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과 칼럼

투정이나 부리는 늙은이로 보지말고 좀 더 자세히 나를 봐 주세요!

가족사랑 2022. 8. 6. 15:41

어느 작은 요양병원에서 한 할머니가 돌아 가셨습니다.
간호사들이 조촐한 할머니의 짐을 정리하다가 한 종이조각을 발견하였습니다.

종이조각에는 깨알같은 글씨로 쓴 글이 있었는데, 그것은 할머니가 그간의 삶을 시(詩)로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간호사님들!!
무엇을 보시나요?
당신들이 저를 볼 때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현명하지 않고 변덕스런 성질과
초점 없는 눈을 가진 투정이나 부리는
늙은 노인으로 보이겠지요?

음식을 질질 흘리고 대답을 빨리빨리 
못하냐고 큰 소리로 말할 때면,
전 정말 당신들이 좀 더 노력 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당신들이 귀찮다고 주먹질을 할 때는 
맞아가면서도 전 정말 안 움직이는
몸속에서 용기를 내어 헛 손 질로나마
싸우고 싶었던 것이랍니다.

댁들이 하는 일도 못 알아차리는 것 같이 보이고, 
양말이나 신발 한짝을 항상 잃어 버리는 늙은 노인으로 밖에는 안 보였나요?

저항(抵抗)하든 말든, 

 

목욕을 시킬때도 

설거지통 그릇 만도 못하고 
댓돌만도 못한 내 몸뚱이에 눈물도 쏟아 냈지만, 

흐르는 물에 감추어져 당신들 눈에는 보이지 않았겠지요!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이 아닌,
그냥 먹여 주는 당신들의 눈에는
가축보다 못난 노인으로 비추어졌던가요?

당신들은 나를 그런 식으로 생각 하시나요?
당신들은 나를 그런식으로 보시나요?

제 팔에 든 수많은 멍자국들이 

당신들 눈에는
도화지 위에 아무렇게나 그려 놓은 

망가진 보라색 도라지 꽃으로 보이던가요?

간호사님들!
그렇다면 이제 눈을 뜨고 그런식으로 
절 보지 말아 주세요.
이 자리에 꼼짝 하지않고 앉아서
나의 의지는 상실 되어 당신들이 지시한 대로 행동하고,

나의 의지가 아닌 댁들의 의지 대로 먹고,
온 몸에 멍이 들어도 아픔을 삭혀야 되었던
제가 누구인지 말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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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열살 어린아이였을 때는 

사랑하는 아버지도 있었고,
사랑하는 어머니도 있었고,
형제들도 자매들도 있었답니다.

열여섯이 되었을 땐

발에 날개를 달고
이제 곧 사랑할 사람을 만나러 다녔답니다.

스무 살땐 

평생의 사랑을 평생 지키기로 약속한 
결혼 서약을 기억하며 가슴이 고동쳤답니다.

스물 다섯살이 되었을땐 

안아 주고 감싸주는 행복한 가정을 필요로 하는 당신들 어린시절과 같이 귀엽던 어린 자녀들이 생겨났답니다.

서른살이 되었을땐
어리기만 했던 자녀들이 급속히 성장해서 서로 오래도록 지속될 관계가 맺어졌답니다.

마흔 살이 되었을땐
어리기만 했던 아들 딸들이 성장해서 집을 떠나게 되었지만,
남편은 제 곁에 있어 슬프지 않았답니다.

쉰(오십) 살이 되었을땐
제 자식들은 직장에서 일을 하고
손주를 제 무릎에 안겨 주며 
그때 비로소 인생의 맛을 느끼는 저 자신을 알게 되었답니다

마침내 어두운 날들이 찾아와
내 옆에 있던 이가 먼저 하늘로 떠나게 되면서 앞으로의 삶을 생각해 보니
두려운 마음에 몸이 오싹해졌답니다.

자녀들이 모두 자기의 자식을 키우고 있는 
그 모습을 보고 난 내가 알고 있던 지난날들과 사랑을 한번 생각해 봤답니다.

나는 이제 늙은이가 되었는데 
참으로 우습게도 늙은이를 바보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들을 보면서 

세월은 참으로 잔인한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봤답니다.

몸은 망가지고 우아함과 활기는 떠나버렸고 한 때는 마음이었던 것들이 

이제는 무딘 돌이 되어 버렸답니다.

시체와도 같은 이늙은이 속에는 
아직도 어린애같은 마음은 살아 있어
가끔씩 다 망가진 이 가슴이 부풀어 오는 때가 있답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 젊은 시절처럼
사랑도 하고 싶다는 꿈도 꾸어 본답니다.

즐거웠던 일들을 기억해 보고 고통스러웠던 일들을 기억해 보면서 

난 지금 다시 한번 삶을 사랑하며 이렇게 살아가고 있답니다

너무 짧고 빨리 지나간 지난날들을 생각하면서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엄연한 현실을  받아 들이기로 했답니다

이제, 사람들이여!
눈을 떠 보십시오!
눈을 떠 보십시오!
투정이나 부리는 늙은이로 보지말고
좀 더 자세히 나를 봐 주세요!

당신의 아버지는 아니나,
아버지일 수도 있고 
당신의 어머니는 아니나,
어머니일 수도 있습니다.

그냥 가축에게 모이를 주듯 하지 마세요.
그냥 먹고 싶습니다.
멍들게 하지 마세요.
가슴속에 멍을 안고 떠나지 말게 해 주세요.
사는 동안 간절한 내 소망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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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의 2020년 고령 인구 비율을 보면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 15.7%입니다.

반면 14세까지의 인구는 12%를 약간 넘는 정도로 고령자를 밑돈 지 한참 됐습니다.

고령자 비율은 2060년에는 44%까지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초고령 사회’ 라는 말이 실감 나는 시대입니다.

인간은 태어났다가, 생(生)노(老)병(病)사(死)를 거치며, 결국은 죽습니다.
늙고 병들어도 돈이 수백억, 수천억 원정도로 많으면 인간의 존엄을 지키면서 외형상 불편함 없이 노후를 보내고 돌아갈 수 있습니다.
큰 부자가 아니더라도 배우자를 포함하여 여러 명의 가족이 함께 살고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평상시 삶을 유지하다가 적당히 병치례 하다가 가족의 돌봄 속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의 노인은 갈수록 줄어듭니다.

이 대자연의 섭리(攝理)속에서 펼쳐지는 한갓 드라마와도 같은 인생사입니다.

우리나라는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집합주의나 가족유대 와 효 사상을 중시해왔기에 대부분의 노인들은 한 가정의 가장, 친족집단의 연장자 한 사회의 지도자와 선각자로서 존경과 보호를 받으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화과정은 유교적 가치관의 붕괴, 지역사회의 유대감 상실 및 대가족제도의 해체 등을 초 래하였고 이와 같은 현상은 지역사회와 가족 내 노인들의 위치와 기능을 상실시키고 분리시기에 이르렀습니다.

더불어 노부모와 자녀가 함께 사 는 것은 노인에게는 자녀에게 부양의 부담을 초래한다는 강박감을 주고, 자녀에게는 가정 내 노부모의 존재로 인한 세대 갈등과 사생활 침해라는 부담감을 가중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노인들도 자녀와의 동거에서 표출되기 쉬운 세대갈등 감정적, 생활상의 불편함 고부 관계 등의 이유로 독립주거를 원하는 노인들이 많이 늘고 있는 추세가 되었습니다.

KIHSA(1998)의 전국노인생활실태 및 복지욕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노인단독가구 노인의 가 건강이 악화 될 경우에는 양로원이나 노인요양시설을 이용할 것을 희망했으며 64세 이하의 비노인 가구 중 노후에 자녀와 별거하겠다는 응답자의 59.1%가 양로시설 또는 요양시설을 이용할 의사를 나타내었습니다.

이와 같이 노인부양 의식 및 태도의 변화와 더불어 노인들 자체의 의식변화는 거주형태의 변화를 초래하였습니다.

노인 부양이 더 이상 가족만의 책임으로 떠맡길 수 없는 사회문제를 유발하여 결국 가족과 사회의 공동대처가 필요한 공공서비스 분야로 대두시키게끔 되었습니다.

 

대부분 노인은 간병 등 병치례, 주거, 장례 등 걱정거리가 많습니다.

노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어느 날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고 또 병치례가 길어지면, 친구도 전혀 없는 낯선 요양원 또는 요양병원에 들어가 생을 마치게 됩니다. 
‘2018년 65세 이상 사망자 중 시도별 요양병원·요양원 평균 재원기간 현황’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1명이 사망 전 요양병원에서는 평균 460일, 요양원에서 904일 입원한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습니다.

보통 3~4년 간은 요양시설에서 보내야 합니다.
사망 전 10년 간 와병 생활을 한 65세 이상 노인의 의료비·요양비는 총 6조 6천억 원으로 1인당 평균 총진료비는 약 5,000만 원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18년 전국 17개 시도별 요양병원·요양원 시설현황을 분석한 결과 현재 전국의 요양병원·요양원은 총 6,880개소로 나타나고 허가 병상․정원수는 약 49만 개입니다.

노인인구의 약 6% 정도를 수용할 수 있습니다.

노인의 경우에는 장기요양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아 수발자의 부담이 매우 높기에 양로원이나 요양병원·요양원 등 이른바 노인보호시설에서 노인에게 만족할 만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양로원이나 요양병원·요양원을 현대판 "고려장" (高麗葬)이라고 불리우는 현실이 눈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노년의 가장 큰 고통은 빈곤, 즉 경제적 문제입니다.

두 번째는 건강, 즉 몸이 아프다는 문제입니다.

세 번째는 역할이 없다는 것, 즉 할 일이 없다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고독과 소외입니다.

자식이 보험이 아닌 세상이 되어 이제는 생존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어르신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은 점점 노인을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대하지 않고 그저 짐으로만 여기고 있습니다.

오늘날 노인은 더불어 살아가야 할 사람이기보다는 부양과 지원의 대상이자 사회적 짐이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서로 같이 살아가는 존재라는 인식을 하지 못하면 우리 사회에서 노인들은 딴 나라 사람들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나는 평생 안 늙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흔히 세월 이기는 장사는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나이듦과 싸워 이기는 장사는 없습니다.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 레위기 19장32절 -

 

 1.  ‘센 머리’ 앞에서 일어나라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라고 합니다.

'센 머리'는 ‘노인’ 또는 ‘늙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센 머리'는 세월이 흘러 자연스레 머리카락이 희게 된 경우를 말합니다.  

연륜이 쌓이면서 희게 된 머리카락에 대해 잠언은 영광의 흔적이라고 말합니다.

"젊은 자의 영화는 그의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움은 백발이니라"(잠언 20장29절)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잠언16장31절)

백발이 성성한 어른, 즉 나이가 드신 노인이 들어오면 즉시 일어서서 예를 갖추어야 합니다. 

2.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얼굴’은 ‘인격’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을 입고 태어난 고귀한 존재들입니다.

노인, 역시 하나님의 형상을 입고 있는 고귀한 존재입니다.

사람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존경받아야 합니다.

특별히 노인들의 얼굴을 보면서 그들의 노고를 기억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노인들의 지난날의 노고를 통해 현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오늘의 번영은 있을 수 없습니다. 

 

노인이 되면 대체로 힘을 쓰지 못합니다.

육신적으로 연약합니다.

몸의 어딘가에 장애를 갖게 됩니다.

노인이 되면 대부분의 노인들은 등이 굽습니다.

자녀들을 뒷바라지하느라고 허리를 피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노년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노인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사회로부터 여러 가지 형태로 따돌림을 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노인들을 ‘늙었다’고 생각하기 보다 ‘낡았다’로 생각합니다.

낡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더 이상 쓸모가 없는 존재로 취급합니다.

현재의 무력함을 보고 무시하면 안됩니다.

과거의 노고를 기억해야 합니다.

노인의 주름살과 거친 피부는 그들의 노고의 이력서입니다.

 

노인공경은 거룩함을 실천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에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애굽기 20장12절).

노인공경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의 기본자세입니다.

노인을 공경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말씀합니다.

노인을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공경하는 것으로 인정됩니다. 평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