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과 칼럼

성경의 인물 / 두기고(4)-신실한 일꾼

가족사랑 2024. 12. 7. 08:09

두기고(Τύχικος, Tychicus)

그는 신실한 일꾼입니다  -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골로새서 4장7절 -

Τὰ κατ’ ἐμὲ πάντα γνωρίσει ὑμῖν Τυχικὸς

ὁ ἀγαπητὸς ἀδελφὸς καὶ πιστὸς διάκονος καὶ σύνδουλος ἐν κυρίῳ,

 

 

고대 중국 전국시대에 유방이 항우와 싸울 때의 일입니다.

유방의 부하 장수 중에 번쾌(樊噲)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번괘가 이끄는 부대가 항우의 부대에게 포위되어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번괘는 전령(傳令)으로 하여금 육군에게 위급하다는 정보와 함께 구원을 요청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책임을 맡은 전령은 미친 광인으로 가장을 하고 발각되었을 때의 안전과 비밀보장을 위하여 스스로 자기 입 속에 불덩어리가 된 숯덩이를 집어넣어 벙어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전령은 얼마 가지 않아서 적에게 발각이 되었고, 체포되어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벙어리 된 전령은 미친 놈으로 인정되어 무사히 석방되었습니다.

전령은 마침내 임무를 완수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번쾌는 원군을 받아 그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여 열국을 통일시켰습니다.

 

옥중에 있는 사도 바울은 골로새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마지막 인사에 앞서  두기고를 골로새교회로 보냅니다.

두기고(Tychikos) 옥중에 있는 사도 바울의 형편(形便)을 골로새교회에 알려주며 골로새에 보내는 편지도 동시에 전달합니다.

두기고는 아시아 출신으로 바울의 3차 선교여행 때 그리스에서 드로아까지 바울을 수행한 신실한 동역자닙니다.

두기고는 바울이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 바울의 편지를 가지고 소아시아에 위치한 에베소 교회와 골로새 교회에 전달했습니다.

두기고는 빌립보교회 등 이방 지역 교회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 보낸 연보를 전달하기 위해 파견된 7명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두기고는 훗날 디도와 디모데를 대신해 그레데와 에베소교회로 파송되기도 했습니다.

두기고는 이처럼 바울 사도의 동역자(同役者, fellow worker)로, 조사(助事)로 직무를 수행한 사람한 성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두기고를 가리켜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라고 합니다.

오늘은 두기고의 '신실한 일꾼'에 대한 말씀을 묵상합니다.

「일꾼이란 누구인가?」

'일꾼'은 삯을 받고 남의 일을 해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일꾼'이라는 단어에는 일처리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일꾼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일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입니다.

셋째는 남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입니다.

넷째는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을 사명적(使命的) 인간이라 합니다.

회사의 조그만 심부름꾼은 소사(小使)라고 합니다.

몰래 보낸 심부름꾼은 밀사(密使)라고 합니다.

특별한 심부름꾼은 특사(特使)라고 합니다.

급한 심부름꾼은 급사입니다.

임금의 심부름꾼은 칙사입니다.

공적 심부름꾼은 공사입니다.

심부름 받은 신하는 사신입니다.

예수님의 심부름 받은 제자는 사도(使徒)라고 합니다.

복음의 심부름 받은 사람은 사자(使者)라고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입니다.

하나님의 심부름꾼은 주를 위해 죽고 주를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일꾼”은 신구약 성경에 53번이나 기록되어 있는 용어입니다.

성경에는 일꾼이나 종이라는 뜻의 사명을 뜻하는 여러 단어가 있습니다.

교회 임직식 때 가장 많이 읽는 본문이 고린도전서 4장1-2절입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여기에서 일꾼으로 번역된 단어가 휘페레테스(ὑπηρέτης)입니다.

'휘페레테스' 는 영어로 'under' 곧 '밑'이라는 뜻과 '노를 젓는다.'라는 뜻이 하나로 된 단어입니다.

바울 당시, 큰 배-전함 밑창에서는 노를 젓는 노예들이 있었습니다.

유명한 영화 벤허에서는 주인공 벤허가 노예가 되어 전투함 밑에서 휘페르테스가 되어 노를 젓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또 하나 일꾼으로 번역된 헬라어가 있습니다.

디아코노스(διάκονος)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두기고를 일꾼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 πιστὸς διάκονος )이요"

두기고를 신실한 일꾼(피스토스 디아코노스)이라고 했습니다.

보통 디아코노스(διάκονος)는 식탁 시중드는 사람'을 의미하며, 집사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됩니다.

헬라어 디아코니아(διακονια)”는 디아코노스(διακονος)에서 유래하였는데 식탁이나 다른 천한 일에 시중드는 집사, 종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제'라는 단어가 헬라어 디아코니아(διακονια)입니다.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사도행전 6장1절)

사역'이라는 단어가 헬라어 디아코니아(διακονια)입니다.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사도행전 21장19절)

'섬김'이라는 단어가 헬라어 디아코니아(διακονια)입니다.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계2:19)

'직분'이라는 단어가 헬라어 디아코니아(διακονια) 입니다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로마서 11장13절)

등의 의미입니다.

이처럼 한글성경은  헬라어 디아코니아(διακονια)를 여러 번역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존 콜린스(John N. Collins)는 성서와 헬라문헌을 연구하여 전통적인 해석은 용어의 오해로 인하여 비롯된 것으로 원래의 그 의미는 중재자(go-between)’의 의미와 메신저(messenger)’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제자들과 교회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세상과 하나님 간의 중재자로서 또 하나님의 메신저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라는 디아코노스 예수의 위임명령을 받음으로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합니다.

그러므로 디아코니아는 단순히 섬김과 봉사라는 전통적인 의미를 넘어섭니다.

디아코니아는 궁극적으로 예수의 중보자와 메신저로서의 사역을 계승하여, 말씀과 섬김 그리고 복음전도와 사회봉사가 하나가 되어, 하나님과 세상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는 통전적인 하나님의 선교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두기고를 신실한 일꾼이라고 한 것은 그에게  특별한 사역을 부여했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신약에 기록된 일꾼의 모습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일꾼들로서 어떠한 일들을 해야 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마태복음 9장38절)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로마서 15장16절)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고린도전서 4장1절)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고린도후서 3장6절)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에베소서 3장7절)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빌립보서 2장25절)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골로새서4장7절)

교회 안에서 일꾼은 이런 사람을 말합니다.

일꾼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아름도 없이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일꾼은 누가 받들어 주지 않아도 묵묵히 교회가 하는 일에 빛도 없이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신실한 일꾼 두기고」

 

두기고는 신실한 일꾼(피스토스 디아코노스, πιστὸς διάκονος)입니다.

바울은 두기고를 그냥 일꾼이라고 하지 않고 신실한 일꾼(피스토스 디아코노스, πιστὸς διάκονος이라고 했습니다.

신실하다는 것은 충실하다는 말입니다.

신실한, 헬라어로 피스토스(πιστὸς)라는 단어입니다.

개역성경은 피스토스(πιστὸς)를 ‘신실’, '진실', '충성, '믿음', '미쁘심' 등으로 번역했습니다.

 

마태복음 24장45절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마태복음 25장21절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고"

누가복음 16장10절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요한복음 20장27절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고린도전서 1장9절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고린도전서 4장2절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린도전서 10장:13절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후서 1장18절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갈라디아서 3장9절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24절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디모데전서 4장9절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만하도다"

히브리서 10장23절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베드로전서 4장19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찌어다"

요한삼서 3장15절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

요한계시록 21장5절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이처럼 성경은 피스토스(πιστὸς)를 ‘신실’, '진실', '충성, '믿음', '미쁘심' 등으로 번역했습니다.

'신실'은 사전에서는 ‘확고하게 약속을 지키거나 의무를 준수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신실'과 비슷한 뜻을 가진 낱말로는 ‘의지할 만한’, ‘믿을 만한’, ‘신뢰할 만한’, ‘충실한’ 등이 있습니다.

 ‘신실’이란 절대적인 정직함 또는 순전함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신실한 사람은 의지할만한, 신뢰할 만한, 충실한 사람입니다.

즉 모든 관계에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며, 모든 일에서 절대적으로 정직하고 윤리적인 사람입니다.

 

- 라우렌티우스의 순교 -

 

285년 순교한 것으로 알려진 '라우렌티우스'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에 의해 박해를 당했던 시절에 살았습니다.

교황 식스투스 2세 치세 때 교황 곁에서 부제직을 지냈습니다. 

식스투스 2세는 로마의 카타콤바에서 미사를 드리던 중 발각돼 사형을 당했습니다.

그는 사형장으로 향하는 길에서 라우렌티우스에게 

“3일 후 너도 나를 따르게 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고 합니다.

과연 로마제국의 황제 발레리아누스가 라우렌티우스에게 교회의 보물을 모두 내놓으라고 협박했습니다.

라우렌티우스는 3일의 말미를 달라고 한 후 교회의 보물들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3일 후 라우렌티우스는 황제 앞에 가난한 자들을 데리고 나타나 

“이들이 바로 교회의 보물들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라우렌티우스는  불에 타 죽는 형을 당했습니다.

라우렌티우스가 순교의 순간

 “이쪽은 다 구워졌으니 다른 쪽도 마저 구워라”고 했다는 말이 전설로 전해집니다.

 

라우렌티우스는 신실한 주님의 일꾼이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다니엘이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다니엘 6장4절)

다니엘의 대적들은 다니엘을 고발하기 위해 애썼지만 아무 허물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의 대적들은 다니엘한테서 아무런 부정도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다니엘을 향한 쓰디쓴 질투심과 극도의 적대감을 품고 있었던 정부 관료들은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부정 사례를 잡기만 하면 그것을 빌미로 다니엘을 다리오 왕 앞에서 끌어내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것도 찾아 낼 수 없었습니다.

다니엘은 분명히 본성이 우리와 동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서 절대적 순전함이라는 이 문제를 완전히 정복했고, 이것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수많은 동족을 살려내는 형통의 길을 걷게 했습니다.  

 

작은 일에 정직하려고 노력한다면, 인생의 더 크고 중요한 일에도 정직하게 됩니다.

평소 일상 속에서 정직한 사람은 사업상의 거래에서도, 대학 입학시험에서도, 운동 경기에서조차도 정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누가복음16장10절)

신실함이란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성품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실함을 고백하지만 그 고백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신실함의 성품을 지니려면 종종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기꺼이 그 대가를 치르고자 하는 사람이 적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경건한 사람에게 신실함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성품이라는 것입니다.

 

두기고는 바울을 수행한 신실한 동역자이며, 일꾼이었습니다.

두기고는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혀있으면서 믿고 보낸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 처한 사정을 골로새지방의 교회 성도들에게 알리고, 또한 성도들의 사정을 들으며 위로하고 격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 로마에서 처음 가택에 연금되어 있었을 때 두기고에게 여러번 교회에 편지를 전달하는 일을 맡겼습니다.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도 두기고가 전달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이며 주님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내가 지내는 형편과 내가 하고 있는 일과 그밖에 모든 것을 여러분에게 알릴 것입니다”(에베소서 6장21절)

오늘 골로새서의 편지도 두기고가 들고가 전달한 편지였습니다.

“내가 그를 여러분에게 보내는 것은, 여러분이 우리의 사정을 알고 마음에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골로새서 4장8절)

 

당시 편지를 전달하는 사람은 지금 우리 시대처럼 우편 배달부가 편지만 던져 놓고 오는 것이 아니라 편지를 보낸 사람의 사정과 형편, 마음과 상황을 잘 알아서 전하고 편지를 받는 상대방의 사정과 형편, 마음과 상황을 잘 알아서 다시 편지를 보낸 사람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 내 마음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을 편지 전달자로 세웠습니다.

두기고가 바울에게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편지를 배달하는 하는 일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에서 골로새까지의 거리가 약 2,000km입니다.

그 먼 거리를 바다를 건너, 산을 넘고, 광야를 지나간다는 것은 그 당시에는 강도의 위험, 건강의 위험, 많은 장애물과 시간이 걸리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두기고는 그것을 마다하지 않고 신실하게 바울의 편지를 골로새 교회와 에베소 교회에 전달하는 일을 했습니다.

바울은 그레데에서 사역을 하던 디도를 부를 때 그 사역을 대신 맡을 사람으로 두기고를 보냈습니다.

디도서 3장12절을 보면

“내가 아데마나 두기고를 그대에게 보내거든, 속히 니고볼리로 나를 찾아 오십시오”

디모데후서 4장1112절을 보면

"누가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 그대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십시오. 그 사람은 나의 일에 요긴한 사람입니다. 
나는 두기고를 에베소로 보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디모데와 마가를 부를 때 디모데가 맡고 있는 에베소를 두기고에게 맡깁니다.

 

이처럼 두기고는 바울에게 다른 누구보다 신뢰할 수 있고, 맡길 수 있는 신실한 동역자요 전달자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를 가리켜 “사랑받는 형제, 신실한 일꾼,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라고 불렀습니다.

두기고는 믿을 만한 일꾼이었습니다.

두기고는 하나님의 일을 맡길 만한 신실한 일꾼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주님의 일꾼입니다.

교회에서 목사, 집사, 장로, 구역장, 부장, 성도라고 불리우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복음의 일꾼, 말씀의 일꾼, 주님의 몸된 교회의 일꾼으로 주님의 명령과 뜻에 신실하게 순종하느냐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5장에 달란트를 맡긴 종이 그 청지기의 일을 잘 감당했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고 칭찬했습니다.

두기고와 같이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말씀에 온전하게 믿음으로 감당하는 신실한 일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평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