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86)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로마서 12장 2절 -
미국의 자동차 왕으로 불렸던 헨리 포드(1863,7,30~1947,4,7)는 믿음이 독실한 사람이었습니다.
한 번은 그가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 머무는 동안 한 고아원을 방문하고는 강당을 하나 지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일을 위해 헨리 포드는 2천 파운드를 기증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신문에 뜻밖에도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헨리 포드 회장이 고아원을 위해서 2만 파운드를 기증하기로 약속하다.」
2천 파운드가 2만 파운드로 잘못 실린 것입니다.
그 기사를 본 고아원 측은 즉각 헨리 포드 회장을 찾아와 정중하게 사과를 하고는 신문사에 정정 기사를 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헨리 포드는 웃음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 수 없지요. 다 하나님의 뜻 아니겠습니까? 제가 1만 8천 파운드를 더 내겠습니다. 그 대신 고아원의 강당이 완공되고 나면 입구에 이런 글을 써 주십시오. 헨리 포드의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드려진 헌금으로 지어진 강당."
헨리 포드는 2천 파운드를 약속했지만 신문에 그만 2만 파운드로 나게 된 것을 하나님의 선하신 뜻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영적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어떠해야 할까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첫째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대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자기주의, 물질주의, 쾌락주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공통점은 육신 중심으로, 자기중심으로 생활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나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습니다.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이 충만해서 인격도 없고 생명 존중사상도 없습니다.
육체의 쾌락을 위해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쪽으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보면 이 세대는 공중 권세 잡은 자가 다스리는 악한 세대입니다.
마귀는 이 세대를 교묘하게 유혹하고 미혹합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럽게 보여서 미혹하듯이 오늘날에도 아주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유혹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속아서 정욕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썩어 없어질 것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생명이 없는 것들만 좇아서 살아갑니다.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하며 살아갑니다.
영혼은 죽는데 육신만 살찌며 살아갑니다.
그 결과 물질 만능주의가 되었습니다.
"돈이면 다 된다. 돈이 최고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속아서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아이들 만화영화를 가만히 보면 예전에는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만화였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만화가 난폭해지고 과격해지고 파괴적이 되었습니다.
디즈니 만화도 달라졌습니다.
자극적인 것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본받지’는 헬라어로 쉬스케마티조(συσχηματίζω)라고 합니다.
이 단어의 뜻은 ‘비슷하게 모양 짓다, 맞추다’는 것입니다.
‘본받지 말라’는 것은 이 세대와 비슷하게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배를 찾아서』라는 프랑스의 오래된 문헌을 보면 성배를 찾으려는 사람은 '스스로 점찍은 곳, 가장 어둡고 길도 나 있지 않은 곳'으로 해서 숲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성배 전설에 나오는 황무지는 사람들이 사회의 인습만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남들이 기대하는 행동만 하면서 진정성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는 곳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황무지를 벗어나 어둡고 길도 나있지 않은 숲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세상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답답해 보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이고, 앞뒤가 꽉꽉 막혀서 융통성이 없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세상을 따라서 살지 말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는 신분이 다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크리스찬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크리스찬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기에 하나님이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크리스챤은 하나님이 주신 영원한 생명을 품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생명이 없는 세상을 따라 살아가서는 안 되는 사람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자유를 선사합니다.
하지만 자유는 용기라는 열쇠가 있어야 열립니다.
참 자아를 찾는 데 필요한 것은 굳건한 용기입니다.
복음의 삶을 위해 세상의 방식과 다르게 살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 그 사람만이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작용하는 힘을 통해 이루시는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세대는 가변적이고 늘 흔들립니다.
유행과 풍조로 뒤덮여 있습니다.
요한일서 2장은 이 세대를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2:16)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 풍조를 따라 살라고 부름 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대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라고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둘째는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사람이 새롭게 변화되는 계기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도덕적인 마음을 가지고도 변화 받을 수도 있고, 윤리적인 마음을 가지고도 변화될 수도 있습니다.
금욕적인 생활을 가지고도 변화될 수도 있고, 지식을 소유하고도 변화 받을 수도 있습니다.
환경이나 여건에 따라서 변화 받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합니다.
마음이 새롭게 변화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가능합니다.
내 마음이 확실히 변화 받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 밖에는 없습니다.
내 생각과 내 의지로 변화 받는 것 같은데 얼마 있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새해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결심을 합니까?
그런데 대부분은 <작심삼일>로 끝납니다.
내 의지를 가지고는 안 됩니다.
도덕적인 마음으로도 안 됩니다.
윤리적인 마음, 철학적인 마음, 수련을 통해서 얻은 마음도 안 됩니다.
책을 통해서도 안 됩니다.
다 잠깐 뿐입니다.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 성령께서 부어주시는 마음으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이 우리 마음에 들어올 때에 내가 온전히 변화 받을 수 있습니다.
도덕적인 마음이 나를 변화시켰다고 한다면 나는 도덕적인 수준에 있는 사람입니다.
윤리적인 마음이 나를 변화시켰다고 한다면 나는 윤리적인 수준에서 머무르는 사람입니다.
철학적인 마음이 나를 변화시켰다고 한다면 나는 철학적인 수준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나를 변화시켰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 잡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믿음을 좋게 보셨는지 중요한 곳에 데리고 다닙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그 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호언장담합니다(마태복음 26장31절).
예수님이 다시 말씀하십니다.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뭐라고 대답합니까?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결단하는 겁니다.
그런데 잠시 뒤에 한 여종이 와서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다고 말하니까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다"고 부인합니다.
다른 여종이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다"고 하니까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다닐 때에는 변화된 것 같았는데, 중요한 시기에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성령이 강림한 후에 하나님의 마음이 베드로의 마음에 들어오니까 완전히 변화됩니다.
병자를 일으킵니다.
많은 사람을 치료합니다.
대제사장이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호통을 치니까 베드로가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완전히 변화된 베드로를 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는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변화될 때에 하나님의 생각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더러워진 몸은 비누로 씻으면 되고, 더러워진 옷은 세탁하면 깨끗케 되지만 마음을 깨끗케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지려면 우리가 이 세대 곧 이 세상을 본받지 말아야 한다는 사도 바울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시민권을 하늘에 두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3:20).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서는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사람들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2:11).
하늘나라의 시민이 이 세상을 본받으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살기를 원하면 그렇게 살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할 일은 아닙니다.
셋째는 변화 받아야 합니다
“변화를 받는다”는 말의 뜻은 ‘거듭났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말하자면 ‘진노의 자식’이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로워져서 ‘천국 시민’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변화’라는 단어는 메테모르프호오(μεταμορφόω)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 세 제자를 데리고 산에 올라가 기도하실 때 변화되었습니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마가복음 9장2~3절)
우리가 변화를 받으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됩니다.
이전에는 내 뜻과 내 생각만 중요했는데 거듭나고 나니까 이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지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분별하도록 하라'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쉽게 말하면 예수님을 믿고 나니 나의 생에 “우선순위 1번” (Priority Number One)이 무엇이지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장33절)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을 입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며 영적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신앙생활이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찾아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이에 대한 우리의 응답은 영적인 예배입니다.
영적예배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십시오. 평안!
- 하늘가는 길, 강릉남대천에서. 산돌의집 장득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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