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149)-나의 동역자 디모데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가족사랑 2024. 3. 22. 07:30

로마서 강해(149) 

나의 동역자 디모데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 로마서 16장21절 -

 

 

“너무 감탄하지 말게나. 이 아름다운 길 저편에는 로마 제국 최악의 빈민가가 자리하고 있으니 말일세.

자네가 만날 사람들은 빈민가에 사는 사람들이야.

우리가 가는 곳은 빌라지만 그곳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 대부분은 노예일 걸세.

다른 지역의 모임에서와 마찬가지로 말이지.

우리는 빌라 정원에서 모일 텐데,

이 빌라는 바나바와 내가 갈라디아에서 돌아왔을 때 찾았던 바로 그 빌라라네.

저기 불빛이 보이나?

저기가 정원일세. 모임이 끝난 후에는 잔치가 열릴 거고, 그때 성찬을 들게 될 걸세.”

언덕 저편에서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한 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정원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수십 명의 형제자매에게 에워싸였다.

우리는 기분 좋은 흥분감에 휩싸였다. - 42p

 

여섯 명이 부름을 받았고, 여섯 명 모두 그 부름에 응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일 중 하나는 바울의 소중한 꿈이 베일을 벗은 그날 그 방에 있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더 이상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그분은 사람들을 훈련시킬 교회 개척자들을 남겨 놓으셨다.

그들이 주님의 일꾼들을 훈련시킬 것이다. 교회 개척자들만이 주님의 일꾼들을 훈련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그날 저녁 바울이 우리에게 물려준 유산이다.

우리가 소속되어 있는 교회들은 우리를 아주 잘 앎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훈련시키는 일에 전적으로 동의해주었다.

에베소에 온 여섯 명 모두 부르심을 받았다.

여섯 명 모두 교회의 평범한 형제들이었고, 여섯 명 모두 훈련을 받았다.

여섯 명 모두 파송되었고, 여섯 명 모두 끝까지 믿음을 지켰다. - 62p

 

나는 바울이 편지를 읽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에게는 두려운 기색이 전혀 없었다.

바울은 이미 지방 정부의 탄압에 대해 마음을 내려놓았고, 여러 교회들에 대해 인내하는 법을 배웠다.

그는 끊임없이 블라스티니우스의 살해 위협에 시달렸으며,

자신이 아직 유대인 신자 전체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자기 안에 쓴 뿌리가 자라도록 방치하지 않았다.

그는 지고 또 지는 법을 배웠다.

암살 논의가 있다는 소식에도 그는 이방 교회들을 걱정했다.

그가 죽고 나면 이 교회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 72p

 

“예수 그리스도는 예루살렘이 포위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피난을 가게 되리라고 경고하신 적이 있지.

베드로 사도와 나는 그날을 대비하여 북아프리카에 복음이 전파되고 에클레시아가 생겨났으면 한다네.

그리고 북쪽으로 피난을 떠난 유대인들을 위해서는,

유대인 신자들이 이방 땅에 들어갔을 때 유대 교회가 아니라 이방 교회의 영접을 받기를 간절히 바라네.

그날에 키프러스에서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해. 이방 땅에서 유대적인 분위기의 교회를 보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일세.

키프러스에서는 이방인이 교회의 일원이 되려면 유대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유대인이 이방 땅에 가면 이방적인 교회 분위기에 익숙해져야 하고,

반대로 이방인이 예루살렘에 가면 유대적인 교회 생활에 익숙해져야 해.” - 84p

 

“할 말이 아직 남았네.

자만하지 말게.

바리새인처럼 보이지도 말고 사두개인처럼 보이지도 말게.

서기관이나 제사장처럼 보이지도 말게.

늘 스스로 자신의 생계를 책임지게.

의복도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처럼 입게.

사람들이 흔히들 입고 다니는 옷을 입게. 경건한 체하지 말고 영적인 체하지 말게.

자네들은 한 명의 형제에 지나지 않으며, 앞으로도 쭉 그래야 하네!”

뼈아픈 충고였다. 누군가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마도 가이오였던 것 같다.)

우리는 바울 주변에 둘러서서 눈물로 기도했다.

우리는 불과 몇 분밖에 같이 있지 않았지만 그때 향후 3년간의 방침이 정해졌다.

우리는 고개를 숙인 채 바울이 우리에게 당부한 것을 지킬 수 있게 해달라고 주께 간구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그날 주께 한 약속을 충실히 지켜온 듯하다.

타락한 인간이 할 수 있는 한에서는 말이다...(중략)

그 후 3년간 에베소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소아시아 전역의 마을들에 심오한 영향을 미쳤다. - 105p

 

 

사도행전을 기초로 한 『디모데의 일기』는 바울의 모험적인 여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 놀라운 이야기 는 디모데의 시각으로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자신의 뒤를 이을 젊은이들을 훈련시키고자 하는 꿈을 이뤘다는 점에서 다른 전도여행들과 다릅니다.

바울은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교회의 성장을 도울 제자들을 뽑아서 훈련시킬 때  그리스도의 본을 따랐습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바울의 열 명의 제자들, 디모데(루스드라), 디도(안디옥), 가이오(더베), 아리스다고(데살로니가), 세군도(데살로니가), 소바더(베뢰아), 소스데네(고린도), 두기고(에베소), 드라비모(에베소), 에바브라(골로새), 빌레몬(골로새) 은 모두 바울의 2차 전도여행 중에 세웠던 교회들을 대표하는 젊은이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을 에베소에서 집중적으로 훈련했습니다.

『디모데의 일기』는 바울과 이들의 관계를 생생하게 기록합니다.

이들은 모두 후에 바울을 대신하여 바울이 세웠던 교회의 중요 지도자들이 됩니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 1세기 교회는 계속되었습니다.

 

 

『디모데의 일기』를 쓴  진 에드워드 비스 주니어 (Gene Edward Veith Jr.) 는 그리스도인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있는 『세 왕 이야기』,  그리고 미국의 서점 매니저들이 향후 100년 후에도 여전히 그리스도인들의 서가에 꽂혀 있을 책으로 꼽은 『신의 열애』의 저자입니다.

그는 『브리스길라의 일기』, 『실라의 일기』 등 사도행전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야기도 썼습니다.

 진 에드워드는 영성 깊은 기독교 작가이기 이전에 평생을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 즉 유기적인 교회에 헌신해온 가정교회 운동의 선구자이며 지도자입니다.

그는 18세에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교 1년을 마친 후 성경을 바르게 이해할 더 좋은 길과 1세기 교회의 뿌리를 찾아 이스라엘-터키-유럽을 답사하며 치열한 탐구와 실천의 삶을 살았습니다.

동부 텍사스 주립대학교와 사우스웨스턴 침례신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습니다.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 빌립보서 2장1920절 -

 

사도바울의 생애를 살피면 꼭 만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바울에게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입니다.

바울의 부모, 스승 가말리엘, 바나바 등등이 그런 인물입니다.

바울의 삶을 세웠던 사람들입니다.

아울러 바울이 전도하고 양육하여 동역자로 세웠던 믿음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울의 제자들입니다.

바울의 사역은 바울 혼자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신실한 동역자들의 협력과 헌신 까닭에 바울의 사역이 열매 맺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나, 에바브라디도, 오네시모, 디모데 등입니다.

 

디모데는 사도 바울의 가장 탁월한 제자며, 동역자였습니다.

더 나아가 디모데는 바울의 영적인 아들이며, 에베소 교회 후임 목회자였습니다.

디모데는 그리스어로 티모데오스(Τιμόθεος)입니다.

그 뜻은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 혹은 “하나님께서 높이신 사람”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었던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인 듯 보입니다.

디모데의 일생과 잘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디모데는 유대인 어머니와 이방인(헬라인) 아버지에 사이에서 소아시아 갈라디아 지역 루스드라(Lystra)에서 태어났습니다.

모친 유니게와 외조모 로이스는 경건한 신자로 디모데를 어릴 때부터 성경으로 잘 가르쳤습니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디모데후서3장15절)

또 이들은 디모데를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듣는 모범 청년으로 양육했습니다.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사도행전16장1∼2절)

바울의 2차 선교여행에서 만난 디모데는 실라(Silas)와 함께 바울의 동역자로 동행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소아시아, 그리스, 마게도냐, 로마 등지에서 전도하였고 에베소교회에서는 담임목회자로 사역하였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양육하여 신실한 사역자로 세웠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도움으로 적어도 다섯 교회(데살로니가;살전3:1-2, 고린도;고전4:17, 빌립보;빌2:19-22, 에베소;딤전1:3, 베뢰아;행17:14)에서 사역을 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을 때 목격을 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그리고 2차 선교여행에 신실한 바울의 동역자로 동행합니다.

디모데는 1차 선교여행 목격자로, 2차 선교여행부터는 바울의 동역자로 동행했습니다.

물론 3차 여행도 함께 하면서 에베소교회 개척을 같이 합니다.

 

디모데 이름이 신약에 26회 등장합니다.

또 그에게 보내진 바울의 편지가 두 권이나 있습니다.

13개 바울 서신들 가운데 8권의 서두에 바울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할례 받게 했을 뿐만 아니라 디모데를 안수(딤전4:14)하여 목회자로 세웁니다.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디모데전서4장1215절)

바울은 디모데를 “주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고린도전서4장17절), “믿음 안에서 참 아들”(디모데전서1장2절),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디모데후서1장2절)로 표현하면서 특별한 애정을 표현합니다.

 

교회 전통에 따르면 디모데는 AD 17년경에 출생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바울의 2차 전도여행에서 디모데를 만날 때 주후 50년경이었고 바울은 48세, 디모데는 33세경이었습니다.

디모데는 구약을 배웠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로 불렸습니다.

그런데 그 지역 유대인들을 위하여 바울이 할례 받을 것을 권하자 순종하여 할례를 받습니다.

이미 할례 부담을 없애자는 예루살렘 사도회의 결정이 있었지만 디모데는 할례를 받습니다.

 

바울은 서신서 곳곳에서 디모데를 높이 평가(Highly value)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사역 현장에서 디모데를 중용합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동역하며 기쁨과 슬픔, 어려움과 고난을 같이합니다.

예루살렘을 거쳐 로마로 가는 길에도 디모데가 동행합니다.

바울의 옥중서신을 보면 로마 감옥생활에서는 디모데와 함께 지냅니다.

선교여행 중에 개척된 교회에서 디모데의 활약은 눈부십니다.

 

교회의 전통은  ‘디모데가 에베소에서 80세에 죽었다’고 말합니다.

폭스는 그의 저서 폭스의 순교사(Foxe's Book of Martyrs, 원제는 Actses and Monuments 이지만 순교사로 더 많이 알려짐)에 따르면 디모데는 주후 97년(디모데 80세) 에베소에서 우상숭배 축제를 준비하는 불신자들에게 헛된 짓을 버리라고 설득하다가 몽둥이에 맞고 앓다가 이틀 후에 죽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도행전과 바울서신, 그리고 교회사에서 디모데는 신실하고 헌신된 신앙인입니다.

디모데의 인생에 바울과 같은 위대한 사도를 만나, 그의 동역자로 사역할 수 있었다는 것은 큰 축복이었습니다.

디모데가 사도 바울과 동시대에 활동하면서 바울의 든든한 동역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기도와 신앙교육이 있었기에 가능하였습니다.

디모데의 헌신과 열정이 신약 교회가 세워지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에게서 배우고 순종하는 겸손한 제자였습니다.

바울도 디모데를 사랑하고 신뢰했습니다.

바울의 말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울을 떠났습니다.

그 중에는 바울을 배반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디모데는 끝까지 바울 곁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고 하면서 '어서 내게로 오라'고 합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 디모데후서 4장613절 -

바울과 디모데가 보여주는 아름다운 관계는 동역하기 어렵다고 하는 한국 교회에 큰 도전이 됩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고, 바울을 뜨겁게 사랑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 나의 동역자라고 했던 디모데같은 신실한 성도가 그립습니다. 평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