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과 칼럼

“자, 이제 됐으니 나를 갖다 버리시구려.”

가족사랑 2021. 9. 12. 20:45

옛날 강원도 어느 곳에 장한영이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대대로 선비 집안이었지만, 어려서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삯바느질을 해서 겨우 집안살림을 꾸려가면서도 
성심껏 아들 공부를 뒷바라지를 하였습니다. 
한영이는 고생하는 어머니를 생각해서 
열심히 글을 읽어  학문이 점점 깊어져 갔습니다.

세월이 흘러 

한영이는 나이 열 여섯, 어엿한 총각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한영이의 귀에 한양에 과거 시험이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한영이는 자신의 공부를 시험 할 겸, 꼭 과거를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집안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어머니께  말은 못하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한영이한테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한영아, 요즘 왜 이리 기력이 없고 낯빛이 어둡더냐? 
"얘아, 무슨 걱정이 있니?” 
그러자 한영이가 마음을 다 잡고서 말했습니다.
“어머니, 머지 않아 한양에 과거 시험이 있답니다."  
"이번 과거에 응시를 해서 제 실력을 확인해 보고 싶어요.”

“얘야, 여기서 한양길이 얼만데 어린 몸으로 어떻게 한양을 간단 말이냐?"

"네가 가면 나는 또 어떻게 하고?”

“어머니! 저도 어머니를 두고 떠나고 싶지않습 니다."  
"하지만 우리도 뭔가 새로운 길을 찾을 때가 됐습니다."  
"여기 이대로 죽 치고 있어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그러자 어머니가 결심한 듯 말했습니다. 

“그래,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내가 그간 조금씩 모아둔 돈이 있으니 길을 떠나거라.” 
“예, 어머니!” 


한영이는 봇짐에 짚신을 싸 짊어진 채 걸어서 과것길을 나섰습니다. 

몇날 며칠 만에 어떤 고을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여러 아이들이 시끌 벅적 떠드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가서보니 동네아이들이 눈먼 판수(判數)를 놀리고 있었습니다.

(※판수 : 점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소경-시각장애인) 

 
아이들이 나무막대기 끝에 개똥을 찍어서는 판수 코에다 들이대면서 깔깔대고 있었습니다.
판수가 “이놈들아, 구려 죽겠다. 구려 죽겠어!”고 소리쳤습니다.  
그럴수록 애들은 더 재미 있어 하면서 장난을 쳐댔습니다. 
그러더니 아예 판수의 지팡이를 빼앗아 도망가면서 잡아 보라고 소리쳤습니다.

이 광경을 보다 못한 한영이가 아이들을 꾸짖었습니다.

“에끼! 이놈들!”

한영이는 아이들을 혼내고는지팡이를 찾아다가 판수에게 돌려주었습니다.

판수는 한영이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면서 물었습니다.  
“어디 가는 뉘신데 이렇게 좋은 일을 하신단 말이오?” 
“예, 저는 강원도에 사는 장한영 이라는 사람입니다. 
한양에 과거를 보러 가는 길입니다.” 
이에 판수가 한영이의 팔을 잡아 끌며서 말했습니다.

“저랑 함께 가십시다. 날도 저물었으니 우리 집에 묵어가구려.”

한영이는 가난한 소경(봉사)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았으나 
판수가 한사코 부탁하여 마지 못해 그의 뒤를 따랐습니다. 
막상 집에 도착해보니 뜻밖에도 판수는 부자로 큰 기와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판수는 물려받은 재산이 많아 부자로 살고있었습니다. 

한영이는 판수의 집에서 하룻밤을 잘 묵고 나서 아침에 길을 떠나려 하자 
판수가 말했습니다. 

“과거를 보러 가신다고요?” 
“이번 과거에 틀림없이 장원급제를 하겠소. 하지만,

죽을 수 있는고비가 한 번도 아니고 세 번 있으니 조심을 하세요” 


그 말에 한영이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보세요, 판수님! 죽을 수가 있다면 사는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살 방도를 알려주세요.”

판수가 말힙니다.

“앞의 고비 두번은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마음만 똑바로 먹으면 넘길수 있어요. 
하지만 마지막 한번이 아주 어렵군요.”
그러더니 판수는 작은 <쌈지>를 하나 내밀었습니다. 

“세번 째 죽을 고비에 이르거든 이 쌈지를 보이시구려. 그럼 뭔가 길이 생길 겁니다.”

※쌈지 "작지만 아름다운 주머니"라는 의 순수 우리말


한영이는 쌈지를 받아든 다음 마음을 다잡아 먹고 길을 나섰습니다. 
하루 종일 부지런히 걸어서 어떤주막에 유숙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 한영이가 방에 홀로 앉아 글을 읽고 있는데 뜻하지 않게 
주막 여자가 술상을 들고서 들어왔습니다. 

보니 좋은 술과 음식이 가득했습니다.
“아니, 이게 웬 일입니까? 시키지도 않았는데요?”“
주막 여자는

"그냥 제가 드리는 겁니다. 손님을 보는 순간 그만 반하고 말았지 뭐예요.” 
여자는 한영이한테 술을 따라서 권하더니 곁으로 다가와 앉으며 
분길 같은 손으로 한영이 손을 부여 잡았습니다. 
예쁜 여자한테 손을 잡히기는 처음인지라 한영이는 몸과 마음이 어질어질한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때 한영이는 문득 판수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한영이는 깜짝 놀라서 손을 뿌리치면서 말했습니다.

 “이러지 마세요. 보아하니 혼인을 하신 분 같은데 남편이 알면 얼마나 놀라겠습니까? 
난 아무 생각이 없으니 그냥 술상을 가지고 나가세요!”

한영이 정색을 하고서 차갑게 말을 하니 
여인은 무안해져서 그냥 상을 들고 나가려 하였습니다. 
바로 그때, 어떤 남자 하나가 방으로 뛰어들어오더니 
들고 있던 칼을 바닥에 놓으며 한영이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니, 당신은 또 뉘십니까?”“
"저는 이 여자의 남편입니다."  
이 여자가 젊은 손님을 유혹 하는 낌새를 채고 
오늘, 길을 떠난 척하고서 몰래 지켜 보고 있었지요. 
여차하면 둘 다 죽이려 했는데 선비님이 이렇게 하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 말을 듣는 한영이 등에 식은땀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까딱하면 칼날에 목이 잘릴 뻔한 순간이었습니다.
주막 주인은 한영이를 잘 대접하고는 여비까지 보태어서 보내 주었습니다. 

한영이는 마음을 잘 먹은 덕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 거꾸로 복을 받은 셈이었습니다. 

 

‘이제 두 고비가 남은 건가?’ 
한영이는 다시 몇날 며칠을 걸어서 한양에 당도했습니다.

 
그는 한 객사를 숙소로 정해 놓고는 구경차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리저리 구경을 다니다가 날이 어두워져습니다.

숙소를 찾는 이 길이 그 길 같고 이 집이 저 집 같아서 쉽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을 헤매다 보니, 어느새 밤이 이슥해지고 말았습니다. 

인적이 다 끊긴 길에서 한영이가 혼자 방황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등치좋은 사내 몇이 달려들었습니다.

그러더니 한영이 입을 막고 한영이를 다짜고짜 자루에 집어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어깨에 떠 메고 어디론가 가기 시작울 했습니다. 
말로만 듣던 보쌈이었습니다.  
한참을 간 후에 한영이가 자루에서 풀려냤습니다. 

그곳은  어느 으리으리한 대갓 집의 별당이었습니다. 
한영이는 종들이 삼엄하게 지키는 가운데 방 안으로 안내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아리따운 처녀가 다소곳이 앉아있었습니다.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나를 왜 여기로 데려왔단 말입니까?” 
그러자 처녀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도령님. 다 저희 부모님이 시키신 일이랍니다. 
제가 상부살(喪夫煞)을 타고 나서 첫 남편을 잃을 
운명이라고 이렇게 낯모르는 도령님을 데려온 것이지요. 

(※상부살(喪夫煞):남편을 여의고 과부가 될 흉한 살)

 

한영이는 한탄을 했습니다.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그렇다면 나는 오늘밤만 지나면 죽은 목숨이란 말이군요!” 
“제가 말렸지만 부모님이 끝내 일을 꾸미고 마셨답니다. 
외동딸이 청상과부가 되는 것을 견딜수 없다면서요.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러면서 처녀가 눈물을 지으니 한영이는 제 신세는 잊고 오히려 처녀가 불쌍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처녀를 위로하니, 처녀는 더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처녀는 품에서 작은 금덩어리 두 개를 꺼내 한영이에게 주었습니다. 
“제 마음이니 이걸 받아 주세요.” 
“나는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한치 앞을 모르는 게 사람의 일이지요. 쓸데가 있든 없든 제 마음이니 받아 주세요.”


한영이는 할 수 없이 금덩이를 받아서 품에 넣었습니다.
다음날 새벽이 되자 건장한 하인 둘이 한영이를 끌어내다가 
자루에 집어넣고 어디론가 향했습니다. 
강물에 집어던지거나 땅에 파묻거나 하려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한영이는 체념한 채 떠메어져 가다가,  
문득 품안의 금덩어리가 생각이 났습니다. 


“여보세요, 내 말을 좀 들어 보세요. 
지금 나 한테 금덩어리가 두 개 있답니다. 
나는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이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당신네들도 못할 짓 하느라 고생인데 나눠 쓰도록 하세요.”


“아니 그 말을 어떻게 믿는단 말이오?”
“금방 드러날 거짓말을 뭣하러 하겠습니까. 잠깐 확인해 보면 알 일입니다.” 

하인들이 그것도 그렇다고 생각하고 자루를 열고서보니 정말 한영이 품속에 금덩이 두개가 있었습니다. 
하인들은 뜻밖의 횡재에 입이 함박만해졌습니다.

“자, 이제  됐으니 나를 갖다 버리시구려.”

젊은 하인이 다시 한영이를 자루에 넣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나이 많은 하인이 나서서 만류했습니다. 

“아서게.  사람이란 은혜를 알아야 하는 법이야. 이런 분을 죽이면 어찌 천벌이 없을까. 
우리둘이 입을 막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일이야.” 

젊은 하인이 듣고 보니 과연 그러했습니다. 
두 하인은 한영이를 풀어 주고 자루에는 돌덩이를 담아서 강물에 집어 던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한영이는 또 한 번 죽을 고비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죽을 고비를 벗어난 한영이는 

무사히 과거시험에 응시해서 당당히 장원급제를 했습니다. 

이름 없는 시골 총각이 장원급제를 하자 조정이 온통 들썩 거렸습니다.
그 때 조정에는 김정승과 이정승이 있었습니다. 
두 정승 모두 혼기를 넘긴 딸이 있어 사윗감을 찾고 있던 차에, 
장원 급제한 한영이를 사위로 점을 찍었습니다.

이정승 김정승이 차례로 나서서 한영이를 사위로 맞으려고 서로 조금의 양보가 없었습니다. 
결국은 임금이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듣자니 이정승 딸은 열여섯이고 김정승 딸은 열일곱이라 하니, 한살이라도 더 먹은 김정승 딸과 맺어주는 게 좋겠소.”
이렇게 해서 한영이는 김정승 딸과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영이는 하루 바삐 어머니를 뵙고 싶은 생각뿐이었으나 
김정승 댁에서 어찌 서두는지 고향에도 내려가지 못한 채 혼례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김정승의 딸과 결혼한 그날 밤, 

한영이는 이런저런 심란한 생각이 들고 뒤도 마려워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때 어떤 복면을 한 남자가 살짝 담을 넘어 들어오더니 
쏜살같이 신부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얼마 후 검은 그림자가 다시 방에서 나와 담을 넘어 사라졌습니다. 
한영이가 얼른 방에 들어가 보니 
아뿔싸! 신부가 칼에 찔려 쓰러져 있었습니다.

한영이는 방에서 뛰어나와 집안 사람들을 불러모았습니다.

“큰일 났어요 ! 신부가 칼에 찔려 죽었습니다.” 

김정승 부부는 깜짝 놀라서 버선발로 뛰어나왔습니다. 
한영이한테 사정얘기를 듣던 김정승은 갑자기 이상한 눈으로 한영이를 쏘아 보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던 외동딸을 잃은터라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다음날 포도대장이 부하를 이끌고 나와 사건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이때 갑자기 김정승이 한영이를 가리키며 소리쳤습니다.
“포도대장, 저놈이 범인이오.

전부터 우리와의 혼인을 탐탁지않게 여기더니 이런 짓을 벌인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 딸을 죽일 사람이 누가 있겠소? 
첫날 밤에  신부를 혼자 놔 두고  밖으로 나갔다는 게 
도대체 말이나 되나. 저놈을 단단히 조사해 보시오.”
한영이에게는 날벼락 같은 말이었습니다. 
한영이 나서서 변명을 했지만 김정승은 막무가내였습니다. 

김정승의 권세가 어찌나 당당했던지 
포도대장 또한 그 앞에서 설설 기고 있었습니다. 
포도대장은 한영이를 옥에 가두고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범인이 안 잡히면  한영이가 죄를 뒤집어쓰게 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감옥에 갇힌 채 고생하던 한영이는 
문득 판수가 전해 준 작은 쌈지를 생각 해냈습니다. 

그는 쌈지를 포도대장에게 바치면서, 
거기 사건의 비밀이 담겨 있을테니 헤아려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한영이가 준 쌈지에 들어있는 건 누런 종이짝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종이에는 흰 백(白)자 세 개가 씌어 있었습니다.  
포도대장은 아무리 궁리를 해도 뜻을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이리저리 물어보았지만 누구도 그  뜻을 푸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느새 그 쌈지에 대한 이야기는 임금에게까지 알려졌습니다. 
임금은 지혜롭기로 소문난 이정승에게 쌈지를 전해 주면서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였습니다. 
뜻이 풀리지 않으면 혼란의 주범인 한영이를 처형하겠노라고 하였습니다.
이정승은 한영이가 죄 없이 갇혀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뜻을 풀어보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도저히 그 뜻을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그때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외동딸이 물었습니다.

“아버지, 무얼 그렇게 고민 하시나요?” 

이정승은 한숨을 내쉬고 사정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이정승의 딸은 자기가 한번 뜻을 풀어보겠노라면서 쌈지를 받아 들었습니다. 
쌈지를 열고 종이를 잠깐 살펴보던 이정승 딸은 금세 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버지, 이 사건의 범인은 황백삼이라는 사람이 분명합니다. 
누런 종이가 있으니 누를 황(黃)에 흰 백자가 셋이니 ‘백삼(白三)’이 아니겠습니까. 
아마도 김정승 댁에 황백삼이라는 사람이 있을테니 확인해 보세요.”

아니나 다를까, 김정승 집에는 황백삼 이라는 젊은 종이 있었습니다. 

황백삼은 관가에 붙들려오자 겁에 질려 죄상을 털어 놓았습니다. 
평소 남몰래 정을 통해 왔던 김정승 딸이 함께 도망가자는 약속을 어기고 
말을 듣지않으므로 홧김에 찔러 죽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한영이는 살인 누명을 벗었습니다.
한영이 옥에서 풀려 나자

전에 김정승에게 한영이를 빼앗겼던 이정승이 한영이를 사위로 삼겠다고 나섰습니다. 
이번에는 별다른 경쟁 없이 한영이는 이정승의 사위로 정해졌습니다. 
한영이는 혼인이 영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구해준 은인이기도 한지라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첫날 밤이 되었습니다. 
촛불을 켜고 신부의 얼굴을 살펴 본 한영이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신부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신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한영이 보쌈을 당해 잡혀왔을때 금덩이를 내주던 그 처녀였던 것입니다. 
둘은 그만 너무 놀랍고 반가워서 말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이정승댁 식구들은 물론, 
시골에서 모셔온 한영이 어머니까지 그 사연을 듣고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맺어진 두 사람은 그 후 진실하고 순수하게 일심으로

건강하게 오래도록 잘 살았다고 합니다.


장한영의 이야기는 한낱 옛날 이야기로만 넘겨 버리기에는 너무 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장한영의 끈끈한 정을 보여줍니다.

갈길이 바쁜 장한영이 걸음을 멈추고 판수를 위해 못된 아이들을 혼내주어 판수를 구해주는 아름다운 마음씨는 흡사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피해 갔던 제사장이나 레위인과는 달리 강도를 만나 거지반 죽게된 사람을 자기 나귀에 태워 주막으로 데려가 치료해주고, 주막 주인에게 돈을 더 주는 완전한 사랑을 쏟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졌습니다.

 '묻지마 폭력'에 '묻지마 살인'의 삭막한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런 <묻지마 선행>은 그림같은 이야기입니다.

 

또한 장한영은 주인의 부탁을 받고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하인들에게 쏟는 인간 사랑의 마음씨도 갖추었습니다.

"지금 나 한테 금덩어리가 두 개 있답니다. 나는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이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당신네들도 못할 짓 하느라 고생인데 나눠 쓰도록 하세요.”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이런 마음은 어느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더나아가 장한영을 통해서 절대절명의 위기 가운데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대담한 평정심을 발견합니다.

금덩이 2개를 주면서  “한치 앞을 모르는 게 사람의 일이지요."라고 했던 처녀의  말처럼,

장한영 이야기는 우리에게 "끝날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는 금언을 다시 한번 되새겨주고 있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세상이 마냥 살벌한 것만도 아닙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해해주는 사람도 있고, 아껴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와 너'의 관계, 공동체는 그냥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상호 배려와 이해와 용납이 필요합니다.

타인은 위한 나의 불편함이 있을 때 타인의 괴로움을 덜어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할 때 타인은 또한 나의 불편함을 덜어줍니다.

불편함을 참아 주고 불이익을 감수하는 데도 한계는 있습니다.

 ‘이젠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핏대를 올리며 따지고 문제를 제기하기보다는 <장한영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도 들어 보십시오.

도저히 살 곳이 못 되는 이 세상 같지만 그래도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괜찮은 사람도 살고 있네!"라고 할 겁니다.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서, 예수를 시험하여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하였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고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대답이 옳다. 그대로 행하여라. 그리하면 살 것이다."
그런데 그 율법교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고 싶어서 예수께 말하였다.

"그러면, 내 이웃 누구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의 죽게 된 채로 내버려두고 갔다. 
마침 어떤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이와 같이, 레위 사람도 그 곳에 이르러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다가, 그 사람이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가까이 가서, 그 상처에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에, 자기 짐승에 태워서,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주었다. 
다음 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서, 여관 주인에게 주고, 말하기를

'이 사람을 돌보아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겠습니다' 하였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 누가복음 10장 25-37절 -

 

- 하늘가는 길, 강릉남대천에서. 산돌의집 장득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