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13장4~7절□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어느 날씨가 화창한 날 땅강아지 한 마리가
개미들이 지나가는 길에 나타나 한 번 뽑내고 싶어졌습니다.
"비켜! 땅강아지 나가신다."
땅강아지는 마구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미처 피할 사이가 없던 한 마리의 개미가 나뒹굴었습니다.
"그러니까 비키라고 했잖아!"
땅강아지는 기고만장하여 소리 소리 질렀습니다.
땅강아지는 더욱 뽐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두루미가 서 있는 곳에 와서 말했습니다.
"두루미 아저씨, 나하고 물고기 잡기 내기를 합시다."
두루미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두루미는 땅강아지의 요청에 "그러자!"고 선선히 응낙했습니다.
땅강아지가 큰 물고기를 잡으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커다란 붕어 한 마리가 불쑥 나타나더니 땅강아지를 덥썩 물어 삼켜 버렸습니다.
두루미는 이 물고기를 잡아 가지고 모래밭에 와서는 배를 째었습니다.
그러자 땅강아지가 그 뱃속에서 나와서 두루미에게 물었습니다.
"이 물고기는 내가 잡은 것인데 두루미 아저씨가 잡은 고기는 어디에 있나요?"
"뭐 이것을 네가 잡았다고?!"
"잡으려다 잡아먹히고서는…"

지난 시간에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자랑'이 문제가 되는 것은 선을 넘어설 때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실제보다 과장하거나 없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것처럼 가장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는다'는 말씀도 자랑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교만'은 자기를 드러내려 하고, 자아의 의식이 강하다는 면에서 '자랑'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다른 면이 있습니다.
자랑은 자기의 우월함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교만은 타인을 무시합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은 주위 사람을 실족시킵니다.
뿐만 아니라 거기에다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다툼과 분열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한 생명의 소중함을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인격의 절대적인 가치를 모르므로 이웃을 매우 가볍게 취급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이웃이 상처를 입는 것을 상관하지 않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상대방이 모욕적인 감정을 느끼는 점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쉽게 이웃을 무시하는 말을 내뱉습니다.

"마온에 한 사람이 있는데 그의 생업이 갈멜에 있고
심히 부하여 양이 삼천 마리요 염소가 천 마리이므로
그가 갈멜에서 그의 양 털을 깎고 있었으니
그 사람의 이름은 나발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아비가일이라
그 여자는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우나
남자는 완고하고 행실이 악하며 그는 갈렙 족속이었더라"
- 사무엘상 25장2~3절 -
성경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나발'이라는 교만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다윗이 도피생활 가운데 만난 사람입니다.
나발은 마온 출신이었고, 그의 생업이 갈멜에 있었습니다.
나발은 양이 3천마리, 염소가 1천마리나 가지고 있는 부자였습니다.
그는 종들도 여럿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그는 완고했고, 행실이 악했으며, 은혜도 몰라보는 파렴치한이었습니다.
다윗이 사울를 피해 망명 중에 부하 600명과 함께 갈멜에 있을 때, 나발의 양떼들을 보호해주고 지켜주었습니다.
그 당시 나발의 양떼 중 잃은 것이나 다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어느날 다윗은 나발이 양털을 깎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소년 10명을 보내 나발로부터 무엇인가 은혜를 구했습니다.
하지만 나발은 '자신의 떡과 물과 고기를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자들에게 줄 수 없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실 다윗은 자신의 군사력으로 얼마든지 나발의 양떼들을 빼앗을 수 있었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살았습니다.
그런 다윗에게 나발은 은혜를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와 화가난 다윗은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나발을 작살내려고 칼을 차고 가고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나발의 종 하나가 자신의 주인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에게 알렸습니다.
나발의 아내 아비가엘은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즉시 떡과 포도주, 요리한 양고기와 볶은 곡식 그리고 건포도와 무화과뭉치를 자루에 넣고 나귀에게 싣고 다윗이 오는 길목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앞에 엎드려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녀의 지혜로운 말은 다윗을 감동케해 그녀의 남편 갈멜과 종들을 살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아비가일이 집에 돌아왔을 때, 나발은 왕의 잔치같은 잔치를 배설하고 크게 취하여 있었습니다.
아비가일은 술이 깬 나발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자 나발은 그 즉시 마음이 무너지면서 몸이 돌과 같이 굳어지기 시작하다가 결국 10일 후에 죽고 말았습니다.
나발은 하나님 없이 사는 자였습니다.
오직 자신의 부와 권력을 믿고 자신의 육체의 쾌락만을 위해 살아온 자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도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고아와 객과 과부를 선대하라고 했지만 그는 객들인 다윗의 소년들에게 매우 인색했습니다.
그들을 경멸했습니다.
뿐만아니라 자신의 양떼를 보호해주고 종들을 지켜준 은혜를 저버렸습니다.
이같은 나발의 교만은 패망으로 이어졌습니다.
「아가페(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 푸시오오(φυσιόω) -
“교만하다”라는 뜻의 헬라어 동사 “푸시오오(φυσιόω)”는 본래 “푸사(φῦσα)”라는 명사에서 파생된 동사입니다.
푸사는 “풀무, 공기주머니” 등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파생된 동사 “푸시오오”는 “(바람을) 불어넣다, 공기를 주입하다, 부풀어 오르게 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속은 텅 비어 있는데 바람을 불어넣으면 겉이 부풀어 올라서 커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 동사의 수동태형은 “거만하게 굴다, 자만하다”는 뜻을 가집니다.
잔뜩 바람이 들어가서 부풀려져서 거만하게 되는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 전체에 일곱 번 밖에 나오지 않는데 고린도서에서 여섯 번이나 쓰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당시 고린도교회가 얼마나 교만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도덕적 타락, 우상 문제, 심지어 사도직을 의심한 모든 죄의 바탕이 하나님 앞에서의 교만함에 있었습니다.

유다의 솔로몬 왕 다음으로 명성을 떨친 웃시야 왕이 있습니다(주전 783-724년).
웃시야 왕은 16세에 파란만장한 정치적인 변란 속에서 이스라엘의 남 왕국 유다의 제 10대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약 52년 동안 남 왕국 유다를 통치를 했습니다.
웃시야 왕의 군사력은 대단했습니다.
그는 불레셋 족과 아라비아 족을 정복하였습니다.
암몬족으로부터는 조공을 받았습니다.
웃시아 왕은 전 국토를 요새화 하였고 군대를 재편성하였습니다.
“웃시야가 그의 온 군대를 위하여 방패와 창과 투구와 갑옷과 활과 물매 돌을 준비하고
또 예루살렘에서 재주 있는 사람들에게 무기를 고안하게 하여
망대와 성곽 위에 두어 화살과 큰 돌을 쏘고 던지게 하였으니
그의 이름이 멀리 퍼짐은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짐이었더라”
- 역대하 26장14∼15절 -
웃시아는 수많은 발명가들을 모아서 군사적인 장비를 제작해 망대와 성곽에서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웃시아는 왕으로서, 행정가로서, 군의 총사령관으로서 탁월한 수완을 발휘했습니다.
그리하여 왕국 분열 이래 웃시아 왕 때에 유다의 국토를 가장 넓게 다스렸습니다.
웃시아의 강성은 그의 이름이 뜻하는 바대로 '여호와께로부터 온 힘'이었습니다.
웃시아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늘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외적으로 강성해지고 힘이 막강해지니까 그의 마음속에 교만이 들어와 결국 그는 패망의 길을 걷고 말았습니다.
웃시아 왕은 교만 방자해져서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일인 제단의 분향을 자기 손으로 하고자 했습니다.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 역대하 26장16절 -
웃시아의 교만한 행동에 제동을 건 사람이 있었습니다.
성전의 대제사장 아사랴입니다.
아사랴는 여호아의 ‘용감한’ 제사장 팔십 명을 데리고 들어가 웃시야 왕을 가로막고 말하였습니다.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은 왕이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 역대하 26장18절 -
이 말을 듣고 웃시야 왕은 화를 내었습니다.
그런데 웃시아 왕이 화를 내는 사이에 문둥병이 그의 이마에 번졌습니다.
그리하여 웃시야 왕은 문둥병자로 여생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갈 수 없는 몸이 되었으므로 별궁에서 홀로 문둥병을 앓으며 지내야 했습니다.
웃시야 왕은 교만하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에게 화를 낼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긴지라
대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왕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음을 보고
성전에서 급히 쫓아내고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왕도 속히 나가니라
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었고 나병환자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져 별궁에 살았으므로
그의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백성을 다스렸더라"
- 역대하 26장19∼21절 -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잠언 29장23절)
교만(驕慢, Arrogance, Pride, Haughtiness)의 반대말은 겸손입니다.
따라서 ‘교만하지 않다’는 말은 ‘겸손하다’는 말입니다.
교만의 극치는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한 하와에게서 발견됩니다.
반면 겸손의 극치는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낮아지시고 복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발견됩니다.
하와는 하나님과 같이 되어 보겠다는 교만한 마음에 들떠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온 인류를 저주와 불행, 파멸의 늪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이렇듯이 무례하고 교만한 자는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을 멸망으로 끌고 갑니다.
오늘날에도 교만으로 인해 시기와 질투, 갈등과 파괴, 단절과 적대감 등에 시달리며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려고’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자기의 모든 특권을 버리시고 종의 모습’으로 사람들과 같이 되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겸손의 왕이신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의 모든 무릎을 꿇게 하셨습니다.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 빌립보서 2장5∼11절 -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언제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사랑은 겸손하게 말하고 행동합니다.
일리노이주 휘튼 대학교의 교목을 하였고, Covenant College 의 초대 총장과 커버넌트 신학교의 초대 총장이었던
로버트 깁슨 레이번 (Robert Gibson Rayburn, 1915~1990) 목사님이 교만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교만은 자기 자신을 우상으로 삼는 것이다.”
“교만의 본질은 존재의 중심에서 하나님을 밀어내고 자신을 그 자리에 두는 데 있다.”
그렇습니다.
교만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 자리에 자기 자신을 두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높입니다.
타락한 천사인 사탄의 근본적인 죄도 교만이었습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 이사야 14장 12∼15절 -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판단하고 정죄하고 있습니까?
교만해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다른 사람 눈에 있는 티가 전보다 더 크게 보입니까?
교만해지고 있다는 싸인입니다.
나의 허물은 자꾸 뒤로 밀려나고 형제의 허물이 점점 앞으로 나오고 있습니까?
그것은 내가 벌써 교만의 중앙을 통과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내 눈의 들보를 빼내야 합니다.
내 눈의 교만을 빼내야 합니다.
내 손에 있는 돌을 내려 놓으십시오.
내 입에 있는 돌도 꺼내 놓으십시오.
주님께서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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