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82)-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가족사랑 2021. 8. 25. 11:13

로마서 강해(82)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 로마서 11장 28〜29절 -

 

 

사람들은 장기나 바둑을 두면서 질 것 같으면 “한 수만 물리자!”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한번 하신 일에 절대로 후회하거나 바꾸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후회를 합니다.

특히 어떤 특정한 사람들을 만난 것에 대한 후회를 많이 합니다. 살아가면서 제일 큰 고통을 주는 것이 사람과의 관계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으로 인해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을 때는 그 사람을 만난 것을 후회합니다.

사랑관계뿐 아니라 사업, 동료, 친구 등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후회를 한다는 것은 우리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다시는 그런 판단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또 후회할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지식과 지혜의 한계가 있어서 후회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관계를 맺지만 지나 놓고 보면 또 후회하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는 인생에서 평생 후회를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렇게 할 걸’, ‘그렇게 하지 않을 걸’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삶 자체는 후회의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후회란 어떤 결정에 대한 것입니다.

후회가 많다는 것은 계획을 잘못 세웠거나 미비했고, 그 결정을 잘못했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하나님 아버지가 무엇을 원하시는지, 그 분의 뜻을 찾으려고 부단히 말씀과 기도생활을 합니다.

그럼에도 뒤돌아보면 더 주의 일에 더 힘썼어야 했는데, 더 섬겼어야 했는데, 더 순종했어야 했는데, 더 사랑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과 후회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늘 후회하면서 살기 때문에 하나님도 후회하는 분인 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후회하지 않는 분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후회하심이 전혀 없으신 분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후회하는 것처럼 표현된 곳들이 있습니다.

창세기6장6절에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후 세상에 사람들의 죄악이 극도로 넘치자 사람을 창조한 것을 한탄한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15장11절에도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는데 사울왕이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하자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하나님이 잘못하여 그 잘못을 인정하고 후회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런 표현을 신학에서는 신인동형동성론(神人同形同性論, anthropomorphism)적 표현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이 경험하고 있는 것들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사람처럼 동일시한 상태로 표현한 것을 말합니다.

곧 하나님이 후회하셨다는 표현은 하나님이 실제로 무엇을 잘못하여 그 실수를 인정하고 후회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슬픔과 분노의 감정을 인간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후회하지 않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왜 후회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은 완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속성에서 완전하십니다.

특히 본문과 관련한 속성으로 보면 하나님은 지혜와 능력이 완전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을 계획하실 때 그의 지혜와 능력을 기초로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원리를 완전하게 하는 지식과 지혜가 있습니다.

또 그것을 기초로 계획된 것을 완전하게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전지전능(全知全能)이라 합니다.

사람은 지혜와 능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완전하게 계획하지도 못하고 그 계획한 것을 완전하게 이루지도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을 계획했어도 그 계획대로 성취하지 못하고 그럴 때마다 후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혜와 능력이 완전하시기 때문에 잘못된 계획을 하지도 않으시고 그 계획을 반드시 이룹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후회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분으로서 실수가 없기 때문에 한 번 결정한 일에 대해서 결코 후회하거나 돌이키는 경우가 없는 분입니다.

우리 사람이 볼 때 하나님의 일이 잘 안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것은 지혜의 한계를 가진 우리 입장에도 볼 때 그런 것이고 지혜가 무한하신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일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는 계획이 실패되었고, 실수하심으로 생겨나는 후회하심이 절대로 없으십니다.

실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윌리엄 보든(William Whiting Borden)(1887-1913)은 1800년대 말 미국 낙농회사의 백만장자인 Borden가의 상속자였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때 예수님을 만나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부모님의 졸업 선물로 전 세계를 여행하는 중, 그리스도 없이 사는 사람들의 고통하는 모습을 보고 세계 선교를 위해 자신을 예수님께 드리고자 결단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사랑했고 그는 성경책에 “No Reserves”(하나도 남김없이)라고 썼습니다.

그는 “영원토록 그리스도의 제자”로 ‘하나도 남김없이’ 자신의 인생을 다 주님께 드리겠다고 결단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예일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며 친구들이 세계 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성경공부 모임을 주선하였습니다. 그가 예일대학 신입생이었지만 신입생 150명이 그의 성경공부 모임에 동참하였습니다. 그가 4학년 때는 1,000명의 학생이 성경 공부 모임에 동참하였습니다. 

그는 일기장에 자신의 좌우명으로 “늘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님께 순종하리라”(Say no to self and yes to Jesus every time)고 썼습니다. 대학 시절에 그는 뉴헤이븐 거리를 방황하는 노숙자들을 도왔고, 알코올 중독자들의 갱생을 돕는 예일 호프 미션이란 단체도 세웠습니다. 

그는 졸업 후 좋은 직장이 열렸지만 포기했습니다. 백만장자 상속자로서의 권리도 포기했습니다.

그는 세계 선교로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중국 간쑤 성에 있는 모슬렘 선교를 위해 중국으로 선교사로 지망하였습니다.

그는 더 효과적으로 중국의 모슬렘 선교를 위해 이집트 카이로에 가서 아랍어를 배웠습니다.

그는 장래 이슬람 선교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카이로에서 척수 뇌막염에 걸려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성경에 “No retreats”(뒤로 물러서지 않는다)라고 썼습니다. 

그러다 그는 나이 스물다섯,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카이로에 묻혔습니다.

그는 선교도 한번 제대로 해 보지도 못하고 꽃다운 나이에 인생을 마쳤습니다.

그는 인생을 허비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 그의 인생은 결코 허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성경책에는 “No regrets”(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이 쓰여 있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성경 책 속에서 세 개의 문장이 발견되었습니다.

“남김 없이”(No Reserves)

“후퇴 없이”(No Retreats)

“후회 없이”(No Regrets)

윌리엄 보든의 인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졸업한 예일대학의 수많은 후배들이 보든의 뒤를 이어 선교사로 지망을 하였습니다.

오늘날 중국의 란초우에 윌리엄 보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거기에 병원을 세웠습니다. 

중국의 무슬림들이, 그 병원을 통해서, 주님께로 돌아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일대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보든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네”라는 복음송 아십니까?

“내가 걷는 이 길이 혹 굽어도는 수가 있어도 내 심장이 울렁이고 가슴아파도

내 마음 속으로 여전히 기뻐하는 까닭은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심일세”

 

29절에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은사와 부르심에는’의 헬라어는 타 카리스마타 카이 헤 클레시스(τα χαρισματα και η κλησιs)입니다.

영어성경에는'the gifts and calling'으로 나와 있습니다 (KJV, NASB).

‘은사’로 번역된 '카리스마'(χαρισμα, gifts)는 '선물' '은혜' 라는 뜻으로 하나님이 어떤 조건이나 대가없이 거저 주신 것을 말합니다. ‘부르심’으로 번역된 '클레시스'(κλησιs, calling)는 ‘초대’, ‘소명’(召命)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구원하기 위해 선택하여 부르신 것을 말합니다.

이 '은사'와 '부르심'은 별개의 것을 말하려는 것이기 보다는 하나의 뜻을 강조하기 위해 서로 비슷한 단어를 반복하여 사용한 중언법(重言法, hendiadys)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유대인(이스라엘)을 아무 조건이나 대가없이 선택하여 부르심에 대한 내용을 말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 절은 하나님이 유대인(이스라엘)의 구원과 관련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을 구원하기로 선택했습니다.

유대인 족장 아브라함 때부터 그와 그 후손을 선택했습니다.

유대인을 민족적으로 선택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을 개별적으로 선택한 것을 말합니다.

유대인 가운데 일부를 구원하기로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다른 민족에게는 주지 않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하고 하나님의 율법과 제사와 성전에 관한 제도를 주셨습니다. 그것을 통해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방법을 필요로 하고 하나님의 구원방법인 그리스도를 믿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선지자들의 예언을 거부하고 심지어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후에도 그를 배척했습니다.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에도 거부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유대인을 구원하려는 계획이 잘못된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유대인을 구원하려는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유대인을 구원하려고 그들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시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선택한 것이 잘못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그들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여 구원을 받는 것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울 때에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원뿐 아니라 사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선택하여 부르신 것은 단순히 구원하기 위해서만 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우리 인생을 통해 영광받으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심각하게 범죄로 인하여 타락하고 고난으로 인하여 좌절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후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사명을 이루고 영광을 받으려는 의지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여전히 우리를 부르신 목적을 위해 여전히 섭리하고 경륜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의지를 생각하면서 다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다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후서1장10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 하늘가는 길, 강릉남대천에서.  산돌의집 장득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