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 로마서 10장 11∼13절 -
이름이라는 것은 참으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고 친근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더욱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이름을 지어주었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자녀에게 이름을 지어줄때 부모들은 온갖 정성을 들여 좋은 뜻을 가진 이름을 지어 줍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세상에 있는 모든 것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집에서 기르는 개나 고양이에게도 모두 제각기 이름이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집을 벗어나 다른 동네를 떠돈다면 그때부터는 더 이상 이름이 아닌 일반적인 개나 고양이로 인식되고 불리게 됩니다.
반대로 밖에서 떠돌던 개나 고양이를 집에 데려와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들은 더 이상 일반적인 개나 고양이가 아닌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반려견, 반려묘가 됩니다.
길을 지나다 만나게 되는 ‘이름 모를 잡초’에게도 이름은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꽃을 피우고 이 세계에 충분히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데도 단순히 ‘꽃’으로만 치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름이 있다는 것은 존재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름을 누군가가 불러준다는 것은 그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13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그분께 기도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부르는 것은 기도의 일부이기 때문에 기도의 한 형태입니다.
그러나 ‘부름’은 단지 기도만이 아닙니다.
본문에 “부르다”라는 헬라어 단어는 에피칼레오마이(ἐπικαλέομαι)라고합니다.
여기에는 ‘부르다, 일컫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부르는 것'은 그가 들을 수 있도록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기도는 속으로 할 수 있지만 '부르는 것'은 들리게 해야 합니다.
‘에피칼레오마이’라는 말에는 ‘호소하다, 간원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즉 “부르짖다”를 뜻합니다.
주님을 부르는 것은 그분께 부르짖는 것이며 영적인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른 역사는 성경 전체를 통해 계속되며 우리는 그분의 이름을 부른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열거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창12:8), 이삭(창26:25), 모세(신4:7), 욥(12:4), 야베스(대상4:10), 삼손(삿16:28), 사무엘(삼상12:10), 다윗(삼하22:4), 요나(욘1:6), 엘리야(왕상18:24), 엘리사(왕하5:11), 예레미야(애3:55)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주님을 불렀을 뿐 아니라 사람들이 그분의 이름을 부르리라는 것까지 예언했습니다(욜2:32, 습3:9, 슥13:9).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또한 신약의 성도들에게 발견하는 일상적인 신앙모습입니다.
오순절날!
그들이 주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사도행전 2장21절).
오순절날 하나님은 그분의 영을 부어주셨으며 초기의 성도들은 주의 이름을 부름으로 그 영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부른 것은 하나님이 영을 부어주심에 대한 반응이었습니다.
스데반 또한, 주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돌에 맞아 죽을 때 스데반은 주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행7:59).
스데반은 주의 이름을 부르며 죽었습니다.
신약의 모든 믿는 이들이 주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고린도전서 1장 2-3절)
회심하기 전 바울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을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습니다.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행9:14).
이것은 초기의 모든 성도들이 예수를 부르는 자들이었음을 의미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표시이자 증거였습니다.
따라서 다소의 사울은 다메섹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사실로 그들을 식별하기가 쉬울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 기도했을 뿐 아니라 그분을 불렀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결박하려고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사울은 주님께 사로잡혀서 눈이 멀었습니다.
주님은 아나니아라는 작은 제자를 사울에게 보내어 주님의 말씀을 전하게 했습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에게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고 했습니다(행22:16).
사울은 어떤 죄를 씻어야 했습니까?
그것은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결박한 죄였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이렇게 했으며 의도적으로 다메섹에서 이렇게 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사울을 매우 악한 자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눈으로 볼 때 사울은 성도들을 핍박하고 예수를 부르는 자들을 결박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죄를 씻는 가장 좋은 길은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전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결박했던 사람이 지금은 그 이름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매일 주님께 기도하는 많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있지만 그들의 이웃과 친구들은 그들이 그리스도인임을 모릅니다.
우리는 그들을 “침묵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주의 이름을 부르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면 이 <부름>은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표시가 될 것입니다.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의 길이 이런 길이었습니다.
바울은 “부르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12∼13절).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도 주님을 부르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고전1:2).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 사람이 남자든지 여자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 사람이 주인이든지 종이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 사람이 부자든지 가난한 자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 사람이 잘난 자든지 못난 자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 사람이 선을 행하는 자든지 악을 행하는 자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습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께 이르는 길입니다.
예수님만이 영생에 이르는 길입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 사도행전 4장 12절 -
- 하늘가는 길, 강릉남대천에서. 산돌의집 장득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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