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강해(14)- 본을 보였으니
□ 고린도전서 4장 6~13절 □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그 동안 바울은 분파로 나누어진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옳지 않음을 계속해서 지적해 왔습니다.
그는 자신과 아볼로를 식물을 심는 자, 집을 짓는 자, 또는 일꾼과 청지기로 비유하면서, 자신들은 하나님의 일꾼에 불과하며 중요한 분은 성도들을 성장케 하시는 하나님임을 거듭해서 강조했습니다.
바울은 자신과 아볼로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위해서 하나가 되어 복음의 일꾼으로 모범을 보였다고 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나와 아볼로에게 적용하여 설명하였습니다.
그것은 "기록된 말씀의 범위를 벗어나지 말라"는 격언의 뜻을 여러분이 우리에게서 배워서,
어느 한 편을 편들어 다른 편을 얕보면서 뽐내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6절, 새번역)
바울은 자신과 아볼로가 모범을 보인 것은 첫째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기록된 것을 넘어가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었고, 둘째는 자신과 아볼로가 서로 높이고 협력함을 보고,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교만한 마음을 품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아볼로는 바울과 베드로(게바), 그리스도파와 함께 고린도교회에서 한 분파를 이룰 만큼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던 인물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
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 고린도전서 4장6절 -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고린도교회는 받은 은혜가 넘쳐서 교만에 빠져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는 아주 많은 은사가 나타납니다.
지혜가 넘치고, 지식이 넘치고, 병고치는 은사가 넘치고, 예언의 능력이 넘치고 방언을 말하고….
고린도교회는 모든 것이 넘쳤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서로 자신이 받은 은사가 제일이라고 남의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비교하면서 자랑을 합니다.
이렇게 자랑에 빠져 있는 교인들에게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나와 아볼로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본이 되고 있지 않으냐?
너희들이 나와 아볼로를 비교하고 한 사람이 최고라고 말하지만…. 내가 언제 아볼로와 다투었느냐?
아볼로와 비교해서 내가 훨씬 더 하나님께 인정받는 일을 했다고 말하더냐?
언제 아볼로가 내가 바울 사도보다 더 큰 일을 했다고 주장하더냐?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고전3:5)
나와 아볼로가 너희에게 본이 되지 않느냐?
그러니 너희들도 너희들이 받은 은사 중에 내 것이 제일이라고 서로 자랑하고 폼내지 말라.
제발 나와 아볼로의 관계를 본받아라.
1. 본 (本) 을 보인 바울과 아볼로의 사역
'본이 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본(本)이란 어떤 사실을 설명하거나 증명하기 위해 대표로 내세워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본을 보였으니"는 어떤 것을 예시로 보여주거나 모범적인 행동을 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 표현은 주로 어떤 행동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거나 교훈을 주는 경우에 사용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마지막 유월절 자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한복음13장14∼15)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예수님의 본을 따랐기에 고린도전서 4장 16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합니다.
또 고린도전서 11장에서도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합니다.
'본을 보였으니'로 번역된 헬라어 메테스케마티사(μετεσχημάτισα)는 '적용하다', '변형시키다'의 뜻으로 '의지를 가지고 자신에게 적용시켰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바울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규범을 자신과 아볼로의 관계에 적용(適用)시켰습니다.
아볼로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으로,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하며,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쳤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사도행전 18장24절)
아볼로는 전도자이자 변증가였고, 교회 지도자이며, 사도 바울의 친구였습니다.
아볼로는 타고난 은사로 고린도 교회에서 추종자들을 끌어들였지만, 단순한 존경이 불화로 번져나갔습니다.
아볼로의 바람과 달리, 교회 성도들 가운데 바울과 베드로를 배척하고 아볼로를 영적인 멘토로 추종하려는 파벌이 생겨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과 아볼로는 때로 심는 자와 물주는자, 터 닦는 자와 건축자 등과 같은 협력자로서의 공동체적 삶을 살았습니다.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바울과 아볼로가 서로를 판단하지 않는 것은 자신들에게 주어질 칭찬을 의식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지켜보며 살아가는 수많은 성도들과 무엇보다도 모든 것을 판단하실 분은 주님 자신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지도자적 자질을 더욱 빛내줍니다.
바울과 아볼로는 적대 관계가 아니라 협력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당을 지으면서 적대 관계처럼 만들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집을 아름답게 지어가는 ‘본’을 보여야 합니다
2.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자기들에게 은사들이 나오게 되니 그것을 가지고 자기들이 잘나서 그렇게 된 줄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고방식의 밑바탕에는 교만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에 관한 일에 대해 아볼로와 자신이 본을 보였으니 교만한 모습을 버리라고 권면합니다.
교만하지 않기 위해서는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아야"(6절) 합니다.
말씀(복음)은 서로 연합하여 하나님의 집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와 조화를 이루어야 하나님의 집을 세울 수 있습니다.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때로는 나의 자존심을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내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니 무언가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것들이 있다'고 여긴 것입니다.
즉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훌륭한 사람들이구나 하는 것을 은근히 자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바울은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이 더 잘났다고 주장하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누가 너를 남과 다르게 구별하였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나눈 적이 없으며, 모두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 중에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당시 그들 중에 일부 사람들은 많은 성령의 은사를 받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은사를 받은 후에 은사를 받지 못한 사람들을 멸시하고, 은근히 자신들을 자랑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사람들을 향해서 그들이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자랑할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교회를 섬겨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가지고, 그것이 마치 자기 것인 것처럼 자랑하는 것에 대해서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마땅히 그들에게 은사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 마땅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 말씀은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가 받은 것은 모두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중에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하나님께 받은 은사라면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로마서3장27절)
자신의 연약함과 죄악을 외면하고, 자신을 높이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큰 악입니다.
자신의 공로로 구원을 얻으려는 사람은 자신의 죄성을 망각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따라서 우리 자신을 자랑하지 말고 그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행해서 바울이 하고 있는 말이고, 또한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말씀입니다.
바울은 8절에서 계속해서 말합니다.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자신을 자랑하는 성도들에게 이미 다 가진 부유한 자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사람들의 ‘왕’이 되지 말고,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예리한 풍자를 통해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교만을 역설적으로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성령의 은사를 받았고, 이미 모든 은혜에 배부르고 만족하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 이미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여 왕 노릇을 하고 있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이 정말로 왕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정말 왕이 되면 사도인 자신들도 그들과 함께 왕이 될 것이라고 냉소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정말로 왕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그렇다면 우리도 역시 너희처럼 왕이 되었을텐데!”
사실 우리도 이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대부분 세상에서 부요하고 왕처럼 살고 지혜롭고 강하고 존귀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면 이렇게 된다고 전도하기가 쉽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늘 이렇게 기도합니다.
“꼬리가 되지 않고 머리가 되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목사님의 기도는 예수를 믿고서 사회에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정치계도, 법조계도, 학자도, 의사도 많이 나와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합니다.
3. 우리는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그러나 바울사도는 하나님의 사도인 자신들을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어떤 대접을 하셨는가를 보라고 말합니다.
9절 말씀입니다.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하나님은 사도들을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끄트머리에 처하게 하셨습니다.
세계 곧 천사와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며 당하는 고통과 죽음을 마치 이런 구경거리가 되듯이 하였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만에 빠진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현실을 깨우쳐 주기 위해서 사도들이 현재 당하고 있는 치열한 영적 위협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현실 속에서 당하는 생생한 고난을 언급함으로,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수많은 악과 싸우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후서에서 자신이 사도로써 당한 고난들을 언급했습니다.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고린도전서 4장9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린도후서11장23~27절).
이러한 기록들을 보면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원형 경기장에서 맹수들과 싸우는 투사처럼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투사들은 사형이 언도된 사람들로 인간으로서는 가장 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형을 언도받은 투사처럼 되어서 천사와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 시대를 다룬 영화를 보면 사형을 선고받은 투사들은 원형 경기장에서 맹수들이나 다른 투사들과 싸우다가 처참하게 죽습니다. 실제로 주후 3세기까지 그리스도인들이 원형 경기장에서 짐승의 밥이 되었으며, 또한 다른 투사들의 칼과 창에 베이고 찔려서 처참하게 죽음을 당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투사의 비유를 통해서 사도들이 현재 사단과 치열한 영적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자신들은 그 싸움에서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고린도전서 4장10∼13절)
바울은 자만하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과 고난 받는 사도들을 대조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11절에서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난을 매우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면서 지금 이 순간까지 굶주리고 목마르며 변변한 옷도 입지 못하고 매를 맞으며 마땅히 거할 처소도 없었다고 말합니다(11절).
바울은 39대씩 맞는 매를 여러 번 맞고 죽다가 살아났습니다.
바울은 정해진 거처도 없었습니다.
또 바울은 친히 자기 손으로 일을 해서 복음을 전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벌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모욕을 당하면 그들을 축복했고, 복음을 위해 박해를 받으면 참고 인내했습니다(12절).
그리고 바울은 남에게 비방을 받으면 그들을 향해서 복음을 믿도록 권면했습니다(13절).
이러한 바울의 태도는 예수님의 교훈을 그대로 따른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오른편 뺨을 치는 자에게 왼편 뺨을 돌려대고, 원수를 위해 기도하고 축복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을 씻는 것(걸레)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다(13절)”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통해서 세상의 더러운 죄악을 씻어내는 걸레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또한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찌꺼기와 같은 존재로 멸시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자신들이 현실 속에서 복음 전파를 위해서 당하는 고난과 역경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난의 삶을 제시함으로, 자만에 빠진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서 죄악과 싸워 이기기를 원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이 복음을 위해서 당하는 고난의 목록들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오늘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 뒤돌아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말로만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우리의 삶을 반성해야 하겠습니다. 평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