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108)-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서 강해(108)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 로마서 12장 18~21절 -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나의 벗들이여!
- 어제와 오늘 우리가 고난과 마주할 지라도,
나는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은 아메리칸 드림에 깊이 뿌리 내린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 진정한 의미를 신조로 살아가게 되는 날이 솟아오리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 옛 노예의 후손들과 옛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불의의 열기에,
억압의 열기에 신음하는 저 미시시피주 마저도,
자유와 평등의 오아시스로 변할 것이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아이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지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저 아래 앨라배마 주가,
사악한 인종주의자들이,
주지사가 늘상 주의 결정이 연방정부에 우선한다(interposition)느니,
연방법의 실시에 대한 거부권(nullification)이 있다느니 하는
말만 반복하는 바로 그 앨라배마 주가
언젠가 변하여,
흑인 소년 소녀들이 어린 백인 소년 소녀들과 손을 잡고
형제자매로서 함께 걸어갈 수 있게 되는 꿈입니다.
어느 날 모든 계곡이 높이 솟아오르고,
모든 언덕과 산은 낮아지며,
거친 곳은 평평해지고,
굽은 곳은 곧게 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 모든 사람들이 함께 그 광경을 지켜보는 꿈입니다.
(이사야 40장4~5절)
이것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이것이 제가 남부로 돌아갈 때 가지고 가는 신념입니다.
이런 신념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절망의 산을 개척하여 희망의 돌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희망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이 나라의 이 소란스러운 불협화음을
형제애로 가득 찬 심포니(교향곡)로 변화 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신념이 있기에,
우리는 함께 일하고,
함께 기도하며,
함께 투쟁하고,
함께 감옥에 가며,
함께 자유를 위해 싸울 수 있으며
우리가 언젠가 자유로워 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날은 하나님의 모든 자식들이
새로운 의미로 노래부를 수 있는 날이 될 것입니다.
『나의 조국, 그분의 땅, 달콤한 자유의 땅,
나 그분께 노래부르리.
나의 부모가 살다 죽은 땅,
필그림 개척자들의 자부심이 있는 땅,
모든 산골짜기로부터, 자유가 울려퍼지게 하라.』
그리고 미국이 위대한 국가가 되기 위해서,
이것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유가 뉴햄프셔의 거대한 언덕에서 울려 퍼지게 합시다.
자유가 뉴욕의 큰 산에서 울려 퍼지게 합시다.
자유가 펜실베이니아의 앨러게니산맥에서 울려 퍼지게 합시다!
콜로라도의 눈 덮인 로키산맥에서도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캘리포니아의 굽이진 산에서도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뿐만 아니라, 조지아의 스톤 산에서도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테네시의 룩아웃산에서도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미시시피의 모든 언덕에서도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모든 산으로부터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그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할 때,
모든 마을,
모든 부락으로부터,
모든 주와 도시로부터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할 때,
우리는 더 빨리 그 날을 향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
흑인이건 백인이건,
유태인이건 비유태인이건,
개신교도이건 가톨릭교도이건,
손을 잡고, 옛 흑인 영가를 함께 부르는 그 날 말입니다.
『드디어 자유가, 드디어 자유가!
전능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가 마침내 자유로워졌나이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는 수백 년 동안 이루지 못했던 미국의 인종 평등에 큰 진전을 가져다준 비폭력 민권운동 지도자였습니다.
마틴 루터 킹은 1929년 미국 남부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침례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애틀랜타에 있는 무어하우스 대학(Morehouse College)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크로저 신학대학(Croz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석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이때 그는 인도의 무저항주의 독립운동가 마하트마 간디의 철학에 매료됐습니다.
킹 목사가 비폭력 투쟁을 원칙으로 한 건 간디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어 보스턴대학(Boston University)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습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되는 것이 사명이라 여겼던 마틴 루터는 목사가 되어 1954년부터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침례교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인종차별 반대 투쟁의 도화선이 된 시내버스 좌석 사건이 벌어진 건 바로 그 다음 해였습니다.
당시 몽고메리의 버스 제도는 백인이 앞에 앉고 흑인은 뒤에 앉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그 중간에 흑백 공용석이 있었지만, 앞의 백인 자리가 모자라면 그것도 백인한테 내줘야 했습니다.
1955년 12월 1일, 재봉사 일을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돌아가던 로사 팍스라는 흑인 여성이 중간석에 앉았습니다.
그러다 백인 승객이 올라타자 운전사가 팍스 여인에게 자리를 내주고 뒤로 가라고 명령했습니다.
팍스 여인은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노 (No)”라고 하며 버티고 앉아 있었습니다.
팍스 여인은 규정을 어긴 죄로 체포됐습니다.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전국적인 관심이 앨라배마에 쏠렸습니다.
평소 흑인 차별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던 킹 목사는 지역 흑인 지도자들은 규합해 몽고메리 시내버스 거부 운동을 벌였습니다.
버스 보이콧 운동을 주도한 킹 목사는 살해 위협도 여러 차례 받았고,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당국에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백인들은 버스 안타기 운동이 곧 시들해질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 운동은 장장 382일 동안이나 계속됐습니다.
1956년 11월, 미국 대법원은 몽고메리 시내버스 시스템의 인종 분리 제도는 불법이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킹 목사와 그의 동료들의 투쟁이 승리한 것입니다.
그 사건이 있은 후 킹 목사는 미국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유명인사가 됐습니다.
미국 남부 여러 곳에서는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평화적인 시위가 줄을 이었습니다.
민권운동은 급속도로 번져 ‘남크리스천 지도자 대회’라는 조직이 탄생했고, 그 회장에 킹 목사가 선임됐습니다.
1963년 앨라배마주 버밍햄에서는 식당이나 학교의 흑백 차별 금지를 요구하는 대규모 행진이 벌어졌습니다.
경찰은 물대포를 쏘고 개를 풀어 위협하며 폭력적인 진압에 나섰습니다.
이 충돌에서 킹 목사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체포됐습니다.
민권운동 단체들은 버밍햄 시내의 상점 불매운동을 벌였습니다.
이 운동은 국제적인 뉴스가 된 가운데 지역 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백인들은 결국 민권운동가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버밍햄 승리는 민권운동의 분수령이었습니다.
그러나 킹 목사는 인종 평등에 대한 전국적인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전국적인 시위를 추진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워싱턴 D.C.에서 벌어진 대행진이었습니다.
1963년 8월 벌어진 이 행진에는 약 25만 명이나 되는 군중이 참여했습니다.
1960년대와 70년대 초 워싱턴에서는 여러 가지 행진이 벌어졌지만, 이처럼 대규모 행진은 처음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킹 목사는 바로 그 유명한 ‘나에게는 꿈이 있다’는 연설을 한 것입니다.
1964년, 드디어 린든 B. 존슨 대통령은 민권법에 서명했습니다.
이 법은 공공장소에서의 인종 분리나, 피부색, 종교, 성, 또는 민족을 이유로 고용에서 차별을 하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했습니다.
이어서 투표권법, 평등 주택법 등이 연속 제정되면서 선거, 거주, 주택 구매 등에서 인종이나 민족에 따라 차별을 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킹 목사는 민권법이 제정되던 해에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킹 목사는 수상 연설에서 ‘나에게 이 상이 주어진 것은 우리 시대가 당면하고 있는 심각한 정치적 도덕적 질문에 비폭력 운동이 해답이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킹 목사는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있는 차별과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 동분서주했습니다.
불행하게도 그는 1968년 4월 4일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백인 우월주의자의 총을 맞고 숨졌습니다.
그의 나이 불과 39세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뿌려놓은 밑 거름에 힘입어 2009년에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까지 등장하는 커다란 변화가 일었습니다.
사람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값지게 사느냐라고 역설했던 마틴 루터 킹, 그는 억압받고 차별당하는 모든 사람의 희망이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어두움은 어두움을 쫓아낼 수 없고 빛이 있어야만 사라집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21절)
우리 삶 자체는 영적 전쟁입니다.
이 영적 전쟁에는 둘 중 하나 밖에 선택이 없습니다.
악을 이기든지, 아니면 악에게 지고 정복당하든지, 둘 중 하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악을 악으로 남겨놓고 살 수 없습니다.
또한 악은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 자체가 영적 전쟁입니다.
거기에는 회색지대가 없습니다.
이기든지 지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천이라면 대충 믿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적당히 믿는다거나 편안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곧 악에게 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악에게 져도 좋다고 하실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가 악에게 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복음 16장33절)
우리는 이미 악을 이기시고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십자가의 군병입니다.
우리는 사실 악에게 질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마음속에 조그만 감정이 악의 씨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면, 과감하게 그것을 뿌리 뽑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삶의 원칙입니다.
사랑만이 미움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사랑만이 악을 이길 수 있습니다.
악은 악으로 절대 쫓아낼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악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악은 악으로 청산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선을 행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세상에 사랑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힘이 듭니다.
그러나 이것이 미움을 이기고, 악을 이깁니다.
베드로전서 3장 9절 말씀입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남에게 복을 빌어 주는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사람입니다.
마더 테레사가 말했습니다.
“저는 성공하려고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해 부름 받았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자신이 행한 모든 일은 자기가 잘나서 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나밖에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인간은 원래 자기밖에 모르지만 하나님의 것이 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부르심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 수 있습니다.
절대로 교만해서는 안됩니다.
성 어거스틴(Augustinus, Aurelius)이 말했습니다.
"천사를 마귀로 만든 것은 교만이며 인간을 천사로 만드는 것은 겸손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높은 척 하지 말고 낮아져서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사랑도 겸손으로 이루어집니다.
행복도 겸손으로 이루어집니다.
성공도 겸손으로 이루어집니다.
어떤 영국 신사가 미국에서 가든파티를 열었습니다.
맛있는 음식이 가득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즐기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곳에 아메리칸 인디언 추장이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몹시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습니다.
그래서 문간에 서서 주인을 불렀습니다.
"배가 고프니 빵을 좀 주세요."
그러나 주인은 거절합니다.
"당신 같은 야만인에게 줄 빵은 없어!"
"그러면 목이 마른 데 물이라도 좀 주세요."
"너 같은 놈한테 줄 물이 어디 있느냐"
영국 신사는 추장을 몹시 모독했습니다.
추장은 섭섭한 마음으로 돌아섰습니다.
그 뒤 어느 날, 그 영국 신사가 사냥을 나갔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목이 마르고 지친 채 산을 헤매다가 그만 기진해버렸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인디언 추장이 지나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자기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물을 먹이고 음식을 주어서 살려놓았습니다.
"자, 당신 나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소"
영국 신사가 얼마나 부끄러웠겠습니까
"당신은 나에게 물도 음식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을 죽을 지경에서 살렸습니다.
마침내 나는 원수를 갚았소."
원수를 갚는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랑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여기에 승리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마태복음 5장43〜45절)
우리는 작은 미움의 감정 하나도 삭이지를 못해서 씩씩거립니다.
어떤 때에서는 아예 살인적인 생각을 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니 나에게 무서운 해를 끼친 원수가 굶주릴 때 내 돈까지 써가면서 먹을 것을 갖다 주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용서한다고 말로는 할 수 있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앙금이 남아 있습니다.
이런 본성을 가진 우리에게 예수님은 원수가 굶주리면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르면 마실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도저히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인간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으로는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 마태복음 19장26절 -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면 가능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가능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시면 넉넉히 원수에게까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갖다 줄 수 있습니다. 평안!