 일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심으로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부활하도록 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사랑할 때 우리는 개인적 이익은 옆에 낼놓습니다.
자신의 이익은 옆에 내려놓고 우선순위와 관심을 하나님과 이웃에게 두게 됩니다.
“개인적 이익”이란 개인적 의무, 돌보아야 할 생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적 이익”이란 하나님께 아무런 영광을 가져오지 않는 것입니다.
육체와 옛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한 개인적 노력이나 취미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이 아닌 하나님과 이웃에게 우선순위(優先順位)를 둔 결과는 개인적 손실이 아닌 이승과 천국에서의 보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2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 요한복음12장25∼26절 -
마가복음 10장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 마가복음 10장29∼30절 -
사랑하는 여러분!
“백 배나 받는” 투자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아마 이 세상에 그런 투자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것을 먼저 구하지 않고 하나님과 이웃들을 먼저 챙길 때에는 이런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육체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주의자가 되면 가진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돌보지 않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돌보면 하나님의 영광과 함께 “백 배”로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남의 유익을 구하는 사랑의 사람이 되어 백배의 투자를 확실히 보장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만을 위하고 자기의 유익만을 구하는 자기 사랑에서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아낌없이 우리에게 내어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면,
우리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참으로 알고 그 사랑을 받았다면,
우리는 자신을 위하는 자리에서 끊임없이 빠져 나와야 합니다.
자기의 유익만을 위하는 그 자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된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자리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어떤 희생을 하셨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주와 복음을 위하여 조금도 희생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교회와 형제를 위하여 조금의 희생도 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 자리는 우리가 오래 있기에는 너무 염치없는 자리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그가 얼마나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그가 실제로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면서 사는가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자꾸만 손해를 보고 있다면 스스로를 돌아 보아야 보아야 합니다.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 자꾸만 다툼과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로 인해서 내가 속한 공동체가 번성하고 평안해져야 합니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유익을 얻는 것을 보는 것이 우리의 보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고 영육 간에 잘 세워지고 유익하게 되는 것을 보는 것이 우리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존재하는 자들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지으심을 받고 구속함을 받은 중요한 목적입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의 유익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 고린도전서 10장31∼33절-
참된 사랑은 상대방의 진정한 유익을 추구합니다.
참된 사랑은 이웃의 영적 유익, 영혼의 유익, 구원의 유익을 추구합니다.
참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합니다.
참된 사랑은 참된 경건입니다. 평안!














'고린도전서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고린도전서 강해(56) -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0) | 2026.05.16 |
|---|---|
| 고린도전서 강해(55) - 사랑은 성내지 않습니다 (0) | 2026.05.09 |
| 고린도전서 강해(53) -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습니다 (0) | 2026.04.25 |
| 고린도전서 강해(52) -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0) | 2026.04.18 |
| 고린도전서 강해(51) -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0) | 2026.04.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