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강해

산상수훈 강해(20)-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가족사랑 2021. 3. 21. 17:00

산상수훈 강해(20)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2)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주님의 기도는 우리의 기도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기도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입니다

우리의 기도의 대상은 사람이 아닙니다

기도는 허공에다 대고 막연히 주문을 외우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의 대상은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는 말 속에는 굉장한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속한 분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이나 지식으로 가둘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이성과 논리로 정의할 수 있는 분도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초월해 계시는 분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높은데 계신 분입니다. 지극히 높은데 계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하늘이 언제나 땅보다 높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언제나 땅을 초월합니다. 하늘은 언제나 땅을 덮고도 남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기 때문에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낡고 늙고 변하고 닳아 없어집니다

아무리 훌륭한 나라도, 제도도, 사람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 계신 아버지가 아무리 인자하고 자상하고 사랑이 많으신 분이라 할지라도 세월이 지나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땅을 초월해서 하늘에 계시기 때문에 변치 않습니다. 능력이 쇠하지 않습니다

그 나라와 권세가 영원합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온 우주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는다면 오늘 태양이 뜰 수도 없고 비가 내릴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는다면 바람이 불수도 없고 계절이 바뀔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0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10:29)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는다면 우리 중에 누구도 오늘 하루 숨 쉬며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는다면 정녕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무엇하나 이룰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와 온 우주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그 높이만큼 보입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더 넓게 더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늘보다 높은 곳은 없습니다. 태산이 아무리 높다한들 하늘 아래 뫼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그 높은 하늘에 계십니다

하늘에서 온 세상을 바라보시고 하늘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을 두루 살피시며 하늘에서 우리의 깊은 중심까지도 지켜보고 계십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 그곳이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이든 사나운 짐승이 몰려다니는 광야이든, 우리를 눈동자와 같이 지켜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시며 우리의 이성과 생각을 초월해 계시고, 이 세상 만물을 주관하시고 오늘도 높은 곳에서 우리를 지켜보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능력과 힘으로는 그 하나님께 닿을 수가 없습니다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너무도 높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우리와 전혀 동떨어진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닿을 수 없이 높은데 계신 하나님이라고 해서 우리와 전혀 상관없고 우리를 전혀 상대하시지도 않고 언제나 우리에게서 멀어져만 계시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2. 우리 아버지

 

예수님은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부터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12절의 말씀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마음대로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권세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십니다. 하나님이 아버지시라고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가족입니다. 그것도 부자지간입니다. 부녀지간입니다

가족 중에서도 가장 친밀하고 가까운 사이가 부모와 자녀 사이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사용하셨던 단어는 아람어인 아빠(abba)”였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아빠(αββα, abba)아버지라는 표현이 세 번 나옵니다

 

마가복음 14장에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14:36). 

로마서 8장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8:15). 

갈라디아서 4장에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4:6).

 

하나님은 높은데 계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우리의 가장 가까운데 계신 아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우리가 애원하고 부탁하고 아빠라고 부를 때, 사랑과 은혜를 한없이 베풀어주시는 아빠 하나님이십니다

 

아람어 아빠(abba)는 우리말 아빠와 발음이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아버지를 어린아이가 표현할 때 아빠라고 합니다. 보통 성인이 되면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아빠라고 부르면 좀 더 친밀감이 넘칩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 중에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친밀하게 부르는 용어로 아빠 아버지(αββα πατήρ, 아빠 파테르)라고 불렀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 해석도 전혀 틀리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예수님 당시 아바라는 단어는 이미 '아버지'를 호칭하는 모든 연령대의 공통된 용어로 정착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성서 시대에 '아빠' 호칭을 어린아이의 재잘거리는 '아빠' 표현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아버지는 친밀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때 친밀감보다 앞서는 당시의 의미는 가족 내의 절대 권력입니다

, 불순종하는 자식에 대한 생살여탈권을 지닐 정도로 아버지에 대한 순종의 의무는 절대적이었습니다

물론 가부장으로서 아버지는 결코 독재자나 폭군은 아닙니다

그는 권력을 지닌 동시에 가족 전체를 위한 희생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로마 사회의 아버지도 그리 다르지 않았습니다. 로마사회에서 아버지는 말 그대로 대부(God-father)적인 보호자의 의미가 강했습니다. 옛날 우리 사회에서도 아버지란 한편 무섭고 절대 순종해야 할 대상이면서 동시에 나를 절대적으로 보호하시는 분이라는 의도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겟네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14:36)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특별한 아버지, 절대적 보호자이신 같은 아버지로 강렬하게 체험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보내는 편지에서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8:15)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는 것은 예수님께서 느끼신 그리고 초대교회의 신도들이 체험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누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죽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 가셔서 예수님은 무덤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시고 기도하실 때에도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11:41)는 기도로 시작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은 제자들과 마지막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14:23)고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이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하시자 예수님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14:9)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늘 말씀하셨으며, 하나님과 언제나 인격적으로 교제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분명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만 동시에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친근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높은데 계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우리의 가장 가까운데 계신 아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우리가 애원하고 부탁하고 아빠라고 부를 때, 사랑과 은혜를 한없이 베풀어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위험한 처지에 처할 때 우리를 건져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끝까지 책임져 주시는 아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할 때 아버지께서 말하듯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주기도는 이처럼 아버지와 대화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본래부터 하나님의 자녀였던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하다보니 저절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힘이나 능력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에 있는 말씀처럼 전에는 우리도 우리의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2:3).

 

그런데 어떻게 진노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희생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희생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하나님의 희생은 계속되었습니다.

 

아빠 하나님은 언제나 자녀인 우리를 위해 희생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희생의 대가가 아무리 크고 혹독하다 하더라도 기꺼이 감수하십니다

아빠 하나님의 사랑은 자식을 향해 끝없이 희생하시는 사랑입니다.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들판에 남겨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선 목자를 현실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들판은 광야입니다. 광야에는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언제나 굶주린 맹수들이 먹잇감을 찾기 위해 눈을 번뜩이는 곳입니다. 그런데 고작 한 마리의 양을 찾기 위해 굶주린 맹수들이 득실거리는 광야에, 나머지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남겨둔다는 것은, 목자의 입장에서 엄청난 희생을 각오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자가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나서는 것은 그 양을 향한 희생적인 사랑 때문입니다.

그 한 마리의 양을 위해 목자는 자신의 시간과 정력을 허비할 뿐만 아니라, 목자의 전 재산에 해당하는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희생합니다. 왜냐하면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에게 목자는 아빠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체면도 당신의 보좌도 당신의 아들도 아들의 생명도 기꺼이 희생하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바로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은 우리의 아빠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라고 기도할 때, 그 기도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희생과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서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우리의 아빠이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분의 사랑과 희생을 찬양하십시오

그리고 아빠 하나님께 친밀하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분이시고 아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냥 아빠가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요” 

나만의 아버지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라면 이 자리에 있는 우리는 모두 형제요 자매입니다

우리는 서로 서로 사랑해야 하는 형제요 자매입니다

내가 미워하고 질투하고 시기했던 그 누군가를 위해서도 하나님은 희생하시고 사랑하시는 아빠 하나님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라는 말은 하나님의 교회의 아버지라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에는 언약공동체인 교회의 소망이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개인적인 것을 지양하고 공동체적인 것을 지향하는 쪽으로 바뀌어 가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교회는 개인주의의 집단이 아닙니다. 이기적인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한 아버지로 모시는 형제자매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은 반드시 공동체성이 있어야 합니다

공동체를 위해 희생할 수 있어야 하고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가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공동체를 살리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교회를 위하고 이웃을 위하고 타인을 위한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대단한 무언가를 이루기보다는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말로만 사랑하는 교회가 아니라, 진짜 사랑하는 교회, 서로의 허물과 잘못을 덮어주는 교회

서로의 상처와 아픔을 위로해 주는 교회, 서로 칭찬하고 격려해주고 세워주는 교회

서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교회

고통받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교회

눈물과 굶주림으로 배고파하는 이들을 위로하며 떡을 던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심을 기억하십시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을 우리 교회의 아버지이심을 기억하십시오. 산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