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막집 장대비 쏟아지던 날 밤이었습니다.
천둥 번개 치고 비가 퍼붓듯 쏟아지는데 주막집의 사립문 앞에서 누군가 울부짓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영업 벌써 끝났소."
자다가 일어난 주모는 안방 문을 쾅 닫아 버렸습니다.
그 때 열두어살 먹어 보이는 사동이 나와서 사립문을 열었습니다.
※ 사동(使童) : 잔 심부름하는 어린 하인
사동이 보니 한사람이 흙담에 등을 기댄 채, 질척거리는 흙바닥에 앉아 있었습니다.
고주망태가 된 술꾼인 줄 알았는데 술 냄새는 나지 않았습니다.
가시넝쿨 속을 헤맸는지, 옷은 찢어 졌고 삿갓은 벗겨졌고 도롱이는 비에 흠뻑젖어 있으나 마나입니다.
※ '도롱이'는 비를 막기 위해 짚이나 띠 등으로 엮어 만든 비옷으로 허리나 어깨에 걸쳤다.
머리에는 삿갓과 함께 써서 완전한 우장(雨裝) 차림이 된다.
사동이 그를 부축하며 뒤뜰 굴뚝옆에 붙어있는 자신의 쪽방으로 데려갔습니다.
내일이 장날이라 장사꾼들이 빼곡하게 있었습니다.
새우잠을 자는 객방에는 자리가 없었을 뿐더러 흙투성이를 방에 들이게 할 수도 없었습니다.
사동이 반평도 안되는 자기 방으로 그 사람을 대려가 호롱불 빛에 보니 그 사람은 볼품없는 노인이었습니다.
동창이 밝았을 때 노인이 눈을 떠보니 자신은 발가 벗겨져 있고 옷은 바짝 말라 머리맡에 개어져 있었습니다.
그때 사동이 문을 열고 생긋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어르신, 아궁이에 옷을 말렸으니 입으세요.”
그 며칠 후,
그 날은 장날이 아니라 일찍 주막문을 닫으려 하는데, 웬 장정이 들어왔습니다.
주모는 바깥나들이를 나갔고 사동 혼자 있었습니다.
“너, 나하고 어디 좀 가야 쓰것다.”
장정이 사동의 손을 잡아 끌었습니다.
“안돼요. 왜요?”
그렇지만, 덩치 큰 장정은 사동을 번쩍 들어 사립문 밖에 매어둔 말에 태웠습니다.
말은 달리고, 사동은 떨어질세라 장정의 허리를 껴안았습니다.
수십리를 달려 고래 등 같은 어느 기와집 앞에 멈췄습니다.
사동이 바들바들 떨면서 장정에게 이끌려 대문 안 사랑방으로 갔습니다.
유건을 쓴 대주 어른이 빙긋이 웃으며 사동의 두손을 잡았습니다.
“내가 누군지 알겠느냐?”
“어? 그날 밤 비를 맞고...”
“그래, 그렇다."
"내가 어머님 묘소에 갔다가 갑자기 폭우를 만났다.
하인은 낭떠러지기에 떨어져 죽고 나혼자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여우고개 아래 너희 주막에서 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목숨을 잃을 뻔했다.”
사동의 얼굴에서 두려움이 사라지고 놀라움에 벌린 입은 다물어질 줄 몰랐습니다.
그날 밤, 비를 맞고 주저앉은 노인을 보고,
"붓장수일까, 갓장수일까, 아니면 비렁뱅이일까?"
온갖 추측을 다 했는데, 이런 큰 기와집 주인이라니...
“너의 바람이 뭐냐?”
“돈을 벌어서 주막을 도로 찾는 것입니다.”
원래 여우고개 아래 주막은 사동네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태 전, 7년이나 누워 있던 사동의 아버지가 이승을 하직하자,
약값으로 쌓인 빚 때문에 주막은 저잣거리 고리채 영감에게 넘어갔습니다.
사동의 어머니는 저잣거리 국밥집 찬모로 일하게 됐고 형은 장터에서 지게꾼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주막집 주모는 고리채 영감의 사촌 여동생입니다.
사동의 내력을 다 듣고 난 대주 어른이 물었습니다.
“몇년이나 돈을 모으면, 그 주막을 도로 찾을 것 같으냐?”
코흘리개를 겨우 면한 사동이 손가락을 세어 보며 말했습니다.
“십년 안에는...”
대주 어른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동을 말에 태워 돌려 보냈습니다.
이튿날 대주어른이 저잣거리 고리채 영감을 찾아가, 주막을 사겠다고 흥정을 했습니다.
이미 주막이 넘어간 가격을 알고 있는데 고리채 영감은 터무니 없는 값을 불렀습니다.
며칠 후 나루터 옆에 목수들이 모였습니다.
"뚝딱 뚝딱"...
석달 후 춥지도 덥지도 않은 시월상달에, 널직한 기와집 주막이 완공됐습니다.
널찍한 부엌에 객방이 다섯이요, 안마당엔 평상이 세개였습니다.
완공식 날 대주 어른은 땅문서와 집문서를 열두살 사동에게 줬습니다.
사동의 어머니와 형,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흘린 눈물이 눈물바다를 이뤘습니다.

`적선지가(積善之家) 필유여경(必有餘慶)'이란 말은 주역(周易) 문언전(文言傳)의 한 구절로, 선한 일을 많이 한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가 넘쳐난다는 의미의 가르침입니다.
적선지가 필유여경을 줄여서 적선여경(積善餘慶)이라고도 하는데, 좋은 일을 많이 하면 후손들에게까지 복이 미친다는 뜻으로 확대해석하기도 합니다.
주역 문언전은 적선지가 필유여경이란 구절에 이어, 적불선지가(積不善之家) 必有餘殃(필유여앙) 즉, 착한 일을 하지 않고(악한 일을 행하면) 후손에게까지 재앙이 미친다는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남향집에 살려면 3대가 적선(積善)하여야 한다”는 속담과도 일맥상통하는 가르침입니다.
연세(年歲) 드신 분들이 자주 하시는 말씀에 "할아버지 어진 것이 손자 밑거름이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 말은 할아버지가 너그럽고 두텁게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았으면, 나중에 그 손자에게 혜택(惠澤)이 알게 모르게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명(明)나라 때 태학사(太學士)라는 문신(文臣)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영예(榮譽)로운 자리에까지 오른 양영(楊榮)이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네 임금을 섬기면서 일을 잘 추진하고 결단력(決斷力) 있는 인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나중에 정승에까지 올랐고, 문장을 잘 하여 문집(文集)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본래 그의 집안은 아주 미천(微賤)하였습니다.
그 조상들은 대대로 나루터 뱃사공을 하며 생계(生計)를 겨우 유지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해 크게 홍수가 나서 강물이 불어 세차게 흘러내려 왔습니다.
상류지방에 있던 집과 사람 가축 가구 등등이 마구 강물에 떠내려 왔습니다.
같이 뱃사공 하던 다른 사람들은 재산이 될 만한 가축이나 목재 가재도구 등만 건지고 물에 빠진 사람이나 죽은 사람의 시체는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양영의 증조부와 조부는 다른 사공들과는 달리 물에 빠져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사람을 먼저 건져 주고, 죽은 사람의 시체도 건져내어 가매장(假埋葬)해서 자손들이 찾아 가도록 해 두었습니다.
다른 사공들은 그 부자(父子)를 바보라고 비웃으며 재빨리 돈 될 것 챙기기에 겨를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목숨을 건진 상류 지방의 사람들에게는 양영의 증조부(曾祖父)나 조부(祖父)가 자기들의 생명의 은인(恩人)이었습니다.
양영 증조부와 조부 덕분에 조상들의 시체를 찾게 된 그 시체의 아들이나 손자들 역시 죽을 때까지 매우 고맙게 생각하였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축원(祝願) 덕분인지 몰라도, 그 뒤 양영의 집안은 점점 살림이 윤택(潤澤)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도사(道士) 한 사람이 양영의 아버지를 찾아와 『당신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남에게 베푼 음덕(陰德)이 있으니, 반드시 집안이 창성하게 될 거요. 어디 어디에 길지(吉地)가 있으니, 당신 할아버지 산소를 거기에 쓰도록 하시오』하고는 사라졌습니다.
그 뒤 양영(楊榮)이 태어났는데, 용모가 준수하고 두뇌도 명석하였습니다.
어른들이 다 뱃사공하기에 바쁘니 아들의 공부에 신경을 쓸 수도 없었는데, 스스로 글 읽기를 좋아하여 스무 살에 과거(科擧)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나갔습니다.
벼슬길에 나가서도 억울하고 힘 없는 사람을 도와주고 권세를 부리고 교만을 떠는 사람들에게 제재를 가하여, 여러 사람들로부터 칭송(稱頌)을 많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지 않고 남을 도와주기에 힘을 쏟고,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채우지 않고 공공(公共)의 이익(利益)을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서 하늘이 언젠가는 보답을 합니다.
베푼 그 당사자에게 보답을 하지 않으면 그 후손들에게라도 꼭 보답합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 잠언 19장17절 -
말씀은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권고하며 그 같은 선행에 대해 하나님께서 반드시 갚아 주실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의 후원자가 되신다고 말씀합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은 돈을 허비하는 것이 아닌 어느 누구보다 확실한 대상에게 투자하는 것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말씀은 가난한 자를 향한 구제 행위를 하나님께 꾸이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빌려 준 것을 돌려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가난하고 연약한 자를 도울 때 하나님께서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드시 내릴 것임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어려운 이들을 위한 구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경제 원칙에 사로잡혀 아무런 이유 없이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도움을 베풀어 봐야 돌려 받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잘되어 가는 기업에는 투자하겠다고 수많은 돈이 몰려지고 있지만 아무런 가망이 없는 기업에 대해서는 인색하기 그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가난한 자들의 후원자가 되셔서 그 어떤 투자처보다도 풍성한 이익으로 갚아 주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구제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물질을 사용하여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제는 여유가 있고 넉넉할 때에야 비로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가난한 이들을 구제할 때, 우리 인생의 풍성한 미래가 보장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들이 가진 재물을 모두 나눠주고 주님을 따르라는 권고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재물을 너무 사랑했기에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 누가복음 16장13절 -
어느 순간 재물이 훨훨 떠나고 난 뒤, '주님을 위해 쓸 걸!' 하고 후회해 보지만, 이미 때는 늦습니다.
없어진 재물이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말씀 가운데 구제에 대한 교훈이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자선과 구제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아주 자세하게 소개합니다.
그 가운데 한 말씀은 ‘낡아지지 않는 배낭을 만들라’라는 말씀입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 누가복음 12장33절 -
천국에 보물을 쌓는 것은 이웃에게 자선과 사랑을 베푸는 일입니다.
자선과 구제는 하늘에 쌓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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