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강해

고린도전서 강해(51) -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가족사랑 2026. 4. 11. 07:45

고린도전서13장4~7절□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골프 재미에 푹 빠진 목사가 있었습니다.

구름 한점 없이 화창하고 맑은 일요일이었습니다.

목사는 갈등하다 결국 교회에 몸이 아파 못 간다는 전화를 하고 골프장으로 향했습니다.

이를 본 천사가 하나님에게 말했습니다.

“저 목사, 혼 좀 내줘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목사는 1번 홀에서 힘차게 스윙했습니다.

볼은 무려 350야드를 날아가 그린 위에 떨어진 뒤 홀컵으로 들어갔습니다.

홀인원이 된 것입니다.

목사는 흥분했습니다.

천사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이것은 뭔가 잘못된 것 같네요. 벌을 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하나님은 미소를 지으며 천사에게 말했습니다.

“목사가 이 일을 누구에게 자랑하겠니?

자랑을 하면 주일에 골프 친 것이 들통날테고,

자랑하고 싶은데 자랑할 수 없는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이 어디 있겠느냐.”

 

'자랑한다'는 것은 자신의 성취, 소유물, 능력 등을 남에게 드러내어 뽐내는 행위(과시)를 뜻합니다.

주로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여 감탄이나 부러움을 사려는 의도를 포함합니다.

초대 기독교의 교부였던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 어거스틴 Augustine)는 '하나님의 도성(De CIVITATE DEI)'이라는 책에서 '사랑'에 대해서 말하면서 무엇을 '자랑'해야하는지 가르쳐주었습니다.

“두 도성은 두 가지 종류의 사랑에 근거를 두고 있다. 

지상의 도성은 하나님을 경멸하고 자기를 사랑하는데 근거하고,

천상의 도성은 자기를 경멸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근거한다.

전자는 자기 자신 속에서 영광을 구하나,

후자는 양심의 증인이신 하나님에게서 그의 지극히 높은 영광을 구한다.

전자는 스스로의 영광에 도취되어 자신의 머리를 들게 하나,

후자는 ‘하나님은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십니다.’라고 하나님을 자랑하게 한다.”

“자기의 선한 행실을 자랑하는 자는 마치 암탉이 알을 낳고 꼬꼬댁꼬꼬댁 우는 것과 같다.

그러면 사람이 와서 그 알을 가져가 버린다.”

 

 

「아가페(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 페르페류에타이

- περπερεεται -

 

자랑하다라는 뜻으로 번역된 페르페류에타이’(περπερεεται)허풍선을 뜻하는 페르페로스’(πρπερος)에서 유래하여 과장이란 뜻을 나타냅니다.

즉 자기 과시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 단어는 “자랑을 잘하는 사람이나 허풍쟁이로 보이게 한다”는 뜻입니다.

즉, “내가 무엇을 했다, 무엇을 가지고 있다, 무엇을 만들었다..”등을 끊임없이 얘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여호와께서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취득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호와 외의 어떤 것, 어떤 사람도 자랑할 권리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에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31절)고 했습니다.

사랑하면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면 주님 안에서, 오직 그분 안에서만 자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랑하다가 보면 자칫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거나 도적질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자기의 것으로 취하는 자는 반드시 망합니다.

다니엘서 4장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바벨론 왕궁 지붕을 거닐면서 자기를 자랑하고픈 마음으로 가득찼습니다.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왕이 이런 마음을 가졌을 때에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 다니엘 4장2833절 - 

느부갓네살 왕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랐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이 땅의 것은 우리가 잠시 머무는 안개와 같은 것입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야고보서 4장14절 -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 베드로전서 1장24~25절 -

 

그렇습니다.

세상의 권세자나 지혜자나 부요한 자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 예레미야 9장23∼24절 -

사도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 갈라디아서 6장14절 -

그렇습니다.

자랑하는 자는 오직 주님 안에서만 자랑하여야 합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 고린도전서 1장30∼31절 -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능력만이 우리의 영원한 자랑거리가 되게 하여야 합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가장 강한 욕망 중에 하나입니다.

대중문화는 자기 자랑을 일종의 미덕으로 제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 자랑에 능한 사람은 매력 있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통합니다.

이런 문화는 은연 중 교회 안으로도 깊이 파고들곤 합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사랑이 하지 않는 것' 가운데 '시기'에 이어 '자기 자랑'을 들고 있습니다.

아가페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아가페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자랑은 오랫동안 인간 공동체에서 각 사람들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사용하여 왔습니다.

바울 당시의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도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고 자랑하는 것을 최고로 여겼습니다.

자신을 자랑하는 것은 특별히 교만한 사람들만의 행동이 아니라 일반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부끄러워하거나 주저하는 것 없이 자신들의 업적을 자랑하였습니다.

이런 업적 자랑들은 지금도 남아 있는 각종 유물들에 잘 나와 있습니다.

공적 기념비나, 건물의 한 벽면에 공적을 길게 새긴 글이나, 가족의 영화를 자랑하는 가족벽화나 혹은 시인이 남긴 서사시로, 그리고 철학자나 수사학자들이 남긴 찬양의 글에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자랑하는 것은 유대인에게도 일반화 되어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들어온 새로 온 교사들, 거짓 사도들 역시 자신들의 자랑거리들을 길게 늘어놓았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의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자랑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바울보다 우월하다고 하면서 바울의 자리를 넘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자랑에 익숙한 고린도교인들 역시 혹하여서 그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이렇게 책망합니다.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 고린도후서 11장20절 -

거짓 교사들은 신앙이란 탈은 쓰고 있지만 결국 세상적인 기준으로 자랑하였습니다.

그들은 출신 배경을 자랑했습니다.

그들은 신비적 능력 을 자랑했습니다. 

그들은 말솜씨 을 자랑했습니다.

그들은 받아온 보수를 자랑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자랑거리에 비해서 바울은 자격미달이라고 바울을 비난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런 자랑 대회에 나서기를 주저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바울은 어쩔 수 없이 자랑하는 일에 동참해야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과 12장에는 바울의 자기 자랑이 나옵니다.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내가 조금 자랑할 수 있도록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 없이 자랑하노라

여러 사람이 육신을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 고린도후서 11장 16∼18절 -

바울은 자기 자랑이 어리석은 줄 알고도 왜 어리석게도 자기 자랑을 합니까?

그 이유는 고린도교회의 거짓사도들이 너무나 많이 자기 자랑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바울의 자랑의 내용은 거짓 교사들, 더 나아가 당시의 사람들이 자랑하는 것과 전혀 달랐습니다.

바울의 첫 번째 자랑은 거짓 교사들의 자랑에 필적하는 비슷한 자랑이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유대인이라는 점입니다.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 고린도후서 11장22절 -

육체적으로 볼 때 바울은 빠질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바울의 자랑은 자랑이라고 할만한 것이 아닌 자랑이었습니다.

바울의 자랑의 내용은 거짓 교사들과 정 반대로 나갑니다.

당시에 전혀 자랑거리가 되지 못한 것들을 자랑합니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랑합니다.

자신의 약함을 자랑합니다.

자신의 실망을 자랑합니다.

자신의 패배를 자랑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 -

 

 

바울이 자랑하는 것은 약하고, 어리석고, 수치스러운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이 다 싫어하는 것들입니다.

바울에게는 자신을 바라보고, 사역을 바라보는 전혀 다른 가치관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에서 보면 수치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바로 그것들이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자랑거리라고 합니다.

바울의 가슴에는 불타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고난과 수치 가운데서도 굴하지 않고 그에게 맡겨진 사역을 지속할 수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런 고난과 수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날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에게는 자신의 어려움과 수치를 당하는 것이 오히려 자랑거리가 되었습니다.

바울의 자랑거리가 당시 고린도인들의 정서에는 맞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십자가를 따라가는 모든 사람들의 자랑거리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기에 그것을 말하였습니다.

 

아가페 사랑에서 '자기 자랑'이 문제가 되는 것은 선을 넘어설 때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실제보다 과장하거나 없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것처럼 가장하는 것입니다.

선을 넘어서게 만드는 것은 에로스적 욕망 때문입니다.

즉, 남의 시선을 나에게 지나치게 붙잡아 두고 싶은 욕망입니다.

에로스 사랑은 다른 사람이 산만하고 부주의해서 나의 훌륭한 점을 주목하지 못할까봐 안절부절못합니다.

에로스 사랑은 다른 사람이 나의 훌륭한 점을 보고도 안목이 없어서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할까봐 두렵습니다.

그러나 아가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가페 사랑은 자신의 약점 때문에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겸허하게 받아들입니다.

아가페 사랑은 나의 장점에 사람들이 반응을 보여주지 않아도 초조해하지 않습니다.

아가페 사랑은 언젠가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줄 날이 오겠거니 생각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아가페 사랑은 사람들의 칭찬이나 인정에 지나치게 연연해하거나 얽매이지 않습니다.

아가페 사랑은 그냥 자기의 갈 길을 묵묵히 걸어갑니다. 평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