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과 칼럼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계획을 세울 수 없는 사람은경영자란 이름을 붙일 수 없다

가족사랑 2023. 9. 21. 06:41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계획을 세울 수 없는 사람은

경영자란 이름을 붙일 수 없다

 

일개 사원으로 시작하여 포드 자동차의 부회장장을 지냈으며, 파산 직전인 크라이슬러 자동차 회사를

기적적으로 재건시켰고, 그 명성으로 대통령 후보 물망에까지 오른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머스탱(Mustang)의 아버지로 자동차업계의 전설전설적인 인물입니다.

그의 이름은  리 아이아코카(Lee Iacocca)입니다. 

- 리 아이아코카 (Lee Iacocca, 1924-2019) -

리 아이아코카(Lee Iacocca)이탈리아 출신의 이민자로 1924년 미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 이름은 리도 안토니 아이아코카(Lido Anthony Iacocca)였습니다.

아버지는 거의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으로 핫도그 행상을 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극장을 여러 개 갖고 자동차 임대회사도 운영한 꽤 여유 있는 기업을 이루었습니다.

임대회사에는 포드 자동차 몇 대가 있었는데, 어린 리도는 이때부터 자동차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한 때 샌드위치 가게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복과 비교해 볼 불행이 없다면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지 알 수 없다.

그냥 기다려라. 태양은 곧 뜬다. 언제나 그랬듯이"

 

리 아이아코카(Lee Iacocca)거리에서나 학교에서 이탈리아계라는 것 때문에 놀림도 자주 받았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열병에 걸려 좋아하던 운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공부에 집중해 1942년에는 우등으로 학교를 마쳤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질병 때문에 군 면제를 받은 그는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리하이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산업공학을 전공한 그는 뛰어난 토론가로 등장했고, 3년 만에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마쳤습니다.

 

졸업 후 리 아이아코카(Lee Iacocca)는 포드 자동차(Ford Motor Company)에 취업했습니다.

그의 나이 21세였습니다.

포드 자동차 회사에 입사해 젊음과 열정을 바쳐 포드의 명차 '머스탱'을 개발해 회사에 엄청난 흑자를 안겨주었습니다.

공학을 전공했지만 그는 마케팅에 더 관심이 많아 판매 부서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열심히 일한 덕에 그는 펜실베이니아 동부 지역 포드 딜러의 판매 전략을 담당하게 됐습니다.

 아이아코카(Iacocca)는 고객들에게 친밀감을 주기 위해 사용해 왔건 이탈리아 이름 리도를 리(Lee)로 바꾸었습니다.

자기 민족에 대한 자긍심이 높았던 젊은이로서는 그에게 어려운 결단이었습니다.

화술에 뛰어난 아이아코카는 1940년대와 50년대, 판매 성향의 흐름을 파악하고 지역 간의 판매전략을 조정하는 등 불철주야 열심히 일했습니다.

아이아코카(Iacocca)는 판매부서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1970년 마침내 포드자동차의 CEO에 취임했습니다.

그러나 오너인 헨리 포드 2세(Henry Ford II, 창업자 헨리 포드의 손자)와 갈등을 겪은 끝에 1978년 회사를 떠났습니다.

아이아코카(Iacocca)가  포드자동차의 CEO로 있던 당시, 아이아코카가 지휘하는 포드는 실적이 좋았습니다.

2년 연속 큰 액수의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사후 아이아코카가 회사를 장악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헨리 포드 2세는 그를 해고시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포드2세는 온갖 야비한 방법을 동원 아이아코카를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포드 2세는 아이아코카를 해임시킨 후 그가 새로운 직장을 구할 때까지 3개월간 근무할 사무실을 제공해 줬는데 그 사무실은 낡은 창고였습니다.

치욕을 당한 아이아코카는 잠시 쉬겠다는 생각을 접고 적극적인 구직활동에 나섰으며 곧 바로 크라이슬러의 CEO에 취임했습니다.

아이아코카는 당시 크라이슬러가 누적 적자로 파산 일보 직전이었기 이 때문에  잠시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아내의 말 한마디가 그의 전투의지를 부추겼습니다.

"여보! 그 일을 맡아서 금수만도 못한 헨리에게 영원히 뼈에 사무칠 통쾌한 한 방을 날려버려요!"

 

리 아이아코카(Lee Iacocca)는 포드사에서 해임된 지 불과 몇 개월 만에 쓰러져 가는 자동차 회사 크라이슬러사의 회장으로 취임했습니다.

당시 크라이슬러(Chrysler Motor Company)는 막대한 부채와 계속되는 적자, 신용의 하락으로 회생이 어려운 형편이었습니다.

아이아코카는 과감한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자신은 연봉을 ‘1달러’만 받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일부 공장을 폐쇄하고 직원 수는 절반으로 줄였습니다.

노조와도 협상해 임금 삭감 등 양보를 얻어냈습니다.

그리고는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아이아코카의 요구에 “쓰러져 가는 기업에 구제금융을 해주어야 하는가?”라는 문제로 전국적인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결국 의회는 이를 승인하고 지미 카터(James Earl Carter Jr.) 대통령은 15억 달러에 달하는 보증안에 서명했습니다.

아이아코카는 그중 12억 달러만 융자를 얻었습니다.

지원을 얻어낸 아이아코카는 크라이슬러 사를 되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첫 단계는 ‘케이카(K-car)’로 불리는 소형 승용차 개발이었습니다.

연료 효율성이 높고 앞바퀴에 동력이 있는 전륜 구동이었습니다.

그다음은 폭발적인 인기를 끈 미니밴의 출시했습니다.

7명이 탈수 있는 이 차종은 가족이 함께 탈 수 있고, 짐을 실을 수도 있는 차량이었습니다.

아이아코카는 TV 광고에 직접 출연해 더 좋은 자동차가 있다면 사라고 자신 있게 말하며 과감한 판촉 전략을 펼쳤습니다.

1980 17억 달러 적자이던 기업이 1984년에는 24억 달러 흑자 기업으로 탈바꿈했습니다.

1983년에는 12억 달러의 융자를 마지막으로 갚았습니다. 상환 기간을 7년이나 앞당긴 것이었습니다.

 

크라이슬러의 자동차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잘 팔려나갔습니다.

주가도 치솟았습니다.

아이아코카의 인기도 올라갔습니다.

당시 미국은 전국적인 침체에 빠져들고 있었고, 포드, 제너럴 모터스 등과의 경쟁은 어느 때보다 치열했습니다.

일본을 비롯한 외국 자동차들도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아이아코카의 성공은 더욱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 리 아이아코카 (Lee Iacocca, 1924-2019) -

리 아이아코카(Lee Iacocca)는  54세가 되던 해, 포드자동차의 CEO에서 창고 건물 한 귀퉁이로 옮겨지는 수치를 당하며 정리 해고됐습니다.

당시 그는 배신감과 증오에 몸을 떨며 정신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가 그렇게 지내는 동안 그의 가족들도 함께 그 고통을 느꼈지만 아내 '메리'는 오히려 더 가정에 집중했습니다.

리 아이아코카(Lee Iacocca)는 아침이면 1분이라도 빨리 회사에 가고 싶어질 정도로 일에 몰두한 사람이었지만 그가 꼭 지킨 의외의 약속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입니다.

그는 주말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아내와 두 딸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가족의 격려와 그의 투지는 사업을 성공으로 이끈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는 가족에 대한 짙은 애정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수천만 달러짜리의 프로젝트를 계획할 수 있으면서도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계획을 세울 수 없는 사람은

경영자란 이름을 붙일 수 없다."

 

아이아코카는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결단력을 꼽았습니다.

. "인생은 타이밍이다. 95%의 확증만 있으면 일을 실행에 옮겨라. 5%를 채워 100%에 도달한 후 실행하려 하면 늦다. 그때는 이전에 확보한 95%의 정보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시장이 변하기 때문이다. 총을 쏴서 움직이는 물오리를 명중시키려면 총구를 항상 움직여야 한다."

 

아이아코카는 미국 자동차 업계에서 최고의 경영자로 뽑힙니다.

포드자동차와 크라이슬러에서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과감한 도전을 하고 성공했습니다.

실패한 차도 있었지만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의 도전은 항상 미래를 바라보고 했습니다.

포드자동차를 쫓겨나서 크라이슬러에 갈 때도 자신의 미래를 보고 실행했습니다.

미래를 바라보고 꿈꾸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미래를 바라보고 꿈을 꾸는 사람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성공은 꿈꾸는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아이아코카는 자신의 성공이 혼자서 이룬 것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또 늘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전적인 신뢰를 갖고 있으며, 다른 이들의 말을 열심히 듣는 사람이라고 겸손해했습니다. 

그가 내세운 성공의 기본 전략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멋진 차, 믿을 수 있는 차, 그리고 좋은 보증이 따른 차를 내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범해 보이는 그 같은 전략으로 아이아코카는 몰락해 가던 자동차의 수도 디트로이트를 되살렸습니다.

 

아이아코카는 1992년 은퇴했습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 벨에어에서 여생을 보냈습니다. 

은퇴 후에도 전기 자전거, 올리브기름 등 여러 곳에 왕성한 투자 활동을 벌이던 그는 차츰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아이아코카는 94세인 2019년 7월 2일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숨졌습니다.

아이아코카의 시신은 7월 10일 자신이 꿈의 산업기지로 되살려 놓은 디트로이트로 옮겨져 조용한 교회 묘지에 안장됐습니다.

 

 

- 리 아이아코카(Lee Iacocca, 1924-2019) -

 

아이아코카와 요셉

 

아이아코카, 그는 꿈의 사람이었습니다.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도 꿈의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이 어느 날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그 꿈이 신기해서 형들에게 자랑했습니다. 

'자신이 묶은 곡식단이 있었는데, 형들이 묶은 곡식단이 자신이 묶은 곡식단을 향하여 절하는 꿈을 꾸었다'고 형들에게 말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형들이 요셉을 이전보다 더 미워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얼마 후에 요셉이 또 꿈을 꾸었습니다. 

이번에는 아버지와 형들이 있는 곳에서 말합니다.

"네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창세기37장9절) 

그랬더니 형들의 시기가 더 커졌습니다.

요셉은 그 꿈 때문에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그것 때문에 형들의 미움과 시기를 받고, 결국은 이웃나라에 종으로 팔려 버립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가장 낮은 곳까지 가게 됩니다.

그런데 요셉의 그 꿈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요, 요셉은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만드신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만드실 때에는 우연이 아니라, 목적이 있으셔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향한 꿈이 있으십니다.

요셉이 꿈을 꾸었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 꿈은 요셉이 꾸고 싶어서 꾼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꿈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꿈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설계도입니다.

 

아이아코카, 그는 가족사랑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수천만 달러짜리의 프로젝트를 계획할 수 있으면서도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계획을 세울 수 없는 사람은

경영자란 이름을 붙일 수 없다."는 말을 했습니다.

 

요셉, 또한 가족 사랑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자신을 죽이려고 하였고, 노예로 팔아먹은 형들을 용서했습니다.

요셉은 자신을 죽이려고 하였고, 노예로 팔아먹은 형들에게 어떻게 용서의 손을 내밀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다름 아니라 가족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요셉은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찾아온 형들에게 더 이상 자신의 정체를  숨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위의 사람들을 물리치고는 자신이 요셉인 것을 밝히며 대성통곡했습니다.

그 울음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왕궁에까지 다 들릴 정도였습니다.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

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 때에 그와 함께 한 다른 사람이 없었더라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창세기45장12절) 

- 형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요셉 총리 -

 

성공과 행복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면 성공과 행복을 꿈꾸십시요.

인생은 그가 지닌 자질의 우수성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가진 꿈대로 됩니다.

형들은 요셉의 꿈을 찢었습니다. 

그런데 20년 만에 만나보니 찢은 것은 요셉의 꿈이 아니었습니다. 

찢겨진 것은 요셉의 채색옷이 아니었습니다. 

형들 자신의 인생을 찢은 것이었고, 자기 믿음과 자신의 꿈을 찢은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찢겨진 형들의 인생을 사랑으로 꿰매주었습니다.

요셉은 찢겨진 형들의 꿈을 사랑의 눈물로 채워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죄의 종이 된 우리 죄값을 치뤄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그 분의 눈물로 우리의 더렵혀진 발을 깨끗이 씻겨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우리의 찢겨진 꿈을 십자가로 감싸주셨습니다. 평안!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 마가복음 3장 31∼35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