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랑하는 여자.
나이 스물여섯에 그 남자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의 축복속에 교회에서 간소하게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3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불행이 닥쳤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큰 불행이었습니다.
그들이 살던 작은 집에 그만 불이 났고, 아내는 실명을 하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이 만들어 가는 수많은 추억을 더 이상 아내가 볼 수 없었습니다.
그 후로 남편은 늘 아내를 도와주었습니다.
아내는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에 혼자 몸을 움직이기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아내가 짜증도 부리고 화도 내었지만, 남편은 묵묵히 그 모두를 받아 주었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불 속에서 구해내지 못해 아내가 아름다운 눈을 잃은 게 늘 미안해 했습니다.
많은 시간이 흘러 아내는 남편의 도움 없이도 주위를 돌아다닐 만큼 적응했습니다.
그리고 차츰 남편의 사랑을 이해했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 말없이 저녁 노을에 한 풍경이 되어도 될 만큼 편안한 나이가 되었습니다.
세월은 두 사람에게 하나, 둘 씩 주름을 남겨 놓았습니다.
아름답던 아내의 얼굴에 세월의 나이테처럼 작은 무늬들이 생겨났습니다.
남편의 따사롭던 손도 많은 주름이 생겼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하얀 머리카락을 보며 놀리곤 했습니다.
"여보, 이제 겨우 7월인데 당신 머리엔 하얀 눈이 내렸군!"
어느 날인가 아내가 남편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보, 웬지 마지막으로 이 세상을 한 번 보고 싶어요.
벌써 세상의 빛을 잃은 지 수 십년이 되었지만, 마지막으로 당신의 얼굴이 보고 싶군요.
난 아직도 기억합니다. 당신의 그 맑은 미소를.
그게 내가 본 당신의 마지막 모습이니까요."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세상을 보는 마지막 길은 누군가의 눈을 이식 받는 방법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아무도 이제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는 아내에게 각막을 이식해 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 소원이었지만, 그다지 신경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마음속으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세월은 이제 그들에게 그만 돌아오라고 손짓을 했습니다.
그 메시지를 먼저 받은 사람은 남편이었습니다.
아내는 자신이 세상의 빛을 잃었을 때보다도 더 슬펐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선물 하나 주고 떠나기로 했습니다.
자신의 각막을 아내에게 남겨주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자신의 눈도 이제는 너무나 희미하게만 보이지만,
아내에게 세상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남편은 먼저 하늘로 가고 아내는 남편의 유언에 따라 남편의 각막을 이식 받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처음으로 눈을 떴을 때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늘 함께 했던 남편의 그림자조차도.
병원 침대에서 내려와 환하게 밝혀진 거리의 모습을 내려다 보는데,
아내는 남편의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여보, 당신에게 훨씬 전에 이 세상의 모습을 찾아주고 싶었소.
아직 우리가 세월의 급류를 타기 전에 당신에게 각막 이식을 할 기회가 왔지.
하지만 난 많이 겁이 났다오.
늘 당신은 내게 말했지.
나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서.
젊을 때 나의 환한 미소에 대해서 말이오.
하지만 그걸 아오?
우리는 이미 늙어 버렸다는 사실을.
또한 난 당신에게 더 이상 당신이 기억하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없다오.
당신은 눈을 잃어 버렸지만 그때 난 나의 얼굴을 잃었다오.
이제는 미소조차 지울수 없게 화상으로 흉칙하게 변해버린
나의 모습을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소.
그러나 이제 나는 떠나오.
비록 당신에게 나의 미소는 보여주지 못하지만,
언제나 내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기 바라오.
그리고 내 마지막 선물로 당신이 환하게 세상을 마지막으로 보기 바라오.
아내는 환한 세상을 바라보며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난 알아요.
당신의 얼굴이 화상에 흉칙하게 변해 버렸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화상으로 인해서 예전에 나에게 보여주던 그 미소를 지어줄 수 없다는 일도.
곁에서 잠을 자는 당신의 얼굴을 더듬어 보고 알았지요.
하지만 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요.
당신도 내가 당신의 미소를 간직하기 바란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죠.
당신이 미안해 할 필요는 없어요.
나는 당신의 마음을 이해하니까 말이에요.
참 좋군요!
당신의 눈으로 보는 이 세상이!"
그리고 며칠 뒤
아내도 남편의 그 환하던 미소를 쫓아 남편의 뒤를 따라 하늘로 되돌아갔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 에베소서 5장 22∼32절 -
결혼(結婚)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한 영역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매개(媒介)로 만나 한 가정을 이루는 것은 순전히 사람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는 참으로 신비로운 하나님의 <섭리(攝理)>가 그 이면에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옛부터 결혼으로 맺어지게 되는 만남을 <천생연분(天生緣分)>이라 했습니다.
결혼으로 맺어지는 <부부의 연분(緣分)>은 사람의 선택에 선행되는 하나님의 '축복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아무 때나 임의'로 파기해서는 안 되는 특별한 관계입니다.
서로 사랑해서, 서로가 좋아서 결혼까지 하기에 이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성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두 사람이 한평생 동고동락(同苦同樂)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서로 노력하지 않는 한 그 어떤 가정도 끝까지 지켜질 수 없습니다.
부부는 사랑으로 맺어졌기에,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를 수용해야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흙으로 남자인 <아담>을 지으신 후, 그의 갈비뼈 하나를 취하여 여자인 <하와>를 지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누구나 본질적으로 <결핍>을 지닌 존재로 태어납니다.
부부간의 관계는 서로간의 결핍을 채워주는 <상호보완>의 관계입니다.
결핍을 지닌 <아담과 하와>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한 몸이 되어짐으로써 비로소 완전해집니다.
결혼은 사랑으로 맺어진 남녀가 서로를 책임져 줌을 의미합니다.
상대방의 결함과 부족함을 대신 채워줌을 의미합니다.
상대방의 결함과 부족함을 대신 채워주는 것이 부부사랑입니다.
서로 의지하며, 서로 돕고, 서로 희생하고, 서로 봉사하는 것이 부부사랑입니다.
결혼생활의 맥을 이어주는 것은 사랑입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는 아내와, 아내의 사랑을 받는 남편이 될 때 행복한 가정, 행복한 결혼생활이 이어집니다.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 행복한 결혼생활은 서로의 부족함과 결함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때 만들어집니다.
한자의 남녀(男女)는 역할분담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내男>자는 남편이 밭에서 괭이로 땅을 파는 모습을 형상화했습니다.
<계집女>자는 아내가 집에서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습니다.
특별히 부부가 잠자리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결혼으로 가정을 이룬 남녀에게 주시는 <최상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부부가 <밥상>을 앞에 놓고서 <감사기도>를 드리듯, 부부는 <잠자리>를 앞에 두고도 <감사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부부는 사랑으로써 이 <부부관계>를 아름답고 고상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서로에 대한 <욕구>를 <경멸>하거나, <천시>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선물을 욕되게 하는 행위입니다.
나이가 들면 부부의 사랑이 바뀌게 되어있습니다.
연인의 사랑에서 친구의 사랑으로 변하게 됩니다.
육체적인 사랑에서 공감적인 사랑으로 바뀌게 됩니다.
멀리서 바라봐도 금세 저기에 내 아내, 내 남편이 있구나 알 수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에 만족감이 차오릅니다.
여기까지 내 옆에 함께 있어준 것이 고맙게 느껴집니다.
생떽쥐베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이란 서로 마주보는 게 아니라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다’
부부의 사랑이 친구의 사랑으로 바뀌게 되면 그렇게 됩니다.
젊을 때는 마주보았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마주보는 시간이 줄어들고 대신 함께 같은 곳을 보는 시간이 늘어납니다.
같은 비전과 꿈, 목적을 바라봅니다.
그렇게,
때로는 마주보기도 하면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 부부로 살아가는 삶의 모습입니다.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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