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강해

고린도전서 강해(40) -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가족사랑 2026. 1. 21. 15:03

고린도전서11장3∼16절□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니라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가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셨기 때문이니라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

 

 

 

「초대교회의 예배」

전통 유대교 회당의 예배에서는 여자와 남자가 한 공간에서 예배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정통 유대교 회당에서는 여자와 남자가 각각 다른 방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오늘 읽은 고린도전서 11장에서 보면 고린도교회의 당시의 예배 모습을 보면 유대 회당의 예배와 달리 파격적으로 남자와 여자가 한 공간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한 방에서 함께 예배하는 것을 넘어, 여자가 기도를 인도하고 설교하는 지도자의 역할을 감당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당시 시대상에 비추어 보았을 때 파격적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리스도인 남녀가 한 방에서 예배하고 복음을 전하는 상황이 교회 밖에 알려지면서 세상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당시의 편지들을 살펴보면 그리스도인들은 혼음하고 자녀를 먹는다 하는 말도 안 되는 내용이 적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들끓는 비난 속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계명을 지키려 애쓰라고 독려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웃 사랑의 이중계명을 지키기 위해 다만 ‘여자는 머리에 수건을 쓰라’, 즉 '복장을 단정히 하라'고 권고했습니다.

바울이 여성도들에게 머리에 수건을 쓰게 한 것은 외부에서 교회를 비판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 더 나아가 교회 공동체를 손상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바울이 살던 시대 상황에서 머리에 수건을 쓰는 것은 복음을 온전하도록 하는 한 방법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여자 성도들이 공 예배에서 기도나 예언을 할 때에 머리에 너울을 쓰고 해야 한다는 점을 주지시키고 있습니다.

유대 그리스도인은 여자가 외출할 때에 머리를 덮는 유대인의 관습을 계속해서 준수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그리스에서도 양갓집 규수(閨秀)들이 이와 같이 했습니다.

요즘 아랍세계에서 쓰는 여인들의 복장을 생각하면 쉽습니다.

(1)부루카(burka)-전신을 가리고 눈 부분에는 망사 형태.

(2)니캅(niqab)-전신을 가리고 눈부분만 가리지 않는 옷.

(3)차도르(Chador) -전신을 가리고 얼굴만 내놓는 복장,

(4)히잡(hijab)-두건 모양으로, 얼굴만 내놓는 것으로 상체만 가리는 것.

아마 고린도교회 초기에는 일부 유대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여자들이 관습대로 머리에 너울을 쓰고 예배에 참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떠난 후에, 일부 열심주의자들의 영향과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여자들이 예배 시에 너울을 벗어버린 것 같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여자들도 다른 모든 교회처럼, 예배 때에 머리에 너울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라고 지시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1. 머리의 비유(34절)

 

바울은 2절과 3절에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자신의 가르침을 잘 따르고 있는 점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그러나 이러한 칭찬은 대부분의 고린도교회 성도들에 대한 것이었지, 그들 중에 바울의 가르침을 벗어난 사람들에 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자기의 가르침을 벗어난 사람들에 대해서는 4∼6절에서 충고를 하고 있습니다.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니라”

그리고 그는 이 충고를 하기 전에 먼저 3절에서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고,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며,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사용되고 있는 ‘머리’라는 말은 켑할레(κεφαλη)이라는 말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1장에서 포도원 농부 비유‘하실 때 이 단어가 쓰여졌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마태복음 21장42절)

창세기 2장에는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갈비뼈를 빼내서 여자를 만드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 창세기 2장18∼23절 -

 

바울은 여기에서 이러한 의미로 여자의 머리(기원)가 남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교는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여자는 남자에게 복속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7절에서 남자를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3절에서 남자는 여자의 머리라고 말하면서 머리에 너울을 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동시에 11∼12절에서는 남자도 여자(어머니)에게 태어난다고 말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남녀의 차별이 사라졌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창세기 2장에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세기2장18절)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 '돕는 배필'을  “여자는 남자를 돕는 사람 또는 조수” 정도로 생각합니다.

'돕는 배필, 에제르 케네그도(אֶזֶר כְּנֶגְדּוֹ)'라는 히브리어는 단순히 돕는 조수나 하인이 아니라 '마주 보는 자'로서 '상응하는 강력한 동반자'를 의미합니다.

남성과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며 함께 사명을 감당하는 상호보완적인 존재를 뜻합니다.

남자를 돕는 여자의 위치로서의 돕는 자, 돕는 배필이라는 전통적인 이해를 뛰어 넘습니다.

창조질서에 나타난 남녀의 관계성은 어떤 사람은 주된 존재, 상대편은 이차적, 보조적 도움을 주는 보조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도와준 것 같은 "적극적으로, 필수적으로 뛰어난 돕는 도움"을 뜻합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양편의 대등, 동등성과 상호성의 의미가 강하게 암시되어 있스니다.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을 도와주는 하나님의 도움같이" 소극적이 아닌 적극적이고 절대적이며 필수적인 도움을 주는 동반자의 관계를 말합니다.

“배필(配匹)”이라는 말은 그 의미가 짝을 맞출 때 두 편이 꼭 맞는다는 말로 두 편의 대등성과 상호성의 의미가 강하게 암시되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돕는 배필"이라는 말은 창조질서에서 남녀의 관계성은 보조적인 관계가 아니라, 동등성과 상호성의 관계를 나타냅니다.

소극적이 아닌 하나님의 도움같이 적극적 필수적 도움을 주는 동반자, 파트너십(partnership) 관계입니다.

 

 

2. 머리에 너울을 쓰는 문제(4∼10절)

유대 회당의 예배에서는 남자들만 기도하고 설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남자들은 구약의 전통을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의 표현으로 머리에 덮개를 썼습니다.

"너는 아론의 아들들을 위하여 속옷을 만들며 그들을 위하여 띠를 만들며

그들을 위하여 관을 만들어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되"

(출애굽기28장30절)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열왕기상19장13절)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아담이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 3장2324)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지닌 이유로 인해서, 특별히 덮개를 쓰지 않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남자들이 머리에 무엇을 쓰게 되면, 그리스도의 영광을 덮는 것이 되어, 머리를 욕되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자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5∼6절을 보십시오.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니라”

유대회당에서 여자들은 기도나 설교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인해서 신약 시대에는 여자들도 기도나 예언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회에서는 여자들도 예배에 함께 참석해서 기도도 하고, 또 예언도 할 수 있었습니다.

5절은 당시에 고린도교회에서 여자들이 예배에 참석해서 대표 기도나 예언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신약 시대의 예언은 주로 성령의 영감에 호소하여 구약 성경을 해석하면서 성도들을 권면하는 것으로 지금으로 말하면 설교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바울은 여기에서 여인들이 예배 때에 머리에 너울을 쓰도록 권고하고 있는 것일까요?

당시 남성 예언자, 오늘날의 설교자들 중심으로 돌아가던 고린도 교회 안에 갑자기 성령 충만한 여성 예언자 집단이 등장했습니다.

이 혜성같이 등장한 능력 충만한 여성 그룹 때문에 그동안 교회 안에서 기득권을 갖고 있던 남성 설교자들은 적잖이 당황하게 되었고 일종의 남녀간의 대립 상황이 펼쳐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알게 된 바울은 일단 여성 예언자 그룹들에게 일종의 자제를 권했습니다.

이것은 여성들의 활동을 금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남성 지도자들이나 여성 지도자들 모두가 서로 대립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힘을 모으게 하기 위한 의도였습니다.

한마디로 바울은 나중에 등장한 여성 예언자들에게 남성들을 무시하면서까지 마구 설치지 말라고 권고하면서 교회 전체의 평화를 유도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 바울은 여성들이 남자들의 권위를 무시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머리수건’을 꼭 쓰도록 명령한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여성비하가 아니라 교회의 평화를 위한 권고였습니다.

 

3.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11∼12절)

11∼12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바울은 앞에서 남자가 여자의 머리라는 원칙에 근거해서 여인들에게 공 예배 때에 머리에 너울을 쓸 것을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남자들이 자신의 말을 오해하고 여인을 자기에게 종속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 안에서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또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여자가 남자에게 종속된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서로 동등된 존재임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여자가 남자로부터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후의 모든 인류는 여인의 태를 통해서 태어나게 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창세기를 근거로 해서 남자와 여자가 모두 다 하나님께로부터 지음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남자나 여자가 서로를 향해 주권을 행사하려고 해서는 안되며, 둘 다 하나님께만 순종해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없다고 선언합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라디아3장28절)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여자가 일방적으로 남자에게 종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가 모두 다 하나님께 속하고 또 예수 그리스도께 종속된 사람들입니다.

13∼15절에서 바울은 다시 한 번 상식에 호소하여 고린도교회의 여 성도들에게 공적인 예배 시에 관습을 따라서 머리에 너울을 쓸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가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셨기 때문이니라
"

여기에서 바울은 사람의 본성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남자는 본성적으로 긴 머리보다 짧은 머리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남자는 본성적으로 긴 머리를 하고 다니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남자의 본성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며, 따라서 남자가 그 본성을 따라 행동하는 것이 옳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러한 일은 문화와 관습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역에 따라서 이러한 관습이 다를 수도 있고, 또 오늘날에는 남자들도 긴 머리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여인들도 짧은 머리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부분을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남자들이 여자처럼 긴 머리를 하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자들이 길고 아름다운 머리를 가지고 있으면 그것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여자들에게는 길고 아름다운 머리가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바울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본성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며, 따라서 그 본성을 따라 행동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창조 질서에 따라 '예배드릴 때 순종의 표시인 수건을 여자는 써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또한 성경은 '남자나 여자나 주 안에서 하나'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교회의 질서를 위해서 자제하고 절제해야 한다는 정신을 배울 수 있습니다.

신앙 안에서의 관계는 질서 속에서 이뤄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질서를 위한 관계는 우열의 표시가 아닙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믿음 안에서 서로 협력하고 존경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돕고 보완하는 존재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교회의 모든 성도는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집중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예배시간에 여자가 머리에 너울을 썼느냐 아니냐가 아닙니다.

남자들이나 여자들이나 사람에게 집중하지 않고 하나님께 집중하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를 드리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바울 당시의 여자들은 머리에 너울을 쓰고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옳았습니다.

지금도 성도들이 교회에 올 때는 단정하고 깔끔하게 차려입는 것이 사회 통념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교회의 중심, 예배의 중심은 항상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덕을 세운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면에서 복장을 선택하면 됩니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예배드리는 것이 조금이라도 방해가 된다면 그 사람의 믿음을 폄하하지 말고 연약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배려해 주어야 합니다.

다른 성도들을 배려할 때 아름다운 예배가 드려집니다. 평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