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6장19~20절□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존 번연(John Bunyan, 1628-1688)은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저술가로, 그의 신학과 저술은 침례교 신앙과 전통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존 번연은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존 번연의 신학적 견해는 오늘날에도 많은 신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1660년대, 찰스 2세의 복귀와 함께 영국에서는 비국교도들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존 번연은 비국교도 설교자로서 활동하다가 1660년에 체포되었습니다.
존 번연은 베드퍼드 교도소에서 감옥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신앙과 인내의 본을 보이며, 많은 저술을 남겼습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천로역정"도 이 시기에 집필되었습니다.
베드포드 감옥에 갇혀 있었을 때에 그는 사형선고를 받은 사형수의 몸이었습니다.
그 때에 죤 번연은 죽는 것이 몹시 두려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더욱 두려웠던 것은 여러 사람이 자기의 두려워 하는 모습을 보고 복음에 대해 불신을 가지게 될까봐,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게 될까봐 더욱 걱정스럽고 염려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만일 그 사다리를 오를 때 떨고 있으면 그것으로 인해 적들에게 하나님의 길과 그 분의 백성들에 대한 비난의 기회를 주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이것 때문에 더욱 걱정스러웠는데 그것은 내가 핼쓱한 얼굴을 지닌 채 무릎을 덜덜 떨며 죽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결국 죤 번연은 "천국이 오든지 지옥이 오든지" 주 예수께서 자기를 붙잡으리라고 하는 강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 앞에서도 위로를 받고 담대한 신앙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존 번연은 12년 만인 1672년에 석방되었으며, 이후에도 계속해서 설교와 저술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베드퍼드 침례교회의 목사로서 신앙 공동체를 섬기며, 많은 사람들에게 영적인 지도력을 발휘했습니다.
석방 이후에도 존 번연은 여러 차례 더 투옥되기도 했지만, 그의 사역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는 1688년에 사망할 때까지 신실하게 목회와 저술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우리의 몸은 성령의 성전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몸이 우리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값으로 사신 몸이기 때문에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는 이미 '팔린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벌써 죄와 사망과 율법과 정욕과 방종의 노예로 버려진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에베소서2장3절)
그런데 하나님께서 값을 지불하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켰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로마서8장2절)
누가 값을 지불했습니까?
하나님께서 독생자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갈보리 십자가 위에 못 박아 죽임으로 죄 값을 청산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죄 값으로 대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한복음19장30절)
“다 이루었다”는 헬라어로 '테텔레스타이, Τετέλεσται'입니다.
‘테텔레스타이'는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서 상거래나 법률적 마침, 약속의 완성을 말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상거래에서 사용하는 ‘테텔레스타이’는 ‘값을 다 지불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내 죄를 다 지불하셨습니다.
이제 나는 나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내 죄 값을 지불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인간의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창세기1장27절)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세기2장7절)
"하나님의 신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욥기33장4절)
예수님은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이기에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존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태복음16장26절)
예수님은 사람은 '하나님이 부어주신 영혼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온 천하보다도 더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댓가를 치르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성경은 '우리 몸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20절에 보면 '너희 몸은 값을 주고 산 몸이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라'고 하십니다.
내 몸은 내 것이지만 사실은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몸의 실질 소유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몸이 병들지 않도록 잘 관리할 책임이 있습니다.
내 몸을 더럽히지 않도록 잘 관리할 책임도 있습니다.
내 몸이 병들면 우선 하나님이 손해를 보십니다.
국가가 손해를 보고, 가정이 손해를 보고, 사회가 손해를 보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유교도 보면, 육체는 부모로부터 주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몸을 상하거나 병들거나 추하게 굴리면 부모에게 불효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한 차원 더 높여서 '내 몸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내가 내 몸을 잘못 관리해서 병들거나 추하게 만들면 그것은 죄'라고 말합니다.
보십시오!
사람들이 내 몸을 내 것이라고 생각할 때 어떤 결과가 나옵니까?
그때는 내 몸을 함부로 사용하게 됩니다.
내 몸을 범죄에 사용하기도 하고, 악의 구렁덩이로 몰아넣기도 합니다.
내 몸을 방탕으로 병들게 하기도 합니다.
내 몸을 술로 망가뜨리게 하기도 합니다.
내 몸을 담배와 마약으로 병들게 하기도 합니다.
내 몸을 음행으로 추하게 만들기도 맙니다.
그리고 때로는 자살해서 죽기도 합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지 아십니까?
내 몸을 내 것이라고 착각해서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닙니다.
내 몸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믿음으로 살아야 내 몸을 잘 관리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20절)

"너희 몸이 성령의 전 인줄을 알지 못하느냐?"
이 말씀은 내 몸 속에서 하나님의 성령께서 살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내 몸을 내 마음대로 더럽힐 수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 속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집이 중요한 것은 그 집의 모양이 아닙니다.
그 집안에 살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가 중요합니다.
집은 아주 예쁘고 좋은데 그 집 주인이 강도나 살인자나 아주 부패한 사람이 살고 있다면 그 집은 값어치가 없는 집입니다.
그러나 아주 초라한 집이라도 그 집에 성자가 살고 있다면 그 집은 귀한 집입니다.
초라한 집이라도 그 집에 존경받는 사람이 살고 있다면 그 집은 귀한 집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겉 사람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속 사람이 중요합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십니다.
성령님은 인격적인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 속에 성령님을 모셔들이고 환영하고 영접'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성령님이 나를 지켜주십니다.
그 성령님이 나를 만들어 주고 그 성령님이 나를 경건하게 살아가도록 지켜줍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근원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와 이스라엘 자손과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와 모든 인류 그리고 모든 성도들로 하여금 자신의 영화로움을 드러내도록 계획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가짐과 생활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은 누구시며 또 어떤 분인가를 이웃에게 증거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서 제1문답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Soli Deo Gloria)과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모든 행위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성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칼빈도 우리가 선택 받은 것뿐 아니라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 그 자체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속하였고 하나님에 의해 완성되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구원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전 삶을 항상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권위 아래서,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영광’(榮光, δοξα 독사)이라는 말은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를 말합니다.
'영광'이란 최고로 빛나는 것입니다.
최고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최고로 선한 것입니다.
최고의 가치를 가진 것입니다.
최상의 기쁨, 최고의 명예를 말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린도전서10장31절)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뻐하고 그 분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과 기도는 모두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 기도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 1732년 3월 31일 ~ 1809년 5월 31일)은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입니다.
하이든은 모차르트의 친구이자 멘토였고, 베토벤의 스승이었습니다.
106곡의 교향곡, 68곡의 현악4중주곡 등으로 고전 시대 기악곡의 전형을 만들어 실내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이든은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려집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하이든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놀라운 음악을 작곡하는 영감을 어디에서 얻습니까?"
하이든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지혜를 주셔서 내가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하게 되면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작곡한 것이며 이 음악을 주님 앞에 드릴 것입니다."라는 기도를 드립니다."
그가 작곡한 곡 가운데 유명한 곡이 있습니다.
그것은 "천지창조(Die Schöpfung, The Creation)"입니다.
하이든은 성경의 창세기와 존 밀턴의 "실락원"에 근거해서 이 위대한 "천지창조"를 작곡했습니다.
이 곡이 비엔나에서 공연하게 되던 날입니다.
그때 하이든은 몸이 몹시 아팠습니다.
그래서 이 위대한 곡이 공연될 때 그는 환자로서 뒤에 앉아 있게 되었습니다.
그 날 지휘를 하던 지휘자는 정말 놀랍게 이 음악을 하나님 앞에서 지휘했습니다.
연주가 끝났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일어서서 지휘자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때 지휘자는 청중들의 박수를 중단시키면서 뒷좌석 발코니에 앉아 있는 하이든을 가리켰습니다.
"저 사람입니다. 저 분이 이 놀랍고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했습니다."
사람들이 다시 고개를 돌려서 하이든을 바라보며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하이든이 일어나서 청중들의 박수를 중단시키면서 말랬습니다.
"내가 아닙니다."
하이든은 하늘을 가리키면서 이런 유명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분이 모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늘로부터 온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분께만 영광을 돌리십시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귀중하고 존귀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존귀와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에 영광이 가득하게 오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1장14절)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람들 중에 ‘평화’를 온전히 이루시기 위해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 말구유에 태어나셨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누가복음2장14절)
이처럼 <영광>이라는 말은 하나님에게만 사용할 수 있는 독특한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입니다.
그 이름이 영원히 높임을 받고 영원히 경배와 영광을 받으실 분입니다.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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