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과 칼럼

“나를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당신이 두렵습니다.”

가족사랑 2023. 8. 26. 15:08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도덕 철학을 높이 세운 독일 근대철학자이며 독일 관념론자입니다. 

그의 묘비에는 이런 글이 씌어 있습니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감탄과 경외로 나의 마음을 가득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나의 머리 위에 별이 총총히 빛나는 하늘이며 다른 하나는 내 안의 도덕 법칙이다.” 

하늘의 별처럼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양심이 자기 마음속에 또렷이 빛나고 있다는 뜻입니다.

 

- 임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1724~1804) -

임마누엘 칸트는 프로이센의 상업도시 쾨니히스베르크(현재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에서 수공업자인 아버지 요한 게오르크 칸트(Johann Georg Kant)와 어머니 안나 레기나(Anna Regina)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에마누엘'(Emanuel)이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를 공부한 후에 그는 자신의 이름을 '임마누엘"(Immanuel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로 바꾸었습니다.

부친 요한 게오르그 칸트는 아들에게 정직하고 성실한 수공인의 정신과 자의식 있는 시민 정신을 심어 주었습니다.

뉴른베르크 태생의 모친 안나 레기나는 선명한 인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신심이 깊은 모친은 온건한 경건주의 신앙에 따라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칸트는 경건주의를 따르는 부모 밑에서 성장했습니다.

기독교의 경건주의는 종교적인 헌신과 겸손함 그리고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칸트가 받은 교육은, 수학과 과학보다는 라틴어와 종교 훈련을 우선시 하였고, 엄격하고 가혹하며 훈련을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칸트는 1732년에 콜레기움 프리데리키아눔에 입학하여 1740년까지 다녔고, 이어서 대학에 진학하였습니다.

그는 1746년 대학공부를 마친 후에 수년간 귀족 가문의 가정교사를 하였습니다.

1755년 대학에 돌아와서 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1766년 쾨니히스베르크 왕립 도서관의 부사서로 일하게 됨으로써 그는 처음으로 고정 급여를 받는 직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1770년에 칸트는 논리학과 형이상학을 담당하는 정교수직을 얻게 되었습니다.

칸트는 1786년과 1788년 두 차례 총장을 역임하였습니다.

칸트는 1794년 이후 차츰 강의 활동에서 물러났고 1804년에 죽음을 맞이하여 대학 교회의 교수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칸트가 도덕 법칙을 강조한 데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습니다.

어느 날 칸트의 아버지가 고향인 폴란드의 슐레지엔으로 가기 위해서 말을 타고 산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우려했던 대로 강도들이 나타났습니다.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기고 말도 빼앗겼습니다.

강도가 물었습니다.

“숨긴 것이 없느냐?”

“없습니다.”

“그럼 가거라!”

무사히 강도들 틈을 빠져나와 한숨을 쉴 때 바지춤에 비밀히 감추어둔 금 덩어리가 있음을 발견습니다.

그 순간 그는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그는 강도들에게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회개합니다. 조금 전에는 너무나 무섭고 정신이 없어서

숨긴 것이 없느냐고 물을 때 없다고 대답했는데 가다보니까

이 금덩이를 숨긴 것을 발견했습니다. 받으십시오.”

강도에게 숨겼던 금 덩어리를 내주었습니다.

그러자 강도는 빼앗은 물건과 말을 내주면서 엎드리더니

“나를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당신이 두렵습니다”고 말했습니다.

바보 같은 순결함에 그 강도들도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정직(正直)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의 도로 죄인들을 교훈하시리로다"

- 시편25편8절 -

 

정직한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성경에는 「정직」이 얼마나 중요한지 약 ‘125회’나 나옵니다.

이유는 하나님 자신이 정직하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 도로 죄인을 교훈하시리로다"(시편 25편8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또한 정직합니다.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 시편18편8절 -

 

만약에 하나님이 정직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하지 못하다면 지금까지 기독교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정직은 기독교 신앙을 지탱해 주는 기둥이라 할 수있습니다.

정직은 우리의 믿음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정직(正直)이란, 사람이 몸과 마음을 곧고 바르게 가짐으로써, 말과 행동에서 거짓과 허식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정직은 작게는 남에게 거짓말을 않거나 남을 속이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만, 크게는 자기 자신에 대한 성실성도 포함하는 말입니다.

남이 알지 못하는 자기의 잘못을 감춘다는 것은, 곧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양심에 충실하려는 태도가 정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직성이 높은 사람은 타인을 이용하거니 착취하지 않는다는 공통적인 특성이 있습니다.

그는 남을 속이거나 조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남의 것을 훔치거나 빼앗는 걸 아주 싫어합니다.

또한 남보다 더 많이 차지하려는 탐욕이 적어서 뭔가를 이루기 위해 타인을 이용할 동기가 애초에 크지 않은 사람입니다.

 

영국 격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루만 행복하려면 이발소에 가라.

1주일만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라.

한 달만 행복하려면 말을 사라.

1년쯤 행복하려면 집을 사라.

그러나 평생 행복하려면 정직한 인간이 되라"

 

많은 사람들이 '정직'을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치 없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이나 장식품 정도로 생각합니다.

정직한 사람을 바보 취급을 하기도 합니다.

정직을 부르짖는 사람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시대에 뒤떨어진 낙오자로 생각합니다.

요즘 사회에서는 정직하면 손해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를 '착하고 정직한 아이'가 아닌, '똑똑하고 영리한 아이'로 키우고 싶어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정직하면 출세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처세술과 권모술수 그리고 뇌물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4명 중 1명이 기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부패 공화국'이란 그리 명예롭지 못한 이름을 달고 다닙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거짓 없이 정직하게 살면 성공할 수 없을까요?

착하고 정직하게 사는 것은 손해보면서 사는 바보들의 행동일까요?

정직한 크리스천은 시대에 뒤떨어진 어리석은 사람일까요?

18세기말 나폴리의 총독인 오수나(Osuna) 공작이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를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항구에는 죄수들이 노 젓는 배 한 척이 정박해 있었습니다.

총독은 곧장 그 배로 올라가서는 죄수들을 한 사람씩 불러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리 고생들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죄수들은 한결같이 자기변명으로만 일관하며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맨 마지막으로 나와서 말하는 죄수는 달랐습니다.

"총독님, 저는 벌을 받을 죄를 짓고 왔습니다.

저는 돈이 필요해서 남의 지갑을 훔쳤습니다.

죄를 지었으므로 이리 고생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자신의 죄를 솔직히 고백한 이 정직한 죄수의 말에 감동을 받은 총독은 간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정말 죄인이군!

여기에는 죄를 지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는데

이 죄인이 여기에 함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게 되니

이 죄수를 얼른 밖으로 내보내거라!"

자신이 저지른 죄를 정직하게 말한 죄수는 특사를 받고 자유의 몸이 되어

그 뒤로 남을 위해 열심히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정직성이 높으면 타인들을 공정하게 취급함으로써 미래에 그들에게서 협력과 호의를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남을 속이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의 신뢰와 협동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미래의 큰 자산인 신용이라는 통장을 갖습니다.

잠언15장8절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예배만 드린다고 능사가 아닙니다.

정직하지 않은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천국은 거짓이 없는 곳입니다.

오직 진실과 정직만이 있습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 우리가 물려줘야 할 자산이 있다면 그것은 정직입니다.

정직한 사람, 정직한 나라가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이로다 
"

- 시편 112편1∼4절 -

 

2절.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後代)가 복이 있으리로다.

정직할 때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후손들이 갖지 못한 것이 없습니다. 

3절. 부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공의가 영원히 서있으리로다.

하나님의 의가 영원히 태양같이 머물러 있습니다. 

4절.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이로다.

솟아오르는 빛은 적어도 세 가지의 축복을 상징합니다.
첫 번째는 「돌파」입니다. 
  빛은 어둠을 깨트리고 돌파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정직해지면 그동안 정직하지 못함으로 우리 인생 가운데 드리워져있던 수많은 저주와 매임들, 그리고 장벽들의 돌파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앞에 가리우고 있던 산들이 무너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치유」입니다.
  빛은 또한 치유와 회복의 의미가 있습니다. 빛 안에는 수많은 치유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빛을 치유하는 광선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질병이 있을 때에 진찰을 받지 않고 대처하지 않으면 그냥 그대로 있는 것처럼 여전히 숨기고 있고, 감추고 있으면 치유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직함을 선택하기 시작할 때에 하나님의 치유의 빛이 우리의 존재 가장 깊은 곳으로 침투해 들어옵니다. 그리고 자유해지고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열매」입니다.
  빛은 생명을 시작하게 하고, 열매를 맺게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생명을 창조하기 이전에 가장 먼저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정직함으로 설 때에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우리 가운데 들어와서 내면에서 하나님의 성품의 열매들을 맺습니다. 

계속되는 4절의 말씀에서  “그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이로다”라고 합니다.

이 세 가지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즉, 정직하게 되면 그 성품이 안에서 열매로 맺혀지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품의 열매는 생명의 열매로 종착됩니다.

우리의 성품안에 열매를 맺고 살아갈 때에 우리를 통해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되고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의 나무에 수많은 생명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맺히게 됩니다.

 

 정직함의 문제를 놓고 가장 심각하게 고민했던 사람, 그리고 그의 정직함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사람이 다윗입니다.
  다윗은 평생 흠도 점도 없는 인생을 산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 역시 정직함에 대해서 문제가 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밧세바와 간음을 저지르고 살인을 교사했을 때였습니다.

다윗은 간음과 살인이란 아주 심각한 죄를 범한 후에  몸부림치면서 시편 51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이 기도 속에서 잃어버린 정직함을 회복하기 위해서 다윗이 얼마나 몸부림쳤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우리와 동일한 마음과 연약함을 지닌 자였습니다.

그래서 항상 정직하지는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정직하려고 몸부림쳤던 사람입니다.

그 결과 그는 자신도 그렇게 인정하고,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정직하려고 몸부림 칠 수 있어야 합니다.

정직은 정직하고자 하는 믿음의 선택과 몸부림의 결과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요.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지만 선택은 자신이 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 선택을 도와주지 않고 하나님도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평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