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강해

고린도전서 강해(11)-그리스도의 일꾼/휘페레테스(ὑπηρέτης)

가족사랑 2025. 4. 26. 06:14

고린도전서 강

□고린도전서 4장 1~5절□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바울이 세운 고린도교회에는 다른 교회지도자들도 나름대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 구성원들 사이에도 파벌이 있었고 대립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교회공동체 안에 이러한 분파 현상이 있다는 사실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바울은 교회의 분열이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포함해서 그리스도의 일꾼들이 분파의 장본인이 되었다는 현실을 보고 그냥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해명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성경 1〜5절에서 자신을 포함한 복음전파자들이 어떠한 사람들인가를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의 일꾼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사실을 말합니다.

여기에 “일꾼이라 말은 헬라어로 '휘페레타스(πηρέτας)입니다. 

고대 전함(戰艦)에서 노를 젓는 가장 하급 노예를 휘페레테스(ὑπηρέτης)라고 불렀는데 거기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일꾼으로 번역된 휘페레테스는 로마시대의 전투함 아래층에서 노를 젓는 노예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아래를 말하는 휘퍼노 젓는 사람을 말하는 페레테스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영어로 말하자면 underrower를 합쳐서 underrower가 될것입니다.

벤허라는 영화를 기억하시는 분들은 벤허가 노예가 되어서 로마 갤리선의 밑창에서 노를 젓던 모습을 상상하시면 됩니다.

영화를 보면 휘페레테스들은 쇠사슬에 묶여 배밑창에서 노를 저었습니다.

배에 묶인 휘페레테스는 배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하게 됩니다.

만약 이 전투에 지고 배가 침몰한다면 쇠사슬에 묶인 휘페레테스들은 배와 함께 바다에 가라앉아 수장될 운명입니다.

사는 길이라면 최선을 다해 노를 저어 이 전투에서 이기고 돌아가는 길 밖에 없을 것입니다.

둥둥둥 울리는 북소리를 따라 감독자가 노를 저으라면 명령이 떨어지면 휘페레테스들은 앞으로 노를 젓고, 북소리가 빨라지면 있는 휘페레테스들은 있는 힘을 다해 빨리 노를 젓습니다.

노를 멈추라면 멈춰야 하고, 왼편만 저으라 하면 왼편의 휘페레테스들만 노를 젓습니다.

오른편만 저으라 하면 오른편의 휘페레테스들만 노를 젓습니다.

휘페레테스들 사이에 높고 낮을 것이 없습니다.

휘페레테스들은 밖을 보지 못하니 지금 배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도 없고, 어디로 가야한다고 말할 결정권도 없습니다.

선장의 명령을 듣고 내가 좋으면 노를 젓다가 내가 싫으면 그만 둘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뭐라 따질 것 없이 하라는 대로 순종하며 노를 젓는 사람들입니다.

 

 

노예들은 선장이 거기서서 명령하는 대로 노를 젓습니다.

노예들은 한눈을 팔아도 안 되고 딴전을 피워도 안 됩니다.

꾀를 부려서도 안 되고 핑계를 대어서도 안 됩니다.

 

바울은 자신들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을 "그리스도의 휘페레테스"라 부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교회라는 배가 잘 갈 수 있도록 노를 젓는 사람들이 자신들이라는 것입니다.

선장되신 그리스도께만 종속된 휘페레테스 바울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명령대로 순종하고 그 명령대로 시중들 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라는 전투선의 선장되시고, 바울은 그리스도의 휘페레테스가 되어서,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 노를 저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마태복음9장37~38절)

어느 곳에서든지 일꾼이 필요합니다.

교회에도 일꾼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이란 어떠해야 할까요?

그리스도의 일꾼이란 ‘주의 일을 마땅한 것으로 생각하고 행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1절 앞부분을 보십시오.

“사람이 마땅히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마땅히'는 헬라어로 '후토스(Οτως)'인데, 그 의미는 '그러므로, 그런즉, 이와 같이'라는 접속어입니다.

개역개정에서 '마땅히'로, 새번역은 '이와 같이'로 번역했습니다.

'후토스'는 그리스도의 일꾼된 것이 당연한 것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사업이 안정되면 교회 일을 열심히 하겠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마땅히 기쁜 마음으로 주의 일을 할 때 사업이 안정됩니다.

건강이 좋아지면 교회 나가겠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연약함을 무릅쓰고 주님 앞에 나올 때 주님께서 건강을 주십니다.

가정이 안정되면 그때 하나님 일을 하겠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주의 일을 하는 것을 마땅히 생각하고 기쁨으로 할 때, 하나님은 가정도 안정되게 하십니다.

주의 일을 마땅히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기쁨으로 하면 하나님은 오묘한 방법으로 힘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십니다.

무슨 일이든지 마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힘든 일도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고 기쁨으로 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 그것이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힘들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마땅한 것으로 생각하고 기쁨으로 일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일꾼의 모습입니다.

 

스페인에는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스페인과 프랑스 접경에 위치한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습니다.

스페인의 수호성인인 성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쪽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약 800km에 이르는 길입니다.

산티아고(Santiago)는 야고보를 칭하는 스페인식 이름이며, 영어로는 세인트 제임스(Saint James)라고 부릅니다.

이 순례길은 야고보가 걸어간 길을 걸으면서 묵상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명소로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산티아고가 대한민국에도 있습니다.

2019년 11월에 조성된 ‘한국판 산티아고’는 전라남도 신안군 섬마을에 위치해 있습니다.

섬과 섬 사이를 연결하여 만든 순례길로 일명 ‘섬티아고’라고 부릅니다.

섬티아고 순례길은 전남 신안군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딴섬 등 5개 섬 12km를 잇는 길입니다.

2017년 전남도의 가고 싶은 섬사업에 선정된 뒤 11명의 국내외 건축·미술 작가들이 예수의 열두 제자를 상징하는 기도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한국 작가 6,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 등 외국 작가 5명이 참여했습니다.

기도처들은 대부분 두 평을 넘지 않는 작은 공간입니다.

대기점도에서 시작해 마지막 딴섬까지 이어지는 12km의 순례길은 12사도의 이름을 딴 작은 예배당이 1km마다 세워져 있습니다.

 

 

이 작은 섬마을에 이런 기독교적인 순례길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문준경'이라는 ‘하나님의 휘페레테스’ 있었기 때문입니다.

 

- 문준경 전도사(1891-1950) -

 

문준경은 189122일 전라남도 신안군 암태면 수곡리에서 34녀 중 3녀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총기 실력이 남보다 뛰어났지만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그녀는 아버지로부터 글을 배우지 못하였습니다.

문준경은 17세가 되는 1908년 3월 18일 정근택과 결혼을 해서 살고있었습니다.

그런 문준경에게 시아버지는 한글을 가르쳐주었고 1928년에 시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큰오빠가 있는 목포로 가서 바느질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중 한 전도사를 만나 성경을 접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목포 북교동교회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1931년 상경하여 경성성서학원에 입학하고 25회로 졸업할 때까지 6년을 도서지방 순회전도사가 되어 1933년 임자진리교회를 시작으로 증동리교회, 대초리교회, 방축리교회, 우전리교회, 사옥교회 등을 개척했습니다.

1943년 일제의 탄압으로 성결교단이 강제 해산됨과 동시에 문전도사가 개척한 증도교회에서 목회하던 그녀는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며 목포경찰서 불려가 고문을 받았습니다. 

고문을 받을 때마다 문전도사는 찬송가 336장 “환란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지켰네”를 부르며 에스더서 4장 16절 “죽으면 죽으리라”를 수없이 되풀이 했습니다.

문전도사는 아무리 회유와 협박이 이어져도 굴욕적인 신사참배는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같은 섬에 목회하던 양도천전도사 백정희전도사를 다른 섬으로 피난을 시키려 했는데 배를 타려는 순간 공산 폭도들이 몰려와 두 전도사를 두들겨 패어 파죽음을 시켜 놓고 죄질이 나쁘다고 생각한 문준경, 양도천, 이봉서 세 전도사는 목포 분주소로 옮겼습니다.

그들 일행이 떠나는 날 밤 중동리 무수한 양민이 빨치산들에 의해 학살을 당했습니다.

문전도사는 은신하고 있는 이성봉목사를 찾아갔습니다.

이목사가 난리 후에 중동리에 가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만류하였으나 문전도사는 “저 때문에 무고한 성도가 한 사람이라도 죽어서는 안 된다.”라며 “더구나 백전도사가 대신 붙잡혀 옥고를 치를 텐데 돌아가야 한다.”라고 하면서 중동리로 돌아갔습니다.

1950년 10월 5일 제 발로 내무서를 찾아온 문준경은 새끼줄에 묶인 채 바닷가 모래사장으로 끌려온 후 죽창으로 찔리고 발길로 차이며 총대로 죽음에 이를 정도로 맞았습니다.

그 와중에도 문전도사는 자신을 죽이더라도 백정희전도사와 성도들은 죽이지 말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공산군은 '너는 반동의 씨암탉 같은 존재이기에 처형한다'며 문전도사를 창으로 잔인하게 온몸을 찔렀지만 숨이 끊어지지 않자 목에도 총구를 대고 총살하여 당시 59세로 순교했습니다.

 

 

 '문준경'이라는 ‘하나님의 휘페레테스’로 인해서 무속신앙이 강하게 발달되어 있는 섬지역이 복음 전도로 마을 인구의 80% 이상이 기독교인이 된 놀라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지금까지 이어져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묵상을 할 수 있는 순례길까지 국가사업으로 지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문준경 전도사는 오늘 우리 신앙인에게 많은 도전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휘페레테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노를 젓는 사람이지만, 사실 내가 선장이 되어 뱃머리를 조종하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휘페레테스’라는 인식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평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