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2년 1월 30일(음력 1801년 12월 27일) 전주시 진북동의 속칭 숲정이에서 죄인 네 명의 목을 자르는 사형집행이 있었습니다.
여자 세 명, 남자 한 명이었습니다.
그 날 사형수들은 전주 최고의 부잣집 식구들이었습니다.
대지주인 이순이의 시아버지 유항검의 식구였습니다.
유항검은 이들이 갇힌 다음 날 전주성 남문 밖에서 능지처참을 당했습니다.
숲정이에서 죽은 사람은 유항검의 아내 신희, 며느리 이순이, 제수 이육희, 조카 유중성이었습니다.
이순이는 동정을 지킨 순교자입니다.
자기 몸을 온전히 천주에게 바치고자,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고도 부부관계를 가지지 않았습니다.
이순이는 1801년 음력 보름께 감옥으로 잡혀 왔습니다.
그리고 거의 석달 반을 감옥에서 지내다 칼을 받았습니다.
이순이 루갈다는 부친 이윤하와 모친 권씨 사이의 5남매중 세째로 태어났습니다.
이윤하는 지봉 이수광의 9대후손이며 권일신의 매부였습니다.
왕손녀(王孫女)였던 이순이는 서울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일찍 여윈후 어머니 권씨 슬하에서 신서학파의 전통을 형성한 가계답게 전형적 천주교 종교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했습니다.
모친의 종교교육은 후에 오빠 이경도, 남동생 이경언 등 5남매중 세명이 치명하는 순교자 집안을 일궈냈습니다.
이순이는 어렸을적부터 뜻이 굳고 재주가 뛰어났으며 아름다운 얼굴을 지녔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열정적인 마음과 타고난 비상한 총명등 육체와 정신의 모든 자질을 겸비했던 그녀는 모친으로부터 능력에 걸맞는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14세 되던해 이순이는 주문모 신부를 만납니다.
그때 나흘동안 방안에서 성체모시기를 준비할 만큼 신앙의 전통적인 것을 이해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성체배경의 소원을 이루면서 동정허원을 결심하기에 이릅니다.
1797년 이순이는 외형상 유중철 요한(1779-1801)과 혼인을 합니다.
주문모 신부는 동정으로서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고자 했던 이순이의 뜻을 알고 같은 지향을 가졌던 유항검 가문 유중철과 인연을 맺게 했습니다.
이때부터 성마리아와 요셉같은 부부생활이 4년동안 지속 되었습니다.
그녀는 '결혼전이나 결혼후 이순이는 천주교의 덕행을 닦는데 전심하여 시부모를 공경하고 그들에게 순종, 겸손하고 자비심이 있고 모든 본분을 충분히 지켜 나갔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동정 부부생활에 대해 이순이는 옥중서간에서 동정생활을 깨트릴 몇번의 위험한 순간이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에 우리는 열번 가량 유혹을 받아 하마터면 모든것을 잃을 뻔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간구한 보혈의 공으로 마귀의 계략을 피했습니다"
이들의 부부생활은 세속적 가치를 포기하고 복음의 권고에 충실한 삶의 원형이라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의 부부생활은 형제적 사랑과 하나님 신앙안에서 함께 봉헌의 삶을 살아가는 친구로서의 우정이었으며 세상 물욕과 속된 가치로부터 완전히 벗아나 하나님을 증거하는 순명의 삶이었습니다.
이순이의 동정생활은 여필종부(女必從夫), 칠거지악(七去之惡), 남존여비(男尊女卑)등의 관계가 아닌 대단히 근대적 의식의 남녀평등 관계였습니다.
옥중서간에서도 나타나듯이 형매(兄妹)간을 넘어 충우(忠友)의 개념으로 서로를 표현할만큼 기존의 유학적 개념을 떠나 있었습니다.
이순이는 신유박해때 시부 유항검이 능지처참을 받은후 시가식구들이 체포될때 함께 옥으로 끌려갔습니다.
이때 남편 유중철은 교수형을 받고 먼저 순교했는데 그는 옷섶에 「나는 누이를 격려하고 권고하며 위로하오. 천국에서 다시만납시다」라는 유명한 쪽지를 남겼습니다.
남편이 죽은후 이순이는 벽동읍 관비로 유배형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동정을 깨트릴만한 모욕적인 형에 맞서 관장에게 죽음을 청했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1802년 20세 꽃다운 나이에 참수를 당함으로써 천상의 복을 선택했습니다.
이순이의 옥중서간(獄中書簡)
이순이는 옥중에서 가족들에게 편지를 남겼습니다.
이 옥중서간은 그녀가 순교하기전 자신의 투옥사실을 듣고 근심할 어머니 올케 등 친정식구들에게 보내는 위로의 편지입니다.
이순이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어머니와 두 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차분하고 담담하게 겪은 일을 전하고 오히려 자신의 죽음을 슬퍼할 친정 식구들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홀로 계신 어머니께 머리 숙여 글을 올립니다.
제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도 없는 다급한 때를 당해 어머니께 제 심정을 아뢰려 하옵니다.
다 아뢸 수는 없사오나, 제 손으로 몇 자 적어 올려 어머니 곁을 떠나 4년 동안 지내온 심정을 말씀드리옵니다.
어머니, 비록 제가 죽게 되더라도 너무 마음 상해하시다가
주님께서 정말 특별히 베풀어주신 은혜로운 분부를 거스르지 마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주님 뜻을 따르셔요.
다행히 제가 주님께 저버림을 당하지 않는 은혜를 받게 되거든 주님 은혜에 감사드리셔요.
길지도 않은 한평생,
참으로 변변하지 못한 자식이었고 못난 자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순교의 열매를 맺는 날이면,
어머니께서도 자랑스러운 자식을 두었다고 여기실 것이고,
저 또한 어머니의 떳떳한 자식이 될 것입니다.
순교는, 부족하고 못난 자식을 참되고 보배로운 자식이 되게 하는 것이에요.
어머니, 간절히 바라오니,
제발 너무 마음 상하지 마시고 마음 다잡으셔서 슬픔을 억누르셔요.
이 세상을 꿈같이 여기시고,
하늘나라를 우리가 돌아가야 할 본 고향으로 아셔서 조심조심하여 주님 뜻에 따르셔요.
이 세상 삶을 다 마치시면,
못난 자식이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영광을 받아,
가이없이 행복한 모습으로 손을 마주잡고 하늘나라로 모셔들여 함께 영원한 행복을 누리렵니다.
소식을 들으니, 오라버니(이경도)가 사형 판결을 받았다 하던데,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주님의 도우심인가요!
주님께 우러러 이루 다 감사드릴 수 없고, 어머니의 복을 찬송합니다.
경이 형제(이경중, 이경언)와 큰언니, 올케언니에게 의지하시고,
우리 남매(이경도, 이순이)는 생각하지마셔요.
충주댁(이경중 아내)을 아무쪼록 하루 빨리 데려다가 함께 지내셔요.
어머니 곁을 떠난 지 4년에 이 지경을 당하여 그 동안의 심정을 다 아뢰지 못하니
그지없이 애달픈 제 마음이야 오죽하겠어요?
이 모두가 주님 뜻이에요.
우리를 세상에 나게 하심도 주님 뜻이요,
우리의 생명을 거두어 가심도 주님 뜻이니,
죽고 삶에 얽매이는 것으로 도리어 웃음을 살 일이옵니다.
어머니, 엎드려 정말 간절히 바라오니,
제발 마음을 너그러이 가시지고 자식 잃은 슬픔을 이겨내셔요.
하늘나라에서 우리 모녀의 정을 다시 이어 영원히 함께 살아요.
올케언니, 너무 서러워 마셔요.
오라버니가 비록 돌아가시더라도 언니는 정말 남편다운 남편을 두었다는 말을 들을 테니까요.
저는 언니가 순교자의 아내가 되심을 정말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이 잠깐 세상에서 부부가 되었다가, 하늘나라에서는 성인의 자리에 올라
모자, 형제, 남매, 부부가 끝없이 즐거운 삶을 누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제가 죽은 후에도 전주 시댁과 소식을 끊지 마시고, 저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이 해 주셔요.
전주로 시집온 후, 그 전부터 항상 근심하던 일을 이루었어요.
9월에 시댁에 와서 10월에 우리 두 사람은 동정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4년을 오누이처럼 지냈습니다.
그런 중에 육체적인 유혹을 근 십여 차례 받아 하마터면 동정서약을 깰 뻔했어요.
그 때마다 저희는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겪으신 고통과 피를 흘리신 사랑에 의지하여
무사히 그 유혹을 이겨내었답니다.
제 사정을 몰라 답답하게 여기실 것 같아 이 일을 말씀 드리는 것이니,
이 편지를 살아 있는 저 보듯이 반겨 주셔요.
제가 순교의 열매를 맺기도 전에 이렇게 붓을 드는 것이 정말 경솔한 짓입니다.
어머니께 제 걱정을 풀어드리고 마음 놓으시게 하려는 것이오니 이 편지로 위로를 삼으셔요.
주 야고보(주문모)신부님께서 살아 계실 적에, 친정과 시댁이 겪는 고난을 자세히 기록하여 두라 하셨습니다.
감옥에 들어온 후 시동생 요한(유문석)편에 기록한 글을 보내드렸는데 어찌 하셨는지요?
어머니, 정말 간절히 바라고 바라오니,
제발 마음을 너그러이 가지시고 자식 잃은 슬픔을 이겨내셔요.
이 세상은 헛되고 거짓된 세상으로 생각하셔요.
드릴 말씀은 한도 끝도 없지만, 이 편지로는 다 아뢸 수 없으니 대강 이만 아룁니다.
신유 구월 스무이렛날 딸이 머리 숙여 글을 올립니다.
"
이순이의 옥중서간(獄中書簡)은 박해시대 교우들과 험한산골에서 피신하고 있던 신자들을 격려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 편지는 신자들이 대대로 필사해 가면서 돌려 읽을 만큼 서민신자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는 열심한 신심과 순교할 수 있는 용기를 표현, 초기 한국교회에 순교의 불을 붙였다 할만큼 정신사적(精神史的)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희망은,
내가 아무 일에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온전히 담대해져서,
살든지 죽든지, 전과 같이 지금도,
내 몸에서 그리스도께서 존귀함을 받으시리라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시니,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 빌립보서 1장 20∼21절 -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중요한 믿음은 부활에 대한 신앙입니다.
죽음에서 승리한다는 것. 죽음을 넘어선다는 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참된 순교는, '내가 죽고 그리스도로 사는 것'입니다.
내가 죽지 않은 자가 순교할 수 없습니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로 사는 자가 아니면 절대로 순교의 자리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반드시 내가 죽고 그리스도로 사는 자가 복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것을 우리는 '순교'라고 부릅니다.
신앙의 선배들은 죽음을 초월한 순교의 정신으로 이 땅에서의 삶을 살았고, 실제로 순교를 당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 마가복음 8장35절 -
예수님께서 놀라운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요, 살고자 하는 자는 죽으리라!
이 말씀은 내가 죽고 그리스도로 살아가는 자를 하나님께서 참으로 산 믿음으로 인정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것은 거창한 고백이 아닙니다.
영원한 지옥으로 가고 있는 죄로 물든 사망의 몸인 옛 자아를 버리고, 나를 천국으로 이끄실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누리라는 은혜로운 초청입니다.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불안해하며 절망합니다.
죽음은 인간을 노예로 삼고 인간은 죽음의 종이 되어 죽음의 힘 앞에 굴복합니다.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죽지 않으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몸부림칩니다.
그래서 결국은 무기력하게 죽음에 순응하게 됩니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의 선배들은 죽음에 대해서 두려움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죽음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나에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시니,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빌립보서1장21절)고 합니다.
주님을 위하여 순교의 아름다운 피를 흘리기를 열망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주님 곁으로 가서 주님과 함께 편히 쉬고 싶기 때문입니다.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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