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과 칼럼

"여보게! 한 달 새경(월급)을 얼마나 주면 될까?"

가족사랑 2023. 1. 8. 07:55

천석꾼 부자 최 첨지는 지독한 수전노에 성격 또한 교활했습니다.

그래서 그 집에서 머슴을 살다 울고 나가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올해도 도저히 견디지 못한 머슴이 가을 추수도 하기 전에 나가 버렸습니다.

늦가을 찬바람은 불어오는데 머슴은 나가 버리고 할 일은 태산 같은데

최 첨지의 성격을 모르는 사람이 없어서 백방으로 찾아 봐도 머슴 구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어깨가 떡 벌어진 총각이 찾아 와 말했습니다.

“나리! 머슴 구한다는 소문을 듣고 왔심더.”

노비가 필요했기에 최 첨지는 너무나 반가워 그의 손을 잡고 사랑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자세히 보니 들창코에 사팔뜨기 숙맥이어서 최 첨지의 잔 머리가 재빠르게 돌아갔습니다.

‘추수만 하고 나면 기나긴 겨울 동안 머슴 녀석 할 일 없이 빈둥거리며 밥만 축낼 터...’

“여보게 우리 집 추수만 좀 해주게. 넉넉잡아 한 달이면 족할게야.”

사팔뜨기 숙맥 총각이 눈만 껌벅 거리고 있자 최 첨지가 물었습니다.

“여보게! 한 달 새경(월급)을 얼마나 주면 될까?”

그 말을 듣고 바보처럼 히히 웃던 총각이 말했습니다.

“나리, 매일 매일 주세요.”

“그게 무슨 소린가? 새경을 매일 매일 달라니?”

숙맥 같은 총각이 히죽 웃더니 말했습니다.

“첫 날은 콩 한 알을 주시구요, 둘째 날은 콩 두 알,

그 다음 날은 전 날의 두 배인 네 알, 그 다음 날은 여덟 알… 이렇게요.”

그 말을 듣고 최 첨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이 녀석 좀 모자라는 놈이구나!’

최 첨지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겉으로는 태연한 척 말했습니다

“그러자꾸나.”

그렇게 말해 놓고 혹시 중간에 나자빠질 새라,

지필묵을 가지고 와서 약정서 두 매를 자세히 써서 각자 손도장을 찍고 한 부씩 나눠 가졌습니다.

숙맥 총각은 힘이 장사라 시원시원하게 일도 잘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문간방에 누워 있는 총각 머슴에게 최 첨지는 콩 한 알을 던져 줬습니다.

‘옛다 콩알~’

그 이튿날도 총각 머슴은 새벽 같이 일어나 황소처럼 일했습니다.

저녁이 되자 최 첨지가 콩 두 알을 주자 숙맥은 고맙다고 두 손으로 받았습니다.

최 첨지는 속으로 희희낙락했지만 표정 관리를 하느라 애를 썼습니다.

11 일째 되는 날 밤, 숙맥은 최 첨지에게 말했습니다.

“나리, 어제 새경이 콩 512 알이었으니 오늘은 1,024 알입니다.

이것 보세요, 한 홉이 넘는데 그냥 한 홉으로 치고 내일은 두 홉이 됩니다."

어느덧 18 일째 되는 날은 한 말 두 되 여덟 홉이 되었습니다.

숙맥이 자루 가득 콩을 받아 가자 최 첨지는 뭔가 낌새가 이상하게 돌아감을 직감적으로 느꼈습니다.

최 첨지는 호롱 불 밑에서 곰곰이 계산하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이럴 수가!

28 일째는 콩이 256 가마, 29 일째는 512 가마, 30 일째는 1,024 가마!

아이고 내가 이 놈한테 당했구나!”

그래서 최 첨지가 사팔뜨기 숙맥 머슴을 불러놓고 약정서를 찢으며 사기를 당했다고 펄펄 뛰었습니다.

숙맥 머슴은 최첨지의 이런 행동에 눈만 껌벅 거리며 쓰다, 달다 말이 없었습니다.

속맥 머슴은 이튿날 아침도 일찍 일어나 억척스럽게 일을 했습니다.

속맥 머슴은 한 달 만에 추수를 다해 곳간에 곡식을 채운 후 슬그머니 사라졌습니다.

며칠 후 일입니다.

최 첨지가 사또의 호출을 받았습니다.

최첨지가 동헌에 다다르자 숙맥 총각이 서 있고, 사또는 약정서를 들고 있었습니다.

최 첨지는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우기다가 사또의 명으로 곤장까지 심하게 맞았습니다.

결국 최첨지는 숙맥 총각에게 논 열 마지기를 떼어 주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미국 월가에서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피터 린치(피터 린치)라는 분이 있습니다.

피터 린치는 78세의 나이로 월스트리트의 전설적인 주식투자가, 펀드매니저, 자선사업가입니다.

그의 위상은 워렌 버핏존 보글벤저민 그레이엄필립 피셔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피터 린치가 인디언과 네덜란드인의 뉴욕 맨해튼 거래를 놓고 ‘복리의 마법’을 얘기했습니다.

1626년 네덜란드인들은 인디언에게 24달러쯤 되는 구슬과 장신구를 주고 맨해튼을 샀습니다.

현재 맨해튼의 높은 땅값과 견줘보면 인디언이 밑지는 거래를 했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피터 린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인디언과 그 후손이 24달러를 매년 8% 채권에 복리로 투자해 돈을 불렸다면 재산이 32조달러(약 3경5천조원)가 된다는 것입니다.

린치가 이 얘기를 했을 때인 1988년 상황에선 맨해튼(당시 562억달러)뿐만 아니라 미국 전 지역을 살 만큼 돈이 불어났을 거란 얘기입니다.

 

- 피터 린치(Peter Lynch, 1944년 1월 19일 출생) -

원금이 100원 있다고 할 때, 투자수익이 연 10%면 1년 뒤엔 ‘원금 100원+투자수익 10원’인 110원입니다.

그 다음 해에 110원 원금에 10% 이익이 나면 ‘원금 110원+투자수익 11원’으로 121원입니다.

이렇게 50년이 지나면 1만1739원이 됩니다.

117배로 늘어난 셈입니다.

이 원금이  100원이 아니고 1천만원이었다면 11억7300만원입니다.

10년을 더 투자하면 30억4천만원이다.

30년 투자에 11억7300만원이 들어왔지만, 10년을 더 투자했더니 30억4천만원이 됐습니다.

숙맥 총각의 새경 콩 알 두알이 30 일째 1,024 가마가 된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복리의 마법’은 어떻게 나오는 걸까요?

이자에 붙는 이자가 기하급수로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1천만원을 연 10% 복리로 투자할 경우, 원금에 붙는 이자는 매년 100만원으로 같지만 이자에 붙는 이자는 해가 갈수록 늘어납니다.

10년 동안 투자했을 때 이자에 붙는 이자는 593만원입니다.

원금에 붙는 이자 합계(1천만원)보다 적습니다.

하지만 투자 기간을 20년으로 늘리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이자에 쌓이는 이자는 3727만원으로 불어납니다. 원금에 쌓이는 이자 합인 2천만원을 크게 웃돕니다.

 

구약성경 열왕기상 17장에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7대 임금이었던 아합 때 일어난 가뭄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합왕은 하나님을 거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아내 이세벨 왕후와 함께 ‘바알’과 ‘아세라’우상을 섬길 때 하나님은 그 땅에 비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정확하게 3년 6개월 동안 이스라엘 땅에는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않아 가뭄이 계속되었습니다.

모든 샘물의 근원이 마르고, 시냇물도 말라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종 엘리야를 살리시기 위하여 그릿 시냇가로 보내시고 까마귀를 통하여 떡과 고기를 날라다가 먹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살리시기 위하여 이번에는 시돈땅의 사르밧 여인의 집으로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엘리야는 말씀대로 시돈 땅으로 가서 사르밧이라는 여인을 만났습니다.

마침 여인은 마지막 남은 양식으로 떡을 만들어 먹고 죽기위해 땔감을 줍고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그 여인을 불러서 말하였습니다. "마실 물을 한 그릇만 좀 떠다 주십시오."

그 여인이 물을 가지러 가려고 하니, 엘리야가 다시 여인을 불러서 말하였습니다.

 "먹을 것도 조금 가져다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여인이 말하였습니다.

"어른께서 섬기시는 주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저에게는 빵 한 조각도 없습니다. 다만, 뒤주에 밀가루가 한 줌 정도, 그리고 병에 기름이 몇 방울 남아 있을 뿐입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지금 땔감을 줍고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가서, 저와 제 아들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것을 모두 먹으려고 합니다." 
엘리야가 그 여인에게 말하였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방금 말한 대로 하십시오. 그러나 음식을 만들어서, 우선 나에게 먼저 가지고 오십시오. 그 뒤에 그대와, 아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도록 하십시오.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비를 내려 주실 때까지, 그 뒤주의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여인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습니다. 과연 그 여인과 엘리야와 그 여인의 식구가 여러 날 동안 먹었지만, 뒤주의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의 기름도 마르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엘리야를 시켜서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똑같은 가루 통인데, 여인의 눈으로 볼 때에는 통에 가루가 한 움큼뿐이었고 엘리야 선지자의 눈으로 볼 때에는 통에 가루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사르밧 여인이 ‘한 움큼 남은 가루로 먼저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서 가져오라’는 엘리야의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여인의 마음 속에 어쩌면 한 움큼 남은 가루로 만든 떡을 엘리야가 빼앗아 먹으려고 수작을 부리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사르밧 여인은 하나님의 종이 한 말씀을 따라서 말씀에 순종하여 가루로 떡을 만들어서 가져다주었습니다.

여인은 그 무엇보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가루 한 움큼을 지키고 싶었을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그 마지막 가루로 떡을 만들어서 그 누구도 주지 않고 사랑하는 아들과 같이 먹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엘리야가 떡을 만들어서 가져오라고 했을 때, ‘가루 통에 가루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저 사람이 거짓말하는 거야. 무엇 때문에 나에게 떡을 만들어서 가져오라고 하겠어? 배가 고프니까 자기가 먹으려고 그러는 거지. 거짓말로 나를 속이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르밧 과부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 대로 엘리야의 말대로 했습니다.

이 여인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이 여인은 자신의 마음을 흔드는 음성에 전혀 동요되지 않고, 아들이 자기도 떡을 먹고 싶다고 우는데도 만든 떡을 아이에게 주지 않고 엘리야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작아도 거룩한 것이 위대합니다.

거룩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코데쉬'(kodesh,  קֹדֶשׁ)는 '잘라냄, 분리함'을 의미하는 말로 '더러움과 분리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사야가 예언자로서 소명을 받을 때 천사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여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이 때 ‘거룩하다’란 히브리어가 <카도쉬קָדוֹשׁ >란 단어입니다(이사야 6장3절).

‘거룩/성결’은 히브리어로 <코데쉬 קֹדֶשׁ>인데 이것은 명사입니다.

이 명사에서 동사 <카다쉬 קָדַשׁ>와 형용사 <카도쉬 קָדוֹשׁ>가 파생되어 나왔습니다.

동사 <카다쉬 קָדַשׁ>는 매우 고귀하여 신성시되는 어떤 영역을 세상의 속된 영역과 구별하고 분리하는 동작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이 단어의 뜻은 기본적으로 ‘분리하다/ separate’가 됩니다.

그러니 ‘거룩하다’라고 말하면 그 속에 ‘분리하다’란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거룩’은 순우리말인데 한자말로는 ‘성결(聖潔)’이고 영어로는 holy라고 합니다.

원래 거룩은 하나님께만 있는 성품으로 모든 피조물과 완전히 다르게 구별되심을 말합니다.

 

‘거룩’이란 헬라어로 ‘하기오스((ἅγιος)’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께 드려져 헌신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질 때부터 거룩은 시작됩니다.

주일은 ‘성일(聖日)’이라고 합니다.

다른 날과 같이 태양이 뜨고 지며, 다른 날과 같이 24시간이 흐르지만 이 날을 성일(聖日)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 믿는 사람을 ‘성도(聖徒)’라고 하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이란 뜻으로, 하나님께 헌신 된 사람이기 때문에 거룩한 무리라는 의미로 “성도”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입니다.

또 성전(聖殿), 성경(聖經), 성물(聖物) 등은 모두 하나님께 드려져 구별된 장소, 구별된 책, 구별된 물건이므로 거룩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 ‘거룩’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이므로 거룩해야 합니다.

교회가 거룩한 공동체로 존립하려면 세속도시의 폭력 문명을 멀리하고 자신을 구별하여야 하여 거룩하신 하나님 쪽으로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세상을 등지고 수도원생활로 나아가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기주의와 폭력을 조장하는 세속국가의 문명적 삶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생명과 정의와 평화’를 일구는 사랑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거룩’은 세상의 나쁜 자본주의가 조장하는 물질주의와 권력지상주의를 버려야 이룰 수 있습니다.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면 누구도 ‘거룩’에 이를 수 없습니다.

자기를 낮추고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살아내는 교회라야 ‘거룩한 백성’으로 인정 받을 수 있습니다.

 

보잘 것 없이 작지만 그것이 하나님께 드려져서 거룩하게 되면 위대한 것이 됩니다.

그 작은 것이 하나님의 손안에서 거룩한 것이 되어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 됩니다.

 

가난한 사르밧 과부의 빵 한 조각을 보십시오!

그 자체는 별 볼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사람을 위해 바쳐서 거룩하게 쓰여 졌을 때 거룩한 것이 되었고 위대한 것이 되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아무리 위대한 것이더라도 자신만을 위해 쓰여진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세상적으로 아무리 초라한 것일지라도 하나님께 드려지게 되면 위대한 것이 됩니다.

사람들이 보이게 하찮게 보여도 그것이 하나님께 쓰여지게 되면 위대한 것입니다.


300명의 군사로 미디안 10만명 대군을 무찌른 기드온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들어 미디안 군대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 내시려고 할 때 기드온은 거절했습니다.

사사기 6장 15절에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작은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 헌신할 때 300명의 군대로 미디안 10만명 대군을 물리치는 놀라운 기적이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바울, 모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나는 아닙니다. 나는 적합하지 않습니다”하고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보잘 것 없었지만 하나님께 드려질 때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려고 미련한자 약한 자를 택하셔서 사용하십니다.

 

작은 아이가 가지고 있던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2마리가 예수님 손에 올려져서 오천명이 먹고도 남는 풍성한 식탁이 되었습니다.

과부는 마지막 남은 밀가루로 떡을 만들어 아들과 함께 먹고 죽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과부는 엘리야의 말대로 떡을 만들어 엘리야에게 먼저 갔다 드렸습니다.

그러자 3년 6개월 동안 계속되는 가뭄 속에서 통에 가루가 떨어지지 않았고 병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기적은 하나님의 손에 올려질 때 일어납니다.

기적은 하나님의 손에 올려질 때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일어납니다. 

오늘 내가 그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평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