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우리 누님, 장의숙 사모 소천(召天)!
시월의 첫 주일
강릉의 하늘은 참 맑고 눈부셨습니다.
내일은 대체 휴일이라 아내랑 모처럼의 휴일을 집에서 즐기리라 마음 먹고
일찍 잠을 청했습니다.
주일밤
아내랑 윤국이는 텔레비젼에서 나오는 <구해줘! 홈즈> 프로그램에 빠졌습니다.
저는 일찍 자리에 들어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잠결에 세찬 전화벨 소리를 들었습니다.
'벌써 새벽 5시가 되었네!' 하면서 수화기를 들자 다급한 막내의 음성이 쏟아졌습니다.
수화기에서는 막내의 말도 안되는 소리가 장대비처럼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소망의집> 양로원에 계시는 누님께서 돌아가셨다는 겁니다.
"뭐라고?"
"누님께서 돌아가셨대요!"
우리 사랑하는 장의숙 누님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겁니다.
누님은 주일(3일) 저녁 밥을 잘 드시고 그날 밤 11시30분에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나이로 여든살(80세)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도무지 상상이 안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물론 누님께서 천년 만년 사실거라고 생각했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우리들 곁을 떠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이건, 아니지!"
"어떻게 이런 일이…"
그 순간을 기억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합니다
아내는
누님이 치매 등급받아 소망의집 요양원 2층에 올라가 계시면
내년 말에 강릉에서 화성으로 돌아와
향남 근처 근처 아파트에서 누님과 함께 살자고 했습니다.
누님과 저희 부부는 특별한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사업을 하다가 어렵게 되어 누님과 함께 <순복음 오산리 기도원>에 올라갔습니다.
당시 누님도 <영락신학교> 입학 문제로 기도가 필요했었습니다.
<오산리 기도원>에서 기도 중 누나와 만난 자매가 있었는데 후에 제 아내가 되었습니다.
누님은 신학교 졸업 후 전도사의 삶을 사셨습니다.
당진교회에서, 홍광교회에서, 이태원제일교회에서, 그리고 부산영락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하셨습니다.
누님께서 홍광교회 전도사님으로 계실 때
누님께서는 저를 비롯해 동기 여러 명을 추천해 주셔서 교육전도사로 함께 사역하는 은총을 받았습니다.
한때, 누님께서는 저와 함께 번창교회에서 성도의 가정을 심방하시며, 사역을 하셨습니다.
특히 서울가든상가로 이사할 때 입주할 보증금이 부족하자
누님은 거처하시던 방을 빼서 보증금을 넣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 자신은 예배당 한 쪽에 전기장판을 까시고 사셨던 자상한 어머니와도 같은 분이셨습니다.
그 후 누님은
부산영락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창원교회 이정호 목사님을 만나 50대 중반의 늦은 나이에 결혼하셨습니다.
이정호목사님과의 결혼생활은 누님에게 정말 귀하고 복되고 아름다운 시간이셨습니다.
목사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셔서 늘 목사님이 자기를 "이쁜이!"라고 부른다고 좋아하셨습니다.
유럽으로, 미국으로, 한국의 명승지, 그리고 금강산까지 안가본데 없이 다니시며
전도사생활하시면서 누리지 못한 온갖 호강을 다 받으셨지요.
목사님께서 창성교회를 은퇴하신 후에는 <총회>에서 운영하는 <공주원로원>에 입주하셨습니다.
거기서도 잉꼬부부로 소문이 나고 이웃들의 부러움을 한껏 받으셨습니다.
그렇게 십오년 동안을 즐겁게 사시다가 목사님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이후 누님은 목사님과의 추억을 잊지못해 <공주원로원>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누님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수년을 혼자서 그렇게 공주원로원에서 사셨습니다.
누님은 목사님이 쓰시던 전화기를 수 년 동안 가지고 다니셨습니다.
이제 그만 바꾸라고 하여도 "혹시 목사님 친구나 아는 분들이 전화가 올지 모른다."며 그 전화기를 놓지 못하셨습니다.
누님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위해 헌신하시며 극진한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사역지에서도 어머니와 함께 사시며 어머니께 효도하셨습니다.
형제간의 사랑은 더욱 애틋했습니다.
특히 세 살 위 오빠와는 아버지처럼 의지하고, 연인처럼 늘 서로 위하고 아껴주었습니다.
오빠를 위해, 동생을 위해 결혼도 미루고, 미루다 그렇게 오십이 넘은 나이에 늦게 결혼하셨습니다.
동생들 뿐 아니라 조카들까지 일일이 챙기셨습니다.
명절때마다 만나는 조카들을 위해 늘 많은 돈을 은행에세 찾아 놓곤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누님!
이렇게 그냥 준비없이 떠나보내 드려서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네요.
이렇게 떠나실 줄 알았더라면 지난 번 만났을 때
저희 하길리 집에서 하룻밤 주무시게 할건데 그랬습니다.
그 날 일찍 <소망의집>으로 가시겠다고 해서 좀 의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저녁식사라도 하고 가시라'고 붙잡을건데 제가 너무 용기가 부족했네요.
그냥 누님께서 그게 편할것 같아서 보내 드린건데 두고 두고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도 누님!
그 날 옛날 사진들을 보시면서 잠깐이라도 좋은 추억을 가지셨지요?
저는 그 날 누님과 사진을 보며 추억에 잠겼던 순간들을 오래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아내가 사진 속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이 이쁜 사람이 누구예요?"고 했을 때
"그게 나지!"한 누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요.
누님!
이 다음에 천국에서 만나요. 안녕!
-강릉에 있는 셋째 득룡 부부와 윤국이 드림, 그리고 미국 얼바인에 사는 윤민이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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