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103)-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라

가족사랑 2022. 2. 6. 15:10

로마서 강해(103)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

- 로마서 12장 14〜17절 -

 

 

테레사 수녀가 어느 날 한 어린이의 상처를 지극한 정성으로 치료해주고 있을 때였습니다.
인근에 살던 주민이 그 모습을 보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수녀님, 당신은 잘 살거나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 편안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안 드시나요? 이런 삶에 만족하십니까?"
테레사 수녀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허리를 굽히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위를 쳐다볼 시간이 없습니다."

가톨릭의 수녀원장이며, 인도의 사회운동가가였던 테레사 수녀는 1979년 12월10일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저는 우리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청빈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배고프고, 벌거벗고, 집이 없으며, 신체에 장애가 있고,

눈이 멀고, 질병에 걸려서 사회로부터 돌봄을 받지 못하고

거부당하며 사랑받지 못하며 사회에 짐이 되고

모든 이들이 외면하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이 상을 기쁘게 받습니다."

 

마더 테레사(Mother Teresa, 1910~1997)

 

"가난한 사람들은 위대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사랑하되, 딱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그들을 사랑해야 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 속에 예수가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형제요 자매입니다. 그들은 우리와 한 식구입니다. 나환자들, 죽어 가는 사람들, 굶주리는 사람들, 헐벗은 사람들이 모두 예수입니다."
"몸져누운 병자들, 쓸모없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들, 알코올중독자들, 죽어 가는 사람들, 자포자기한 폐인들, 외로운 사람들, 버림 받은 사람들과 불가촉천민들, 나병으로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 인생에서 모든 희망과 신념을 잃어버린 사람들, 그들은 우리에게 위로받기를 기대합니다. 만약 우리가 그들에게 등을 돌린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께 등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죽을 때에 우리가 그들 안에서 예수님을 알아보았는지, 그리고 그들을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 심판받게 될 것입니다."

 

슈바이처(A.Schweitzer 1875-1965 독일 루터교신학자. 철학자. 음악가. 아프리카 선교사. 노벨평화상(1952)수상)가 자기 재산을 모두 병원 유지를 위해 기부했으나, 그것으로는 몰려드는 환자들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각지로 다니며 부득이 모금운동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자기 고향인 알자스에 들르게 되었는데, 이 소식을 전해들은 친지와 동료 그리고 각계 인사들이 기착 역에 모여 `20세기 성자'를 영접할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기차가 도착하자 환영 나온 사람들과 기자들은 1등실 앞으로 우르르 몰려갔습니다. 그러나 슈바이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허둥대는 사람들의 눈에, 맨 뒤 칸 3등 열차에서 내려 초라한 모습으로 플랫폼으로 걸어 나가는 한 남자가 보였습니다. 그가 바로 슈바이처 박사였습니다.  사람들이 달려가서 그를 붙들고 "아니, 박사님! 어째서 3등 칸을 타고 오셨습니까?"하고 원망스럽게 물었습니다. 그 때 슈바이처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4등 칸이 있어야지요. 그래서 3등 칸을 탔습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1965)

 

 

링컨 대통령이 백악관 현관에서 구두를 닦고 있었습니다.

이때 그 옆을 지나가던 비서가 구두를 닦고 있는 사람이 대통령임을 알고 너무나 미안하고 송구스러워 쩔쩔매며 말을 꺼냈습니다.
"각하, 이게 어찌된 노릇입니까?"

"어떻게 된 노릇이라니?"
"일국의 대통령이 천한 사람들이나 하는 구두닦이를 손수하시다니 이게 될 법한 일입니까?"

링컨 대통령이 대답했습니다.
"제임스 군, 자기 구두를 자기 손으로 닦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 이게 무슨 잘못된 일인가?"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사람들이 존경하는 위대한 사람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겸손합니다.

겸손은 성도에게 가장 필요한 덕이며 사람들을 감동하게 하게 합니다.

크리스천의 첫째되는 덕행은 겸손이며,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가까이 하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저명하고 부유하고 신분이 높은 사람들과 사귀려는 욕구가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이런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새번역성경과 영어 NIV성경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고, 비천한 사람들과 함께 사귀고"

"Do not be proud, but be willing to associate with people of low position.

 

'마음을 높은데 두지 말라'는 말씀은 '남들보다 뛰어나서 그 결과로 우월해지기를 바라지 말라'는 뜻입니다. 

열심히 노력하여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결혼을 하게 되면, 그렇지 못한 다른 사람보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또 선천적으로 뛰어난 체력이나 머리를 가진 사람은 남들에게 홈모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이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자기 스스로를 우월한 위치에 두지 말라고 교훈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어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합니다. 

이것이 겸손한 마음이고, 사랑의 마음입니이다.

잘되는 집안은 남편이 아내에게 “나보다 훌륭한 아내가 와서 고생한다!” 고 말합니다.

아내도 남편에게 "당신만큼 훌륭한 사람은 없어요."라고 말합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 너희처럼 귀하고 훌륭한 자식을 주심에 감사해 한다."고 말합니다.

교회에서도 "훌륭한 지체들! 형제자매들을 만나게 하시니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고 말합니다.

이러면 그곳이 천국이다. 볼 때마다 못마땅하게 여기면 겸손한 사랑의 마음이 아니다.

이는 내 몸의 지체 중 어느 하나가 우월 의식을 갖고 제멋대로 한다면 몸의 균형이 깨지게 되고그 결과로 다른 지체가 피해를 입기 때문입니다.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 마태복음 11장29절 -

 

예수님께서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정의하신 것이 "겸손한 마음"입니다.

겸손이란 단어 타페이노스(ταπεινὸς)’는 '낮다'는 뜻입니다.

마음을 아래에 놓는 것입니다.

절을 할 때 가장 높은 머리를 땅에 대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을 낮추는 것입니다.

그것이 겸손입니다.

예수님의 겸손은 예수님의 제자라면 자신의 타고난 기질과 상관없이 한평생 본받아야 합니다.

자기중심적 크리스천의 관심은 오직 자신의 필요와 축복과 행복에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제자는 성령의 인도함에 의해 예수의 제자로 즐거이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지닌 제자로 예수 중심으로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성품의 중심에 겸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고백한 예수님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 빌립보서 2장 5-8절 -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내려오셔서 종의 모습으로 섬김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이신 분입니다.

곧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셨습니다.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는 것으로 끝나신 분이 아닙니다.

자기를 비워서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본체이신 분이 종의 형체를 가지신다는 것이 상상이나 됩니까?

자기를 완전히 비우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인데,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히 자기를 비우셨습니다.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리에서 사람의 자리로 완전히 내려오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서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은 단지 겉모습만 사람의 모습을 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인간적으로 겪게 되는 모든 희노애락, 고통, 슬픔을 모두 다 경험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자신을 낮추신 것입니다.

더 이상 낮출 수 없는 차원까지 자신을 낮추신 것입니다.

그렇게 완전히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자기를 낮추어야 합니다.

지금보다 더 더 자기를 낮추어야 합니다.  평안!

 

「매년 방학이 되면 정신여고 틴 라이프 중창단이

미주 지역을 순회하며 연주 활동을 벌이곤 했습니다.

오래 전 인솔자와 함께 중창단이 미국을 방문하여

고등학교, 교회, 대학들을 순방하며 연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단원은 모두 15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연주가 끝나고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기 위해 차를 타야 할 시간만 되면,

학생들이 앞을 다투어 차 있는 데로 뛰어가 서로 먼저 차 안으로 들어가려고 다투기까지 하였습니다.

이 모습을 그날 동행했던 장로님 한 분이 지켜보고 있다가 인솔자에게 물었습니다. 󰡒

"왜 저 학생들은 차를 탈 때마다 앞을 다투어 뛰어갑니까?"󰡓

인솔자가 대답했습니다.

"자동차의 좌석이 열두 좌석밖에 안 되기 때문에 세 명은 차 바닥에 엎드려야 하는데

서로 먼저 타서 엎드리기 위해 그럽니다."

궁금해진 장로님이 직접 차 있는 데로 가서 확인해 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먼저 뛰어간 두 여학생이 바닥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그 장면은 상상할 수도 없는 감동적인 장면이었습니다.

그날 그 장로님은 정신여고의 중창단을 위하여 15인승 봉고차를 선물로 사주었습니다.

그것은 엎드리고 얻은 선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