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104)-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가족사랑 2022. 2. 6. 15:14

로마서 강해(104)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

- 로마서 12장 14〜17절 -

 

춘추시대 齊(제)나라의 명신으로 靈公(영공) 莊公(장공)을 섬기고 景公(경공)때는 재상이 된 안영(晏嬰)의 이야기입니다. 
안영은 제나라의 명문가 출신으로 아버지 안약의 뒤를 이어 상대부 지위를 이어받았습니다.

그는 걸출한 재상으로 무려 57년 동안 제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했습니다.

안자(晏子)가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재상으로 지내고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검소함과 겸손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30년을 오직 한 벌의 여우 가죽 옷만 입었고, 한 끼에 두 가지 이상의 고기반찬을 먹지 않았고, 아내가 비단옷을 입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또한 충성은 다하였지만 군왕의 명령이 올바를 때에만 시행하였고, 자신의 잘못을 고치기에 힘썼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안자(晏子)는 동시대인이었던 공자(孔子)의 존경도 받고, 관중(管仲)과 함께 제나라를 중흥시킨 현자로 평가받습니다.

  어느날 안영이 외출을 하게 되어 마차를 타게 되었습니다.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부리는 어자(御者·마부)는 마차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경외(敬畏)의 눈빛으로 길을 비키거나 엎드리곤 해서 마치 자기가 위대해진 듯 착각하여 우쭐거리며 마차를 몰았습니다. 
 그날도 마부는 목을 뻣뻣이 하고는 득의만면(得意滿面)한 표정으로 말 채찍을 휘어잡고 마차를 몰고 있었습니다.

마차가 집 앞을 지나간다는 소식을 들은 마부의 아내가 문틈으로 살며시 내다보았습니다.

재상 안영은 다소곳이 앉아 있는데 마부 주제인 남편의 모습은 너무나 역겨웠습니다. 
 그날 저녁 남편이 집에 돌아오자 아내가 느닷없이 이혼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어안이 벙벙해진 남편이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안자(晏子)께서는 키가 6척도 안되지만 재상이 되셨고 그 명성도 자자합니다.

그런데도 의연하고 겸허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8척의 거구로 남의 마부가 되어 우쭐대고 있으니 그런 당신과는 더이상 살고 싶지 않습니다." 
이 말을 듣고 마부는 절제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변한 마부의 모습을 보고 그가 변한 이유를 알게 된 후 안영(晏嬰)은 마부를 대부로 삼았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마부의 의기양양한 모습에서 ‘뜻한 바를 이루어 우쭐거리며 뽐내는 모습’을 뜻하는

득의양양(得意揚揚)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득의양양(得意揚揚)의 속뜻은 ‘자만심에 사로잡히지 말고 매사에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안자의 마부’를 뜻하는 안자지어(晏子之御)라는 고사성어도 전해지는데,

이는 ‘변변치 못한 지위를 믿고 우쭐대는 사람’을 나타냅니다.

 

탈무드에 보면 지혜 있는 사람은 일곱 가지 조건을 갖추었다고 합니다.

첫 째는 자기보다 현명한 사람을 만났을 때에는 침묵하고 듣는다.

두 번째는 남의 이야기에 절대로 끼어 들지 않는다. 

세 번째는 대답할 때에 덤벙대지 않고 언제나 신중히 대답을 한다.

네 번째는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하고, 이치에 맞는 대답을 한다.

다섯 번째는 해야 할 일을 먼저 하고, 미루어도 될 일은 맨 마지막에 한다. 

여섯 번째는 모를 때에는 모른다고 사실을 인정한다. 

일곱 번째는 진실을 인정할 줄 안다.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16절의 마지막 구절  "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는 '자만심에 대한 경고'입니다.

마틴 루터는 이 구절을 '완고하고, 마음이 굳고, 목이 곧은'의 세 가지 형용사를 사용해서 설명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지혜를 통해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늘 열려 있어야 합니다.

이 구절은 독단적 가르침과 완고한 태도로 공동체를 파괴시키는 이들에 대한 준엄한 꾸짖음입니다.

이 구절은 공동체에 대한 최종 권고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은 지혜를 우리 자신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발견하라는 권고입니다.

우리는 공동의 지혜를 발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종종 교회 안에서조차 현대 문화의 개인주의를 재현해서 사람들이 제각각 일을 처리하면 빠르고 효율적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방법은 하나님께서 공동체의 모든 지체들에게 은사를 주셨고, 그들이 어울려 조화를 이룰 때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풍성하게 경험할 수 있으며, 그 사랑이 이 세상에 편만하게 드러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입니다.

지혜는 독자적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통찰력을 통해 수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자랑할 수 없는 곳입니다.

그 이유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우쭐거리며 자랑할 수 없습니다.

교회가 우쭐대지 않을 때 비로소 교회는 세상에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남을 경계하는 일보다 자신을 경계하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스스로를 잘 경계해야 합니다.

남보다 조금 잘 났다고 너무 뻐겨서는 안 됩니다.

능력이 있어도 능력 없는 사람에게 물을 줄 알아야 합니다.

학식이 많아도 학식이 적은 사람에게 물을 줄 알아야 합니다.

재능이 있어도 드러내지 않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식이 가득해도 텅 빈 것처럼 겸손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비를 걸어와도 지나치게 따지지 않는 일도 배워야 합니다.

자만심을 경계하는 일은 바로 자신을 수양하는 일입니다.

 

자존심(自尊心)과 자만심(自慢心)은 다릅니다. 

자존심(自尊心)은 스스로 높이는 마음입니다.

남에게 굽히지 않고 자신의 몸가짐을 스스로 높이고 지키는 마음을 말합니다.

모든 사람은 자존심이 있습니다.

나의 자존심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자존심도 지켜 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자존심은 스스로를 높이는 마음이며 긍정적인 말입니다. 

 

반면 자만심(自慢心)은 자신을 스스로 자랑하며 뽐내는 마음입니다.

주로 나쁜 뜻으로 많이 쓰입니다.

자신이 남들보다 특별하고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자만심입니다.

자만심이 크면 자칫 자신을 스스로 해치기 쉽습니다. 

자만심이 많으면 겸손을 잃을 수 있습니다. 

자만심을 조심해야 합니다.

항상 자만심을 경계해야 합니다.

자만심이 큰 사람을 가리켜 콧대가 높다고 합니다.

얼굴 중에서 가장 높은 곳은 코입니다. 

그러므로 '콧대가 높다'는 말은 잘난 체하고 뽐내는 태도가 있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콧대를 낮추다'는 자신의 자만심이나 자존심을 한풀 꺾는다는 뜻입니다.

누군가와 나를 비교해서 남을 깎아내리고 나를 치켜세워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합니다.

자만으로 차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충고에 대해 닫혀 있기가 쉽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지혜를 통해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늘 열려 있어야 합니다. 평안!

 

미국의 유명한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Bernstein, Leonard)에게 누군가가 물었습니다.

"선생님이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때 가장 까다로운 악기는 무엇입니까?"

이에 번스타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세컨드(second ) 바이올린입니다"

모두가 다 제 1바이올린이 되기를 원할 때,

무대에서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모든 오케스트라를 정면에서 리드하는 것 같은 가장 폼 나는 자리에 있기를 원할 때,

누군가는 바로 그 뒷자리에서, first가 아니라 second 자리에서

조용하게 오케스트라의 밑의 음을 내주는 제 2바이올린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 빌립보서 2장 3∼8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