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해님이 하늘가에 누워 조각난 구름 베개를 베고
낮잠을 자는 거리는 한산하기만 한데요
할 일 없는 바람만이 오가는 사람 곁을 스치며
저물어가는 하루 곁을 지키고서 있을 때
저 멀리서 손수레에 온몸을 의지한
할머니 한 분이 앉은뱅이 햇살 한 줌을 손에 쥐고 걸어오는 게 아니겠어요
반가운 듯 먼저 달려간 바람이 밀어져서인지
거리의 한가운데까지 힘겨운 걸음을 한 할머니는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
열려있는 약국 문을 열고 들어가더니
이내 땡볕에 금 간 주름 하나를 얼굴에 더 그려놓고 나와서는
바로 옆 또 다른 약국 하나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듯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는데요
잠시 뒤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약국 문을 열고 나온 할머니는
잡힐 것 없는 텅 빈 시간을 풀어놓은 길을 따라 조금 더 떨어진 또 다른 약국 간판을 보고는
존재의 흔적만 남은 두 다리에 힘을 모아 그 약국으로 걸어 들어 가더니 이내 나오는 게 아니겠어요
할머니가 왜 저러시나 궁금했는지
누워 자든 해님도 일어나 빼꼼히 내려다보고 있을 때
마지막 남은 약국 하나를 발견한 할머니는
누가 울음을 권한 사람처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우리 영감이 내가 아프다고 해서 사다 준건데 약국 몇군데나 찾아
다녀봐도 자기 약국에서 판 게 아니라고 해서..."
"찾아다니느라 많이 힘드셨겠어요 할머니"
이제서야 제대로 찾아왔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할머니를 보며
"할아버지께서 오셨으면 고생 안하셨을텐데요"
" 영감님은 얼마 전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올 수가 없었다오"
이별을 베고 누운 연고 하나를 건네받은 약사는
"여기 약값 받으세요" 라며
할머니의 손에 만 원짜리 한 장을 쥐여주고 있었습니다
만 원을 들고서 슬픔을 떠나는 눈물처럼
햇살 방울 굴러다니는 거리를 걸어가는 할머니를 보며
약사는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었습니다
한 번도 팔아 본 적 없는 약을 들고서…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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