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강해

고린도전서 강해(53) -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습니다

가족사랑 2026. 4. 25. 14:29

고린도전서13장4~7절□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흙 한 줌 이슬 한 방울  /  김현승

 

온 세계는

황금으로 굳고 무쇠로 녹슨 땅

봄비가 내려도 스며들지 않고

새 소리도 날아왔다.

씨앗을 뿌릴 곳 없어

날아가 버린다.

 

온 세계는

엉겅퀴로 마른 땅

땀을 뿌려도 받지 않고

꽃봉오리도

머리를 들다 머리를 들다

타는 혀끝으로 잠기고 만다.

 

우리의 흙 한 줌

어디 가서 구할까.

누구의 가슴에서 파낼까?

우리의 이슬 한 방울

어디 가서 구할까.

누구의 눈빛

누구의 혀끝에서 구할까?

 

우리들의 꽃 한 송이

어디 가서 구할까

 

김현승(金顯承, 1913-1975)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아버지의 목회지(牧會地)를 따라 제주시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7세 되던 해에 전라남도 광주로 이주하여 기독교계통의 숭일학교(崇一學校)와 평양의 숭실중학교를 졸업, 1936년 숭실전문학교 문과 3년을 수료하였다.

김현승은 기독교정신과 인간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내용을 시로 형상화하여 독특한 시세계를 이루었다.

제1시집 『김현승시초(金顯承詩抄)』(1957)와 제2시집 『옹호자(擁護者)의 노래』(1963)에 나타난 전반기의 시적 경향은 주로 자연에 대한 주관적 서정과 감각적 인상을 노래하였으며, 점차 사회정의에 대한 윤리적 관심과 도덕적 열정을 표현하였다.

 

- 김현승(金顯承, 1913-1975) -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무례하다'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면 예의바른 사랑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사랑하기 때문에 허물이 없고 그래서 상대방에게 '아무렇게나 대해도 되겠지!'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출발은 서로에 대한 존경에서부터입니다.

예의바르다는 것은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것입니다.

부부간의 사랑이 자칫 잘못하면 무례한 사랑이 되기 쉽습니다.

흔히 사랑하기 때문에 약속은 잘 안 지켜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른 중요한 약속이 생기면 부부간의 약속은 항상 뒷전으로 밀립니다.

사랑하고 친숙해졌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않는 험한 말도 합니다.

그러면서 '이해해주겠지…'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신사나 숙녀처럼 잘도 배려해 주면서도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예의를 지키지 않으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부부, 부모, 연인, 친구, 교회 식구들과 같이 사랑의 관계 속에 있는 사람들을 대할 때 그렇습니다.

편한 관계이고 친하니까, 아무렇게 말하고 대우해도 된다고 여깁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험하게 대해도 상처 받지 않는 관계가 진짜 사랑하는 사이라고 하는 착각을 하는 경우입니다.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무례해도 된다는 생각은 하나님이 주신 생각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런 생각은 빨리 버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존중하고 존경해 주는 곳이 살만한 곳입니다.

우리 가정에서, 우리 교회에서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일입니다.

 

부모와 자녀 관계에도 이런 무례한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무례하다고 하는 말을 자녀들에게 붙입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함부로 대하는 것을 무례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녀의 무례함 못지않게 문제가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의 무례함입니다.

부모는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녀들에게 무례하게 행할 때가 많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 에베소서 6장4절 -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자녀가 언제 노엽게 됩니까?

자기 인격이 무시당한다고 느낄 때입니다.

자녀도 하나의 인격체입니다.

나름대로의 논리와 생각이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울 때도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배고프다든가, 잠자리가 불편하다든가 말을 못하지만 이유가 있습니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선물입니다.

유태인의 교훈 중에 “신은 어느 곳에서건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보내셨다. 어머니는 신의 대리자”란 말이 있습니다.

부모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자녀들을 기르는 위대한 사명을 받았습니다.

부모는 하나님으로부터 자녀양육의 사명을 위임받은 청지기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소유물이 자녀를 자기 생각대로 무례히 대하면 안 됩니다.

 

칼릴 지브란(Gibran Kahlil Gibran, 1883-1931)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자녀는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저 위대한 생명의 욕망이 스스로를 위해 낳은 아이들입니다.

그들이 비록 당신을 통해서 왔지만 당신으로부터 온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비록 당신과 함께 있지만, 당신에게 소유물은 아닙니다.

당신은 그들에게 사랑을 줄 수는 있지만 생각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도 자신만의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그들의 육체를 위해 집을 줄 수는 있지만 그들의 영혼을 머물게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영혼은 미래의 집에 살고 있으며,

당신은 꿈속에서조차 그곳에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그들처럼 되려고 애쓰는 것은 좋지만

그들을 당신처럼 만들려고 하지는 마십시오.

삶은 뒤로 돌아가거나 어제에 멈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중에서 -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전제로 합니다.

존중한다면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한 번 스치고 지나갈 낯선 타인에게는 깍듯이 예의를 지키면서도 평생 함께 해야 할 사람에게 예의를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습니다」 

- 아스케모네오(ἀσχημονέω) -

 

헬라어에는 “스케마(σχῆμα)”라는 말이 있습니다.

스케마는 “형태(form), 양식(shape), 외형(outward appearance)”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어떤 사물이 전형적으로 가지는 모습, 전형적인 형태(pattern)나 틀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말은 합당한 형태, 품위, 질서” 등을 의미합니다.

꽃은 꽃의 스케마를 가질 때 가장 꽃답습니다.

왕은 왕의 스케마를 가질 때 가장 왕답게 됩니다.

결국 스케마란 “다움”을 의미합니다.

무엇이든 “~다울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스케마(σχῆμα)에 부정 접두사 알파(α)를 붙이면 “아스케모수네(ἀσχημοσύνη)”라는 명사가 됩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형태와 품위와 질서를 잃은 비정상적인 상태"를 의미합니다.

"수치를 불러일으키는 행동, 부끄러운 행동"을 의미합니다.

"표준에서 벗어난 외형, 수치스러움” 등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무례함, 아스케모수네(ἀσχημοσύνη) "란 한 마디로 “다움”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동사로 만들면 “아스케모네오(ἀσχημονέω)”가 됩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표준에 어긋나게 행동하다, 품위에 맞지 않게 행동하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불명예스럽게 처신하다, 부적절하게 행동하다, 부끄러운 방식으로 처신하다”는 뜻을 가집니다.

이 말은 부적당한, 격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한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로마서1장에서 동성애의 잘못을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를  헬라어 ‘아스케모쉬넨’(ἀσχημοσύνην)을 사용하였습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는다"는 바로 그 단어입니다.

보통 이 단어는 '수치', '부끄러운 짓', '몰상식한 행동'으로 번역됩니다.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 로마서1장27절 -

바울은 동성 간의 성행위를 자연의 이치(순리)를 거스르는 '역리(para phusin, 자연에 반하는)' 행위로 규정합니다.

'상당한 보응을 받았다'는 것은 동성애 행위를 하나님을 떠난 죄악의 결과이자, 그에 대한 징벌적 상황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성애는 단순히 예의가 없는 수준을 넘어, 창조 질서에 어긋나는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행동을 의미합니다.

 

 

사랑은 부도덕하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공손한 마음, 상대방을 귀히 여기고 존중하는 마음,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를 존중하게 되어 있고 배려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존중하고 배려하면 공손하게 행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고 하나님께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도리를 다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않고, 우상을 만들지 않고 거기 절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예의를 지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고, 주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예의를 지키는 삶의 모습입니다.

참된 사랑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우리의 도리를 다하고 예의를 갖추고 품위 있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무례함으로 가득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무례함은 우리에게 상처로 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금이 가는 이유는 ‘무례함’ 때문입니다.

사랑한다고 마구 대합니다.

때리고 협박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다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범죄 행위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무례함이 권리이고, 권력인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어느새 무례함을 당연히 여기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열왕기하 5장에 나오는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를 아시나요? 

나아만은 그 당시 세계 최강의 나라 장군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찬란한 갑옷 속에서 그의 몸은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한센병인 문등병 때문입니다.

나아만 장군에게 복음이 들렸습니다.

이스라엘에 사는 엘리사 선지자에게 가면 그의 병이 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이 이 소식을 왕에게 말하니 왕이 장군에게 선지자에게 줄 선물을 엄청나게 싸주고, 정중하게 글도 썼습니다.

"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하더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 하였더라"

- 열왕기하 5장5∼6절 - 

그런데 정작 엘리사 선지자는 나아만 장군을 맞으러 나오지 않았습니다.

세계 최강의 군대 장관이 왔는데 엘리사는 얼굴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대신 사환을 보내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번 씻으라."고 말해 줍니다.

그러자 나아만장군이 분노합니다.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 열왕기하 5장911절 -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가 무례하다고 여겼습니다. 

자기와 같이 위대한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이런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아만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기의 생각이 있었습니다. 

자기의 생각과 다르게 엘리사 선지자가 행동하자 나아만은 엘리사가 무례히 행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나아만이 병이 나은 후에 이렇게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아이의 살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 열왕기하 5장14절 -

 

'자기의 생각대로' 사는 나아만 장군의 모습과 '하나님의 말대로' 살아가는 나아만의 모습은 천지 차이입니다.

'사랑하면 무례히 행해도 됩니다'는 '자기 생각대로'입니다.

'사랑하면 무례히 행하지 아니합니다'는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하나님깨 예의를 갖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예의를 갖춰야 합니다. 

이것이 피조물인 우리들이 하나님께 보여드려야할 태도입니다 .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부도덕하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부당하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간을 함부로 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일하는 방식은 사랑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에게 예의를 갖추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계속해서 두드리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강력한 힘으로 부서버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무례함은 불경건입니다.

우리는 그 누구에게보다 먼저 하나님에게 공손해야 하고 하나님에게 예의를 갖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하나님으로 섬기거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은 하나님에게 무례히 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마땅히 지켜야 할 선을 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무례히 행한다면 그것은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사람들에게도 무례히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모욕감을 주는 언행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례함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기 때문에 존중하지 않고 배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무례할 수 없습니다.

무례함은 상대방을 멸시하는 태도입니다.

무례함은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무례히 행하는 것은 자랑이나 교만 못지않은 심각한 질병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무례히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사랑하다면 무례히 행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매우 무례한 세상입니다.

세상은 참으로 무례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무례함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들은 서로에게 무례합니다.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없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참된 사랑이 없기 때문이며, 사랑이 병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 간의 예의와 존중이 많이 상실되었습니다.

부부들도 서로 무례한 말을 하고, 부모 자식 간에도 인격을 모독하거나 자존심을 짓밟고 모욕감을 주는 언행을 보통으로 합니다.

우리의 무례함은 특별히 말로 잘 드러납니다.

사람들은 얼마나 함부로 말하는지 모릅니다.

상스러운 욕설과 거칠고 험한 언사는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듭니다.

무례함은 마음과 눈빛으로도 나타납니다.

우리는 눈으로도 얼마든지 멸시와 도적질과 간음과 거짓말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인의 예절과 품위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무례하기 쉽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무례할 수 있습니다.

일터에서, 식당에서, 운전을 하면서, 예의 없이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참으로 무례하고 품위 없는 모습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병들고 왜곡된 사랑의 모습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무례하게 행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존귀히 여겨주셨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비천한 우리를 얼마나 존귀히 여기시고 우리를 배려하여 주셨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독생자까지도 아끼지 않고 우리를 위하여 내어주셨습니다.

또한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얼마나 공손하셨으며 우리를 위하여 얼마나 낮아지셨는지 모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기까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우리에게 끝까지 예의 바르게 행동하셨습니다.

온갖 모욕을 당하실 때에도 구세주로서의 품격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끝까지 우리를 배려하셨고 우리를 귀히 여겨주셨고 구세주로서의 도리를 다하셨습니다.

이런 은혜와 사랑을 받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무례하게 행동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존중해 주시고,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무례하게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고 도리를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무례하게 행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우리 믿음의 형제들에게 함부로, 무례하게 말하거나 행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를 건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연에 대해서도 무례하게 대해서는 안됩니다.

이 땅의 황폐함은 자연을 무례하게 대한 인간 탐욕의 결과입니다.

그것은 결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무례한 것은 결국 하나님에게 무례한 것이 되었습니다. 평안!

 

흙 한 줌 이슬 한 방울  /  김현승

 

온 세계는

황금으로 굳고 무쇠로 녹슨 땅

봄비가 내려도 스며들지 않고

새 소리도 날아왔다.

씨앗을 뿌릴 곳 없어

날아가 버린다.

 

온 세계는

엉겅퀴로 마른 땅

땀을 뿌려도 받지 않고

꽃봉오리도

머리를 들다 머리를 들다

타는 혀끝으로 잠기고 만다.

 

우리의 흙 한 줌

어디 가서 구할까.

누구의 가슴에서 파낼까?

우리의 이슬 한 방울

어디 가서 구할까.

누구의 눈빛

누구의 혀끝에서 구할까?

 

우리들의 꽃 한 송이

어디 가서 구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