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강해

고린도전서 강해(37) -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가족사랑 2026. 1. 1. 08:50

고린도전서10장18∼30절□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냐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냐?

 

고린도는 그리스의 중심 도시 중 하나로, 날마다 온갖 신전에서 제사가 있었습니다.

제사가 끝난 고기는 시장으로 흘러나와 판매되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합니다.

우상에 바쳐졌을지도 모르는데, 시장에서 파는 고기를 먹어야 하는가? 혹은 남의 집에 초대 받았을 때, 고기가 나왔으면 먹어야 하는가?

고린도 교인들은 이런 문제를 가지고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오늘 성경은 우상의 제물에 관한 최종 결론입니다.

'우상제물 사용 설명서'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여러 경우에 어떻게 고기를 취급해야 하는지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고린도에서는 대부분 생일이나 연회 등 축하 잔치는 도시의 집이 작기에 신전에 있는 식당을 빌려서 합니다.

만약 이런 행사를 원천적으로 거부하면 사회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다른 여러 경우를 듭니다.

시장에서 판매하는 고기는 우상의 제물도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는 먹어도 괜찮습니다.

굳이 이거 우상의 제물입니까? 하고 묻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경건한 유대인은 물어봤을 겁니다.

고기 종류는 뭐냐? 혹시 돼지고기 아니냐? 피는 섞이지 않았냐? 우상 신전에서 나온 것 아니냐? 등등을 물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과는 다른 자유를 누렸습니다.

고기는 죄가 없습니다.

26절입니다.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만물은 다 주의 것이고, 그 자체로 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 믿음이 그리스도인에게 대단한 자유를 가져다줍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음식과 관련하여 부정이나 정결의 구분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유대교 구전 전통, '미쉬나(משנה)'에서는 부정과 정결을 구분하는 데 엄청난 에너지를 쏟고 있습니다.

※ 미쉬나(히브리어: משנה, 반복하다)는 히브리어 3대 고전인 ‘히브리 성서(구약 성서), 미쉬나, 탈무드’ 중 하나로, 바리새파 랍비들을 중심으로 유대문화에 구전되는 토라(율법)을 기록으로 옮긴 문헌으로 총 6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의 장은 농업, 안식일, 가족법, 민형사법, 제사, 정결법 등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다.

바울은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친구가 자기 집이든 신전 홀이든 초청하였습니다.

거기에 고기가 나왔습니다.

그때는 거절하지 말고 대접한 고기를 먹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주인이나 어떤 사람이 이것은 제물이라 말하면 그때는 먹지 말라고 합니다.

그것은 고기 자체가 잘못되어서가 아닙니다.

이런 말을 듣고도 제물을 먹으면 상대방이 자기를 평가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도 우상과 교제하는구나?"

이런 판단을 받지 않도록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는 어떤 것이든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다른 사람이 오해하고 자기를 판단한다면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23절입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고린도 교회의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가하다-허용된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허용되지만 그것이 공동체에 유익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덕이 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그때는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자신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데 있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공동체 안에서 누리는 기쁨과 평화입니다.

그 기쁨과 평화를 깬다면 나는 내 자유를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24절입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자유는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는 이기적인 자유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을 스스로 절제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의 율법을 실천하는 자유입니다.

내가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은 죄가 되지 않을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지 못하고 교회에 덕을 세우지 못한다면 그 모습은 사랑의 율법을 지키지 못한 것으로 죄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술 담배를 할 자유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 때문에 내가 판단을 받는다면 나는 영원히 술 담배를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성도들이 이 모습으로 인해 실족한다면 역시 술 담배를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나의 유익보다 남의 유익을 구하는 것은 시대에 맞지않는 고리타분한 태도 같아 보입니다.

오늘날의 치열한 경쟁과 서열 사회는 자기 유익을 위해서 살도록 부축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여기에서 뛰어 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남의 유익으로 향해야 합니다.

최소한의 자신의 몫을 이웃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 노자(老子) -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중국의 노자(老子)는 상사(上士), 중사(中士), 하사(下士)에 속한 사람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상사(上士)에 속한 사람이란 도를 알고 그 도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상사에 속한 사람이라 했습니다.

중사(中士)에 속한 사람들이란 그저 적당하게 살고 필요하고 이익이 되는 것은 찾고 불필요하고 손해가 되는 것은 무조건 버리고, 달면 먹고 쓰면 뱉어버리는 매우 이기적인 사람들을 가리켜서 중사에 사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하사(下士)에 속한 사람이란 대다수의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할 말인지 아닌지도 분별하지 못하고 말을 함부로 해버리는 사람들, 아무리 중대한 얘기도 아무렇게나 들어 버리고 값없이 웃어버리는 사람이 여기에 속한다고 했습니다.

 

- - 베이컨 (Francis Bacon) -.

 

프란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 1561-1626)은 “이 세상에는 크게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는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요, 둘째는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며, 셋째는 꼭 있어야 할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은 늘 남에게 피해만 주며 사는 사람이어서 거미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는 항상 함정을 파놓고 남을 끌어들이고 남을 희생시키고 죽이면서 자기만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수학 공식으로 따지면 마이너스(minus)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은 남에게 피해도 유익도 안 주는 자기 위주의 사람이어서 개미와 같은 사람입니다.

개미는 부지런하고 근면하지만 자기만을 위해 일하고 이기적으로 삽니다.

열심히 일하며 살지만 자기만을 위해 삽니다. 

수학 공식으로 따지면 이콜(equal), 본전치기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 꼭 있어야 할 사람은 남을 도우며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는 사람이어서 꿀벌과 같은 사람입니다.

열심히 일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협력할 줄도 알고 질서 있게 일하고 타인에게 도움도 줄줄 아는 사람이니다.

수학공식으로 따지면 플러스(plus)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 -,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1813-1855)도 사람을 세 종류로 분류했습니다.

1층에 사는 사람, 이 사람은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욕망대로만 살아가는 사람, 이웃도 모르고 오직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2층에 사는 사람, 이 사람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은 지키면서 양심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3층에 사는 사람, 다른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신본주의로 살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 보려고 힘쓰는 사람입니다.

 

 

 

도를 알고 그 도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 상사(上士)에 속한 사람'이 되십시오.

남을 도우며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는 꿀벌과 같은 ' 꼭 있어야 할 사람'이 되십시오.  

다른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 보려고 힘쓰는 '3층에 사는 사람'이 되십시오.

 

강은 자신의 물을 마시지 않습니다.

나무는 자신의 열매를 먹지 않습니다.

태양은 스스로를 비추지 않습니다.

꽃은 자신을 위해 향기를 퍼트리지를 않습니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를 돕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인생은 내가 행복할 때가 좋습니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행복해 할 때입니다.

유대 격언에는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향수를 뿌리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향수를 뿌릴 때 자신에게도 몇 방울의 향수는 떨어집니다.

우리가 이웃을 위해 사랑이 가득한 정열적인 활동을 할 때 우리의 육체는 피곤을 느낍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하늘 높이 치솟게 됨을 경험하게 됩니다.

헬렌 켈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산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그런데 남을 위하여 산다는 것은 더욱 신나는 일이다. ”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나서 타인의 인생을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나 없는 너는 존재할 수 없고 너 없는 나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이웃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약자의 눈물을 닦아 주기 위해 수고하는 인생은 진정으로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예수님의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들은 그 사람이 가진 것을 몽땅 빼앗은 다음, 그를 때려서 거의 죽게 만들어 놓고 달아났습니다.

이후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피해서 그냥 지나갑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의 마음 안에는 강도만난 사람을 바라보는 측은한 마음이 보입니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의 마음입니다.

그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사람에게 다가가서, 그 사람의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후에, 자기가 타고 온 나귀에 그를 태워, 근처 여관으로 데려가서 밤새워 보살펴 주었습니다.

다음날, 그 사마리아 사람은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부탁하기를 ‘이 사람을 잘 돌보아 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모두 갚아 드리겠소.' 하고는, 길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하여 의롭다 여김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언약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우리의 믿음의 공로가 아닙니다.

우리가 의롭다함을 얻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우리에게 이웃이 되어주신 예수님의 시선을 놓치면 안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중심적 관점이 아니라 어떻게 참된 이웃이 될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발견하고 참된 길을 찾아 떠나는 순례자들입니다.

주어진 순례길을 가면서 예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잊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의 시간은 저마다 다르고, 그 시간이 다 한정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향해가는 순례의 길에서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도 함께 지녀야 합니다.평안!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 누가복음 10장2537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