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과 칼럼

"제발, 저를 여기에서 살게 해 주십시요?!"

가족사랑 2023. 3. 17. 05:00

 

어느 날 소록도에서 목회를 하는 목사님 앞에 일흔이 넘어 보이는 노인이 다가와 섰습니다.

“목사님, 저를 이 섬에서 살게 해 주실 수 없습니까?”

“아니. 노인장께서는 정상인으로 보이는데 나환자들과 같이 살다니요?”

“제발… 저에게는 모두 열 명의 자녀가 있었지요.”

“그런데 그 중 한 아이가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언제 이야기입니까?”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그 아이가 열한 살 때였지요.”

“발병 사실을 알았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그 아이를 다른 가족이나 동네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로 왔겠군요.”

“그렇습니다. 소록도에 나환자촌이 있다는 말만 듣고 우리 부자(父子)가 길을 떠난 건 어느 늦여름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교통이 매우 불편해서 서울을 떠나 소록도까지 오는 여정은 멀고도 힘든 길이었죠.

하루 이틀 사흘… 더운 여름날, 먼지 나는 신작로를 걷고 타고 가는 중에 우린 함께 지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산속 나무 그늘 밑에서 쉬는 중이었는데, 나는 문득 잠에 곯아떨어진 그 아이의 생명을 거두고 싶었습니다.

바윗돌을 들었지요.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잠든 아이를 향해 힘껏 던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만 바윗돌이 빗나가 버리고 만 거예요.

이를 악물고 다시 돌을 들었지만 차마 또다시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지요.

이를 깨워 가던 길을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소록도에 다 왔을 때 일어났습니다.

배를 타러 몰려든 사람들 중에 눈썹이 빠지거나 손가락이며 코가 달아난 문둥병 환자를 정면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차마 그 배를 타지 못하고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저런 모습으로 살아서 무엇하겠니? 몹쓸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차라리 너하고 나하고 함께 죽는 길을 택하자.’

 

우리는 나루터를 돌아 아무도 없는 바닷가로 갔습니다.

신발을 벗어 놓고 물속으로 들어가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오던지….

한발 두발 깊은 곳으로 들어가다가 거의 내 가슴 높이까지 물이 깊어졌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아들 녀석이 소리를 지르지 않겠어요?

내게는 가슴 높이였지만 아들에게는 턱 밑까지 차올라, 한 걸음만 삐끗하면 물에 빠져 죽을 판이었습니다.

갑자기 돌아서더니 내 가슴을 떠밀며 악을 써 대는 거예요.

문둥이가 된 건 난데 왜 아버지까지 죽어야 하느냐는 거지요.

형이나 누나들이 아버지만 믿고 사는 판에 아버지가 죽으면 그들은 어떻게 살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완강한 힘으로 자기 혼자 죽을 테니 아버지는 어서 나가라고 떠미는 아들 녀석을 보는 순간,

나는 그만 그 애를 와락 껴안고 말았습니다.

참 죽는 것도 쉽지만은 않더군요.

 

그 후 아들은 소록도로 떠나고 나는 서울로 돌아와, 잊은 채 정신없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아홉 명의 아이들이 자라서 대학을 나오고 결혼을 하고 손자 손녀를 낳고….

 

얼마 전에는 큰아들이 시골의 땅을 팔아서 함께 올라와 살자더군요.

그래서 그렇게 했지요.

처음 아들네 집은 편했습니다.

주는 대로 받아먹으면 되고 이불 펴주면 드러누워 자면 그만이고….

가끔 먼저 죽은 마누라 생각이 났지만 얼마 동안은 편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애들은 아무 말이 없는데 말입니다.

어느 날인가는 드디어 큰아이가 입을 엽디다.

큰아들만 아들이냐구요.

그날로 말없이 짐을 꾸렸죠.

그런데 사정은 그 후로도 마찬가지였어요. 둘째, 셋째, 넷째….

 

허탈한 심정으로 예전에 살던 시골집에 왔을 때,

문득 40년 전에 헤어진 그 아이가 생각나는 겁니다.

열한 살에 문둥이가 되어 소록도라는 섬에 내다 버린 아이,

내 손으로 죽이려고까지 했으나 끝내는 문둥이 마을에 내 팽개치고 40년을 잊고 살아 왔던 아이.

다른 아홉 명의 아이들에게는 온갖 정성을 쏟아 힘겨운 대학까지 마쳐 놓았지만 내다 버리고 까마득하게 잊어 버렸던 아이.

 

다시 또 먼 길을 떠나 그 아이를 찾았을 때

그 아이는 이미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쉰이 넘은 데다 그동안 겪은 병고로 인해 나보다 더 늙어 보이는,

그러나 눈빛만은 예전과 다름없이 투명하고 맑은 내 아들이 울면서 반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나를 껴안으며 이렇게 말했지요.

 

‘아버지를 한시도 잊은 날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해 달라고 40년이나 기도해 왔는데 이제서야 기도가 응답되었군요.’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여유도 없이 물었습니다.

어째서 이 못난 애비를 그렇게 기다렸는가?

자식이 문둥병에 걸렸다고 무정하게 내다 버린 채 한 번도 찾지 않은 애비를

원망하고 저주해도 모자랄 텐데 무얼 그리 기다렸느냐고….

 

그러자 아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 모든 것을 용서하게 되었노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비참한 운명까지 감사하게 만들었노라고.

그러면서 그는 다시 한번 자기의 기도가 응답된 것에 감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아 그때야 나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의 힘으로 온 정성을 쏟아 가꾼 아홉 개의 화초보다,

쓸모없다고 내다 버린 하나의 나무가 더 싱싱하고 푸르게 자라 있었다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내 아들을 변화시킨 분이라면,

나 또한 마음을 다해 받아들이겠노라고 다짐했습니다.

 

목사님!

이제 내 아들은 병이 완쾌되어 여기 음성나환자촌에 살고 있습니다.

그 애는 내가 여기 와서 함께 살아 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 애와 며느리, 그리고 그 애의 아이들을 보는 순간,

그 바람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들의 눈빛에는 지금껏 내가 구경도 못했던 그 무엇이 들어 있었습니다.

공들여 키운 아홉 명의 아이들에게서 한 번도 발견하지 못한 사랑의 언어라고나 할까요….

 

나는 그 애에게 잃어버린 40년의 세월을 보상해 주어야 합니다.

함께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면 나는 기꺼이 그 요청을 받아들일 작정입니다.

그러니 제발 목사님, 저를 여기에서 살게 해 주십시오.”

 

 

한센병이라고도 하는 나병은 우리에겐 ‘문둥병’이란 말로 더욱 익숙한 질병입니다.

하늘이 내린 형벌이라고 해서 ‘천형(天刑)’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용천배기’라고 해서 보리밭 등에 숨어서 아이들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납치하여 간을 빼먹는다는 속설로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일제시대에 소록도에서는 아이를 못낳도록 강제 수술까지 시켰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오늘날에야 치료가능한 병으로 분류되었지만 예전에는 사회활동 자체가 금지되는 대상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문둥병 혹은 문둥이라는 말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습니다.

나병이라고 하든지 혹은 한센씨병 (Hansen’s disease)라고 합니다.

노르웨이의 의사인 게할트 한센 (Gerhard Hansen)1873년경에 이 병이 나균 (Mycobacterium leprae)에 의해서 발생하는 병임을 밝혀내었습니다.

그 이후로 이 병은 그의 이름을 따서 한센씨병이라고 명명하게 되었습니다.

나균이 침투하여 인체의 신경절이 파괴됨으로 고통을 느끼는 통각을 상실하게 되는 병을 나병이라고 합니다.

고통을 느끼는 감각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동안에 우리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어기전 (defence-mechanism) 입니다.

그런데 나균으로 고통을 느끼는 감각을 상실하게 되면, 얼마의 힘을 가해야 물건을 집을 수 있는지, 내가 잡는 물건이 얼마나 뜨거운지 등의 감각을 잃음으로 육체에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됩니다.

눈에 티끌이 들어가도 모르기에 결국 시력을 잃게 됩니다.

발에 조그만 상처가 나도 모르기 때문에 발이 썩어 들어가서 발을 잃게 됩니다.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는 나병환자가 자고 있는 동안에 쥐나 새 등이 와서 나병환자의 눈이나 귀 등을 쪼아 먹어도 감각을 느끼지 못하기에 육체에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된다고 합니다.

또한 나균으로 연골이 손상되어 얼굴의 귀, 코 같은 지체들이 떨어져 나가서 흉한 몰골이 됩니다.

 

한하운이라는 문둥병 시인이 있었습니다.

 사회운동가이며,  본명은 한태영(韓泰永)입니다.

 

한하운(1920년 3월 20일 ~ 1975년 2월28일(향년 54세)

1920.3.20 함경북도 함주 출생.

1943년 중국의 베이징대학 농학원을 졸업한 뒤, 함경남도 도청에서 근무하다가 1945년 나병이 악화되어 사직.

1946년 함흥학생사건에 연루되어 반동분자로 투옥

1948년 공산치하를 피해 월남하여 한 동안 유랑생활.

1950년에 성혜원,

1952년에 신영 보육원을 설립. 운영하는 한편,

1953년 대한한센연맹위원회 회장으로 있으면서 나병환자들을 위해 많은 일을 했습니다.

 

1955-월간지 <희망>에 자서전 '나의 슬픈 반생기'를 연재

1957년-제3시집 <한하운 시 전집> (인간사)에서 간행.

1960년-음성나병 판단으로 사회에 복귀.

1960년-자작시 해설 <황톳길>을 (신흥출판사)에서 간행

1960년-명동에 무하문화사 창간.

1964년-월간지 <새빛> 창간.

1975년-세상을 떠났습니다.

 

한하운의 시는 영혼을 껴안고 있습니다.

그의 시는 우리의 메마른 영혼을 적셔주고 겸허하게 우리 자신을 성찰하게 합니다.

그의 시 가운데 "나는문둥이가 아니올씨다"는 시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문둥이올시다

어머니가 문둥이올시다

나는 문둥이 새끼올시다

그러나 정말은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하늘과 땅 사이에

꽃과 나비가

해와 별을 속인 사랑이

목숨이 된 것이올시다.

 

세상은 이 목숨을 서러워서

사람인 나를 문둥이라 부릅니다.

 

호적도 없이

되씹고 되씹어도 알 수는 없어

성한 사람이 되려고 애써도 될 수는 없어

어쩌구니 없는 사람이올시다.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나는 정말로 문둥이가 아닌

성한 사람이올시다.

 

한하운의 시 가운데  <전라도 길 -소록도 가는 길>도 있습니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는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12]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千里), 먼 전라도 길.

 

한하운은 병마로 인한 처절한 체험을 소재로 한 작품들로 많은 사람에게 울림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주마. 깨끗하게 되어라."

나병 환자 한 사람이 예수께로 와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간청하였다. 

"선생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해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해주마. 깨끗하게 되어라." 
 곧 나병이 그에게서 떠나고, 그는 깨끗하게 되었다.

- 마가복음 1장 4042절 -

 

마가복음 1장에 보면 예수님은 무척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계십니다.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고치신 후에 온 동네의 병자들이 다 예수님께 몰려들었습니다.

거기에 한 문둥병자가 예수께 왔습니다.

그냥 그렇게 보면 그렇게 지나갈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문둥병자는 사람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문둥병자에게 사람이 접근하려고 하면 “부정하다, 부정하다”라고 그가 먼저 소리를 질러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문둥병자가 예수님께 왔겠습니까?

성경은 예수님이 그 환자를 찾아가셨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예수님이 모든 병을 낫게 해 주신다는 소식을 이 문둥병자가 들은 것입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문둥병자에게 그 기쁜 소식을 전해준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 말을 듣고 믿음이 생겼습니다.

자기가 예수님을 만나면 그분이 자기의 병을 고쳐주시고, 자기를 깨끗하게 만드셔서, 자기로 하여금 자기의 원래 공동체로 돌아가게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가려고 한다면, 사람들이 금방 그를 알아보고 돌을 던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돌에 맞아 죽더라도 예수님께 나아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 꿇어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선생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해주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철저하게 겸손한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주마. 깨끗하게 되어라."(마가복음1장42절, 새번역) 

예수님은 손가락이 아니고, 그분의 손을 내미셔서 그를 만져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장 추하다고 여겨지는 그 문둥병자의 몸에 손을 대셨습니다.

그를 만져주셨습니다.

그 몹쓸 병이 걸린 이후로 사람의 온기라고는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그에게 예수님의 따스하신 손은 그에게 하나님의 참사랑의 온기를 전달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온 몸의 세포 세포마다 엔돌핀 (Endorphine)이 생겨났습니다.

그의 몸은 황홀한 힘에 의해서 온통 휩싸인 듯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부드러운 입을 여서서 따스하신 음성으로 "그렇게 해주마. 깨끗하게 되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한 마디 말씀으로 모든 것이 완성되었습니다.

그 사람의 속으로부터 근본적인 치료가 일어났습니다.

더러운 나균은 힘을 잃고, 세포 세포마다 새롭게 되었습니다.

그의 피부가 어린아이의 피부와 같이 고와졌습니다.

일그러졌던 그의 형체가 반듯해졌습니다.

힘을 잃었던 몸의 모든 지체들이 힘을 얻었습니다.

감각을 잃었던 모든 기관들이 감각을 되찾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원대로, 그리고 그의 간구함대로 정결하게 되었습니다.

"곧 나병이 그에게서 떠나고, 그는 깨끗하게 되었다"(42절).

예수님께서 나병환자에게 손을 대셨습니다.

'손을 대셨다'는 것이 얼마나 충격적인 행동인지 생각해보십시오.

당시에 부정한 것에 손을 대면 그가 부정해졌습니다.

시체를 만진 사람도 부정하다고 판정을 받아서 속죄제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가장 부정한 나병환자에게 손을 대신 것입니다.

그것을 지켜보던 제자들과 사람들이 모두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런데 어쩌면 더욱 놀란 사람은 나병환자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부정해서 그 누구와도 접촉은 커녕 대화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늘 사람들과 격리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어쩌면 몸의 질병보다, 외로움과 서글픔이라는 마음의 병이 더 깊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들도 아프면 외롭고 서러워지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 마음을 아시고 일부러 손을 대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육체의 질병 뿐 아니라 마음의 상처까지 위로하기 위해서 손을 대신 것입니다.

어떠한 질병도 사랑의 위대한 힘 앞에 힘없이 사라집니다

사랑은 치유하는 힘입니다.

사랑의 손길이 머물면 아픔이 사라집니다.

사랑의 손길이 치유의 숨겨진 비밀입니다.

오늘 당신이 그 사랑의 손길이 되어 보지 않겠습니까?평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