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과 칼럼

"걱정하지 마십시오. 모든 일이 잘 되어 갑니다."

가족사랑 2024. 10. 20. 09:43

" 선장님의 얼굴을 보았는데, 웃음을 띠고 있었습니다 !"

심한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에 조그만 여객선 하나가 거센 파도 속에서 위태롭게 마구 흔들렸습니다.

선원들은 가구와 여러 가지 움직일 수 있는 물건들은 다 묶어서 고정시켜 놓았습니다.

승객들은 안전을 위해 모두 자기 침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많은 승객들이 이제 곧 이 배는 파선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살아날 희망이 있는지를 알아보겠다고 작정한 승객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배의 선장을 만나보려고 침상을 빠져나왔습니다.

벽과 난간을 붙잡아 가며 파도가 후려치는 갑판으로 나가 사다리를 타고 조타실로 올라갔습니다.

거기는 그는 배가 육지에 거의 가까워 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배가 들쭉날쭉 한 바위들 사이를 위태롭게 지나가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장은 앞에 보이는 잔잔하고 안전한 쪽에 배를 대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이때 선장은 갑판 난간을 위태롭게 붙잡고 불안해하는 그 승객을 보았습니다.

선장은 사나운 강풍과 파도 소리 때문에 말을 해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선장은 불안해하는 이 승객을 향해 말없이 고개를 돌리고는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선장의 미소에 안심을 한 이 남자는 돌아와서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모든 일이 잘 되어 갑니다. 선장님의 얼굴을 보았는데, 웃음을 띠고 있었습니다!”

 

걱정은 어떤 일이 잘못될까 불안해하며 속을 태우다는 뜻입니다.

비슷한 말로 근심, 염려, 수심(愁心) 등이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참으로 다양한 걱정을 합니다.

10대는 진로문제로 걱정을 합니다.

20대는 등록금(학비)과 취업으로 걱정을 합니다.

30대는 비싼 주거비로 걱정을 합니다.

40대는 자녀 교육비로 걱정을 합니다.

50대는 자식 결혼으로 걱정을 합니다.

60대는 노후를 걱정합니다.

우리는 한평생 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걱정을 합니다.

그런데 실제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걱정은 쓸데없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사람이 걱정하는 일 중에서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이 40%, 이미 지나간 일이 30%,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22%,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 4%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는 걱정과 근심의 96%는 쓸데없거나 중요하지도 않다는 소리입니다.

우리는 쓸데없는 걱정을 사서하고 있는 셈입니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 마태복음 6장 31∼34절 -

 

예수님께서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는 미래의 일을 앞당겨 염려하거나, 근심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미래의 일을 계획도 하고 준비도 할 것은 하지만 미리 앞당겨 근심하고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재물의 중요성과 필요성마저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 내일 일은 내일에 염려하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더러 그날 그날의 걱정은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날 하루의 일에 대해 그날에 염려하는 것은 허락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하루 끼니도 이어가기 힘든 고달픈 시절이었기에 더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은 오늘 걱정만 하고, 내일은 또 내일에 할 걱정이 있는 것이니까, 내일 할 걱정까지 오늘부터 미리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내일 걱정은 내일 가서 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도는 분명합니다.

걱정은 오늘은 물론이려니와 내일도 하지를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데는 두 가지 큰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공중을 날아다니는 새와 들에서 피고 지는 들풀을 하나님께서 보호하고 기르시듯 그렇게 사람을 지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걱정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아무런 유익을 가져다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걱정을 한다고 해서 수명을 연장시킬 수 없습니다.

키 작은 사람이 키가 작다고 걱정을 태산 같이 한다고 해서 그의 작은 키가 커지지 않습니다.

걱정 대신 해야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즉 염려, 근심하는 것들)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 마태복음6장33절 -

 

"하나님의 나라"는 그분만을 주인으로 삼아서 그분의 거룩한 통치를 받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이 주신 소명대로 헌신하는 신자의 존재, , 인생 전부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신자가 활동하며 하나님의 빛을 비추어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그가 속한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주인으로 삼은 자들과 그들에게 역사하는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는 영역과 범위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의'(意, plan, think)가 아니라 그분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는 '의'(義 righteousness)입니다.

신자가 정말로 하나님만을 주인으로 삼아 당신의 자녀답게 살고 있다면 그것이 그의 의로움입니다.

신자가 재물을 목표로 살지 않고 재물로 인해 염려하지 않는 삶을 산다면 그것이 그의 의로움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합니다.

내일의 의식주 문제에 대한 염려가 들거든 염려를 없애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그분의 통치)를 소망하며 그분의 나라에선 그분의 의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계속해서 내일의 의식주 문제로 염려하면 사실은 이방인처럼 재물을 주인으로 삼고 있는 불신자인데도 신자인척 하거나, 아니면 잠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잊고 있는 믿음이 적은 자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과 하나님의 자녀들과는 살아가는 방식이 다릅니다.

가치관이 다릅니다.

인생관이 다릅니다.

물질관이 다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심령은 주님께 믿음으로 삶을 맡기고 간구하며 모든 것을 받아 누리는 은혜의 삶입니다.

그의 삶은 하나님께 의지하는 복된 삶이며, 세상 풍조를 따르는 헛된 삶이 아닌 주님의 기쁨이 되는 존귀한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는 참된 신자들에게 이 모든 것, 즉 먹을 것이나 입을 것, 마실 것 등을 더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것은 신자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함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고난 속에서라도 머리터럭까지 세시고 앉고 일어섬을 아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갑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 마태복음10장2931절 -

믿음의 사람은 인생 항해의 선장이신 주님을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그 분에게 갈 길을 맡기며 살아갑니다. 

어떤 풍파와 혼란 속에서도 평안함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미래의 희망을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평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