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109)-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가족사랑 2022. 5. 13. 18:28

로마서 강해(109)

 

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 로마서 13장 1〜7절 -

 

본문은 유대인들이 로마에 흩어져 살면서도 자신들의 신앙 전통에 따라 로마 정부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권면은 세상 정부의 권위를 인정하고 세금도 내라고 권면합니다.

목사나 성도들도 사회의 법으로부터 예외가 되지 않습니다.

교통법규도 지켜야 하고 사회의 법질서도 잘 지켜야 합니다.

한편 대통령도 회사의 회장도 군대의 장성도 대학 총장도 교회에 나오면 모두 섬겨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 이면서 또한 이 세상 나라의 시민권자입니다.

만일 하나님 나라의 법과 세상 나라의 법이 충돌할 때에는 우리는 먼저 하나님 나라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1절을 보십시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이 시대는 ‘탈권위시대’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은 더 이상 교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학생들은 선생님을 존경하지 않고 심지어 선생님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합니다.

교회에서 성도들과 목회자가 서로 권위를 존중하지 않고 깎아내립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에도 대적합니다.

이런 일들로 인해 혼란과 무질서가 가득합니다.

 

성경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위에 있는 권세들’이란 하나님의 권세를 의미함이 아니라 국가 권력구조의 상부 곧 국가권력을 말합니다.

권세들이라고 복수를 사용한 것은 권세의 구체적 실행기관으로서의 의미입니다.

 

‘권세(權勢)’는 헬라어로 엑수시아(ἐξουσία)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힘, 능력, , 권능(權能), 위임(委任), 권세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사역을 감당하실 때 이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 육신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사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권위 혹은 권세는 로마정부에 의해서 부여된 것이 아입니다.

유대의 대제사장들에 의해서 부여된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만물의 근본되시고 본질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실 때 이 단어, 엑수시아(ἐξουσία)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마태복음 9장6절).

제자들을 부르실 때도 이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마태복음 10장1절)

 

가정과 교회, 학교, 직장 그리고 사회에서, 지도자로 세워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마치 사람이 세운 듯 보이지만, 이 모든 일을 결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도자로 세워진 사람들의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증언하는 목회자의 권세는 비록 사람들에 의해서 안수를 받습니다.

그렇더라도 목회자의 권세는 사람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됩니다.

장로와 집사의 직분에 대한 권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을 통하여 안수가 베풀어지나 사람인 목사가 그에게 직분자의 권세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그의 직분의 권세가 위임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맡은 직분을 경홀히 여기지 못할 것은 근본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국가권력의 권세(엑수시아, ἐξουσία)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許諾)하셨기 때문에 ‘위정자가 국가를 다스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위정자의 책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정자는 하나님의 뜻에 따른 선한 정치를 베풀어야 합니다.

위정자가 하나님의 뜻에 따른 선한 정치를 베풀 때 그 나라의 백성은 이 위정자가 정한 법을 잘 준수하여 지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뜻에 따른 선과 의의 정치를 하므로 이를 따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바울은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께만 종노릇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사람들이 세운 제도 안에서 순종의 미덕을 보이는 것이 좋다고 권고했습니다.

 

- 서신서를 쓰는 바울(1620) -

에베소서 6장의 말씀을 보십시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에베소서 6장5∼7절)

 

오늘 말씀은 세상의 모든 권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라는 권면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권세의 근원이 하나님임을 알고, 각 영역에 세워진 권위에 순종해야 합니다.

인간의 권세는 하나님이 만드셨고, 하나님이 정하신 원칙에 따라 운영됩니다.

모든 지상 권력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기에, 권세에 불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 됩니다.

그러나 권세자나 순종하는 자 모두가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권세를 위탁하신 목적은, 정의를 수호하고 악을 벌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대신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권세에 복종하는 것이지 맹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세상 권력과 하나님의 뜻이 충돌한다면 세상보다 더 높으신 분, 권세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일제 말년에 ‘신사참배’ 문제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총독이 권세를 가지고 있는데 총독 권세에 복종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앞에 심판 받을 죄라’는 견해로 신사참배를 한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하나님의 법칙에 위반되는 ‘권세는 하나님에게 역적 노릇하는 것이기 때문에 역적과 협동되면 그것이 곧 하나님의 역적이기 때문에 죄가 된다며 신사참배를 거부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권리 행사는 하나님에게 역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복종해서는 안 됩니다.

 

히틀러도, 스탈린도, 푸틴도 하나님께서 세우셨습니다.

박정희도, 전두환도, 윤석열도 하나님께서 세우셨습니다.

마찬가지로 김일성도, 김정일도, 김정은도 하나님께서 세우셨습니다.

 

성경은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움직이고 역사를 이끌어 가실 때 늘 세상에 천사와 같은 다스릴 자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때론 사슴같고 때론 새같고 때론 늑대같은 다스릴 자를 세우십니다.

역사를 돌아보고 성경을 돌아봐도 하나님은 그렇게 역사를 이끌어 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보십시오.

애굽 노예생활 430년(출애굽기12장40절)입니다.

광야생활이 40년입니다.

바벨론 포로 70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겪었던 수많은 시간들 속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그분의 뜻을 이루어가시고 복음을 더 확장시키고 계십니다.

애굽에서 노예생활하던 430년이 결국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고, 광야 40년을 통해 노예근성을 모두 빼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기간이었으며, 바벨론 포로 70년을 통해 눈에만 보이던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어느 곳이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기간이었습니다.

그 역사 속에서 권세를 쥐고 흔드는 다스리는 자들은 하나님이 그분의 구원 목적을 이루어가기 위해 그 때마다 잠시 사용되어지는 자이고 "하나님의 사역자"(롬13:4, God"s servant)입니다.

마치 한 드라마에 악인과 선인, 모두 각자의 역할이 필요하듯 하나님은 필요에 따라 하나님의 계획의 한 부분으로 때론 폭군도 허락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인간 권위에 접할 때마다 성격을 넘어서 직분을 존중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위가 그 사람들 위에 있기 때문에 인간 권위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사람 성격이 마음에 들든 그렇지 않든, 그 사람이 그런 직분을 가질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든 그렇지 않든 존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신자들은 하나님에게 복종한다고 고백하면서도 하나님이 위임하신 권위에는 복종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법을 배우면 인간에게 하나님이 위임하신 권위도 쉽게 복종할 수 있습니다.

 

‘복종’이라는 단어는 휘포탓소(ὑποτάσσω)라고 하는데, 굴복, 순종, 복종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헬라의 군대 용어로 지도자 명령 하에 군대의 진용을 갖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군대 용어로 쓰지 않는 경우에는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협조하고 책임을 감당하며 짐을 지는 태도’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온전히 순종할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권위에 복종하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 기록한 누가복음 2장에 이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누가복음2장51절).

칠인 전도대가 예수님께 돌아와 보고를 할 때 이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누가복음 10장17절).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3장 제1항에는 ‘국가와 공직자에 관하여’에 보면,

“전 세계의 최고의 주와 왕이 되시는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과 공적 선을 위하여 자신 밑에, 백성들 위에 국가 공직자들을 임명하셨다. 이 목적을 위해 칼의 권세로 그들을 무장시키셔서 선한 무리를 보호하고 격려하며, 악을 행하는 자를 처벌하게 하셨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은 오늘 성경 말씀(로마서 13장 1절)과 베드로전서 2장13∼14절에 있는 말씀,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는 말씀 등을 기초로 한 것입니다.

 

2절에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사람을 거스름이 아니요 그를 세우신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심판이 대행자를 통해서 나타날 것입니다.

 

4절에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의 관원이 하나님의 사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권한을 위임받아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악을 행하는 자를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하심의 심판을 베풀 권세가 그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들도 선을 행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우리는 자유자가 됩니다.

우리가 더 이상 율법 아래 놓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율법 아래 놓이지 않는다는 것은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좋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속박감에서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계속 율법을 지켜야 할 것인데 이는 율법의 말씀들이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지시사항이기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자유함을 받은 백성은 또한 세상 법에서도 자유한데, 율법을 지킴과 같은 이유로 세상의 질서를 위하여 그가 위임한 위정자를 통해 마련해놓은 세상 법규들을 지킴도 주님의 뜻에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권세에 굴복하고 선을 행하여야 할 첫 번째 이유는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진노하심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5절에 기록된 대로 이렇게 할 때 “양심을 거스르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