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87)-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가족사랑 2021. 10. 7. 13:50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 로마서 12장 3∼5절 -

 

죄를 범한 인간에 대해서 벌을 주지 않고 참으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설명한 후 사도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권하며 그것이 그들이 드릴 영적 예배라고 했습니다(롬12:1).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 했습니다(롬12:2).

그리고 이어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구체적 권면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어진 권면은 신자들이 갖게 되는 공동체적이고 관계적인 삶과 연관된 권면입니다.

무릇 그리스도인의 신앙 속에서 같은 신앙인이며 한 공동체의 구성원인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같은 하나님나라의 삶을 지향하는 신앙공동체가 이 땅에서의 삶에서부터 하늘나라의 삶에 가능한 한 가까운 삶을 구현하고자 할 때 우리 각자에게 요구되는 삶의 방식과 덕목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 주는 권면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각자 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이며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몸을 이루는 각 지체의 기능이 다 다르듯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지체들인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각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도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한 몸에 많은 지체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4∼5절)

 

본문에 보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성도들이 각 지체처럼 유기적인 연합을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듯이 우리 몸은 참으로 신비합니다.

여러 지체들이 서로 연결이 되어서 한 뜻을 이루어 나가고 있는 신비한 연합체입니다.

눈을 보십시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 세상이 보이니까 당연히 보이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당연히 보이도록 해 주셨으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 세상을 볼 수 없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참으로 끔찍합니다.

그런데 이 눈이 그냥 당연히 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섬세하고 신비로운 지혜가 들어 있습니다.

 

헬런 애덤스 켈러(영어: Helen Adams Keller, 1880년 6월 27일 ~ 1968년 6월 1일)를 아시나요?

헬렌 켈러는 듣지 못하고, 볼 수도 없으며, 말도 하지 못하는 세 가지 장애를 동시에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헬렌 켈러를 그저 장애를 이겨 낸 장애인 운동가로 알고 있지만, 사실 뛰어난 감성의 작가이자 교육자였습니다. 장애인을 지원하는 운동을 하고, 여성과 노동자를 위한 운동에 앞장서는 등 사회 전반을 위해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그녀는 미국 앨라배마 주 터스컴비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19개월 때 열병으로 장님, 귀머거리, 벙어리가 됐습니다.

그녀는 설리반 선생의 특별한 가르침으로 하버드대학교 래드클리프 칼리지에 입학하여 4년 후 우등생으로 졸업했습니다.

마크 트웨인은 그녀를 두고 “삼중고(三重苦)를 안고 마음의 힘, 정신의 힘으로 오늘의 영예를 차지하고도 아직 여유가 있다”는 찬사를 보냈습니다. 
헬렌켈러는 자신이 "사흘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Three Day To See)" 이란 글을 써서 발표하였습니다.

그녀가 쓴 이 글은 당시 경제 대공황의 후유증에 시달리던 미국민들이 적잖이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이 글을 20세기 최고의 수필로 꼽기도 했습니다. 

 

만약 내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유일한 소망 하나 있다고 하면,

​그것은 죽기 직전에 꼭 사흘 동안만 눈을 뜨고 보는 것이다.

만약 내가 눈을 뜨고 볼 수 있다면 나는 나의 눈을 뜨는 순간

나를 이만큼 가르쳐주고 교육을 시켜준 나의 선생 설리반을 찾아가겠다.

​지금까지 그의 특징과 얼굴모습을 내 손 끝으로 만져서 알던 그의 인자한 얼굴, 아리따운 몸매 등을

몇 시간이고 물끄러미 보면서 그의 모습을 나의 마음속 깊이 간직해 두겠다.

그리고 친구들을 찾아가고 그 다음엔 들로 산으로 산보를 가겠다.

​바람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나뭇잎사귀들, 들에 피어있는 예쁜 꽃들과 풀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석양에 빛나는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싶다.

다음날 이른 새벽에는 먼동이 트는 웅장한 장면, 아침에는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박물관,

​오후에는 미술관 그리고 저녁에는 보석같은 밤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하루를 지낼 것이다.

마지막 날에는 일찍 큰 길가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들,

​아침에는 오페라하우스, 오후엔 영화관에서 영화를 감상하고 싶다.

​그러다 어느덧 저녁이 되면 나는 건물의 숲을 이루고 있는 도시 한복판으로 나와서

네온싸인이 반짝거리는 거리, 쇼원도에 진열돼 있는 아름다운 상품들을 보면서 집에 돌아와

내가 눈을 감아야 할 마지막 순간에 나는

이 3일 동안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하여 준 나의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기도를 드리고

영원히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겠다.

 

헬런 애덤스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6.27.~1968.6.1)

우리 눈에는 안구(眼球)라고 하는 렌즈같은 것이 있고, 그 뒤에는 망막(網膜)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망막에는 모양을 구별하게 하는 간상세포가 1억 2천 6백만 개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색깔을 구별하는 원추세포는 6백만 개가 있다고 합니다.

이 세포들이 안구를 통하여 들어오는 빛을 전기 충격으로 바꾸어 시신경을 통하여 뇌로 보내면 뇌에서 밖에 보이는 모든 것을 보고 판단을 하게 됩니다.

 

입을 보십시오.

물론 이 입으로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너무나 신비합니다.

그러면서도 이 입은 우리가 필요한 에너지를 받아먹는 아주 신비한 도구입니다.

자동차가 움직이기 위해서 연료를 넣는 기관이 일곱 군데라고 합니다.

휘발유나 경유를 넣는 곳, 엔진오일을 넣는 곳 브레이크 오일을 넣는 곳 냉각수를 넣는 곳 등 일곱 군데가 있다고 합니다.

만약 우리 몸에도 자동차처럼 각기 필요한 에너지를 넣기 위해서 일곱 군데 입이 있으면 참으로 볼만 할 것입니다.

그런데 다행히 우리는 입 한군데로 이것저것 넣어 주기만 하면 그 음식물이 들어가면서 22단계를 거치면서 몸이 자기가 필요한 부분을 다 흡수하고 나머지는 밖으로 내어 버립니다.

 

그리고 이 영양분을 온 몸에 공급을 하는 혈관이 있는데 그 길이를 한 줄로 연결을 하면 96,500km에 달한다고 합니다.

지구를 한 바퀴 돌면 약 4만km라고 합니다.

우리 몸속에 있는 혈관을 다 이어서 돌리면 지구를 두 바퀴하고도 반이나 돌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비롭기는 이 혈관이 우리 몸의 각 부분을 돌며 서로 연결하여서 하나처럼 움직이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이렇게 한 몸으로 연결이 된 각 지체와 같다는 것은 이런 놀라운 신비가 있는 것입니다.

또 우리의 몸에는 지체라고 할 수 있는 많은 부분이 달려 있습니다.

손이 있고 발이 있으며 눈이 있고 코가 있고 입이 있습니다.

이들은 사람이 태어날 때 스스로 되고 싶은 것을 고른 것이 아니라 그냥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태어난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손이 손으로 만들어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손을 위해서 손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손은 몸을 위해서 있습니다.

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발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을 위해서 발이 있습니다.

모든 지체가 같습니다.

모두가 몸을 위해서 지어진 것이지 각자 자기를 위해서 지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몸입니다.

 

몸이란 어느 특정 부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몸통만을 가지고 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전체가 곧 몸입니다.

손도 몸이고 발도 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손이 발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고, 또 발이 자기 역할에 대해서 불평을 하고 손이 되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다는 말이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교회에는 여러 지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체들에게 주어진 것은 각자가 다릅니다.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원리는 것은 '각자가 자기 분수를 알고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각자가 받은 은사가 다 다르기 때문에 각자가 해야 할 일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일에 따라 누가 더 잘 할 수 있는지도 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든지 내가 해야 하고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은 공동체의 삶에 무익할 뿐 아니라 해가 됩니다.  

 

그래서 본문 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분수와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바로 알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분량대로”라고 한 것은 “믿는 이들 각자에게 하나님께서 나누어 주신 은사의 다양함을 따라”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사는 “이런 은사”이고 “이만큼의 은사”인데 갖지도 않은 은사를 발휘하려 하거나 능력에 넘치게 과욕을 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습니다.

성도 각 사람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그리스도 안에서 지체를 이룬 사람들입니다. 

성경의 중심에는 언제나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비록 사람마다 성정이 달라서 어떤 사람은 과격합니다.

어떤 사람은 온유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얌체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다른 사람은 우직합니다.

사람마다 백이면 백 다 다릅니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예수님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교회를 유지합니다. 

 

그러나그 안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으면 그 과격한 사람은 그냥 폭력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그 안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으면 그 온유한 사람은 그냥 좋은 이웃으로 남아 있습니다.

얌체는 기회주의자로, 우직한 사람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자로 남을 뿐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미국 사람이나 중국 사람이나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해도 주님 안에 있으면 다 한 몸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는 한 몸 같이 서로 아주 친밀하게 살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또한 우리는 각 지체로서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하여야 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에 충실할 때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평안!

- 하늘가는 길, 강릉남대천에서. 산돌의집 장득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