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과 칼럼

"영감! 왜 이렇게 낡은 삼베 두루마기 걸치는 것이오?"

가족사랑 2023. 9. 26. 23:29

조선 숙종 때 뛰어난 학자로 명성 높은
'김유'는 평소 청빈하기로 유명했습니다.

장성한 아들들이 잠잘 방 한 칸 없어 비좁은
처마 아래에서 식구들이 잠을 자야 했는데
그가 평안감사로 나가 있는 동안
아버지 몰래 아들들이 처마를 몇 칸 달았다고 합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는 바로 그 처마를
쳐내었다고 합니다.

그는 대제학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는데
대제학은 국가의 문한(文翰)을 총괄하는 지위로
문과 출신 중에서도 학문이 매우 뛰어난 사람을 임명하는 자리로
권위와 명망이 높아 관료의 최고 영예였습니다.

대제학의 자리에 오른 날 그는 가족들을
불러서 말했습니다.

"이번에 내가 몸담게 된 대제학의 자리는
누구보다 청빈하고 겸손해야 하는 자리요.
그러니 잊지 말고 앞으로는 더욱 몸가짐과 행동에
조심해주기를 바라오."

이후 그의 아내와 자녀들은 사용하던
비단옷과 은수저를 팔아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고
다섯 가지 반찬을 세 가지 반찬으로 줄이도록 했으며
값싼 삼베옷을 입으며 지냈습니다.

그러는 중 그의 아들이 장가를 가면서
며느리가 혼수로 김유에게 비단옷을 지어 왔습니다.
하루는 그가 비단옷을 입고 외출하게 되었는데
비단옷 위에 낡은 삼베 두루마기를
걸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부인이 비단옷까지 입으면서
삼베 두루마기를 비단옷에 왜 걸치는지
그에게 물었습니다.

"영감! 왜 이렇게 낡은 삼베 두루마기 걸치는 것이오?"
"새 며느리가 정성으로 지어온 비단옷을 입었지만,
무릇 사람이란 좋은 것을 보면 교만해져 자꾸 탐하게 되어 있소.
백성을 항상 먼저 생각해야 하는 대제학인 내가
늘 경계해야 할 일이 여기 있지 않겠소.
백성들이 보면 사치스럽다 할 것이 두렵고 걱정되어
이렇게 낡은 삼베 두루마기 걸치는 것이오."

 

 

조선의 관료들은 사불삼거(四不三拒)를 불문율로 삼았습니다.

그들이 재임 중에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네 가지(四不)는

첫째, 부업을 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땅을 사지 않앗습니다.

셋째,  집을 늘리지 않았습니다.

넷째,  재임지의 명산물을 먹지 않았습니다.

풍기 군수 윤석보는 아내가 시집올 때 가져온 비단옷을 팔아 채소밭 한 뙈기를 산 것을 알고는 사표를 냈습다.

대제학 김유는 지붕 처마 몇 치도 못 늘리게 했습니다.

 

재임 중에 절대로 거절해야 할 세 가지( 三拒)

첫째. 윗사람의 부당한 요구을 거절했습니다.

둘째, 청을 들어준 것에 대한 답례를 거절했습니다.

셋째,  경조사의 부조를 거절했습니다. 

청송 부사 정붕은 영의정이 꿀과 잣을 보내달라고 부탁하자 잣나무는 높은 산 위에 있고 꿀은 민가의 벌통 속에 있다고 답을 보냈습니다.

우의정 김수항은 그의 아들이 죽었을 때 무명 한 필을 보낸 지방관에게 벌을 주었습니다

 

조선 시대 이상적인 관료의 모범으로서 청백리(淸白吏)가 있습니다.

청백리(淸白吏) 는 일정한 기준에 의하여 의정부에서 뽑아 관리에게 주어지는 명칭입니다.

여기에는 관직 수행 능력 외에 여러 기준이 있는데 그 가운데 청렴(淸廉)·근검(勤儉)이 있고, 청백리에는 모두 217명이 있습니다.

 대표적 청백리에는 맹사성·황희·최만리·이현보·이언적·이황·이원익·김장생·이항복 등이 있습니다.

이들 모두가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가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부유하게 산 것도 아닙니다.

 

고불 맹사성(古佛 孟思誠)은 조선 시대 대표적 청백리로 이름난 재상입니다.

젊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한 고을을 다스리게 된 맹사성은 잠시 성현의 가르침을 잊고 자만심으로 가득해졌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파주군의 백성이라면 늙은 사람이든 젊은 사람이든 모두 고을 군수인 맹사성 앞에 오면 머리를 조아리니 이러한 생활에 익숙해질수록 사성의 마음은 우쭐해져 가고 마음속에는 오만이 싹텄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식이 높고 고매한 고승이 감악산에서 수도를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오만해진 맹사성이 자신의 학식을 자랑도 하고 소문이 자자한 고승의 가르침도 받을 겸 감악산의 고승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감악산은 초행길이라 걸음이 더뎠습니다.

산길을 따라 힘들게 한참을 걸어 올라가니 자그마한 암자가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옳지, 사람들이 말한 곳이 바로 저곳이로군.’
맹사성은 암자 앞에 이르러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는 말문을 열었습니다.
“스님, 파주 군수인 맹사성이라 합니다. 스님께 가르침을 받고자 찾아 왔습니다.”
그러자 방문이 열렸습니다.
“먼 길을 오셨군요.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늙은 고승이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맞이했습니다.
맹사성이 승방에 오르자 고승은 낡은 방석을 하나 내어 놓으며 앉기를 권했습니다.
“스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제가 젊은 나이로 한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이 되었기에 모르는 것이 많아 어찌 백성들을 다스려야 하는지 듣고자 찾아왔습니다. 좌우명으로 삼을 좋은 말씀을 부디 가르쳐 주십시오.”
한껏 겸손하게 말을 하였으나 고승의 눈에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이라는 오만이 뚝뚝 묻어 있는 것이 눈에 선히 보였습니다.
“어려울 게 뭐 있나요. 그저 나쁜 일은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선을 베풀면 되는 거지요.”
고승은 어린아이들도 모두 알 수 있는 말을 했습니다.
“그건 삼척동자도 모두 다 아는 이치인데 먼 곳까지 발걸음 한 제게 고작 그 말씀을 들려준단 말입니까?”
크게 실망한 맹사성이 거만하게 말하며 일어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고승이 말했습니다.
“이왕 오셨으니 산사의 차나 한 잔 하고 가시지요.”
맹사성은 못이기는 척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러자 고승이 찻잔에 차를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맑고 그윽한 차의 향내가 방안 가득히 흘렀습니다.

그런데 잔에 차가 넘쳐도 계속해서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스님,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십니다. 이러다간 방바닥을 망치고 말겠습니다.”
깜짝 놀란 맹사성이 말했습니다.
맹사성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찻물을 따르던 고승이 맹사성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한 마디 했습니다.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망치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하여 모르십니까?”
고승의 말에 교만한 자신의 속내가 들킨 것을 알고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진 채 황급히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미처 고개를 숙이지 못하고 문틀에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고승이 빙그레 웃으며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세상 살면서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지요. 우리가 돌덩이에 불과한 부처님께 절을 하는 것도 세상을 겸손하게 살아가기 위함이지요.”
고승의 한 마디에 맹사성은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스님, 부끄럽습니다. 스님의 말씀을 평생 동안 가슴에 안고 살아가겠습니다.”
두 손을 모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의 큰절을 올리고 절을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그날 고승의 가르침을 평생 동안 잊지 않고 가슴에 새겨 사람들을 대할 때 실천에 옮겼습니다.

집에 누군가 찾아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찾아온 사람이 말에 올라 돌아갈 때까지 인사를 하였습니다.

 

-  고불 맹사성(古佛 孟思誠 1360년~1438년) -

맹사성의 청빈하고 고결한 삶을 말해 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비 오는 날 한 대감이 그의 집을 찾았습니다.

그 대감은 속으로 놀랐습니다.

'세상에! 한 나라의 정승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초라하게 살다니...'

안으로 들어가서 맹정승을 만난 대감은 더욱 놀랐습니다.

여기저기서 빗물 새는 소리가 요란하고, 맹정승 부부는 빗물이 떨어지는 곳에 그릇 갖다 놓기 바빴습니다.

대감은 그만 눈물이 핑 돌아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습니다.

"대감께서 어찌 이처럼 비가 새는 초라한 집에서.…"

"허허, 그런 말 마오. 이런 집조차 갖지 못한 백성이 얼마나 많은지 아오?

그런 사람들 생각을 하면 나라의 벼슬아치로서 부끄럽소.

나야 그에 비하면 호강 아니오?"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율법학자 한 사람이 다가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나는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 마태복음 8장 1920절, 새번역 -

 

 

예수님은 일정하게 머물 처소가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공적 생애를 사시는 동안 동가식 서가숙( 東家食西家宿 )하시면서 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우도 굴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우와 같이 하찮은 동물도 제 집이 있습니다.

여우도 제 부동산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머리 둘 곳'이란 베개하고 누우실 곳을 말하며 밥 먹고 안식하는 장소를 말합니다.

가족들과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곳을 말합니다.

공중에 나는 새도 떠돌이 일 것 같지만 어엿한 둥지가 있습니다.

왜가리도 둥지가 있고 흑두루미도 둥지가 있고 백로도 둥지가 있습니다.

자기 집이 있습니다.

그런데 온 세상을 만드시고, 다스리시고. 붙들고 계신 그 분께서  '나는 머리둘 곳이 이곳에 없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부요하신 분이  '이세상에는 머리조차 편히 가눌 곳이 없다!'고 하십니다.

주님은 태어나실 때부터 가난하셨습니다.

주님의 생애는 가난에서 시작되어 가난으로 마치셨습니다.

주님은 원래가 가난해 지실 수 없는 분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우리는 ㅈ님으로부터 생명의 부요함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주님의부터 삶의 부요함을 받았습니다.

천국의 부요함을 받았습니다.

생명이요 부활이신 그 분 자신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평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 빌리보서 2장5∼11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