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오늘 저녁에는 누룽지를 끓여줘요“
그녀는 남편의 말을 들으며 눌려놓은 밥에 물을 붓다가 문득 십여 년도 넘게 지난 옛일이 떠올랐습니다.
집이 시골이었던 그녀는 고등학교 삼 년 내내 자취를 했습니다.
월말 쯤 되면, 집에서 보내 준 돈이 떨어졌습니다.
그러면 그녀는 라면으로 저녁을 해결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지겨우면 학교 앞 ‘밥 할매집‘에서 밥을 사 먹었었습니다.
'밥 할매집'에는 언제나 시커먼 가마솥에 누룽지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오늘도 밥을 태워 누룽지가 많네. 배가 안 차면 실컷 퍼다 먹거래이.
"이 놈의 밥은 왜 이리도 잘 타누!"
그녀는 늘 친구와 밥 한 공기를 달랑 시켜놓고, 누룽지 두 그릇을 거뜬히 비웠습니다.
그렇게 '밥 할매 집'을 다니던 어느 날,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습니다.
할머니가 너무 늙으신 탓인지, 거스름 돈을 원래 드린 돈보다 더 많이 내 주신 것이었습니다.
순간 그녀는 '돈도 없는데 잘 됐다.'
'이번 한 번만 그냥 눈 감고 넘어가는 거야. 할머니는 나보다 돈이 많으니까...'
그렇게 한 번 두 번을 미루고, 할머니의 서툰 셈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녀는 당연한 것처럼 매번 할머니가 주시는 잔돈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난 어느 날 '밥 할매 집'에 셔터가 내려졌습니다.
그리고 내려진 셔터는 좀처럼 올라가지않았습니다.
며칠 후 조회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심각한 얼굴로 단상에 오르시더니, 단호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모두 눈 감어라. 학교 앞 "밥 할매 집"에서 음식 먹고, 거스름돈 잘 못 받은 사람 손 들어라.“
순간 그녀는 뜨끔했습니다.
그녀는 옆의 친구를 바라보다 부스럭거리며 손을 들었습니다.
“많기도 많다. 반이 훨씬 넘네. “
선생님은 침울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밥 할매집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께서 아들에게 남기신 유언장에 의하면
할머니가 전 재산을 학교 장학금에 쓰시겠다고 하셨단다.그리고"
선생님은 잠시 뜸을 들이셨어요.
“그 아드님한테 들은 얘긴데,
거스름 돈은 자취를 하거나 돈이 없어 보이는 학생들에게 일부러 더 주셨다더라.
"그리고... 새벽부터 일어나 그날 끓일 누룽지를 위해 밥을 일부러 태우셨다는구나.
그래야 애들이 마음 편히 먹는다고.."
그녀는 그 날 학교를 마치고 나오는데, 유난히 '밥 할매 집' 이라는 간판이 크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굳게 닫힌 셔터 앞에서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할머니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할머니가 만드신 누룽지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어요.“
- 착한 일과 구제사업을 많이 하는 사람 -
도르가(Dorcas), 또는 다비다(Tabitha)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룻다가 욥바에서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여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
- 사도행전 9장 36∼43절 -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56km 지점인 지중해 연안에 욥바(Joppa)라는 팔레스타인의 유명한 항구 도시가 있습니다.
이 욥바(Joppa)에 진실한 믿음을 가진 다비다(Tabitha)라는 여성도가 있었습니다.
다비다는 당시 널리 사용하던 아람어 이름이고, 헬라어 이름은 도르가(Dorcas)입니다.
'도르가'란 이름은 ‘아름답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도르가'는 이름 그대로 아름답고 착한 여인이었습니다.
성경에는 '도르가'가 어떻게 주님을 만났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예수님이 살아계셨을 때 주님을 나의 구원자로 믿고 섬겼던 여인 중에 하나였습니다.
다비다는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여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주님의 12제자인 남자들과 동등하게 '제자'라고 불렸습니다.
성경학자들은 '도르가'를 다소 부유했던 여인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도르가가 살았던 때는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뒤, 성령의 역사가 뜨거웠던 때였지만, 한편 초대 교회에 핍박이 심했던 시기였습니다.
이 여자는 착한 일과 구제사업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성경은 도르가에 대해 “이 여자는 착한 일과 구제사업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사도행전 9장36절, 새번역)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영어성경(NIV)은 이 부분을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who was always doing good and helping the poor"
"항상 선을 행하고 가난한 사람을 도운 사람"
도르가는 항상, 쉬지 않고 선한 일과 가난한 자들을 돕는 일을 몸소 실천하는 여인이었습니다.
도르가(Dorcas)가 살았던 당시, 욥바는 바닷가 마을로 고기 잡으러 나간 남편들이 풍랑에 의해 사고를 당한 때문인지, 유독 다른 도시에 비해 과부와 고아가 많았습니다.
그녀 주위에는 추운 겨울에도 따뜻한 속옷은 물론 겉옷조차 사 입을 수 없는 과부들이 너무나 많이 있었습니다.
도르가는 욥바에 사는 모든 가난하고 외로운, 때로는 성격이 까다로운 과부들에게 속옷과 겉옷을 만들어주며 부드러운 사랑과 위로와 도움의 손길을 폈습니다.
그녀는 많은 시간과 많은 물질을 허비했습니다.
사실 이 일은 힘들고 귀찮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도르가는 많은 시간과 많은 물질을 허비하면서 욥바에 사는 많은 과부들에게 속옷과 겉옷을 만들어주며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녀는 외롭고 슬픈 과부들에게 그들이 필요한 물질를 아낌없이 그들에게 주었고 따뜻한 말로 그들을 위로했던 여인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이나 세상에 취해서 살지 않았고 주님의 사랑과 하늘에 취해서 산 신실한 여 제자였습니다.
착한 여인 도르가가 병들어 죽었습니다.
어쩌면 도르가는 선행과 구제를 너무 많이 하다가 몸이 지치고 병들어서 죽게 되었을지 모릅니다.
도르가는 말씀 앞에 순종하며 과부들을 돕고 선행을 해왔지만 그녀 역시 연약한 인간이기에 병마와 씨름하다가 결국 죽게 되었습니다.
도르가는 죽어서 그의 시체가 다락에 뉘어졌습니다.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37절)
당시 죽은 사람에 대한 예우로는 장사(葬事)를 지내기 위해 몸에 기름을 발라야 합니다.
하지만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있는 그대로 기록을 하면서 몸에 기름을 바르지 않고 씻어 다락에 뉘었다고 기록했습니다.
또한 장사는 대체적으로 그 날 밤에 이루어져야 하는데 장사하는 대신 신자들은 욥바에서 18km 거리에 있는 룻다에서 성령집회를 인도하는 베드로 사도에게 제자 둘을 보냈습니다.
욥바에 있는 신자들이 베드로 사도가 오기를 요청한 것입니다.
도르가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욥바에 사는 모든 과부들이 도르가의 집으로 달려왔습니다.
모두 도르가의 죽음을 슬퍼하며 모두 울었습니다.
베드로가 욥바에 도착해 보니, 모든 과부가 통곡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님. 절대 도르가를 이대로 보내서는 안 됩니다.
도르가는 우리 과부들의 희망이고, 소망입니다.
이렇게 허망하게 보내면 우리가 어찌 그 고마움을 갚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들은 베드로 사도에게 살아 생전 도르가가 자기들을 위해 얼마나 선행을 베풀었고 입을 옷들을 짜서 입혀주었는지 너무도 생생하게 전해주었습니다.
“과부들이 모두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지낼 때에 만들어 둔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여 주었다. ”(39절)
사실 속옷과 겉옷을 그냥 사서 나눠 주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도르가는 털실이나 면실 등을 사서 밤을 지새우며 손수 짜고 지어서 , 나누어주었습니다.
도르가의 선행은 주님을 통해 참 사랑을 알게 되면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주님이 주신 그 넘치는 사랑을 도저히 혼자서만 간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에게 있는 물질을 통해 가난하고 외로운 과부에게 선한 일을 함으로 주님을 사랑을 나타내 보인 것입니다.
욥바에 수많은 과부들의 눈물을 본 베드로 사도는 다락에서 사람을 다 내보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자비 손길을 간절히 빌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과부들의 눈물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리라 확신하고 힘 있게 죽어있는 시체를 향해 외쳤습니다.
“다비다여, 일어나시오!”(40절, 새번역)
어떻게 죽은 자가 살아 날 수 있을까요?
우리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지만 주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분이기에 사랑하는 여제자 도르가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끌어내어 산 자들에게 주님의 살아 역사하시는 능력을 직접 눈으로 보게 했습니다.
다비다!
그녀는 부잣집 여인이었지만 자신의 재물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과부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습니다.
그러기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들을 도왔던 그녀에게 죽음에서 생명으로 가는 놀라운 축복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또한 죽은 도르가가 다시 새 생명을 얻게 되므로 욥바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살아계신 주를 믿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내가 가진 물질, 내가 가진 시간, 내가 가진 재능을 우리 주님은 어떻게 사용하기를 원하실까요?
우리는 도르가의 삶을 보면서 가난한 과부나 고아들을 위해 내가 가진 것들을 얼마나 나누고 살았는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신앙의 사람이라고 하면서 많은 사람들, 특별히 부유한 신앙인들의 경우 자기가 가진 물질과 돈을 자신의 가족과 자기만족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사용하지만 정작 가난한 이들이나 고아나 과부들을 돌보는데 인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근사한 여행을 하며 즐기는데 돈을 많이 쓰고 투자하고 있지 않은지?
좋은 집이나 더 좋은 가구를 구입하기 위해 돈을 많이 쓰고 투자하고 있지는 않은지?
화려한 옷이나 장신구로 치장하기 위해 돈을 많이 쓰고 투자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좀 더 다른 사람보다 낫게 보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돈을 많이 쓰고 투자하고 있지는 않은지?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코람 데오(Coram Deo)라는 말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코람은 ‘앞에’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데오는 ‘하나님’을 뜻합니다.
즉 코람 데오(Coram Deo)는 ‘하나님 앞에서’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코람데오의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을 말하고 있습니다.
루터의 저서 「식탁대담」중 <세상의 본질에 관하여>라는 장에서 이 세상의 사람들을 세 부류로 나누고 있습니다.
첫째 부류는 자신의 부패한 본성과 행동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한 채 양심의 가책 없이 태평스럽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둘째 부류는 율법 앞에서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느끼며 좌절감에 시달리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셋째 부류는 자기 죄를 인정하고, 죄로 인하여 멸망할 자임을 잘 알기에 복음에 귀를 기울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와 값없이 주시는 은혜로 죄 용서받음을 믿으며,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고 온갖 선행으로 믿음의 열매를 나타내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셋째 부류에 속해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은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사람 앞에서 잘 보이고 세상 앞에서 명예롭게 살기보다는 오직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한 뜻을 이루고자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 일방적으로 던져졌습니다.
다니엘의 친구 또한 풀무 불에 강제로 빠짐을 당했습니다.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 디모데전서 2장9~10절 -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을 섬긴다면 도르가처럼, 과부나 가난한자들을 돌아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마땅한 일입니다. 평안!
'묵상과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얼음 냉수 같은 그 사람! (0) | 2023.07.22 |
---|---|
"어차피 퉁퉁 불어서 팔지도 못하니까 그냥 먹어요!" (0) | 2023.07.01 |
"이것아! 집에 왔으면 어미나 보고 갈 일이지 … 정 힘들면 대낮에 왔다가거라!" (0) | 2023.06.01 |
마지막으로 당신의 얼굴이 보고 싶군요! (1) | 2023.05.20 |
“여보, 나 따뜻한 숭늉 한 그릇 먹고 싶은데…” (0) | 2023.0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