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12장31절□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미국 뉴저지 주에 못생긴 개가 있었습니다.
털은 거의 다 빠지고 얼굴에 흉터까지 있어서 꼭 괴물같이 보였습니다.
이 개를 누가 버렸는지, 거리를 어슬렁거리고 있던 이 개를 개 수용소(R.S.P.C.A.)에서 잡아갔습니다.
이제 이 개는 거기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호주나 미국에서는 개를 수용소에 보내서 잘 관리하면 나이가 적거나 건강하고 종자가 좋은 놈은 누군가가 데려갑니다.
그러나 이 못생긴 잡종개는 누구 한 사람 거들떠 보지도 않는 천덕꾸러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개 사육사는 이 못생긴 개에게서 특이한 행동을 발견했습니다.
이 못생긴 잡종개가 기러기만 보면 짖어대고 또 달려가서 사정없이 쫓는 것이었습니다.
사육사는 보기에 이 개가 외로워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기러기와 무슨 천적관계를 지녔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무튼 이상하게도 이 개는 날마다 기러기만 보면 짖어대고 달려가는 것이었습니다.
뉴저지 주는 기러기 떼들이 계절을 따라 오고가면서 머무는 철새 도래지였습니다.
그러던 중 사육사가 신문에서 이웃에 있는 비행장이 기러기 떼들로 인하여 큰 골치를 앓는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기러기가 너무 많이 날아와서 비행장까지 접근하는데 기러기들이 비행기의 엔진으로 말려 들어가서 엔진고장을 일으키기도 하고, 유리창에 부딪쳐서 사고를 내기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육사의 머리에 번쩍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이 못생긴 개를 그 비행장으로 보내서 기러기들을 쫓아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사육사는 그 못생긴 개를 데리고 비행장을 찾았습니다.
사육사의 이야기를 들은 비행장측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일년에 3백만달러나 되는 손해를 생각하고 시험삼아 개를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못생겨서 혐오스럽기까지 했던 그 개가 기러기를 쫓는데, 정말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러기만 보면 신나게 달려가서 짖어대니까, 기러기들이 주위를 배회하다가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비행장에서는 몹시 기뻐했고 이 개를 애지중지하게 되었습니다.
비행장에서는 개에게 '터빈'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주고 먹을 것도, 잠자리도 최고급으로 해주었습니다.
비행장은 이 못생긴 개로 인해서 일년에 30억원을 아낄 수 있었습니다.
터빈은 날마다 기러기를 쫓으며 신나게 살았고, 그러자 빠진 털도 새로 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심지어 개로서 표창장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지어낸 이야기 같지만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병들고 못생긴 개에게도 기러기 쫓는 은사가 있습니다.

1. 고린도교회와 은사(恩賜, 카리스마)
은사(恩賜, 카리스마)는 하나님께서 주신 각자 개인의 특기, 혹은 자질을 말합니다.
은사(恩賜) 라는 말은 본래 우리나라에서 옛날 임금이 백성들에게 내려주는 특별한 선물을 가리킬 때 쓰였습니다.
왕이 사약(賜藥)을 내려도 "성은(聖恩)이 망극(罔極)하옵니다." 하고 받았습니다.
이 말은"임금님의 은혜가 너무나 커서 갚을 길이 없사 옵니다" 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은사'는 왕의 왕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으로 말미암아 받은 특별한 선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거저 내려 주신 것은 무엇이든 다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그래서 은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못 생긴 개에게도 은사를 주셨듯이 우리들 모두에게도 각각 은사를 주셨습니다.
'은사'는 헬라어로 카리스마(χάρισμα), 또는 도레아(δωρεά)입니다.
'은사'는 넓은 의미로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시는 모든 은혜를 지칭하며, 좁은 의미로는 사람이 영적으로 거듭날 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해 성도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능력의 영적인 기능을 가리킵니다.
'은사'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 은사를 깨닫고 감사하며 잘 사용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은사를 깨닫지 못하고 사용하지도 않으며 자기에게 없는 것만 불평하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에게도 분명히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쓸 수 있는 은사가 있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 일부는 은사 중에 더 뛰어난 은사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은사를 뽐내기도 하고, 자신 보다 하등한 은사라고 여겨지는 사람은 무시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소유한 은사의 종류를 통해 교회 안에 서열을 정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이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방언의 은사를 가장 높이 평가하고 사모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세는 바울이 볼 때 정말 미련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모든 은사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울 때 필요한 것이며, 누가 더 뛰어난 것도 없고, 낮은 것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은사에 대해 교훈하면서 이적을 일으키고, 병을 고치는, 당시 가장 주목받고 있었을 은사를 뒤에다 놓았습니다.
서로 돕는 것, 다스리는 것은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는 은사인데 각종 방언을 말하는 은사보다 앞에 놓았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한 것은 어느 직분이 더 중요해서라기보다 당시 교회의 위계질서가 무너졌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당시 고린도교회는 사도의 권위를 무시하고, 선지자와 교사의 가르침에 대하여 논쟁을 벌이고, 오직 자신이 받은 은사를 내세우며 서로 대립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직분의 권위를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직분에 우열은 없습니다.
그러나 직분에 대한 위계질서는 존중해야 합니다.
바울이 방언을 마지막에 둔 것은 당시 고린도 교회에서 나타난 가장 많은 은사가 방언이었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이것은 은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함을 가르치기 위해 모든 은사 중에서 방언을 맨 뒤에 언급하게 된 것이라 여겨집니다.

2.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린도전서 12장31절)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 개역개정 4판 -
"오히려 너희는 최상의 은사들을 열망하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더 좋은 길을 보여 주리라."
- 흠정역(欽定譯) 성경, King James Version. -
"But eagerly desire the greater gifts. And now I will show you the most excellent way."
-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
"δὲ ζηλοῦτε τὰ χαρίσματα τὰ μείζονα. καὶ ἔτι καθ’ ὑπερβολὴν ὁδὸν ὑμῖν δείκνυμι."
- 헬라어 성경 -
31절의 말씀은 주의 깊게 읽으면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내용을 품고 있습니다.
31절를 잘 살펴보십시오.
성경은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한 후에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분명히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했으니 13장의 내용은 “더 큰 은사인 사랑”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12장의 마지막 부분은 “더 큰 은사”로 맺지 않고, 한 줄 더 나가 “제일 좋은 길”로 맺고 있습니다.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12장의 마지막 절은 두 개의 문장입니다.
앞의 문장은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입니다.
그리고, 뒤의 문장은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입니다.
상식적으로는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했으면, 당연히 그 뒤에는 “그 더 큰 은사”에 대한 문구가 나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한 후에, “제일 좋은 길”을 보여주겠다고 합니다.
즉 은사 자체를 말하고 있지 않고, 그 은사를 시행하는 방법, 즉 “길”을 말하고 있습니다.
13장의 전체 내용은 사랑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가장 큰 은사”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열쇠역할을 하는 구절은 12장 31절입니다.
12장 31절은 “가장 큰 은사”에 대해 알려주겠다고 말하면서 13장을 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일 좋은 길”을 알려주겠다고 하면서 13장을 열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랑”은 “가장 큰 은사”가 아니라, 이 은사들을 시행하는 “방법론”으로서의 “제일 좋은 길”이 됩니다.
과연 이 해석이 옳은 것일까요?
아니면 그냥 “더욱 큰 은사”라는 말과 “제일 좋은 길”이라는 말이 그냥 똑같은 뜻일까요?
이 부분에서 원문의 정확한 뜻이 중요합니다.
헬라어 성경에서 이 구절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δὲ ζηλοῦτε τὰ χαρίσματα τὰ μείζονα.
“제일루테 데 타 카리스마타 타 메이조나”
너희는 사모하라(2인칭 복수 명령형) - 제일루테(δὲ ζηλοῦτε, 사모)
은사들을(중성 복수명사 목적격) - 카리스마타(χαρίσματα)는 카리스마(χάρισμα, 은사)의 복수형
더 큰(중성 복수 비교급 형용사) - 메이조나(μείζονα)
헬라어 성경으로 이 구절을 보면 “더욱 큰 은사”라는 구절은 사랑을 최고의 은사로 보려고 하는 데에 두 가지 장애물을 던져줍니다.
첫째는 “은사”가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사용되었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더 큰 은사”가 최상급으로 되어 있지 않고 비교급으로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더 큰 은사”가 단수가 아니라 복수라는 점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요?
그것은 이 “더 큰 은사”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은 ‘단수’입니다.
이 말(더 큰 은사)이 “사랑이라는 은사”를 받는 것이라면 복수로서의 “더 큰 은사들”이 아니라, 단수로서의 “더 큰 은사”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 구절은 정확하게 복수명사입니다.
즉, “더 큰 은사”가 아니라, “더 큰 은사들”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오히려 너희는 최상의 은사들을 열망하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더 좋은 길을 보여 주리라."(한글킹제임스)
"But eagerly desire the greater gifts. And now I will show you the most excellent way."(NIV)
"But covet earnestly the best gifts: and yet shew I unto you a more excellent way."(KJV)
이 '은사'는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어떤 '은사들'을 받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것이 최상급이 아니라 비교급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것은 여러 은사들 중에 “최고의 은사로서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은사들보다 더 큰 어떤 종류의 은사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이 구절은 최고의 은사로서의 사랑이라는 한 은사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열이 있는 여러 은사들 중에는 더 큰 은사들과 더 작은 은사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더 큰 은사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그렇다면 12장 31절이 말하고 있는 이 “은사들”과 “더 큰 은사들”은 무엇일까요?
이 구절을 정확하게 읽어내기만 하면, 문맥 안에서 이 부분들은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매우 평이한 문장입니다.
바로 앞에 은사목록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사도, 선지자, 교사, 능력, 병고치는 은사, 돕는 은사, 다스리는 은사, 방언의 은사.....”
이렇게 쭉 은사목록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12장 31절이 말합니다.
“너희들은 이 은사들 중 ‘더 큰 은사들’을 사모하거라. 너희가 그렇게 한다면,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도 가르쳐 주겠다”
"But eagerly desire the greater gifts. And now I will show you the most excellent way."
12장 31절의 말씀은 이런 뜻입니다.
즉, 이 구절의 “더욱 큰 은사”는 사랑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앞에 나온 은사목록들 중 우위에 있는 은사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보통 성경에서 은사목록 중 중요하게 여김을 받는 은사들은 “말씀 은사들”입니다.
그러므로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는 말은 말씀과 관련된 은사들을 귀히 여기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여기에 이어서 다음 구절이 더해집니다.
“내가 또한 이 은사들을 잘 시행하기 위한 가장 좋은 길도 가르쳐 주겠다!”
그러므로 13장의 사랑에 관한 내용들은 사랑이 최고의 은사이기 때문에 언급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언급되는 이유는 사랑이 이 은사들을 시행하는 “가장 좋은 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13장에 나오는 말씀들도 좀 더 명확해집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지식을 알고......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13장 1절과 2절에 나오는 “사람의 방언”, “천사의 말”, “예언하는 능”....이것들이 모두 무엇입니까?
이것들이 바로 은사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사랑이 무슨 기능을 하고 있습니까?
사랑이 은사 중의 하나로 거론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다른 은사들을 사용하는 데 있어 꼭 필요한 ‘방법론’으로 다루어지고 있습니까?
사람의 방언이라는 은사에도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천사의 말이라는 은사에도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예언하는 능력의 은사에도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이 은사들을 행할 때 무엇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가 된다고 하였습니까?
사랑입니다.
즉, 사랑이란 이 은사들을 행할 때에 필연적으로 동반되어야 할 것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사랑이 최고의 은사로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모든 은사들이 사랑 안에서 시행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12장과 13장에 걸쳐 강조되고 있는 내용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오늘날의 우리 교회들처럼 문제가 많았습니다.
바울은 이런 성도들에게 12장 31절 말씀을 통해서 두 가지를 가르쳐 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은사들 중에 더 큰 은사들을 더욱 사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 은사들을 시행할 때에 반드시 “사랑이라는 제일 좋은 길”로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은사의 종류가 아닙니다.
사랑은 “은사들을 시행하는 제일 좋은 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항상 강조되고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 요한복음 13장14∼15절 -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주신 은사는 모두 다 소중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형제 사랑과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해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은사의 내용도 다양합니다.
은사의 분량도 다양합니다.
내가 받은 은사로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나의 달란트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손에 가진 것이 무엇입니까?
혹 여러분 중에 나는 능력도 없고 가진 것도 없다고 하는 분 있습니까?
우리에게는 건강이 있고, 시간이 있습니다.
더구나 재능이 있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물질이 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하나님은 부자보다 오히려 가난한 자를 들어 쓰십니다.
하나님은 강한 자보다 오히려 연약한 자를 들어 쓰십니다.
하나님은 고난과 질병의 고통을 당한 사람을 크게 사용하십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 고린도전서 1장 26∼29절 -
오병이어의 기적은 한 소년이 바친 작은 도시락을 통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크던 작던 은사를 주셨습니다.
잘하는 것이 은사입니다.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잘하는 것을 발견하고, 잘하는 것을 하십시오.
좋아하는 것을 할 때 힘들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을 많이 하는데도 잘 지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타고난 체력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좋아하면 지치지 않습니다.
몸도 잘 망가지지 않습니다.
병들고 못생긴 개에게도 기러기를 쫓는 은사가 있습니다.
나에게도 분명히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쓸 수 있는 은사가 있습니다.
은사를 깨닫고 그것을 겸손하게 쓰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터빈과 같은 복을 약속하십니다.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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