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과 칼럼

누나, 내가 3만불이 어딨어!

가족사랑 2022. 8. 2. 09:08

어느 ​가난한 집안에 
장녀로 태어나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남의집 식모로 팔려간 누님의 이야기입니다.

누님은
몇푼 되지도 않은 돈을 받고 살다가 조금 머리가 커지자
봉제공장에서 잠도 제대로 못자면서 죽어라고 일만 했습니다.


누님은 한창 멋을 부릴 나이에도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하나 사 쓰는 것도 아까워 안 사고
돈을 버는대로 고향집에 보내서 동생들 뒷바라지 했습니다.


​누님은

그 많은 먼지를 하얗게 머리에 뒤집어 쓰고 
몸은 병들어 가는 줄도 모르고 소처럼 일만 해서
동생 셋을 대학까지 보내서 제대로 키웠습니다.


​누님은  
시집가는 것도 아까워 사랑하는 남자를 눈물로 보내기도 했지만
이를 악물고 감내하며 숙명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늙어 갔습니다.


​그러다

누님은

몸이 이상해서 약국에서 약으로 버티다 결국은 쓰러졌습니다.

동료들이 업고 병원으로 데리고 갔는데, 위암말기 라는 판정을 들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술을 해서 위를 잘라내면 살수 있다고 했습니다.


​누님은

미국에 살고 있는 큰 동생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동생아, 내가 수술을 해야하는데 3,000만원 정도 든 단다."


동생이 

골프를 치다말고 말했습니다.

"누나, 내가 3만불이 어딨어!" 


누님은  
"알았다, 미안하다"
힘없이 전화를 끊었습니다.

​누님은

변호사 둘째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동생아, 수술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네, 어떡하냐?"

둘째 동생

변호사가 말합니다.

"누나,  요즘 수입이 없어서 많이 힘드네." 

동생은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누님은

막내 동생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사정얘기를 하자 
막일을 하며 힘겹게 사는 동생이 부인과 함께 단숨에 뛰어 왔습니다.

"누나, 집 보증금을 빼왔어, 이걸로 수술 합시다."

누나는 막내의 사정을 빤히 알고 있기에 그냥 두 부부를 부둥켜 안고 울기만 했습니다.


​수술하기 전날 밤,
보호자 침대에서 잠이 든 올케를 바라보던 누나는
조심스레 옷을 갈아 입고 안개속으로 걸어나갔습니다. 

횡단보도에 서 있던 누나는 자동차 불빛속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그렇게 누나는 한많은 이승에서의 삶을 마감했습니다. 


막내 동생은

꿈속에서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토닥이는 누나의 손길이 느껴져 놀라 깨어났습니다.
누나가 있어야할 자리가 비어 있음을 알고 화다닥 놀랐습니다.
막내 동생은

두리번거리다 빈 침대위에 놓여진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몇 줄의 글이 눈에 들어옵니다.

"막내야, 올케야, 고맙다."
"죽어서도 너희들을 지켜주마..
내가 그나마 죽기 전에 보험을 들어 놓아서

이거라도 줄 수 있어서 참 다행이구나"

누님은 이렇게 기구한 운명을 살다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누님의 죽음을 알고도

누님의 장례식에 첫째동생과 둘째 동생은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두 동생들은 

누나의 사망보험금이 상당하다는 걸 알고
막내를 협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와 똑같이 나누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
"법적인 모든 것을 동원하겠다"

그들은 두 형수들과 함께 
욕을 하며 막내 부부에게 위협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막내는

그냥 줘버릴까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누나의 핏값을 두 형으로 부터 지키고 싶었던 막내는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결국, 누나의 상속금으로 인해 이들은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막내 동생의 친구가 변론을 맡아 주기로 했습니다 
몇 개월의 소송끝에 판결을 받았습니다.

판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판결문을 읽어 내려 갔습니다.
그리고 누나의 휴대폰에 저장된 문자를 읽어주었습니다.

판사가 읽는 누님의 문자를 듣자 두 형들은 얼굴을 감싸고  조용히 밖으로 나갔습니다.

 

 


이상적인 가정이란 가족 구성원 하나 하나가 저마다 제자리를 지키며 자신의 의무와 권한을 잘 행사하는 가정입니다.

그런 가정이야말로 건전한 사회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가정이 하나의 사회문제로 논란의 대상이 되고있습니다.

이른바 「가족 이기주의」때문입니다.
1960년대 이후 우리 사회가 산업화로 이행되면서 대부분의 가정이 부부중심의 핵가족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주부, 자녀로 구성된 이 핵가족은 이 황막한 세태에서 발뻗고 편히 쉴 곳은 오직 「내집」뿐이며, 거친 세파를 헤쳐나가는데 힘이 되고 위안 받을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내 가족」뿐이라는 강한 가족 집착의식으로 발전했습니다.
이같은 가족적 이기주의는 국가나 사회의 발전은 커녕 오직 「내가족」부터 생각하기 때문에 형제들 간에, 사촌간에 점점 허물 수 없는 높은 담을 쌓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회에 만연한 불의나 부조리를 보고도 못본체 하는 것은 물론 「내가족」만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형제 사랑은 꿈 속에서나 볼 수 있고, 사촌들은 이웃보다도 먼 남이 되어 버렸습니다.

 

잠언 17장 17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사랑이 언제나 끊어지지 않는 것이 친구이고, 고난을 함께 나누도록 태어난 것이 혈육이다."

 


형제는 친구와는 다른 가치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형제를 친구보다 못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친구와 형제의 가치를 서로 비교 할 수 없습니다. 

친구가 당장 함께 기쁨을 나누고 누리는 관계라고 한다면, 형제는 위급하고 위기에 처했을 때 친구와는 달리, 보다 구체적인 도움을 가져다 줍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에 형제와 자매가 함께 뭉치고 서로 돕습니다. 

피를 나눈 형제애가 무엇인지 그 때 비로소 알게 됩니다. 

 

어려움을 당해 보십시오! 

세상에 손을 벌려도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할 때, 오직 형제들이 나서서 돌아봅니다. 

모든 친구가 다 떠나도 피를 나눈 형제는 끊어지지 않습니다.

곤궁에 처해 도움의 손길을 비칠때 가족의 피같이 끈끈한 사랑이 다시 힘을 얻습니다.
이 모습이 우리가 그동안 지켜왔던 가족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 모습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켜주고 있는 가족과 형제의 모습입니다. 

 

형제와 자매!

하나님께서 위급한 때 서로 돕고 위하라고 만들어준 특별한 분들입니다.

이런 형제, 자매의 관계가 경쟁과 이기심으로 무너지면 남만도 못한 관계가 됩니다.

물론 무조건 가족이라고 손 벌리는 것도 문제입니다.

하지만 형제, 자매의 어려움에 나 몰라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척 특히 가족을 돌보지 않으면,

그는 벌써 믿음을 저버린 사람이요,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나쁜 사람입니다."

- 디모데전서 5장 8절 -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한 자녀 된 제자들을 향해 ‘서로 사랑하라’고 새 계명을 주신 것처럼 한 가정 안에 형제, 자매들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평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