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강해

주기도문 강해(8)-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가족사랑 2021. 7. 18. 17:10

주기도문 강해(8)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 마태복음 4장 1∼11절 -

 

그동안 살펴보았듯이 주님의 기도는 모두 여섯 가지의 청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처음 세 가지는 하나님을 위한 기도로 (1)하나님의 이름, (2)하나님의 뜻, (3)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이것은 우리 기도의 시작이 나의 필요를 우선적으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기도가 먼저임을 깨우쳐 줍니다.

 

그 다음 세 가지는 우리를 위한 기도입니다.

우리를 향한 첫 번째 기도는 ‘일용할 양식’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양식”은 단순히 먹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향한 두 번째 기도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입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신 것처럼 우리 역시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한 세 번째 기도는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그리고 악에서 건져주실 것을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우리를 위한 세 번째 기도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입니다.

<시험>이라고 번역된 말은 예수님이 평소에 쓰던 아람어로는 타지바(tajriba)입니다.

신약성경에서는 헬라어로 페이라스몬(πειρασμόν)입니다.

이 말은 시험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유혹이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 '시험' 이라는 단어는 두 가지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하나는 '테스트(Test)'의 의미로 하나님이 우리 믿음의 성장을 위해 연단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유혹(Temptation)'의 의미로 죄로 이끄는 사탄의 공격을 말합니다.

영어 성경은 시험이라는 단어가 그 의미에 따라 'Test' 또는 'Temptation'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글 성경이나 성경 원문인 헬라어 성경은 서로 구별 없이 '시험'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 문맥으로 그 의미를 가려내야 합니다.

따라서 주기도문의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는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옵시고'로 읽어야 합니다.

 

1. 죄의 유혹

죄의 유혹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죄에 대한 유혹은 우선 안으로부터 옵니다.

즉 우리 마음으로부터 내면으로부터 끊임없이 올라옵니다.

 

야고보서 1장에 보면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14절)라고 하였습니다.

구약 성경 예레미야 17장에는 “만물 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마음”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렘17:9).

인간의 마음은 본질적으로 부패해 있습니다.

사람은 각자 자신의 마음이 최대 유혹자입니다.

그래서 토마스 왓슨이란 분은 '각자가 자기 자신에게 사탄이다'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사사 삼손을 보십시오!

그는 맨손으로 사자를 죽이고 나귀 턱 뼈로 블레셋 사람 천 명을 죽일 수 있었던 능력자였습니다.

그런 삼손도 자기 마음에서 올라오는 죄의 유혹은 이기지 못해 블레셋 여인 들리라를에게 빠져서 결국은 비참하게 끝났습니다.

 

또 유혹은 밖으로부터도 옵니다.

사탄이 끊임없이 유혹을 합니다.

오늘 읽은 마태복음 4장에도 보면 3절에서 마귀를 가리켜 아예 '시험하는 자'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죄를 짓도록 유혹하는 자입니다.

 

사단은 인간의 행복을 시기합니다.

일개 티끌 덩어리에 불과했던 존재(창2:7)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되고 자녀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자가 된다는 것은 사탄에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자신은 한 때 영광스런 천사장이었으나 땅으로 쫓겨나고 흙이었던 인간은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인류를 고질적으로 증오합니다.

어떡해서든지 하나님과 이간질시키려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과의 이간질은 무엇으로 이루어질까요?

바로 인간으로 하여금 죄짓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의 전 단계인 유혹을 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교묘하게, 또 과감하게 집착을 가지고 유혹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유혹할 정도니 인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사탄의 유혹에는 그가 즐겨 쓰는 타이밍이 있습니다.

첫째, 갓 믿기 시작했을 때입니다.

사탄은 은혜의 자녀가 태어나면 그를 죽이려듭니다.

사탄은 새 피조물에 앙심을 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백성이 늘어나고 왕성해지는 것을 싫어합니다.

마귀는 생명의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하면 칼 날로 도려내려합니다.

그러므로 갓 믿기 시작한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면 시험에 들지 말게 해달라고 중보 해줘야 합니다.

 

둘째, 은혜 받았을 때입니다.

마귀는 도적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한복음 10장10절)

도둑은 있는 집을 털지 없는 집을 털지 않습니다.

해적선은 보물 실은 배를 습격하지 빈 배를 습격하지 않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이 40일 금식 기도를 마치자 바로 시험했습니다.

 

우리가 은혜 받았다는 것은 마귀의 대적자가 되어간다는 뜻이기에 마귀는 어떡해서든지 받은 은혜를 와르르 쏟아버리게 만듭니다.

또한 배부르게 먹고 난 뒤에 졸음이 쉽게 오듯이 영의 양식을 잘 먹고 나면 자족감에 나태해져 졸기 쉽습니다.

이때 마귀가 쏜 화살이 갑옷의 솔기 사이로 꽂힙니다.

보물을 싣고 돌아 올 때 해적선을 주의해야 합니다.

 

셋째, 승리하고 난 뒤입니다.

전투 후 갑옷을 벗어버린 군인에게 적군이 기습하듯 마귀는 큰 시험을 이긴 후, 큰 목표를 달성한 후에 기습하곤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어마어마한 여리고 성을 함락시켰지만 승리감에 도취해 아이성은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겨 싸움에서 처참히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700명과 싸워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이 위대한 승리 직후 이세벨이라는 사탄 같은 여자 말 한마디에 '나를 죽여 주소서!'하며 자기 연민의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목표를 달성하고 났을 때 마귀는 기다렸다는 듯이 마수를 뻗칩니다.

통계자료에 의하면 오르막길에서 보다는 내리막길에서 자동차 사고가 더 많이 난다고 합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표를 향해 올라갈 때는 깨어 있다가 목표 달성 후에는 방심하고 나태하여 사탄의 공격 목표가 되곤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린도전서 10장12절)고 했습니다.

 

넷째, 한가할 때입니다.

승리하던 다윗이 넘어진 것은 한가한 때였습니다.

다윗이 굳이 전쟁에 직접 나갈 필요가 없을 정도로 나라가 견고해지자 할 일이 없어졌습니다.

부하들은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그는 한가롭게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저쪽 아래서 목욕하는 여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 때 다윗의 마음에 사탄이 유혹의 화살을 쏜 것이 적중하여 다윗은 죄를 짓고 엄청난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한가할 때 마귀 화살이 날아옵니다.

휴식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알맞은 휴식이 되게 해야 합니다.

영적인 백수가 되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바쁘다고 교회 사역을 내려놓고는 마귀 화살에 맞아 허덕이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교회 사역이란 사실 교회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을 위한 면이 있습니다.

 

다섯째, 혼자 일 때입니다.

사탄은 교회에 꼭 붙어 있는 사람은 함부로 공격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혼자되게끔 부추기거나 흩어 놓습니다.

교회가 싫어지고, 믿음의 사람과의 교제가 싫어지고, 혼자서도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가 위험합니다.

혹시 그런 마음이 있다면 사탄이 유혹의 화살을 쏘기 위해 수순을 밟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와에게 사탄이 접근한 것도 남편과 따로 떨어져 혼자 있을 때였습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도서 4장12절)

코로나 19로 인해 성도들이  대면예배금지로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곤 합니다.

이렇게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할 때 성도들의 믿음이 위협받습니다.

사탄이 노리는 것이 바로 이러한 때입니다.

혼자서 신앙생활하기 쉽지 않습니다. 어렵습니다.

성도는 이러한 때 예전보다 더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사탄과 마귀가 역사하지 못하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2.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죄가 유혹해 올 때 자주 들려오는 소리가 있습니다.

'딱 한 번만'입니다.

이것은 사탄이 즐겨 쓰는 낚시밥입니다.

사탄은 '열 번, 백 번'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한 번만'이라고 점잖게 제안합니다.

그러나 한 번은 반드시 두 번, 세 번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입니다.

 

사탄이 유혹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남들도 다 하는데 뭐 어때…”라는 말입니다.

이 말에 많은 사람들이 타협하고 넘어갑니다.

하지만 성경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합니다(로마서12장1절).

 

그러면 도대체 언제가 사탄의 유혹이 없는 때일까요?

없습니다!

마귀는 두루 다니며 부지런히 삼킬 자를 찾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베드로전서 5장8절)

그래서 예수님께서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라고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인간은 독자적으로 죄의 유혹, 마귀의 유혹을 이길 수 없습니다.

만약 스스로 이길 힘이 있다면 예수님께서 굳이 이 기도를 하라고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시 때때로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가족을 위해 기도헤야 합니다.

성도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영적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유혹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마귀에게 받으신 것입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태복음 4장 1〜3절)

마귀는 사십 일 금식한 예수님께서 배고프다는 사실을 알고 시험했습니다.

그것이 템프테이션(temptation), 즉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하고 하나님의 도움없이 네 자신의 힘으로 메시야가 되라는, 구원을 이루게 하라는 유혹입니다.

마귀는 그 유혹으로 예수님이 죄를 짓도록 시험했습니다.

 

3. 시험에 들지 않기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이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세상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인생은 시험의 연속입니다.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어 이제 좀 편안할까 하면 금방 그 다음의 문제가 터집니다.

이처럼 그 다음의 시험이 다가오는 것을 우리는 매일매일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것때문에 끊임없이 불평하고 탄식하게 됩니다.

 

인생살이가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냥 저절로 굴러가는 것도 아닙니다.

인생에는 늘상 시험이 있고, 어려움이 있습니다.

어처럼 유혹에 놓여 있는 그 자체가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문제의 연속입니다.

매일 매일  고통의 터널을 지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에는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린도전서 10장12절)고 했습니다.

“나는 안전하다. 나는 문제없다. 나는 결코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나는 탄탄대로로만 걸어갈 수 있다.”

그렇게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유혹의 시험은 여러 곳으로부터 옵니다.

외적인 현상들로부터 유혹이 찾아들어 옵니다.

화려한 물질문명이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질은 예나 지금이나 모두에게 큰 유혹이 되고 있습니다.

가난이나 부요함이 둘 다 우리를 시험에 빠지게 만듭니다.

외부로부터 오는 시험 가운데 가장 견디기 어려운 시험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오는 시험입니다.

그가 나를 매우 사랑하기 때문에 그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어 시험에 빠지는 것입니다.

내가 그를 지극하게 사랑하기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져서 시험에 빠지는 것입니다.

 

내적인 유혹의 시험은 외적인 시험보다 사실 더 무섭습니다.

의심하는 것이 시험이 됩니다.

불신하는 것이 시험이 됩니다.

교만한 성격이 시험이 됩니다.

게으름이 시험이 됩니다.

특히 예수를 처음 믿는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가장 큰 내적 유혹의 시험은 의심과 불신의 시험입니다.

 

사탄의 유혹을 축복의 시험으로 바꾼 대표적인 인물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욥입니다.

사탄은 욥을 올무에 걸어 파멸시키려고 그의 재산을 모두 앗아갑니다. 그의 자녀도 모두 빼앗아 갑니다. 동방의 부자였던 그가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사탄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욥에게 악창이란 병으로 그의 몸을 쳤습니다.

몸이 가려워 견딜 수 없는 욥에게 사탄은 아내를 통하여 하나님을 저주하라고 유혹합니다. 친구들은 위로가 아니라 없는 죄를 뒤집어 씌워 회개하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욥은 이 모든 사탄의 유혹을 하나님의 시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재물을 앗아감으로 하나님을 불평하라는 마귀의 유혹에 대해 오히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아내가 하나님을 저주하라고 유혹할 때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욥2:10)하며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결국 그는 사탄의 유혹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유혹의 시험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요?

첫번째로 기도하는 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시험에 들지 말게’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유혹의 시험은 기도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싸움이란 적을 알고 자신을 바로 알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알고 나를 아는 비결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은 지혜를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마태복음 26장41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험을 이기는 또 하나의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마귀는 40일 금식기도 하신 예수님을 찾아와 세 가지 시험을 했습니다.

첫 번째는 물질적 시험을 했습니다.

두 번째는 명예의 시험을 했습니다.

세 번째는 영적인 시험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 가지 육적, 정신적, 영적 시험을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에베소서 6장에서 사도 바울은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6:17)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영적전쟁을 할 때 성도들의 유일한 공격의 무기는 ‘성령의 검’입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으로 사탄을 공격하십시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윤리적으로 어려운 이때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시험에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평안!

 

- 하늘가는 길, 강릉남대천에서. 산돌의집 장득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