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0장1~13절□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스케이트나 스키를 배울 때 기본적인 동작을 어느 정도 익힌 후에는 가장 먼저 넘어지는 법을 배웁니다.
스케이트나 스키를 배우다 보면 여러 번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한 번도 안 넘어지고 훌륭한 선수가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대부분은 넘어지면서 배우게 됩니다.
그것이 기정사실이기 때문에 잘 넘어지는 법부터 배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잘 못 넘어지면 크게 다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넘어지더라도 잘 넘어지거나 다치지 않고 넘어지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태권도나 합기도나 레슬링이나 그 외에 운동을 할 때에도 낙법(落法)을 배웁니다.
낙법(落法)은 넘어지거나 떨어질 때 적절한 자세를 취해 충격을 완화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다치지 않고 넘어지는 법을 말합니다.
싸우거나 발을 잘못 디뎌 땅바닥을 구르게 생겼을 때 충격을 최소화시키는 방법입니다.
높은 곳에서 땅에 떨어지게 될 때 다치거나 아프지 않게 떨어지는 법을 배워 놓으면 갑작스럽게 넘어지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위기를 넘길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넘어지지 않고 시험에 들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넘어지고 시험에 드는 일을 통해서 더욱더 성장하고 발전하며 새롭게 된다면 그것은 굉장히 유익합니다.
그래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실패를 통해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큰 것을 배우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출애굽 세대의 예를 들면서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의 열광주의자들은 세례와 성만찬을 하나의 마력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세례와 성만찬에 참석하면 자동적으로 구원이 지탱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세례를 받고 성만찬에 참여하면, 어떤 삶을 살아도 영혼의 구원에 지장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방종한 삶에 빠져서 위태한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세례와 성만찬에 참여한다고 해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유지되지 않으면, 멸망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말세를 사는 우리를 깨우치기 위한 본보기」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과거 역사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름과 바다로 세례를 받아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다 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관리하고 세우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지 않으면 멸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5절과 6절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이들이 구원받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구름과 바다로 세례를 받아 애굽의 속박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반석에서 물을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고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세우지 못함으로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을 가리켜 '우리의 본보기가 되는 사건'이라고 하였습니다.

「첫째, 우상숭배 사건」
7절을 보십시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은 구약의 출애굽기 32장1∼6절에 기록된 사건을 말합니다.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 이후에 빨리 내려오지 않자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습니다.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가리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하나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이방인들이 신을 섬기는 방식대로 먹고 마시며 뛰어 놀았습니다.
이 사건의 결과로 이들 중에 약 삼천 명이 죽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상숭배를 얼마나 미워하시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상숭배는 십계명 가운데 제 2 계명을 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상은 인간의 사색과 상상으로 하나님을 만들어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이 역사적 문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게 된 것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잠시 말씀하지 않으면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을 만들고 자기 방식대로 이해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바울은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상황과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방인들의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둘째, 음행 사건」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여기서 바울이 표본으로 제시한 간음 사건은 민수기 25장1∼9절에 기록된 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의 수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재판관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바알브올에게 가담한 사람들을 죽이라 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 문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눈앞에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의 형제에게로 온지라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 가운데에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사에 들어가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었더라"
이 음행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싯딤이라고 하는 곳에 머물러 있을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모압 여자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바알브올의 제사에 초청하였습니다.
이 바알브올은 처녀들의 행음을 통하여 숭배되었던 모압 족속의 신이었습니다.
이 음행 사건으로 인하여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습니다.
이 사건 역시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삶과 연관된 사건이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 역시 고린도에 있었던 비너스 신전에 참여하여 다른 여자들과 성관계를 가졌습니다.
문제는 이 행위를 비너스에게 드리는 제사방법으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도 이러한 이방신전에 참여하면서 간음을 행하였습니다.
오늘날 신자들이 다른 남자나 여자와 관계를 가지고 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이상하게 오늘날 성도덕에 대한 분위기는 남녀 간의 성관계는 사랑의 표현일 뿐이지 죄악으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는 1980년에「제 3 물결」을 출판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미래 사회는 전통적인 가치가 붕괴되고 자유로운 성생활을 강조하는 시대적인 분위기로 흘러가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전통적인 성도덕이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남녀의 결혼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남자가 남자와 결혼하고, 여자와 자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룹니다.

「셋째, 하나님을 시험한 사건」
9절을 보십시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이 말씀은 민수기 21장1∼9절에 기록된 사건입니다.
"네겝에 거주하는 가나안 사람 곧 아랏의 왕이
이스라엘이 아다림 길로 온다 함을 듣고 이스라엘을 쳐서 그 중 몇 사람을 사로잡은지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만일 이 백성을 내 손에 넘기시면 내가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리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가나안 사람을 그들의 손에 넘기시매
그들과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니라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호르마라 하였더라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에돔 땅을 둘러서 조금 멀고 돌아가는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고 원망하였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사막에 불뱀이 나타나 죽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한 이유는 하나님이 인도해 가시는 것이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길을 돌아가게 하신 것은 에돔이라는 나라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조바심을 극복하지 못했고,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시지 않는다고 시험하였습니다.
역시 이 일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을 시험한 일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가 이해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신지를 의심하고 불평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좀 인간의 이성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넷째, 하나님을 원망한 사건」
10절을 보십시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이 말씀은 민수기 14장2절 이하에 있는 사건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열 두 정탐꾼들이 가나안을 탐지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는 긍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열 명의 정탐꾼은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배성들은 열 명의 부정적 보고를 듣고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고 외부적인 상황만 보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일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어울리는 행동이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원망한 이들은 다 가나안에 들어가서 구원의 은혜들을 누리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여 하나님을 원망하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일어나 사건을 가리켜 1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름과 바다로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신령한 양식과 물을 마시는 초자연적인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상을 숭배하거나, 간음을 행하며, 하나님을 시험하기도 하고, 원망하기도 하여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이스라엘 역사에서 일어난 사건이 우리의 '본보기'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과거 역사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만나와 반석에서 물을 마시는 것과 같은 기적과 은혜를 체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서 있지 못하고 넘어지면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12절은 오늘 본문 전체의 결론입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이것은 놀라운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구원이 확정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 선 줄로 생각하다가 넘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세례 받고 성찬식에 참석하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완전히 섰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세례와 성찬을 통해 그 믿음을 고백하며 공포할 수 있어야 하지만 세례와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이라고 모두가 구원 받을 사람이라는 보장은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옛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가 고린도 교회 신자들에게 주는 교훈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경고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고린도 교회 신자들에게 유효한 교훈이고 경고라면 또한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교훈이며 경고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마지막으로 다 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넘어지게 만드는 시험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임을 말합니다.
13절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다”란 말의 뜻은 “너희” 즉 고린도 교회 신자들이 당한 시험은 이미 이스라엘 신자들이 당한 시험이라는 것입니다.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시험이 아닌 시험을 고린도 교회 신자들이 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또 그런 시험은 고린도 교회 신자들에게는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누구나 당할 수 있고 고린도 교회 신자들에게도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시험을 이긴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린도 교회 신자들도 그 시험을 능히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쁘셔서 사람이 어떤 시험을 당하든 피할 길을 보여주시며 감당할 수 있는 힘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대로 시험을 피할 길을 따르고 하나님께서 능력 주시기를 간구하며 시험을 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승리의 길이고 복된 삶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를 당하고 멸망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의도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옛 이스라엘 백성이 다 선 줄로 생각하다가 넘어졌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고린도 교회 신자들도 물로 세례를 받고 성찬에서 신령한 떡과 음료를 마시지만 다른 한편으로 옛 우상숭배에 다시 빠지고 우상 섬기는 이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기를 즐기다가는 옛 이스라엘 백성처럼 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것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수많은 기적을 경험했지만 결국 하나님께 불순종해서 광야에서 멸망했습니다.
우리 또한 교만해지지 말고 늘 깨어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감사함으로 누려야 하겠습니다.
겸손하게 그 은혜를 붙들고 순종하며 살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위에 굳게 서 있어야겠습니다.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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