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강해

고린도전서 강해(58) -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가족사랑 2026. 5. 30. 05:46

고린도전서13장4~7절□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맹인모상(盲人摸象) - '장님 코끼리 만지기'

사물의 일부분만을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하는 맹인모상(盲人摸象),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이 유래는 불교 경전인 《열반경(涅槃經)》에 등장하는 우화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옛날 인도의 어떤 왕이 진리에 대해 말하다가 신하를 시켜 코끼리 한 마리를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장님 여섯 명을 불러 손으로 코끼리를 만져 보고 각기 자기가 알고 있는 코끼리에 대해 말해 보라고 했습니다.

제일 먼저 코끼리의 이빨(상아)을 만진 장님이 답했습니다.

“폐하, 코끼리는 무같이 생긴 동물입니다.”

다음에는 코끼리의 귀를 만졌던 장님이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폐하, 코끼리는 곡식을 까불 때 사용하는 키같이 생겼습니다.”

그러자 코끼리의 다리를 만진 장님이 나서며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둘 다 틀렸습니다. 제가 보기에 코끼리는 마치 커다란 절굿공이같이 생긴 동물입니다.”

나머지 장님들도 제각각이었습니다.

등을 만진 맹인은 “평상같이 생겼다”고 우겼습니다.

배를 만진 맹인은 “장독같이 생겼다”고 주장했습니다.

꼬리를 만진 장님은 “굵은 밧줄같이 생겼다”고 외쳤습니다.

왕은 서로 다투며 시끄럽게 떠드는 장님들을 물러가게 하고 신하들을 불렀습니다.

“보아라, 코끼리는 하나이거늘, 저 여섯 장님은 제각기 자기가 만져본 것만으로 코끼리를 안다고 하면서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구나. 진리를 아는 것 또한 이와 같으니라.” 

이처럼 ‘맹인모상(盲人摸象)’은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기가 알고 있는 부분만 가지고 고집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남의 말에 쉽게 따르는 것도 옳은 것은 아니지만 자기주장만 계속 고집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바른 눈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알고 있는 만큼만 이해하고 알고 있는 것을 고집스럽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려 합니다.

코끼리의 전체를 본 사람은 맹인이 자기주장을 펼친 것이고, 전체를 말하기에는 틀렸다는 것을 압니다.

사람의 생각은 그 틀에서 벗어나야 남을 이해하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나만 옳고 남은 틀리다는 논리는 분명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대신 남의 주장도 옳다고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이 되어서 내 주장을 펼쳐야 합니다.

그래야 오해도 없고, 적도 없고, 인생의 즐거움을 알게 되고, 인생은 한 방향이 아니고 여러 방향임을 체험하게 됩니다.

 

 

「진리(眞理, Truth)란 무엇인가?」

 

진리(眞理, Truth)란 거짓이 없는 '참된 이치'나 '영원히 변하지 않는 객관적인 사실'을 뜻합니다.

진리의 사전적 의미는 정확한 것, 사실인 것,진짜, 옳은 것, 합법적인 것, 진실한 것,속임이 없는 것, 거짓이 없는 것,오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거짓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얼마나 사람들이 안 믿으면 '진짜 순 참기름'이라고 하면서 기름을 팔겠습니까?

교회도 순복음교회가 있습니다.

하도 가짜가 많으니까 순자를 붙입니다.

진리 (truth)”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알레데이아(ληθείᾳ),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숨기지 않는”, 또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입니다.

진리는 항상 있고,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항상 열려 있고, 아무것도 숨겨지거나 가려지지 않는다는 개념을 수반합니다.

철학자들은 동일성, 또는 일관성이 있으면 진리라고 말합니다.

즉,어떤 사실이나 이론이 언제 어디서나 늘 성립하면 그것이 바로 진리라는 것입니다.

중국에서도,아프리카에서도,한국에서도,미국에서도 언제나 성립하는 이론이나 사실이라면 그것이 곧 진리인 것입니다.

 

성경은 진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定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그는 반석이시니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

- 신명기 32장4절 -

"이러므로 땅에서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

땅에서 맹세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하리니…"

- 이사야  65장16절 -

 

예수님께서는 진리에 대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요한복음 14장6절 -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 요한복음 16장13절 -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한복음 17장17절 -

 

진리는 반드시 성령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진리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이 진리입니다.

예수님이 진리요, 성령이 진리며,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 ‘진리란 무엇인가’, 1890년, 니콜라이 게(1831-1894),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위의 그림은 요한복음 18장에 나오는 빌라도와 예수의 대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예수와 빌라도가 마주보고 서 있습니다.

한 사람에겐 밝고 화사한 빛이, 다른 한 사람에겐 그늘과 어둠만이 존재합니다.

살찐 빌라도가 앙상하게 야윈 예수에게 한쪽 손을 내밀고 거만히 어깨를 으쓱하며 질문을 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고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고 묻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에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되묻습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예수님은 이에 답하지 않고 무섭고 차갑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빌라도에게 응합니다.

예수님은 어둡고 칙칙한 그늘 속에 버려진듯이 보입니다.

그림의 예수님은 진리와 선은 쉽게 얻을 수 없는 성격이라고 말합니다.

진리와 선은 진정으로 찾고 고민해야만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진리와 선은 자동인출기의 물건처럼 돈을 넣고 누르면 나오는 인스턴트 식품이 아닙니다.

끝없는 노력과 연구, 자기 성찰을 통해야만 한걸음씩 다가갈 수 있습니다.

수많은 빌라도들이 잘못된 선과 도덕의 잣대를 휘둘러 올바른 정신을 좀먹게 하는 현실이 얼마나 많은가요?!

진리와 선은 고난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그림은 말해줍니다.

조금만 주의력을 흩트려도 거짓이 참이 되는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구도자는 어둠 속에 있는 선과 진리를 밝은 곳으로 끌어내는데 열과 성을 다해야 합니다.

 

 

‘진리란 무엇인가’를 그린 러시아 페테르부르크 미술 아카데미 출신의 화가 니콜라이 게(Nikolai Ge, 1831~1894)는 톨스토이의 정신에 큰 감화를 받아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톨스토이는 이성으로 선을 찾고 그것을 실천하며 삶을 정진하는 것이 인생이라 말합니다.

일신의 안위만을 추구해선 안되며 교회를 부정하고 인간은 신 앞에서는 모두 평등하다고 주장합니다.

톨스토이는 예수 또한 인간이므로 그를 신격화 해 기도하는 것을 엄격히 반대했습니다.

사치와 무위도식의 생활에 빠져 있는 타락한 특권 계급을 부정하고 그들을 인간 사회에 불행을 가져다 주는 악의 근원으로 규정지었습니다.

또한 폭력을 기반으로 세워진 국가를 부정하며 그들을 지지하는 교회 세력, 학문, 예술 모두를 부정합니다.

톨스토이를 지지한 '니콜라이 게(Nikolai Ge)'네덜란드의 바로크 화가 램브란트(Rembrandt, 1606-1669)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니콜라이 '는 렘브란트로부터 빛의 효과나 그 밖의 기법을 배웠습니다.

그 외에 렘브란트와 마찬가지로 복음서의 이야기를 통하여 인간생활의 심오한 드라마를 해명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니콜라이 ' <진리란 무엇인가>에서 그리스도는 어둠에 갇혀 신음하는 러시아 민중, 즉 선하고 도덕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자를 대변하고, 극단적 이기심으로 자신의 안위 만에 급급한 기득권층을 빌라도로 표현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두 손이 포박된 예수처럼 진리와 양심을 외치는 자는 외롭고 힘들 수 밖에 없습니다.

차갑고 어두운 현실 속에 내팽개쳐질 때가 많습니다.

바로 진리와 선은 쉽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리와 선을 향해 끊임없이 정진해야 올바른 진실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됩니다.

니콜라이 게는그렇게 찾아야만 참다운 진리가 될 수 있음을 빌라도와 예수 그리스도를 빌어 분명하게 전합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향해 정진하는 삶이 고독하고 힘들더라도 게을리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톨스토이의 가르침이며 '니콜라이 게'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 συγχαίρει δὲ τῇ ἀληθείᾳ - 
(튕카이레이 데 테 알레데이아)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 안에서 함께 기뻐합니다.'

συγχαίρει (튕카이레이): 함께 기뻐하다

이 단어는 단순히 혼자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기뻐할 때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공감하고 같이 즐거워하는 것을 뜻합니다.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진리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렇기에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성령 안에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참된 사랑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입니다.

성령의 충만함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진리와 함께 살아갈 때 참된 기쁨이 있습니다.

참된 자유가 있습니다.

참된 행복과 하나됨과 화목됨이 이루어집니다.

진리와 함께 기뻐하라는 뜻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기뻐하라는 뜻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라는 뜻입니다.

참된 사랑은 진리와 함께, 주님으로 인해 기뻐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진정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이 알지 못하는 참된 하늘의 기쁨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힘든 일이 있어도 기뻐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면 주님이 주시는 사랑으로 우리가 함께 나누고 있는 “오래 참는 사랑, 친절한 사랑, 교만하지 않는 사랑, 무례히 행치 않는 사랑,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는 사랑, 원한을 품지 않는 사람,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이 있을 때, 진리와 함께 하는 삶이 있을 때 내가 행복해지고 나로 인해 주변의 사람들이 행복해 집니다.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과 명령대로 순종하는 믿음의 삶을 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 사랑으로 인해 나의 삶이 변합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 가정, 교회,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고 믿고 구원의 은혜에 동참될 수 있습니다.

진리는 영원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입니다. 

그분은 본래 영원한 말씀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자기 백성의 죄악을 담당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또한 부활 승천하셔서 자기 백성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이며, 그분을 증거하는 신구약 성경이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는 것은 예수님 안에서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그분에 관한 복음과 진리의 말씀 안에서 기뻐한다는 뜻입니다.

 

 - 렘브란트 하르먼손 판레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 '탕자의 귀향' -

 

“예수 안에서 기뻐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기뻐하실 때 함께 기뻐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언제 예수님께서 가장 기뻐하실까요?

예수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때는 잃은 양이 돌아올 때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 누가복음 15장36절 -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즐거워하자.”고 하셨습니다.

바로 오늘, 사랑은 진리 되신 예수님과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 한 영혼이 주께 돌아올 때 가장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한 영혼이 주께 돌아올 때 가장 기뻐해야 합니다.

탕자의 이야기를 보십시오! 

탕자가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 아버지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베풀지 않습니까?

사랑은 탕자 한 사람이 주께 돌아올 때 가장 기뻐합니다.

따라서 진리와 함께 기뻐하라는 말은, “예수님 안에서 기뻐하며,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조명하심에 따라 복음과 성경을 읽고 깨달으며 기뻐할 것이요, 또한 주의 생명으로 진리를 행하므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참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이 알지 못하는 참 기쁨을 주십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과 힘든 일이 있어도 진리이신 예수님과 함께할 때 기뻐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은사가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말도 많았고, 지식도 있었고, 능력도 자랑할 만했습니다.

그러나 그 풍성함 속에 가려진 비극은, 사랑이 가난했다는 것입니다.

은사가 사랑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지식이 사랑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가장 빛나는 것을 붙잡고 가장 필요한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오늘 우리도 비슷합니다.

교회 안에 봉사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 사역도 있습니다.

교회 안에 열심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 속에 사랑의 숨결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옳은 말을 하면서도 사람을 상하게 했습니다.

바른 길을 말하면서도 누군가를 넘어뜨렸습니다.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마음과 멀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사랑의 길 위에 세워진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진리의 빛으로 다듬어진 사랑입니다.

진리는 사랑을 무디게 만들지 않습니다.

사랑은 진리를 날카롭게 만들지 않습니다.

복음 안에서 만난 진리와 사랑은 서로의 얼굴을 환하게 비춥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이끕니다.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평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